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63, 오로로롱
* * *
[글러먹은나: 아니죠! 거기 피부는 좀 더 창백하게 그려야 한단 말이에요!]
[글러먹은나: 혹시 다크서클을 좀 더 검게 칠해주실 수 있나요..?]
[글러먹은나: 턱이 너무 사각형 같은데.. 좀 더 여리여리하게 바꿔주세요]
이은별의 거듭된 피드백을 보고, 나는 욕지거리를 날렸다.
“이 시발련이?”
평소에는 상황만 대충 꼴리게 그려주면 적당히 넘어가던 년이, 지금은 방통위 수준의 깐깐함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사소한 거라도 자신의 생각과 다른 모습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지적하는 모습이었다.
그럴때마다 그림의 남성은 나를 닮아가고 있었다.
[글러먹은나: 흠.. 눈매가 너무 순한 것 같네요. 좀 더 사납게! 세상만사에 불만이 존나 있는 것처럼 수정해 주세요]
“나 아니라며 이 새끼야!”
그리고 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거냐!
내가 세상에 불만이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거에 있진 않다고!
안 그래도 콤플렉스인 부분을 이렇게 익명에서까지 들으니 은근히 기분이 나빠왔다. 나는 고개를 들고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폐부에서 올라온 한숨이 어지러이 흩어진다.
나는 끝내 인정하기로 했다.
‘결국 내가 맞네.’
사실, 굳이 그녀가 피드백을 날려주지 않았더라도, 나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그려줄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내 모습을 그대로 그리면 될 테니까. 자화상을 그려본 적은 없어도, 모작 자체는 많이 해봤었으니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캐의 생김새를 일부러 조금 다르게 그려주었다.
왜냐? 약간의 실험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원하는 캐릭터가 정말로 내가 아니었고, 그저 내가 김칫국 드링킹을 한 것뿐이라면.
그녀도 적당히 만족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내 모습을 그려주는 데에도 약간 망성임이 들기도 했으니. 하지만 저렇게 가차없는 피드백을 날리는 걸 보면 나도 이제는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지금 내 알몸을 원한다. 그림 안에서나마 내 쥬지가 빨딱 선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중이었다.
그걸 확인한 나는 애매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몬가··· 몬가네······.”
그렇다 애매한 표정이다.
딱히 웃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상을 찌푸린 것도 아닌.
여러가지 감정이 혼합되고 뒤섞여, 나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감정이 내 얼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일단 나랑 관련되었다는 건 좋다. 그래도 일단 이런 그림을 신청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 호감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뭐가 되었든 누군가가 나에게 호감을 보낸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문제는, 그 호감이 상당히 뒤틀린 곳으로 발현되었다는 것이다.
차라리 그냥 앞에서 섹스 함 뜨자고 말해줬으면 좋을 텐데··· 그렇다면 나는 마치 특식을 먹는다는 기분으로 기꺼이 그녀를 잡아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개쫄보다운 성격답게 이렇게 뒤에서 그림을 신청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의 성취향이 들어가서 그런지 나는 무척이나 왜곡되어 있었다.
저 오만한 표정을 보라. 시선에는 한껏 경멸을 담은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입가에는 비아냥 거리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썩소는 무척이나 잘 어우러져서, 내가 보기엔 참 기분이 더러웠다.
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근데 갑자기 이런 그림은 왜 신청한 거지?’
물론 평소에 친하게 지내기는 했다. 대화도 자주 나누기도 했고 장난도 자주 치는 사이였으니까.
하지만 이렇게까지 딸감으로 삼게 할 정도로 섹스 어필을 한 적은 없는 거 같은데···.
그때 머릿속에서 한 가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아, 혹시 그때인가?’
진심 모드로 호철의 뺨따구를 후려쳤을 때.
나는 그때 그저 화가 나서 호철게이를 참교육 한 것뿐이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다르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일단 그녀는 마조니까··· 내가 무자비하게 뺨을 때리는 부분에서 뭔가 섹스 어필이 된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참, 그녀의 변태력이 엄청나다고 밖에 할 말이 없으리라.
“후.”
참 기분이 애매하긴 했지만, 일단 나는 그녀의 바람대로 그림을 수정해 주었다.
[hala: 대충 감이 잡히네요. 금방 그려드릴게요]
[글러먹은나: ㅠㅠ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다행히 수정 작업 자체는 금방 끝났다.
어차피 수정이라고 해봤자 남캐 하나밖에 없었고, 그것조차 참고자료가 바로 눈앞에 있었으니, 금방 끝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솜털 하나까지 완벽히 똑같이 그리지는 않는다.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쪽팔렸으니까.
적당히 내 특색은 유지하면서, 어느 정도는 다른 티는 나도록 캐릭터를 조형한다.
이 정도면 상대방도 만족할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완성된 그림을 ‘글러먹은나’에게 곧바로 보내주었다.
자아 네가 원하던 그림이 이게 맞니 어린 왕자야?
