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58, 좆밥년들아
* * *
타닥! 탁! 탁!
“하아··· 하아···!”
석양빛이 붉게 비치우는 거리. 차 대신 사람이 드나드는 인도 위에서 한 사람이 달렸다.
이은별이었다. 그녀는 지금 본래 연극이 진행되었을 곳인 골목길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꽤 오랫동안 뛰어서 그런지 숨이 차고, 심장이 미친 듯이 펌프질 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다리를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는 불안감이 계속 자신의 머리를 옥죄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뛰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망할··· 대체 무슨 일이야.’
그녀의 머릿속은 현재 이세원이 보낸 사진으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보내진 그의 옆면 셀카.
거기까지라면 별생각 없이 넘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붉어질 대로 붉어진 뺨을 보자 별의별 생각이 다 들 수밖에 없었다.
명백한 폭력의 흔적이었으며, 그녀의 예상에는 전혀 없던 일이었다.
그 이후로 그녀는 이세원에게 많은 문자를 보내보았다. 혹시라도 괜찮길 바라며. 저게 단순한 분장이며, 이세원과 한호철이 짜고 치며 자신을 속이는 것이길 바랐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장은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한호철까지 전화를 받지 않고 있으니.
그녀의 머릿속에서 불길한 가정이 하나 스쳤다.
‘설마···.’
지금 이세원은 진짜로 폭력을 당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실제로 양아치들에게 둘러싸였으며 지금 위험한 상황에 빠진 것은 아닐까.
그녀의 머릿속으로 맞으면서 벌벌 떨고 있을 이세원을 상상했다. 어쩔 수 없는 폭력에 굴복하여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을 그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제발···.”
이은별은 부디 아무 일도 없기를 바랐다.
*
석양이 진 골목길 안쪽.
“허억···허억···.”
“하아···하아···.”
거칠어진 숨이 폐부에서부터 튀어나온다. 수많은 숨결들이 골목길을 물들이고 있었다.
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숨결이 아닌,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서 나오는 숨결이었다.
그 사이에서 이세원은 분에 받쳐 소리쳤다.
그는 지금 상당히 억울했다.
“야이 비겁한 새끼들아!”
이미 이세원이 초반에 도발로 만들어놓은 일대일 구도는 사라진 상황.
호기롭게 나섰었던 유주를 쓰러뜨린 것 까지는 좋았다.
그 덕분에 뒤에 나오는 한 년까지 비슷하게 처리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상대방은 앞선 싸움을 보면서 명치나 그런 걸 보호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매섭게 틈새를 파고드는 세원의 공격에 무력화되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녀는 주먹을 너무 의식하다가 난데없이 날아오는 마비 킥에 와해되었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두 명이나 바닥에 쓰러지자, 그녀들도 위기감을 느꼈는지 곧바로 싸움에 참여했다.
차라리 다구리를 치는 게 남자한테 일대일로 지는 것보단 덜 창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뒤로부터는 난장판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저기서 주먹이 꼬여들어오고 발차기가 뒤엉킨다.
여러 공격이 날아오다 보니 이세원이 불리해지는 건 금방이었다.
인해전술은 인류사 최초의 전략전술이었으며, 적어도 백병전 같은 전투에서는 최고의 효율을 자랑했으니.
상대적으로 힘이 밀리는 이세원이 불리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아···하아···.”
사실 여기까지만 봤으면 이은별이 생각한 것과 별반 다를지 없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으며, 양아치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도 맞았으니.
다만 은별이 간과한 점이 있다면, 이세원이 그토록 얌전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당하게 일대일로 들어오라고 좆밥년들아!”
“조, 조용히 해!”
다구리가 시작되었다고 그가 얌전히 맞기만 하던 건 아니었다.
틈만 나면 그녀들을 방패로 삼으려 들고, 맞으면서도 눈으로는 급소를 노렸다.
실제로 그것 때문에 주먹이 턱에 명중한 여자도 한 명 있었으니, 조심해야 하는 것은 분명했다.
그렇게 대치 상황이 이어지자 이세원이 다시 한번 소리 내어 외쳤다.
“너희는 자존심도 없냐! 꼬추 때라 그냥!!”
“우리는 원래 고추 없거든?!”
“아 맞넹.”
그리고 그 말에 여자들 중 한 명이 뭔 개소리냐는 듯 외쳤다. 상황에 맞지 않는, 어딘가 핀트가 어긋난 대화였다.
