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67화 (67/125)

〈 67화 〉 67, 이건 또 못참아

* * *

저녁의 시내 거리는 언제나 활발하기 마련이다. 특히 그날이 모든 대학생들의 종강 날이라면 더더욱.

시험이 끝난 대학생들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거리를 들쑤시기 때문이었다. 혈기왕성한 청년들이 대부분의 술집을 차지함은 물론이오, 늦은 새벽시간대가 되면 모텔의 빛은 꺼질 줄을 모른다.

약간 음습한 경향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수많은 사람들의 밝은 에너지는 생판 모르는 타인에게도 영향을 주기 마련이었다.

웃고 떠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걷다 보면 자신도 어느새 동화되는 것이다. 사람의 감정이란 생각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보통은 이렇게 걷다 보면, 안 좋았던 기분도 자동으로 풀어지기 마련인데··· 이은별의 기분은 여전히 언짢기만 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선배, 그러고 보니 선배는 술 잘 마시나요?”

“나? 음, 적당히 마시지.”

자신이 생각한 그림에 웬 부외자가 끼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자신은 이세원과 단둘이서 즐겁고 설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어느새 그냥 평범한 종강 파티 mk2가 되어 있었다.

분명 ‘데이트’ 비슷한 것을 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꼬이니 기분이 좋을리가 없는 것이다.

앞에서 이세원에게 말을 거는 제 친구들을 보고 있자, 괜히 열불이 치솟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혼자 인상 쓰고 걷고 있자, 옆에서 누군가가 끼어들어 말을 걸었다.

“야, 인상 좀 펴라. 뭘 그렇게 꽁해있어?”

유보람이었다. 그녀가 평소처럼 장난기 넘치는 얼굴을 한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은별은 그 얼굴이 평소보다 더욱 아니꼬워 보였다.

“야.”

은별은 약간 퉁명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그냥 평범하게 저쪽 파티에 끼지 왜 여기로 왔냐?”

“우리 과 애들이랑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좀 질려. 가끔은 새로운 자극도 필요한 법이야.”

“아니! 평소에는 신나서 잘 처마시더만 뭔···!”

“워워. 진정해 은별아. 그리고 솔직히 둘이 있기도 어색할 거 아니야.”

“그건······!”

그 말에, 이은별은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반박하기 어려운 말이었기 때문이다.

둘이서 설레는 분위기를 연출하고싶은 마음이긴 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어색함이 감돌까봐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안 그래도 마주 보고 있으면 제 몸이 굳는 게 느껴지는데, 단둘이서 식사를 하면 어떻게 될까?

틀림없이 어색한 공기가 맴돌게 뻔했다.

물론 그것도 술을 좀 마시다 보면 괜찮아지긴 하겠지만··· 침묵을 싫어하는 그녀에게는 그 잠깐의 어색함조차 느끼기 싫었다.

그런 의미에서 살펴보자면, 오히려 제 친구들이 난입한 게 분위기상으로는 괜찮을지도 몰랐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개인이 느끼는 어색함은 줄어들 테니까. 특히 얘네들은 말발도 좋았으니, 분위기도 금방 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물론, 그렇다고 이 상황이 절대 좋은 건 아니었다. 은별은 말을 얼버무리면서 잠시 앞을 쳐다보았다.

대체 뭐가 재밌는 건지, 옆에 있는 여자와 실실 웃고 떠드는 이세원이 보였다.

“에이, 괜히 허세 부리지 마요. 나중에 전봇대에 토하면 어떡하려고.”

“어쭈? 너나 나중에 뻗지 마.”

원래 저렇게 웃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아니, 잘 웃는 편이긴 해도 보통 아무한테나 웃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저런 걸 볼 때면, 제 속에서 미약한 질투심이 솟아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건 분명한 질투심이었다.

그녀는 앞에서 걷고 있는 이세원을 잠시 쳐다보다가, 이내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좋게 생각하자.’

일단은 분위기 자체는 별로 어색하지 않을 테니까. 은별은 그것을 위안 삼기로 했다.

