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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57화 (57/125)

〈 57화 〉 57, 양성평등

* * *

“끄아악!!!”

굵직한 비명이 도처에 울려 퍼지며, 한호철의 신형이 뒤로 넘어간다.

공중에서 침과 핏방울이 동시에 비산했다.

아쉽게도 강냉이까지 흩날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상당히 충격이 강하게 들어갔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게 얼굴에 정면으로 꽂혀 들어갔으니. 아마 아프긴 엄청나게 아프겠지.

“흐음~상쾌해.”

나는 바닥에서 뒹굴뒹굴하는 호철을 보며 청량감을 느꼈다.

지금 나에게는 저 뒹구는 장면이 한편의 av요, 터져나오는 신음소리가 일종의 교향곡이었다.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렇다 이것은··· 섹스인 것이다!

이만한 쾌락을 전해주는데 이게 섹스가 아닐 리가 없지. 가슴속에 묻은 때가 깨끗이 흘러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 겁 없이 패드립을 치는 새끼는 맞아야지. 마침 얼굴도 때리기 좋게 눈앞에 있었으니, 이건 전적으로 녀석의 잘못이 맞았다.

“끄으··· 으으으···!”

“야 한호철!”

“괜찮아?!”

바닥을 뒹구는 한호철을 중심으로 줄곧 분위기를 잡던 여자애들 몇 명이 다가간다.

그녀들로서도 이렇게 갑자기 주먹을 휘두를지는 몰랐는지 꽤나 당황한 표정들이었다.

그러면서도 포위망을 풀지 않은 걸 보면 나를 보내지 않겠다는 의지가 아주 잘 느껴지고 있었다.

‘일단 빠져나가지는 못할 거 같고.’

힘껏 달려봤자 아까처럼 금방 잡힐 게 뻔했으니.

대신 다른 방법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녀석들의 시선이 분산된 틈을 타 몰래 핸드폰을 꺼내 든다.

이은별에게 문자를 보낼 생각이었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그녀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음···.’

근데 뭐라 보내야 할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그냥 내 얼굴사진을 찍어 보내기로 했다.

마침 녀석 때문에 빨갛게 부어오른 참이니 이것만큼 현재 상황을 잘 알려주는 방법도 없을 것이다.

[이세원: (사진)]

붉게 달아오른 내 뺨이 인터넷을 타고 전송된다. 그 뒤로 따로 뭔가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이미 저것만으로도 충분한 증거가 될 테니 말이다.

[이은별: ????]

[이은별 : 뭐야]

[이은별 : 괜찮아요?]

실제로 문자를 보낸 후 몇 초 되지 않아 바로 답장이 올라왔다. 한껏 당황한 느낌이 물신 풍긴다.

원래 그녀가 알고 있던 시나리오에서 폭력이란 없었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겠지.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문자를 닫았다. 그게 더 긴박감을 전달해 주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할 일은 마친 나는 다시 앞을 쳐다보았다.

아직 아파하는 한호철과 그 옆에서 허둥지둥하는 녀석들이 보인다.

나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쯧쯧, 호철 게이야. 고작 그거 한방에 그렇게 엄살 피우면 어떡 하누.”

이 세상이 어?! 얼마나 험난한데!!

고작 죽빵 한 번 보다 씁쓸한 게 우리 세상이거늘!!

무릇 사나이라면 강하게 자라야 할 필요가 있는 법. 온실 속 화초로 자라다 보면 언젠가는 결국 거센 풍파에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좀 더 단단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강해져라 한호철, 굳세어라 한호철.

“끄으···! 미친 새끼가!!”

그렇게 혼자 낄낄대며 웃고 있자 녀석이 표독스러운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이미 한계까지 쌓였던 짜증이 내 앙증맞은 딱콩 한 번으로 분노로 바뀌어 버린 듯했다.

그가 이성을 놓은 채 소리쳤다.

“야! 저새끼 조져!!”

“뭐? 야 자리 옮기고 하자며···.”

“이제 필요 없으니까 그냥 조져버리라고!!”

그걸 들은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래서 최대한 가만히 있으려고 한 건데.

내가 먼저 주먹을 휘두르면 결국 상황은 전보다 거칠어질 것이 뻔했다.

틀림없이 근처에 병풍처럼 서 있던 여자들도 행동을 개시하겠지.

그래서 약간의 수모는 참더라도 일단은 존버하겠다 생각한 것이었다. 평범한 욕설 정도야 참아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싯팔, 저게 적당히를 모르잖아.

평범한 욕이라면 넘어가 줄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아픈 곳을 사정없이 찔러대는데 이걸 그냥 넘어가면 호구인 것이다.

나는 속 위로 올라오는 화를 진정시키며 다시 앞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한 번 주먹을 휘두르니 아드레날린이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이미 일을 저질렀으니, 이제는 해결책을 생각해야 할 때였다.

우선 현재의 상황과 내가 가진 것을 재단해 보았다.

나는 하나씩 내게 질문을 날렸다.

내가 녀석들보다 힘이 센가?

아니.

