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56, 안 되겠다
* * *
사람이 난데없이 뺨을 맞으면 어떻게 되는가.
당연히 빡이 치지 씨발. 더 설명할 필요도 없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하물며 자신은 맞는 거에 쾌락을 느끼는 마조도 아니었으며, 뺨을 때린 대상도 제가 평소에 별로 좋아하지 않던 인간이었으니 더더욱 짜증 날 수밖에 없었다.
“이 씨발새끼야.”
그래서 그랬으리라. 내 입에서 자동으로 욕이 올라온 것은.
거의 조건 반사 수준으로 나온 욕설이다. 속에서 올라오는 짜증을 주체하지 못하여 나온, 일종의 필연적인 생리작용이었다.
갑작스러운 뺨 때리기는 뇌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직 주먹까지는 나가지 않았다는 것일까.
“뭐, 뭐라고?”
내 욕설에 상대가 당황하는 게 보였다.
이렇게 갑자기 욕을 먹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줄곧 개쫄아 있었던 사람이 순간 짜증을 내니까 당황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그것은 연기였을 뿐이고 지금 이게 진짜 내 감정이었다.
그럼게 잠시 멍하니 있던 한호철은, 이내 표정을 표독스럽게 바꾸고 나를 쏘아붙였다.
“이 미친 새끼가··· 지금 뭐? 야, 너는 지금 이 주변이 안 보여?”
그러면서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 타이트한 일진 패션을 한 여자 다섯 명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게 인원을 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들은 확실히 한호철의 편이었다.
그걸 본 나는 어쩔 수 없이 화를 잠재울 수밖에 없었다.
‘흠.’
나 아싸찐따 이세원.
소수에게 강하며 다수에게는 약한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인간.
그것은 어느 상황에서든 발휘되는 기질이라 지금 이곳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비록 눈앞에 있는 것들은 전부 여자들이긴 했지만, 저들이 다수인 이상 나는 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쿵쿵, 가슴이 평소보다 크게 박동하고 옅은 불안감이 치솟는다.
하지만 그것이 당황까지는 이어지지는 않았다.
나는 우선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스읍후우···.’
숨을 길게 늘어뜨릴 때마다 달아오랐던 머리가 점차 차갑게 식어간다.
나는 당황과 분노를 최대한 억누른 채 대신 이성을 찾았다.
침착해야 한다. 감정 대신 이성을 택해야 했다.
아무리 상황이 개판이라도 머리만 제대로 돌아간다면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으니까.
“넌 좆됐어 이 새끼야. 알아?”
앞에서 한호철이 생리질을 해대는 동안 열심히 사건을 정리해 보았다. 앞에서 땍땍대는 소리가 신경을 긁어대긴 했지만 그래도 머리는 굴릴 수 있는 일이었다.
‘일단 연극 같은 게 아닌 건 확실하고.’
글러먹은나가 알려준 시나리오와의 괴리감이나, 제 뺨에 남아있는 얼얼함이 그것을 증명해 준다.
아무래도 이은별 또한 이용당한 것 같았다. 그녀가 전해준 정보를 저놈이 이용하여 이렇게 골목길에서 미리 대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순간 이은별의 호구스러움에 감탄이 나왔지만, 그건 나도 똑같으니 넘어가기로 했다.
이런 병신 같은 새끼··· 재미있겠다고 희희낙락하며 이딴 곳에 들어오다니. 나도 이은별에게 뭐라 할 입장이 아닌 것이다.
어쨌든, 이게 실제 상황인 건 분명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법. 내가 이곳에 들어온 이상, 없던 일처럼 편안하게 집으로 돌아가기는 힘든 일이었다.
이제부터는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일단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정면 돌파였다.
비록, 모든 퇴로를 여자들이 막고 있긴 하지만··· 힘을 쓴다면 한 곳 정도야 뚫어낼 수 있을 것이다.
딱히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고 피지컬만 충분하다면 가능한 전략이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여자들보다는 힘이 세겠지.
“푸흡. 야 호철이 개빡쳤다.”
“야야, 너무 화내지는 마라. 거 사람이 욕좀 할 수 있지.”
하여 나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킥킥대는 두 사람 사이로 몸을 돌렸다.
“하앗! 빈틈!!”
의식의 틈새를 타고, 내 몸이 전광석화처럼 돌진한다!
한순간 충돌해오는 물리량은 그녀들도 무시할 것이 아니었다. 저 삐뚜름한 자세는 금세 와해될 것이고 나는 마침내 찬란한 대로로 빠져나갈 것이다!