“야,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너 오빠한테 뭔 이상한 짓거리하지 마라.”

“에이, 당연하지.”

유보람은 실실 웃으면서 대답했다.

물론 그걸 듣는 은별은 불안하기만 했다.

*

파티 구성원은 총 다섯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선 나와 이은별, 유보람이라는 애가 포함된 건 이미 아는 사실이고. 그 이외에도 다른 여자 두 명이 더 있는 것이다.

사실 이 둘도 강의실 안에선 몇 번 이야기해 본 적 있는 녀석들이었다. 이름이 송재영하고 송재은이었나···듣기로는 둘이 같은 날 같은 대에 태어난 쌍둥이라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쌍둥이라고는 해도 둘 다 같은 대학에 같은 과를 오다니. 여기서 그녀들의 우애(??)를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자매치곤 꽤나 친한 사이일 것이다. 분명 서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겠지.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그딴 게 아니었다. 그녀들이 일란성 쌍둥이든, 샴쌍둥이든 뭐든, 그딴 건 지금 전혀 중요한 게 아니란 말이다.

현재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여자 4명을 끼고 술을 마신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이 무슨 사치란 말인가. 양손은 물론 양 발에도 꽃을 들고 다닌다니.

이곳이 역전 세상이라 그나마 가능한 일이지, 원래 세상이라면 꿈도 제대로 못 꿀게 뻔했다.

본래 세상에서도 여자1, 남자n조합은 심심치 않게 보였으니까. 남자1, 여자n조합은 극소수인데도 말이다.

새삼, 나는 성별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튼, 덕분에 나는 현재 꽤나 즐거운 기분을 느끼고 중이었다. 시험이 끝난 당일 여자 4명을 끼고 술을 마시러 가는데 즐겁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녀들의 패션은 꽤나 노출도가 높았다. 현재의 계절은 이미 봄을 넘어 초여름으로 가고 있는 상태였으니.

6월 중순으로 들어서버린 날씨는 저녁인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찌는 듯한 더위를 선사해 주고 있었다.

공기 중의 습기 농도도 이제 점차 높아져가고 있었으니, 사람들의 옷가지가 얇아지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걱정 마세요~ 제가 먼저 뻗을 일은 없으니까.”

나는 옆에서 송재영이 떠드는 것을 들어주며 잠시 그녀의 패션을 살폈다.

허벅지에 딱 달라붙는 연갈색의 치마에, 남색의 크롭셔츠, 거기에 뒤로 묶은 포니테일이 매력이었다.

나는 살짝 감탄했다.

‘캬.’

저번에 이은별이 입은 것처럼 몸에 딱 달라붙는 크롭티는 아니었지만, 셔츠는 셔츠대로의 매력이 있었다.

일단 다른 건 제쳐두고, 매끄러운 허리라인이 드러난다는 것부터가 크롭티의 위대함을 알 수 있었다. 언젠가 크롭티를 개발한 사람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대답하며 잠시 다른 이들도 살펴 보았다.

“꼭 그렇게 말하는 애들이 가장 먼저 탈락하더라.”

다른 이들의 옷가지도 비슷하게 노출도가 높았다.

송재은은 오프숄더 옷을 입어 어깨를 내놓는가 하면, 유보람은 브이넥을 입어 가슴골을 노출하기도 했다. 뒤에서 걷고있는 이은별 같은 경우엔 눈에띄는 피부 노출은 없었지만, 몸에 쫙 달라붙는 옷을 입어 단련된 몸매를 부각시키고 있었다.

세상이 바뀐 만큼, 이들의 옷차림도 한층 대범해진 모습이다.

순간 나는 감동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크흡···!’

그래··· 이게 역전 세상이지. 허구한 날 남자 꼬추만 그려대는 게 아니라, 이렇게 가끔씩 여자들한테 둘러싸여 술도 먹고 하는 게 역전 세상이란 말이다.

쥬지를 그려댔던 지난 시간이 약간이나마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길을 걷던 중이었다. 문득, 머릿속에서 한 가지 사소한 궁금증이 떠올랐다.