내가 녀석들보다 숫자가 많은가?

아니.

그러면 뭐, 내가 존나 개쩌는 무공이라도 가지고 있는가?

아니.

“하하.”

웃음이 튀어나왔다.

‘좆됐네.’

그야말로 내게 한없이 불리한 상황.

하지만 나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해야할 건 적당히 시간을 끄는 일이었으니.

그리고, 우위를 점한 게 없다고 해서 내가 완전히 딸리는 것도 아니었다.

아까 확인한 바, 내가 상대적으로 힘이 부족하긴 해도 무작정 밀리는 것은 아니다.

녀석들이 다수이긴 하지만, 다수의 특성이 항상 발휘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개쩌는 무공은 없더라도 세상 살아가면서 배운 잔머리와, 고1 때 잠깐 배운 스포츠 기술이 있었다.

그거면 충분하다.

그 정도라면 이런 작은 양아치 5명 정도야, 얼마든지 상대 가능했다.

쿵쿵대는 가슴을 억지로 진정시키고, 머릿속을 최대한 차갑게 냉각시킨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있자 반대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하아··· 야 우린 분위기만 잡고 있으라며.”

맨 처음에 봤었던 형광색 핫팬츠를 입은 여성이었다. 핫팬츠를 입고 있어서 그런지, 그 허벅지 위쪽의 엉밑살이 살짝 보이고는 했지만··· 일단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 중요한 건 그녀가 나서기 망설이고 있다는 것이다. 듣기로는 그냥 옆에서 분위기나 좀 잡아주려고 했는데, 상황이 이리 번지니 녀석들도 곤란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호철 말대로 다섯 명이 동시에 나를 치기엔 뭔가 모양이 빠질 테고 말이다.

하긴, 나 같아도 남자 다섯이서 여자 하나를 이지메한다 하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실제로 주변에는 나서길 꺼리는 분위기가 강했다.

‘어?’

순간 내 머릿속에 무언가 한 가지 가능성이 스쳤다.

이건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정보였다. 잘만 이용하면 일대다 구도를 없앨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입을 열었다.

“설마 나 하나 잡는데 다섯 명이 다 달려들 생각이야?”

일부로 상대방을 도발하듯, 목소리에 비아냥을 담는다.

마치 너희들은 자존심도 없냐는 듯한 뉘앙스로 상대의 신경을 긁었다.

그 말에 몇몇 녀석들의 눈가가 움찔한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말을 더했다.

“에이 설마 양심도 없이 다구리를 칠까. 쫄보들도 아니고.”

누군가가 걸려들도록.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한없이 당당한 모습을 연기한다.

마치 너희 같은 좆밥들은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듯이 여유로움을 꾸몄다.

실제로 지금은 겁보다 분노가 더 컸으니 이 태도가 아예 틀린 것은 아니었다.

“아니면 혼자서는 나 하나 못 이기는 약골들이라 그런가.”

도발이란 좋은 것이다. 상대방의 머리를 익혀서 제대로 가동을 못 하게 하니까.

자존심을 긁어서 효율적인 판단을 버리게 만드니까.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우리 친구가 말을 참 기분 나쁘게 하네.”

내 말에 발끈 한 한 여성이 앞으로 나섰다. 노란색 염색에 똥머리를 한 기가 쌔 보이는 여자였다.

호철이가 옆에서 뭐라 생리질을 해댈 때 옆에서 실실 웃어대던 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뺨을 맞던 상황을 아주 즐기고 있던 것처럼 보이던데. 가슴도 작아보이는게 솔직히 아까부터 신경을 긁던 녀석 중 하나였다.

그녀가 제 친구들을 보며 말했다.

“야, 너네는 나서지 마 내가 끝낼 테니까.”

한껏 가오를 부리면서 친구들을 뒤로 물리는 모습. 그걸 본 나는 속으로 쾌제를 불렀다.

‘됐다.’

이걸로 일대일 구도는 만들어 냈다. 이제 남은 4명은 다시 병풍 신세가 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이득이나 다름없었다.

시간을 끌기도 편해졌고 한 명 정도야 얼마든지 상대 가능했으니.

“넌 큰일 났어! 유주가 얼마나 싸움을 잘 하는데!”

그렇게 잠시 대치하고 있자 옆에서 호철게이가 어린애처럼 소리쳤다.

저 친구 이름이 유주구나.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은 정보다.

나는 싸늘한 목소리로 녀석을 불렀다.

“야.”

“···?”

“넌 닥치고 앉아 있어. 아직 다 안 때렸으니까.”

아직 내 화는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함부로 사람을 담그려 했고, 뺨을 맞았으며, 거기에 별의별 개소리까지 들어줬다. 그 죄를 갚기에 고작 주먹 한 대로는 부족하지.

적어도 이번 행동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해 줄 만큼, 제대로 앙갚음해 줄 생각이다.

나는 내 붉어진 뺨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오른쪽 볼 잘 간수하고 있어.”

“저, 저게···.”