[글러먹은나: 우와! 이거예요! 이게 제가 찾던 캐릭터에요!]
[글러먹은나: 솔직히 제가 원하는 캐릭터가 확고해서 생각대로 나올지 걱정 많이 했었는데.. 정말 제대로 그려주셨네요. 마치 실제로 본 것처럼ㄷㄷ]
그야 당연하지 시발, 원본이 눈 앞에 있는데.
스스로 거울을 보면서 나체 자화상을 그리는 기분은 뭐랄까······ 마치 내가 나르시시즘에 걸린 게이가 된 기분이었다.
물론 나는 나르시시즘이 있지도 않았고 남의 쥬지를 보고 흥분하는 게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글러먹은나: 와 진짜 기대 이상이네]
[글러먹은나: 개꼴림ㅋㅋ 이걸로 최소 세 발은 뺄 수 있을 듯ㅋㅋ]
상대방은 아무래도 잔뜩 흥분한듯했다. 그만큼 내가 그려준 그림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글러먹은나: 정말 감사합니다ㅎㅎ]
그렇게 그녀는 추가금 2만 원을 던져주더니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야짤을 보고 흥분한 ‘여자’가 무엇을 할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누군가가 내 자화상을 보고 딸감으로 삼는다라··· 이것만큼 진귀한 경험은 없을 것이다.
잠시 레깅스 바지를 허겁지겁 벗어던지는 그녀가 상상되었지만, 일단은 존엄성을 위해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의뢰 주의 성욕은 만족시켰으니 이제는 소비자들의 아랫도리를 적셔줄 차례.
이미 ‘글러먹은나’에게 의뢰를 받은 지 3일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그동안 금태양 만화를 소홀히 한 건 아니었다. 어느정도 커미션 그림을 그리면서 금태양도 천천히 완성을 했으니.
지금 내 손에는 어제 갓 만든 따끈따끈한 금태양 4화가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금태양과 커미션 그림, 두 작품을 그대로 핀박스에 투고했다. 나에게 꼬박꼬박 돈을 바쳐주는 후원자들 전용의 쉼터. 앞으로 이 두 작품은 내게 돈을 바치는 노예들만 보게 될 것이다.
이쯤에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아니, 금태양 작품은 그렇다 쳐도, 어째서 커미션 한 작품까지 핀박스 계정에 올리는가?
보통 커미션 작품은 평범하게 팩시브나 타르탈로스에 올리지 않았나?
이유는 간단했다.
‘이걸 어떻게 올려······.’
솔직히 말하면, 창피하기 때문이었다. 비록 고작 그림이고, 내가 약간의 각색을 거쳤다고 한들 저것은 나의 나체 상태.
아직 커뮤니티에 까본 거라곤 새하얀 배가 전부인 나에게는 크나큰 도전이었다.
그렇기에 일단은 핀박스에 올린 것이다.
일단 저곳이라면 내 후원자만 볼 수 있을 테니, 비교적 덜 창피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인기는 있겠네.’
이건 자뻑 같은 게 아니라, 내가 객관적으로 판단한 사실이다.
일단 캐릭터의 생김새와는 별개로 구도 자체가 무척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여성의 엉덩이를 중심으로 마치 남자를 올려다보는 듯한 시점. 그 시점의 끝에는 오만하게 그려진 내가 여자를 관망하듯 차갑게 내려보는 장면이었다.
원래 내려다보는 행위란, 묘하게 색정적인 감상을 품게 해주기 마련이다. 아마 내 주요 소비자층인 마조년들은 환장할 거라 생각했다.
‘이제 그만 자야지.’
그렇게 게시물을 올린 나는 그대로 매트리스 위로 다이빙했다.
오늘 하루의 고된 일과는 마쳤으니 이제는 편안한 꿈나라로 여행을 떠날 차례였다.
“후으···.”
매트리스의 부드러운 속살이 나를 감싼다. 얇은 천 위로 느껴지는 솜들의 감촉은, 마치 성아린의 가슴만큼이나 부드럽고 폭신했다.
어쩌면 매트리스란 수많은 가슴들로 이루어진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슴들로 이루어진 매트리스라··· 어딘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낭만이 넘치는 침대다.
그렇게 나는 잡생각을 이어나가며 잠에 들었다.
실시간으로 내가 그라비아 아이돌이 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이런 시발···?”
몇 시간 뒤, 잠에서 깨어난 나는 대참사를 목격할 수가 있었다.
어떤 빌어먹을 새끼가 제멋대로 타르탈로스에 그림을 올려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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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꼴리는 야짤 돚거해왔다ㅋㅋㅋㅋ]
(사진)
오로로로롱ㅋㅋ 저 발딱 선 쥬지봐라ㅋㅋㅋ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릴때까지 핥아주고 싶농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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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상스러운 말이 담긴 게시글.
“세상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내 아바타를 희롱하는 모습에.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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