나는 그 궁금증을 송재영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술집은 어디 가는 거야?”

생각해 보니 나는 이들을 따라 걷기만 할 뿐, 정확히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말 안 해줬었구나.”

내 물음에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송재은이 입을 연다.

“솔직히 저희 5명이라 어디 앉기는 애매하잖아요? 대형 좌석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대부분 차지했을 거고. 저희끼리 떠들려고 해도 주변 사람 목소리에 묻힐 게 뻔하고.”

“그렇지.”

종강이란 것은 좋았지만, 종강 당일날 저녁이란 것은 별로 좋지 않았다.

이미 우리 이외에 인싸들이 대부분의 술집을 차지해버리기 때문이다.

인싸들이란 꽤나 부지런해서, 이런 저녁때쯤이면 이미 대부분의 대형 좌석을 차지했을 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남은 건 4인, 2인 같은 중소규모 좌석밖에 없을 테고, 5명인 우리는 마땅히 앉을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저희가 미리 예약 잡아놨어요. 룸으로.”

“오.”

그걸 들은 나는 작은 감탄을 날렸다. 은근히 여유 부린다 싶더니, 미리 예약을 잡아놨었구나.

꽤나 철저한 준비성이었다. 심지어 룸 형태의 술집이었다.

확실히 이렇게 단체로 간다면, 오픈형의 포차보다는 룸 형태의 술집이 편하긴 했다. 기본적으로 벽이 있기 때문에 소음들이 밖으로 잘 퍼져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끼리 놀기에는 편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감탄을 한 것이건만··· 아무래도 우리 은별 양께서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뭐?!”

저렇게 소리치며 앞으로 끼어든 것을 보면 말이다. 갑작스레 고막에서 울려 퍼지는 큰 소리에 송재영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앗, 시발 깜짝아! 갑자기 왜 발작이야!”

“아니, 많고 많은 술집 중에 굳이 룸으로 잡았다고?”

“그럼, 오픈형 포차로 잡을 줄 알았냐? 딱 봐도 술 취한 새끼들이 꽥꽥 될게 보이는데?”

“그래도···.”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보아하니, 뭔가 할 말은 있는데 함부로 말하기에는 꺼려지는 모양이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잠시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옆에서 송재영이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아하··· 알겠다. 이 새끼 ‘룸’이라고 해서 이상한 상상하고 있었구나!”

“뭐, 뭐?! 아니야!!”

“아니긴 시발, 얼굴 붉어지는 거 봐. 이 음란한 년!”

송재영의 말대로, 은별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머리 위로 피가 몰리면서 볼이 빨개지고, 두 동공이 떨리는 게 보였다.

떨리고 있는 두 눈으로 눈치를 살피듯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진짜 뭔가를 생각하긴 한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녀의 친구들이 재미난 장난감을 찾은 듯 물어뜯기 시작했다.

“와, 은별아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다.”

“이 변태년아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거야.”

“설마 우리가 세원 선배 데리고 호빠라도 찾아갈까 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음, 이은별이 야한 편이긴 하지.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나 많이 커뮤니티에 욕망 글을 싸재낄 수는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최근에는 좀 줄어든 것 같긴 한데··· 일단은 쌓인 양이 꽤나 많다는 데에서 의미가 있었다.

가장 최근에 본 게시글이 [나도 남자 발가락을 핥아보고 싶다]였나······.

“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 혼자 잡생각을 이어나가고 있자 은별이 억울한 얼굴로 외쳤다.

그러나 그러길 잠시, 그녀는 잠시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아니다.”

이미 먹잇감으로 몰린 상황이었으니. 여기서 사족을 달아봤자 자기 손해란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꽤나 현명한 선택이었다. 비록, 잠깐 동안은 비난을 받겠지만 그 이상으로 가지는 않을 테니. 그렇게 잠시 은별을 장난감처럼 놀리던 그녀들은 이내 나에게 질문했다.

“선배, 선배는 룸 형태 술집이라도 상관은 없죠?”

“나는 상관없지.”

나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 4명과 함께 밀실에서 술?

이건 못 참지.

* *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