그 행동에, 녀석이 움찔하는 게 보였다. 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참 재밌다. 정작 나를 위협하면서 겁주려 하던 녀석이 이런 가벼운 선고에 저렇게 움츠려드는 모습이라니.

이런 경고를 들어본 적이 없는지 깡이 너무 약했다.

“어디 봐. 앞에 봐야지.”

그때 다시 앞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주인가 뭔가 하는 년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려 앞을 쳐다보자, 어느새 주먹을 휘두르려는 상대방이 보였다.

어깨가 힘껏 올라가며 내 쪽으로 손이 서서히 가까워진다.

“······.”

나는 그 광경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싸움을 할 때 눈을 감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안다. 일단 공격을 봐야 무언가 대응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최대한 눈을 뜨는 것을 의식한 채 시선을 녀석의 행동에 집중시켰다.

그리고 속으로 대응방법을 그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철저히 나눈다.

우선은 할 수 없는 것을 추려냈다.

‘···일단 피하지는 못한다.’

공격이 오는 족족 피하거나 막아내는 건 프로들의 영역이다. 한계까지 신체를 훈련시키고 반사 신경을 일상에서 갈고닦은 자들.

주먹이란 생각보다 빠르고 날렵하니, 그런 사람들 정도는 되어야 공격을 피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나는 방구석의 비루한 그림쟁이일 뿐이었고, 운동 또한 평범한 학생들처럼 방학 때 짤막하게 배운 게 다였으니.

저런 주먹은 피하기는커녕 제대로 막기조차 힘들 게 뻔했다. 아마 손도 제대로 들기 전에 주먹이 몸 근처에 닿겠지.

평균적인 사람의 신체능력이란 그 정도였다.

보통은 보지도 못하고 맞으며, 설령 보더라도 피하지 못하는 수준.

‘하지만.’

제대로 막을 수는 없어도 어정쩡하게 막을 수는 있다.

공격을 피할 수는 없더라도 급소만큼은 보호할 수 있었다.

그 정도는 평범한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나는 판단했다.

최선이 안 된다면 차선을.

차선조차 안 된다면 차악을.

이것이 내가 살아온 방법이었으며, 적어도 내가 아는 최선의 선택지였으니.

저게 싸움을 잘한다고?

‘어쩌라고 씨발.’

애초에 길거리 싸움은 결국 깡 쌔고 맷집 좋은 사람이 이긴다. 옛날부터 눈매 하나 때문에 시비가 자주 붙던 나는, 적어도 그것 하나만큼은 앞선다 자신할 수 있었다.

퍼억!

어느새 주먹이 날아와 내 어깨에 꽂혔다.

본래 얼굴에 날아올 것을 내가 몸을 비틀어 어깨에 적중한 것이다.

“윽.”

순간 얼얼한 통증이 어깨를 감싸며 자연스레 인상이 찌푸려진다. 실제로 힘이 센 건 맞는지 주먹이 꽤나 매웠다.

그걸 본 그녀가 비웃듯이 말했다.

“푸흐, 제대로 막지도 못하는 놈이 뭘 한다고.”

나는 무시하고 좀 더 다가갔다.

퍽! 퍽!

그때마다 주먹이 날아오곤 했지만 나는 몸으로 때우며 앞으로 전진했다.

“야, 아까처럼 도발해 봐. 해보라고!”

그러면서 최후의 한수를 노렸다.

눈이 감기는 것을 방지하며 녀석의 몸 곳곳을 살핀다. 녀석은 신이라도 난 건지 주먹을 마구잡이로 휘두르고 있었다.

방어 따위는 도외시한 채, 오직 공격만을 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녀석처럼 굳이 팔을 마구잡이로 휘두를 생각이 없었다.

급소만 잘 적중하면 사람 하나 무력화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으니. 나는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오른 주먹에 힘을 모았다.

‘딱 한대만 때리자.’

이왕이면 명치.

사람을 가장 무력화하기 쉬운 급소 중 하나이며, 제대로만 들어간다면 바로 호흡을 억제할 수 있는 그 장소.

지금 내 주먹은 하나의 죽창이며, 폐의 도살자였다.

그렇게 지근거리까지 도착한 난 곧바로 주먹을 휘둘렀다.

“양성평등 펀치!”

안쪽까지 꽉 찬 직구!

아래에서부터 짓쳐들어간 주먹은 곧바로 중력을 거스르며 녀석의 가슴 중앙으로 향했다.

퍼억!!

둔탁한 충돌음과 함께, 흉부의 정확히 밑부분으로 내 주먹이 말려들어간다.

저항 없이 안쪽으로 움푹 패는 녀석의 흉부가 느껴졌다.

동시에 녀석의 폐 속 깊숙한 곳에서 숨결이 튀어나왔다.

“커헉?!”

침이 튀기며, 녀석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뜨인다.

그리고 동시에 무릎부터 몸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꺽꺽, 나오지 않는 숨을 내뱉으며 부들거리는 녀석이 보인다.

그걸 본 나는 기분 좋게 한 마디 읊조렸다.

“우리 유주 레즈는 약골이 맞았구나.”

“······.”

주변 녀석들의 두 눈이 떨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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