“어어?! 이봐요 어디 가세요.”
“큭큭. 이 오빠 웃기네.”
“크윽···.”
하지만 내 회심의 시도는 생각보다 쉽게 제압되었다. 생각보다 이 새끼들 힘이 쌨기 때문이었다.
한 사람이 내 손을 붙잡으니 발걸음이 멈추는 건 금방이었고, 그 찰나 동안 나머지 4명의 손길이 추가되는 건 더욱 금방이었다.
덕분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 새끼들 왜 이렇게 힘이 세지?
그런 의문을 품자 들려오는 ‘이세원’의 목소리.
(이세원) : 원래 여자가 남자보다 힘이 강함.
그런 중요한 설정은 씨발··· 좀 빨리빨리 알려주면 안 되나. 세계관의 근간을 이루는 내용인데 좀 초반에 알려주면 어디 덧나냐고.
‘씨발.’
덕분에 나는 다시 포위진의 중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내 저항에 양아치들도 위기감을 느꼈는지 경계심이 한층 강화된 건 서비스였다. 그리고 한호철의 지랄이 한층 더 강화된 건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이었고.
슬픈 일이었다. 자력으로 멋지게 탈출하고 싶었는데 그게 막혀버리다니.
덕분에 리스크만 하나 늘어났을 뿐이다.
‘이제 어떡하지?’
나는 다시 한번 내게 질문을 던졌다.
이대로 있다 보면 내가 한호철에 의해 조져질 게 뻔한 상황. 녀석의 상태를 보니 나를 조지겠다는 건 진심인 듯 보였다.
과연 어떻게 조지려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 폭력이 동원될 것은 뻔할 터.
이은별 같은 마조가 아닌 나로서는 아픈 건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하아··· 그니까 나대지 말고 가만히 따라오자. 괜히 맞기 싫으면.”
그렇게 계속 머리를 굴리고 있자 앞에서 재차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껏 해대던 생리질이 좀 잠잠해진 건지 호철이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잠자코 따라올 것을 요구한다.
그걸 들은 나는 살짝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근데 왜 자꾸 따라오라고 하지?’
처음엔 그냥 짜증 나서 거절한 것이었지만, 이쯤 되니 이유를 안 찾을 수가 없었다.
조질거면 그냥 여기서 담그면 될 것인데, 왜 굳이 귀찮게 자리를 옮기려고 하는가.
어차피 위치가 어디든 사람 드문 곳이면 어디는 상관없을 텐데.
대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길래···.
‘···아.’
그렇게 고민하는 것도 잠시, 나는 금방 녀석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좀 있으면 은별이가 오구나.’
그래, 생각해 보면 아직 이 무대에 참여하지 않은 이가 있었다. 바로 이은별.
그녀가 한호철에게 정보를 알려주었으니, 그 대가로 녀석은 비록 가짜라도 시나리오를 만들어 알려주었을 것이다.
최소한 결행 장소와 시간만큼은 제대로 알려줘야 했겠지.
그 순간 녀석은 이은별이라는 시한폭탄이 생긴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결국 시간이 지나다 보면 그녀가 이곳에 찾아올 테니, 평소 은별에게 호감을 보이던 저 녀석은 당연히 자리를 피하고 싶겠지.
그렇기에 나를 지금 옮기려고 하는 것이었다.
‘뭐야.’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살짝 미소 지었다. 새로운 탈출구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 여기서 버티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어차피 버티기만 하면 상황이 해결된다. 시간이 지나 이은별이 올 수도 있었고,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글러먹은나가 결행 일이 오늘이라고 했으니 틀림없이 올 것이다. 설마 이것까지 혼동이 오진 않았을 터.
하여 나는 그냥 배짱 장사를 하기로 했다.
“싫다니까?”
“이 새끼가 진짜···!”
순간, 한호철의 팔이 다시 한번 휘둘러진다. 녀석의 팔은 잠시 허공을 유영하더니 그대로 나의 얼굴에 맞닿았다.
짜악!
다시 한 번 타격음이 울려퍼진다. 볼에 화끈거리는 통증이 올라오며, 고개가 살짝 옆으로 짓쳐쳤다.
힘이 담긴 따귀는 꽤나 아픈 것이었다. 보통 다른 데서 보면 팔을 낚아채던데··· 손이란 생각보다 빠르구나.