형광색 핫팬츠를 입은 여자, 유라는 그 광경을 보며 머리를 마구 긁적였다.
‘진짜 미친놈인가······.’
그녀는 지금 너무 어이가 없었다.
보통 이 정도 상황이 되면 남자는 물론 평범한 여자도 움츠려들기 마련인데.
저 인간은 이런 상황에서조차 저런 실없는 농담을 던지고 있으니.
초반에 보여주었던 그 얌전했던 모습은 어디갔는지 지금은 한 마리의 광견이 있을 뿐이다.
‘뭔 사람이 저래···.’
분명 싸움을 잘 하는 건 아니다. 힘도 자신들보다 약한 게 맞고 그렇다고 몸이 빠른 것도 아니었다.
유효타를 자주 넣는 것도 자신들 쪽이니 분명 불리한 건 저쪽이 맞았다.
그런데 어째서 저 인간은 아직도 눈을 형형하게 빛내고 있는 건가.
저 매서운 눈매를 볼 때면, 자신도 모르게 움츠려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유리한 건 자신들 쪽일 텐데도, 좀만 각을 내주면 바로 턱주가리에 주먹이 꽂힐 것 같은 느낌······.
실제로 방심하다가 길바닥에 누운 두 명이 있으니 선례는 입증된 셈이었다.
유라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호철을 쳐다보았다.
‘야, 네가 구경만 하라며···.’
그냥 옆에서 분위기만 잡아달라 길래 귀찮은 걸 참아가며 밖으로 나온 것이다. 거기서 얻어낸 대가는 고작 술값 한 번이었다.
이렇게 직접 나서서 싸우는 건 솔직히 상정하지도 않고 있었다. 애초에 이런 건 그녀가 자신하는 분야도 아니었으니.
자신은 저 길바닥에서 부들거리는 유주처럼 흙먼지와 함께 뒹굴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이만 끝내고 그냥 집에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아··· 저기 오빠. 우리 그만 싸우고 그냥 갈 길 갈까?”
그래서 그녀는 이세원에게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마침 지금은 서로 숨을 고르고 있던 대치 상황.
말을 꺼내기에는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오빠도 여기 더 있기 싫잖아요. 괜히 체력 빼기도 싫고. 이번엔 딱히 나가려 해도 안 막을 테니까 그냥 서로 여기서 끝내죠?”
“야!!”
그 말에 먼저 반응한 건 한호철이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은 게 당연했다.
각 잡고 나왔는데 이렇게 어정쩡하게 끝난다면 제 기분은 물론이요, 이은별에게까지 안 좋은 이야기가 들어갈 게 뻔했으니까.
그로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넌 가만히 있어!”
그건 결국 한호철의 입장일 뿐이다. 유라의 입장에선 고작 술 한 번에 이 정도까지 일해준 것이었다.
‘쟤가 곤란하든 말든 내 알바인가.’
애초에 이 자리는 한호철이 단독으로 만들어낸 자리였다.
별로 내키지 않았던 자리를 호철이 하도 부탁해서 나와준 것이었기에 그녀 입장에선 더 있어줄 이유가 없었다.
“오, 괜찮네.”
다행히 상대는 좋은 반응을 보여주었다. 괜찮은 제안이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상대방이 보였다.
유라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그래, 이곳에 더 있을 이유가 없지. 불필요한 소모전은 지양하는 게 당연하다.
드디어 집 안에 들어가서 우리 귀여운 강아지 뽀삐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건 거절의 말이었다.
“근데 싫어.”
“왜!?!”
유라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어째서! 그냥 이대로 보내주겠다는데! 굳이 더 싸우지 않고 이대로 끝내주겠다잖아!
분명 불리한 건 그다.
대체 왜 제안을 거절하는 건지 그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유라가 어이없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이세원이 입을 열었다.
“나도 솔직히 집이 그립긴 해. 아픈 것도 싫고. 그런데···”
하며 그가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의 끝엔 한호철이 바닥에 앉아있었다.
이세원은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아직 쟤를 다 못 조졌잖아. 그 전엔 못 가지.”
차가운 시선이 호철을 향했다.
“누구 하나를 담그려 했으면 적어도 똑같이 대가는 치러야지."
가열된 공기조차 냉각시킬 것만 같은 서늘한 눈빛에 호철은 순간 겁을 집어먹었다.
