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61, 상딸
* * *
석양이 지는 시간은 무척이나 짧다.
반나절 내내 열심히 일하던 태양이 지평선에 걸쳐 잠시 쉬어가는 타임일 뿐이니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지평선에 걸친 태양도 떨어지고 하늘 밖으로 자취를 감춘다.
하루에서 태양이 걸친 시간을 따지자면 한 시간도 채 안 될게 분명했다.
그래서 은별이 집에 도착할 즈음에는 이미 저녁이 되어 있었다.
끼익, 문을 열자 깜깜한 집안이 그녀를 반긴다.
“하아···.”
그녀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대충 불을 켜고 침대 위에 엎어졌다.
“다녀왔습니다”같은 형식적인 인사말은 없었다. 애초에 자취를 하는 그녀에게는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손은 씻었다는 것에서 그녀의 청결함을 엿볼 수 있었다.
“후으, 힘들다.”
침대에 눕자 자동으로 곡소리가 튀어나온다. 하루 내내 긴장해 있던 몸에서 서서히 힘이 풀리고 있었다.
마치 침대가 자신을 집어삼키듯, 서서히 몸이 아래로 꺼져간다··· 그게 별로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이대로 자고 싶을 만큼 오늘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친구에게 뒤통수를 맞기도 했고, 며칠을 준비했던 시나리오가 종잇조각이 되었으며, 이세원에게 큰일이 날뻔하기도 했다.
자신의 폐와 다리가 혹사당한건 덤이었다.
하루 만에 몇 달간 겪을 일을 전부 겪어버린 기분.
마음고생은 그것보다 더 했던 느낌이었다.
그녀는 침대 위에 누워 멍하니 천장 위를 바라보았다.
“······.”
적막감이 감도는 방안은 그 자체로 생각을 가속시켜준다. 얽히고설킨 고민들을 차분히 풀어내기에는 이만한 환경이 없었다.
그녀는 집에 돌아오면서 줄곧 반복해오던 고민에 끝을 내려줄 생각이었다.
하염없이 천장을 바라보던 은별은 이내 중얼거렸다.
“···역시 이게 맞겠지.”
그러고는 곧장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언젠가 자신과 한 가지 내기를 했던 친구 유보람이었다.
[이은별 : ‘은별’님이 ‘보람’님에게 100,000₩을 송금하셨습니다!]
[이은별 : 야 이거 받아]
툭툭.
액정을 몇 번 두들기자 통장에 있는 돈과 함께 문자가 날아간다.
그녀는 지금 여태껏 해왔던 내기를 포기할 생각이었다.
마침 상대편도 핸드폰을 보고 있었던 건지 ‘1’은 금방 사라졌다.
[유보람: ???]
[유보람: 이거 뭐임?]
[이은별: 뭐겠냐]
[유보람: ? 아하 ㅋㅋㅋㅋㅋ]
[유보람: 결국 패배를 인정해버렸죠? ㅋㅋㅋㅋ 병신]
[유보람: 개같이 멸망하고 결국 손절당했구나? ㅋㅋㅋㅋ]
그리고 날아오는 온갖 조롱의 문자. 지금 자신의 심정을 모르기에 할 수 있는, 가벼운 조롱들이었다.
그걸 본 이은별은 잠시 미간이 찌푸려졌으나, 이내 한숨을 쉬며 무시하기로 했다.
‘에휴, 됐다.’
솔직히 패배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지만, 따로 손절을 친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은별은 이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내기를 더 이어가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어찌 되었든 내기는 세원을 기만하는 것이 될 테고, 그때마다 얼굴 보기가 미안해질 게 뻔했다.
이미 업보가 많이 쌓인 이상, 더 이상 마음의 짐을 얹고 싶지 않은 그녀였다.
그녀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게 맞아.’
애초에 처음부터 잘못 쌓아올렸던 관계다.
첫 단추를 이미 잘못 끼웠는데, 지금처럼 계속 쌓아올릴 바에야.
