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64, 흰 우유
* * *
현대 사회에서 저작권이란 애매한 위치에 있다.
빌어먹을 저작권법의 규제가 약하기도 하고, 막상 잡으려고 해도 그 범위가 애매하기 때문이었다.
우선 잡을 거면 어디서부터 잡아야 하는가.
일단 올린 업로더는 가능한 처벌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걸 본 수십, 수백의 사람까지 잡아내기란 꽤나 힘든 일이었다.
설령 기준을 내렸다고 한들 잡는 것조차 인건비가 들었다. 사이버상에서 사람을 잡으려면 일단 그 사람을 알아내야 했으니까.
ip 같은 걸 추적해서 신상을 알아내야 함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는 경찰에 송치까지 해야지 겨우 사람에게 벌금을 때려 넣을 수 있었다.
그렇다보니 저작권 규제란 허울좋은 법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것도 최근에 들어선 꽤나 나아진 편이었다.
요즘엔 시민의식이 발전해서 그런지 불법 저작물에 대한 인식이 별로 안 좋았으니 말이다.
불법으로 창작물을 보는 놈들은 죄다 씨발새끼요, 양심이 뒤져버린 연놈들로 치부되고 있었으니.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이들이라면 순수한 정품으로 보는 추세가 강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양지’의 기준.
태초부터 ‘음지’에서 시작했고, 언제까지나 음지에 있을 법한 그런 작품들은 비교적 저작권 의식이 약한 경우가 많았다.
봐라, 지금도 어떤 미친년이 내 작품을 멋대로 게시해 올리고 있지 않은가. 나에게 돈을 바치는 후원자 중에서도 결국 도둑은 존재했다.
[개꼴리는 야짤 돚거해왔다ㅋㅋㅋㅋㅋ]
제목부터가 존나 당당한 저 게시글. 저 녀석이 올린 사진에는 오만한 내가 여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올린지 꽤나 시간이 지났는지 이미 게시글은 개념글로 업글되어 있었고, 그 아래에는 수많은 댓글들이 내 아바타를 희롱하고 있었다.
덕분에 지금 내 그림 속 아바타는 실시간으로 그라비아 아이돌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문득, 이런 상황이 하나 떠오른다. 촬영용 카메라를 앞에 둔 채, 수줍게 자기소개를 이어가는 나의 모습이.
옆에는 음흉한 여자 하나가 은근 슬쩍 내 허벅지를 쓰다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고는 속삭인다.
자, 자기소개 해야지?
안녕하세요오··· 나이는 22살, 남자··· 이름은 이세원이라고 합니다아···쓰리 사이즈는······.
‘이런 씨발.’
상상만 해도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기분이었다.
“후우···.”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어루만지며 하나하나 댓글을 확인해 보았다.
여러 성향의 사람들이 여러 방향으로 내 아바타를 희롱하고 있었다.
[헤으응...오빠 나도 밟아 주세양...]
[나도 개같이 욕해주세요 헥헥...]
[저 씹놈ㅋㅋㅋ 어딜 하늘 같은 여자를 내려다보고 있음??]
[ㄹㅇㅋㅋ 주제 좀 알려주게 침대에 묶어놓고 착정해 주고 싶네ㅋㅋ]
[저 새하얀 피부 봐라.. 왠지 저 캐릭터 정액에서는 흰 우유맛이 날 거 같아]
“오··· 신이시여.”
충격적인 광경에 나는 나도 모르게 신을 부르짖었다.
나를 모르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내 아바타를 보고 희롱하는 건··· 참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내가 성적 매력이 있다는 것에 기뻐해야 할까, 아니면 저 천박한 말들을 보고 지랄발광을 해야 할까. 수치심과 자존감이 동시에 채워지는 건 그리 흔한 경험이 아니었다.
내 얼굴이 점차 붉어진다. 대처하기 힘든 상황에 나는 그저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몬가···몬가야······.”
그래도 다행인 건, 저런 게시물에 나쁜 점만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오 그림 꼴리게 잘 그렸네ㄷㄷ 작가 누구임?]
[그 있잖아 금태양 그린 년]
[아ㅋㅋ 걔가 얘임? 그림이 하나같이 취향이 확고하네ㅋㅋ 작가 새끼 마조인가? 일단 구독박으러 감]
[마조는 너였고;;]
바로 지금처럼. 내 그림을 보고 찾아오는 사람도 생기는 것이다.
