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52, 이거다
* * *
사실 여기에 누군가 끼어드는 일은 별문제 될 게 아니었다.
이 무리가 무슨 폐쇄적인 사이비 집단도 아니고, 그냥 떠들다 보니 형성된 평범한 학생들의 집합이니까.
이곳에 남자가 끼든 여자가 끼든, 심지어 교수님이나 조교가 잠깐 들르든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인물의 모습이 아닌 그의 성격에 있었다.
다름 아니라 한호철, 이놈은.
“응? 얘들아 무슨 얘기 해~?”
목소리에 비음이 껴있었다.
그것도 씨발 꽤 많이.
“나한테도 알려줘~ 응?”
놈의 목소리가 울릴 때마다 요란한 콧소리가 덧씌워진다. 코 부근에서 만들어진 비음 소리는 신경을 갉아먹는 재주가 있었다.
목소리는 또 이름에 맞게 굵어서, 비음이 울릴 때마다 불쾌한 골짜기를 연상시키는 느낌이었다.
행동거지도 좀 이름에 맞게 행동하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게 참 녀석의 단점이었다.
이름이 한호철이면 어?!
좀 싸나이답게 행동하란 말이야!!
쏘주도 시원하게 원샷 까보고! 욕도 찰지게 한 번 뱉어보고!
그렇게 씹게이마냥 애교 부리지 말라고!!!
‘후···.’
속에서 한숨이 튀어나왔다. 심줄에 힘이 불거지며 자동으로 짜증이 차오르고 있었다.
···사실, 저게 원래 성격이라면 이렇게 불편하지는 않을 텐데.
왜 가끔 있잖냐. 친구들 중에서 은근 저런 성격을 녀석을 가진 애들 말이다.
이상하게 여자 같은 화법을 쓰고 가끔씩 비음도 섞이는데 막상 게이는 아닌.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이성 친구들이랑 친한 그런 동성 친구들 말이다.
나도 고등학교 때 그런 친구가 한 명 정도 있었기에, 그 정도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곳이 남녀 역전 세상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일개 개인의 개성으로 볼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저게 본 성격이 아닌, 가식인 게 뻔히 티가 난다는 것이다.
지가 애교를 내뱉으면서도 가끔씩 꿈틀거리는 눈가가 보였다. 드문드문 떨리는 목소리가 그걸 증명했다.
자기가 비음을 목소리에 섞으면서도 그걸 스스로 거북해하고 있는 것이다.
신기한 일이었다. 거북하면 굳이 안 해도 될 텐데.
그럼에도 저런 수고를 들인다는 것은 어느 정도 수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오, 호철이 하이. 그냥 게임 얘기 중이었어.”
“아 그래?”
“응, 너같이 인권 없는 도구랑은 다르게 세원 선배는 자랑스러운 탑이시래.”
“탑에 오는 버러지 년들을 찢어 죽이는 게 삶의 낙이래.”
한호철은 무리에 들어오자마자 자연스럽게 섞여 들었다.
이미 이들은 1학년 동안 같이 수업을 들으며 자연스레 친해진 상태.
심지어 두 부류 다 과에서 꽤나 활발한 축에 속하니 교류가 없을 리가 없었다. 여자애들은 호철의 비음 섞인 목소리가 오히려 좋은지, 호감 섞인 눈으로 그를 대하고 있었다.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호철이 무리와 섞인다.
대화를 하는 그는 나와 달리 어색한 공기 따위 없었다.
여기서는 나도 살짝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저런 게 인싸···?’
어떻게 대화가 한 번도 안 끊길 수 있지···?
사람과의 대화 중 침묵이 생기는 건 당연한 ‘상식’아니었나?
지금 내 상식이 천천히 박살 나고 있었다.
최근에 성아린과 대화하면서 나도 나름 성장한 줄 알았는데.
그건 그냥 성아린이 만만해서였다. 진정한 인싸는 나와 근본부터 다른 것이다.
아아, 멀고 높은 벽이 느껴졌다.
“아하··· 그렇구나.”
그렇게 잠시 가만히 있자 그의 눈이 나를 스쳤다. 가식을 담은 눈에 의미 모를 감정이 담긴다.
나는 그저 은은하게 웃어줄 뿐이었다.
‘솔직히 불편하긴 하지만.’
그걸 굳이 드러낼 필요는 없지.
적의는 숨기고, 호의는 내비친다.
설령 호의가 없더라도 겉으로 대충 꾸며내면 그것 자체가 호의였다.