차라리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다시 시작하는 게 맞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10만 원은 적절한 손해비용이었다. 어긋난 첫 단추를 버리고 다시 끼울 수 있는 명분.
비록 한순간의 충동으로 10만 원이라는 출혈을 맛봐야 하는 게 뼈아프긴 했지만··· 그 정도야 넘어갈 수 있었다.
그래도 이것 덕분에 그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 그걸 가치로 생각하기로 했다.
은별은 그렇게 핸드폰을 내동댕이 치고 다시 천장을 쳐다보았다.
여태껏 하고 있던 고민은 끝을 내렸으나, 그녀의 머릿속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백색의 천장 위로 이세원의 모습이 잠시 그려진다.
자상하게 웃는 그를 상상한 은별은 살짝 웃을 수밖에 없었다.
“흐, 어떻게 사람이 그러지?”
머릿속에서는 그가 자신을 향해 자상하게 미소 지어주고 있었다. 석양을 받아내며, 그 차가운 눈에는 따스함을 담고.
평소와는 달리 따듯한 색채를 가득 담은 그는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자신의 죄를 자비롭게 사하여 주는 그는 언뜻 보면 성자같이 보이기도 했다.
물론, 이세원은 그냥 귀찮아서 대충 넘어간 것뿐이지만. 본래 이런 건 느끼는 당사자가 중요한 법이다.
쿵쿵.
그녀는 그저 상상뿐인데도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분명 아까까지 느꼈던 불안감은 전부 사라진 뒤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때보다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
확실히 흔들 다리 효과라는 게 실존하긴 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지금 제가 느끼는 감정을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설령 약간의 콩깍지가 끼었다고 한들, 오늘 이세원이 보여준 모습은 그녀의 이상형에 무척이나 부합했다.
그는 다른 남자들처럼 소극적이지 않았고, 상황을 주도할 줄 알았으며.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특히 호철에게 보여주었던 그 화난 모습은 확실히 무시무시했으나··· 동시에 섹시하기도 했다.
그래.
섹시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차가운 모습은, 지금에 이르러서 그녀에게 가장 큰 매력으로 느껴졌다.
만약 그 눈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찰나만 지속된다면, 진심이 담긴 분노가 아닌 플레이의 일환으로 이루어진다면······.
“오···.”
그녀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그렇게 이세원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길 한참, 그녀는 문득 자신의 사타구니 쪽이 가려운 것을 느꼈다.
덕분에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하루의 신성한 의식을 치르지 못했다.
원래는 하루에 한 번 몸에 쌓인 욕구를 풀어줘야 내일 하루가 상쾌한 법인데.
오늘 하루가 너무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아직 성욕을 풀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자신은 오늘 하루 마음고생을 여러번 한 상태.
원래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걸 해소시켜줄 ‘보상’이 필요한 법이다.
고단한 하루동안 쌓인 노폐물을 빼기 위해서라도 ‘나쁜물’을 빼줄 의무가 있었다.
‘한 발만 뺄까?’
은별은 그럴게 자기합리화를 하며 슬슬 바지를 벗었다.
신축성이 좋은 레깅스가 내려가며 매끈한 허벅지가 드러난다. 그녀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팬티까지 아래로 내렸다.
하루 종일 갑갑해 했던 매끈한 보지가 공기 중에 노출되었다. 적막한 방안에 감도는 시원한 공기는 그 자체로 쾌락이었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음부 쪽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찔걱
“흐읏···.”
저도 모르게 작은 신음이 튀어나온다.
은별의 질 입구는 이미 젖어있었다. 미끌미끌한 애액이 이미 음부 주변을 질척하게 적시고 있었다.
대체 언제 이렇게 흥분한 것일까··· 설마 상상하면서 젖고 있었던 걸까.
잠시 의문이 들긴 했지만 그냥 쓴웃음 지으며 넘어가기로 했다.
결국 자신은 어쩔 수 없는 변태인 모양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이며 흥분을 가속시켰다. 자신의 핸드폰에는 수많은 야짤과 야동, 그리고 직접 커미션 신청한 그림과, 최근에 즐겨보는 금태양 만화가 있었지만.