저게 도적질이든 아니든, 일단은 홍보의 또 다른 종류였으니.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곳에 공개한 이상 유입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 그림이 하필 내 아바타라는 게 문제였지만··· 일단은 그걸로 위안 삼기로 했다.
그렇게 혼자 수치심에 몸을 떨고 있을 때였다.
띠링!
내 핸드폰으로 문자가 날아왔다. 성아린이였다.
[성아린: 뭐야?]
[성아린: 갑자기 저런 그림은 왜 그렸어?]
아무래도 핀박스에 올라온 게시글을 확인한 모양.
그녀는 타로탈로스라는 커뮤니티를 안 하니 거기서 확인한 것이 분명했다. 나중에 커뮤니티 존재라도 알려줘야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톡톡 답장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걸 커미션 받았다고는 할 수 없었기에, 나는 대충 둘러대며 대답했다.
[이세원: 그냥..그리고 싶어서 그렸어. 괜찮을 거 같아서. 왜 별로야?]
[성아린: 아니...별로는 아닌데...괜찮아?]
[이세원: 뭐가?]
[성아린: 그림이라고는 해도 일단.. 너 몸이잖아. 이렇게 공개해도 돼? 난 좀 그런데...]
순간, 나는 그녀가 뭘 말하고 싶은지 깨달았다.
‘아하.’
그녀는 지금 질투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그림이기는 하지만, 원래 자신만 알고 있던 몸을 이렇게 대중들에게 공개했으니. 그녀 입장에선 무언가 뺏긴 기분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걸 나에게 소심하게나마 따지는 것이고.
‘귀여운 녀석.’
나는 그 모습에 괜히 장난기가 일었다.
[이세원: 뭐야 지금 질투하는거야?ㅋㅋ]
[성아린: 그런 게 아니라!]
[이세원: 아니긴 뭘ㅋㅋ]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다시 키패드를 두드렸다.
[이세원: 걱정 마 어차피 그림이라 나랑 완전히 똑같은 것도 아니잖아]
[이세원: 그리고 세밀한 부분은 조금씩 다르게 했어]
그렇다.
결국 나와 닮았다고 한들, 결국엔 그림.
내 그림체가 반실사에 가깝긴 했지만, 결국 실사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니 따지자면 저건 나와 느낌만 비슷한 녀석일 뿐이란 것이다. 내가 수치심에 떨면서도 굳이 게시물에 가서 따지지 않은 이유기도 했다.
정말, 정말 다행히도 저걸 가지고 누군가가 나를 특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비슷하다고 느낄 수는 있겠지만.
결국 내 말에 성아린은 마지못해 납득하는 듯했다. 당사자가 괜찮다는데 그녀가 어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성아린: 그렇다면야..]
이때다. 지금이 바로 내 안의 스윗 이세원을 꺼내올 차례였다.
[이세원: 그리고 우리 자주 못 보잖아 서로 바빠서]
[이세원: 저런 거로라도 만족하라고 올렸지]
[성아린: ...진짜?]
물론 개구라다.
적절하게 상황이 맞춰서 의도를 끼워 맞춘 것뿐이었다. 진짜 내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차라리 내 몸캠이나 찍어서 보내줬겠지.
하지만 말이다. 세상이 항상 순서대로 굴러가는 것은 아니란 말이지.
미리 결과를 내놓고 의도를 끼워 맞추든, 의도를 따라 결과를 내놓든. 결국엔 상대가 느끼는 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다행히 이번 경우엔 후자로 느꼈고, 결국 성아린은 약간 감동을 먹은 듯했다.
[성아린: 뭔가 고맙네..]
[이세원: 그래ㅋㅋ 저걸로 아랫도리나 달래고 있어]
[성아린: 안 치거든;;;]
[이세원: 진짜..? 진짜로?]
[성아린: ...잘 쓸게]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
이걸로 나를 아는 두 여자가 나를 딸감으로 삼고 자위하게 되었다.
자신의 비부를 문지르며 내 그림을 보고 자위하는 모습이라······어쩌면 이건 이미 구멍 동서가 아닐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두 명의 여자를 따먹어버린 것이다.