저건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자신을 때리고 싶어 하는 이의 눈빛이었다.
호철은 순간 겁을 먹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뭐 저런 미친···.’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지?
계획이 꼬여버려도 너무 꼬여버렸다.
원래라면 세원은 이미 잔뜩 겁을 집어먹은 채 벌벌 떨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겁을 집어먹는 게 오히려 자신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심지어 더 놀라운건, 이제 물리적 우위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그때였다.
“빈틈 킥!”
대화 도중 느닷없이 세원의 발이 날아오더니 유라의 사타구니에 직격했다.
갑작스레 급소를 얻어맞은 유라는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엎어질 수밖에 없었다.
“끄윽?!”
두 손으로 사타구니를 가린 채, 그녀가 무릎을 꿇고 부들부들 떨었다. 머리까지 진동시키는 통증이 그녀의 머리를 헤집었다.
이세원은 그걸 보며 마치 무언가를 탐구하는 연구자처럼 말했다.
“흐음··· 여자도 그쪽을 맞으면 엄청 아픈가 보네. 하나 배웠군··· 메모······.”
“야이 비겁한 새끼야아! 말하고 있는 도중이었잖아!!”
바닥에 엎드린 유라가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그걸 듣던 이세원은 피식 웃었다.
“비겁하긴 개뿔. 애초에 다구리 까던 놈들이 할 말은 아니지.”
“크윽···!”
이걸로 바닥에 누운 사람은 총 3명.
그걸 해낸 사람이 힘도, 스피드도 밀리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거의 위업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물론 그 업적을 세우는데 비겁한 방법이 여럿 들어가긴 했지만··· 어쨌든 3명을 쓰러뜨린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순간 호철의 머릿속에서 불길한 가정이 스쳤다.
‘진짜 이러다가 지는 거 아니야···?’
자신이 애써 불러 모았던 여자애들이 전부 쓰러지고 결국 이세원이 자신에게 도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물론, 거의 불가능한 가정이다. 평범한 남자가 양아치 다섯 명을 상대로 싸워서 이긴다는 게 절대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을 생각하면, 그러한 플랜도 아예 배제하지 못하는 건 사실이었다.
‘쓸모 없는 년들.’
이미 세 명이 쓰러졌고 남은 건 두 명밖에 없다.
물론 이세원도 상당히 지쳐보이긴 했지만, 저 상태에서 또 무엇을 보여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은 이세원이 말한 대로 자신의 차례가 될 게 뻔했다. 평소 자신이 당하는 상황에 빠져본 적 없는 그에게는, 그 혹시나 하는 상황이 그저 공포스러울 뿐이었다.
결국 호철은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에 이르렀다.
‘도망갈까···?’
처음에 이세원이 하고 있던 생각을, 이제는 한호철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꽤나 괜찮아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 일단 도망가면 이세원도 어쩌지 못할 것이다. 결국 목적을 잃은 그는 유라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마지못해 벗어날 게 뻔했다.
‘애들이 좀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야 나중에 차차 풀어주면 되는 일이었다. 지금은 자리를 벗어나는 게 그에게는 우선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이내 골목길 쪽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어?!”
“야!!”
뒤쪽에서 여러 목소리가 들렸다. 당황하는 듯한 여자들의 목소리와, 화가 난 듯 소리치는 이세원의 목소리였다.
한호철은 무시하고 달렸다. 어차피 골목길과 대로변의 거리는 별로 되지 않는다.
뭐라 외친다 한들 이미 자신을 잡기에는 늦었고, 자신은 시시각각 바깥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호철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좀만 더.’
좀만 더 움직이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 그는 그렇게 골목길의 끝에 도착했고 모퉁이를 돌아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전에 모퉁이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오는 게 빨랐다.
“어어?!”
갑작스레 튀어나온 인형(人?)에 당황하기도 잠시.
이미 적용되어버린 관성에 법칙에 호철은 그대로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꽈앙!
몸과 몸이 부닥치며 몸이 균형을 잃는다.
한호철은 띵한 머리를 붙잡은 채 생각했다.
‘어떤 새끼야!’
대체 어떤 년이길래 이 인적 드문 골목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가! 그는 짜증을 가득 담은 채 앞을 쳐다보았고.
“어?”
이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엔 이은별이 서 있었다.
멍한 표정을 지은 채.
밤하늘 색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휴, 참 빨리도 온다.”
뒤에서 안심하는 이세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