오늘은 어째선지 그 딸감들을 별로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망상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으니.
그녀는 마치 중얼거리듯 그의 이름을 담았다.
“흐읏··· 세원 오빠······.”
쿵쿵.
고작 이름 한번 불렀을 뿐인데도, 배덕감이 제 심장을 감싼다.
자신은 지금, 감히 같은 학교 동기의 얼굴을 생각하며 자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평소 친했던 이성 친구를 성욕 섞인 시선으로 지켜보는 중이었다.
별로 도덕적이지 않은 일이었으나, 은별은 제 손을 멈출수 없었다.
오히려 그 배덕감을 원동력으로 손가락을 가속했다.
찔걱찔걱
적막한 방 위로 연신 음부를 비비는 소리가 연신 울려퍼진다.
은별은 그대로 망상을 이어나갔다.
“흐응···.”
그가 자신을 바라보며 다시금 자상하게 웃어주면 좋겠다.
“흐앗···.”
그가 그 따듯한 손으로 한 번 더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아···오빠 죄송해요···.”
그가 자신을 벌해주었으면 무척 좋을 것 같았다.
시선에는 한껏 경멸을 담으며, 호철을 조질때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어쩔 때는 엉덩이를 때려주며, 어쩔 때는 자신의 가슴을 깨물어 주고, 가끔씩은 모욕적인 말을 내뱉어주면 무척이나 기쁠 것 같았다.
그녀는 그 한 장면, 한 장면을 마치 곱씹듯, 천천히 상상 속에서 펼쳐나갔다.
질척한 욕망이 머리 안에서 흘러나올 때마다 찾아오는 쾌락이 점점 증가되었다.
은별은 아예 상의를 벗어던지고, 나머지 한쪽 손으로 젖꼭지를 집었다. 그리고 마치 꼬집듯 점차 힘을 주기 시작했다.
“흐으읏···!”
아릿한 통증이 정신을 찌르며 동시에 쾌감이 몰아쳤다. 그녀에게 이 정도 통증은 그저 흥분을 돋우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좀만 더하면 가버릴 것만 같은 느낌에, 은별은 마지막으로 손가락을 가속시켰다.
찔걱찔걱찔걱!
손가락이 마찰할 때마다 비부가 점점 뜨거워진다.
간질이는 느낌이 강해지며 달뜬 신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마침내.
“끄하앙···!”
푸슉! 푸슉!
달뜬 신음과 동시에 여태껏 참아왔던 쾌락이 한꺼번에 휘몰아친다.
등골을 오싹하게 휘감는 쾌락에 은별은 잠시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흐으··· 하아···.”
만족스러운 절정이었으며, 기분 좋은 딸딸이었다.
“흐으···흐응···흠.”
그러나 은별은 숨을 가다듬으며 뭔가 아쉬움을 느꼈다.
‘뭔가 감질나는데···.’
분명 딸감도 좋았고, 오랜만에 펼친 망상의 시추에이션도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어째선지 아쉬운 감각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은별은 왜 아쉬움이 드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시각적 자극이 없어서 그랬다.
현대 문명의 이기에 중독된 인간에게, 상상 딸이란 결국 한계가 있는 법.
인터넷을 몇 분만 뒤져도 개꼴리는 미디어들이 수두룩한데, 조잡한 아날로그 방식으로는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슬픈 일이었다.
현대 문명의 이기와 자신의 망상을 합칠 수 있으면 좋으련만······.
“······.”
은별은 문득 자신의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흐음······.”
마치 무엇을 깊게 생각하듯.
아주 오랫동안.
적막한 방 안에서 그녀의 고민은 멈추지 않았다.
*
──그렇게 며칠 뒤.
나에게 아주 오랜만에 커미션 의뢰가 왔다. 바로 ‘글러먹은나’가 신청한 커미션 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의뢰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뎃?”
그리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나 아니야···?”
‘글러먹은나’가 신청한 남캐의 모습은.
다름 아닌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