아니, 타르탈로스의 사람들을 합치면 어쩌면 수십 명, 수백 명의 여자들을 따먹은 걸지도 몰랐다.
어떻게 보면 디지털 속의 나는 사람들의 욕망을 조종하는 인큐버스가 아닐까. 순식간의 하렘 왕으로 등극해 버린 내 모습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그런 내 아바타에게 경의를 담아 시X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으음···아니다. 그냥 우에하라 아X라고 부를까?”
여긴 역전 세상이니까··· 그게 더 어울릴지도.
그렇게 혼자 개소리를 이어나가고 있을 때였다.
띠링!
다시금 내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나는 일단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렇게나 나를 찾는 사람이 많다니. 뭔가 기쁘군.”
이것이 인싸의 삶?
아아, 나도 인간으로서 한층 성장한 것일지도 몰랐다. 아무렴, 수백 명 앞에서 내 아바타를 공개했는데 뭔가 성장한 게 없으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지.
이번에 문자를 보낸 상대방은 ‘글러먹은나’였다.
[글러먹은나: 뭐예요? 작가님 타르탈로스에 올라온 게시글 보셨어요?]
아무래도 그녀는 야짤 감옥에 올라온 게시글을 보고 나에게 연락한 모양. 소심한 성아린과 달리, 인싸인 그녀는 놀랍게도 타르탈로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어쩌면 이런 게 일반인 코스프레가 아닐까 생각하며 나는 상대에게 답장을 날렸다.
[hala: 네, 일어나서 보니까 어떤 놈이 돚거해갔더라고요]
[글러먹은나: 아;; 어떡하지.. 이러면 안 되는데..]
뭐가 안 된다는 걸까.
아무리 그래도 불법으로 남을 딸감으로 썼는데, 그게 다른 사람한테까지 공개되니까 좀 찔리는 것 같았다.
일단은 그녀가 게시물을 올린 건 아닌 모양. 하긴, 아무리 그녀가 인터넷 망령이라도 멋대로 남의 작품을 함부로 올리는 무뢰배는 아니었으니.
[글러먹은나: 죄송해요ㅠㅠ 함부로 작품이 올라가게 돼서]
[hala: 님이 올린 것도 아닌데 뭘 그러세요]
[글러먹은나: 그래도요.. 여러모로 미안해서..]
“음···.”
나는 저 ‘여러모로’라는 단어를 곱씹어 생각했다. 왜인지 저 여러모로에는 나에 대한 죄책감도 포함되어 있을 거 같았다.
[글러먹은나: 이대로는 안 되겠어요! 제가 저기에 따져서 게시글 내려드릴게요]
[hala: 굳이 안 그러셔도 되는데..]
어차피 저리 놔둬도 홍보는 되긴 하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저 천박한 댓글들을 구경하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뭐랄까···노출 플레이를 하는 기분이랄까. 어째서 바바리맨들이 실존하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남들이 내 나체(그림)를 보면서 욕정 하는 건 꽤나 재밌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글러먹은나’는 이런 노출 플레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글러먹은나: 제가 불편해서 그래요]
[글러먹은나: 걱정 마세요 금방 내려드릴 테니까]
그렇게 그녀는 도적질 당한 게시물을 향해 일기토를 벌이러 갔다. 댓글을 달면서 돚거질 하지 말라고 정중하게 얘기한 것이다.
외외로 일기토는 빨리 끝났는데, 시간이 지나니 작성자가 알아서 게시글을 내려버렸다.
알고 보니 허락받지 않은 작품은 몇 시간 뒤 알아서 내려가도록 규칙으로 명시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음지에도 일말의 정의는 살아 있었다.
“휴···.”
그렇게 내 랜선 그라비아 아이돌 데뷔 소동은 끝이 나게 되었다.
후유증으로는······.
[흰우유맛: 님ㅋㅋ 방금 그 캐릭터 정액 뷰릇뷰릇하는 짤은 없나요? 제가 정액 페티시가 좀 있어서ㅎㅎ 막 바닥에 흩뿌려진 정액들 보면 자궁이 큥큥거리고 그럼]
[암갈비쥐: 다음에는 아예 발로 짓밟는듯한 그림 그려주세요ㅎㅎ 나 그런거 좋아해...]
“너희가 뭘 좋아하는지는 관심 없다고···.”
일시적으로 변태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