또다시 올라오는 통증에 다시 짜증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나는 다시 분노를 가다듬었다.
“야.”
대신, 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내가 병신으로 보이냐?”
따라오라고 얌전히 따라가게?
녀석의 시도는 좋았다. 계획도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분위기를 제압하고, 나를 위협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어딘가로 끌고 간다.
여기서 조금의 폭력을 동반하면 겁을 주기란 식은 죽 먹기였다.
사람의 이성이란 꽤나 연약해서, 조금만 구석에 몰려도 제대로 된 판단을 못 내리니까. 당장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서 스스로 악어 입으로 걸어들어갈 줄 알았겠지.
그의 입장에선 상식적으로 5명의 불량한 ‘여자’앞에서 멀쩡히 있을 평범한 ‘남자’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따라가면 험한 꼴 당할 거 뻔히 아는데?”
하지만 나는 ‘남자’가 아닌 남자였고, 그렇기에 녀석이 아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나는 이런 험악한 상황에 약간의 면역이 좀 있는 편이었다.
내 쓸데없이 사나운 눈매는 어딘가에서 오해를 만들기 쉬운 편이었으니. 시비는 항상 걸려왔었다.
서빙 알바시절, 나는 그냥 고객 접대를 했을 뿐인데 째려봤다고 지랄하던 홍대 가오충이 있었다.
공사장 노가다 시절, 지나가다 어깨 한 번 부딪쳤다고 철근을 내던진 채 나를 존나 쌔게 밀치던 장 쯔웨이라는 조선족이 있었다.
학창시절에도, 일상생활에서도 나는 꽤나 트러블을 겪는 인간이었고 덕분에 이런 일에는 어느정도 면역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이···!”
그런데, 고작 기가 좀 쌔보이는 여자 5명? 좀 더 준비했어야지.
설령 약간 겁은 집어먹더라도 생각도 못 할 정도로 공포에 빠질 일은 없었다.
“···하.”
그렇게 녀석을 노려보고 있자, 호철이 피식 웃음 지으며 말했다.
“그럼 병신이지, 아니야?”
평소 같은 긍정적인 감정에서 나온 웃음이 아니다. 짜증과 어이없음, 일이 제 맘대로 풀리지 않은 데에서 기인한 분노 등.
그런 어두운 감정들이 녀석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 감정을 조종하고자 했던 이가, 오히려 자기 꽤에 넘어가 감정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솔직히 통쾌한 장면이기는 했으나, 보통 이런 상태의 인간은 대개 선을 넘기 마련이다.
“너 원래 미대 준비 중이었다며? 그런데 두 번이나 떨어져서 지금 이런 데 다니고 있는 거고.”
언젠가 교실에서 이은별과 떠들었던 이야기.
그렇기에 누구나 들을 수 있었던 주제가 지금 녀석의 입에서 손톱이 되어 나온다.
오직 자신의 분풀이를 위해, 그저 나를 조금이라도 기분 나쁘게 하기 위해 하는 말들.
덕분에 내 인상이 조금 찌푸려졌다.
“그게 병신이지 아니냐고! 딱 봐도 뻔하지!”
녀석이 말을 이었다.
“집에만 처박혀서 입시 준비한다는 변명으로 하루 종일 쳐 놀기나 했겠지. 맨날 게임하고 술 마시면서 존나 폐인같이 지냈을 거 아니야!”
“······.”
내 시선이 점차 차가워진다. 머릿속에 스멀스멀 열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후 참자···.’
여기까지도 나는 참으려 그랬다. 폭력은 최후의 수단이니. 이런 상황에서 폭력을 쓰면 내 처지가 더 나빠질 게 뻔했으니까.
무척이나 기분나쁘고 좆같지만, 아직은 참을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네 부모가 어떻게 키웠는지 뻔하다 이 씨발아.”
거기까지 들은 순간.
뚝.
머릿속에서, 신경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
순간 생각이 멈추고, 입가에 헛웃음이 튀어올랐다.
나는 씨익 웃으며 녀석을 불렀다.
“야.”
“뭐!”
표독스러운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녀석이 보인다.
나는 말했다.
“너는 안 되겠다.”
그리고 곧장 주먹을 날렸다.
한치의 망설임 없이.
온 힘을 담아서.
선을 넘는 녀석에게는 언제나 참교육이 필요한 법이니.
빠악!!!!!!
그렇게 다음순간.
“끄아아악!!!!”
녀석의 얼굴이 뭉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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