작년, 알바를 전전하면서 얻어낸 교훈이었다. 이 험난한 세상에 굳이 적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잠시 나를 꼬라보던 한호철은 이내 시선을 은별이한테로 돌렸다.
“···그것보다. 은별아! 오랜만이네? 반가워~.”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그녀에게 인사한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옆에 붙더니 그대로 팔짱을 끼기 시작했다.
이은별의 잔근육 붙은 팔이, 호철의 팔 사이로 끼워진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동작에 순간 눈치도 못 챌 뻔했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로 향하는 눈.
어째선지 이번에는 감정을 그대로 읽어낼 수 있었다. 눈에 담긴 감정은 다름 아닌 비웃음이었다.
나는 당황했다.
‘뭐지.’
뭐지 저건.
이쪽 세계 버전의 여우짓인가. 저렇게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할 수도 있는 것인가.
과연, 한 수 배웠다.
가끔씩 한호철은 저렇게 은별에게 호감작을 걸 때가 있었다.
그저 팔짱을 끼는 것뿐인 별거 없는 스킨십이지만, 역전 세상인 만큼 파괴력은 꽤나 상당해 보였다.
뭐, 정작 이은별은 그게 불편한 듯했지만.
“아, 응··· 오랜만이야.”
그녀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조심히 팔을 빼낸다.
갈 곳을 잃은 한호철의 팔이 허공에서 부유했다. 이번에는 한호철이 당황할 차례였다.
그의 생글생글 웃는 눈이 가늘게 떨린다.
나는 그걸 보고 속으로 피식 웃었다. 저럴 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우리 은별이는 야스각이 나와도 도망치는 병신 쫄보년이야. 고작 그 정도 여우짓에 당할 인간이 아니라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은별이가 불쑥 내게 물었다.
“그것보다 선배 우리 술 언제 먹어요? 안 먹은 지 엄청 오래된 거 같은데.”
“미안, 요즘엔 계속 바빠서.”
“진짜, 진짜 바쁜 거 맞죠? 막 저 피해 다니는 거 아니죠?”
“뭐야~ 은별이 세원 선배랑 같이 술도 마셔~?”
아무튼 최근에는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미묘하고, 어색한.
그러나 아무 일 없이 평화롭게······.
그게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
“─그럼, 모두 수고했습니다. 슬슬 시험이 코앞이니까 모두 열심히 공부해두세요.”
오전 강의가 끝나고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침 오늘은 오전 강의밖에 없었기에 학생들의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한호철 또한 교수님께 가볍게 인사를 전한 후,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호철아. 같이 갈래?”
중간에 제 동기 중 하나인 강민우가 말을 걸었지만, 한호철은 냉정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미안, 오늘은 기분이 별로 안 좋아서.”
“아, 응···.”
고저 없이, 그저 감정이 꾹꾹 눌러 담긴 듯한 목소리.
그걸 들은 강민우는 무안하단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혼자 밖으로 나온 한호철은 어느 정도 걷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하···.”
머릿속에 자동으로 아까 전 일이 연상된다.
어색하게 자신의 팔을 빼내던 이은별과, 그 앞에서 묘한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을 쳐다보던 이세원까지.
그걸 생각하자 자동으로 화가 치밀어 오르는 기분이었다.
“씨발새끼가.”
이미 아까전에 장착했던 웃음도, 가식도 없다. 지금의 한호철은 까칠하고 신경질적인, 그의 본래의 모습이었다.
그는 잠시 쉬는 시간에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자연스레 자신을 무시하는 이은별과, 그런 날 보고 비웃음을 흘리던 이세원의 모습.
그 기분나쁜 회상에 인상이 팍 찡그려졌다.
“지까짓 게 뭔데 처웃어? 처 웃기는.”
아직도 그때의 감정이 느껴지는 듯했다.
어느새 자신들의 세계로 빠진 이은별과 이세원. 그리고 그 옆에서 멍하니 서서 느껴야 했던 소외감을.
···그래, 소외감.
대부분 무리의 중심에서 활동하던 한호철에게 소외감이란 무척이나 어색한 단어였다. 고등학교 때는 물론 중학교 때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으니.
보통 그런 건 자신이 느끼게 해주는 위치였지, 직접 느껴본 적은 드물었다.
순식간에 자신이 비참해진 듯한 기분이 들고, 괜한 열등감이 샘솟는 느낌. 그게 기분이 좋을리가 없었다.
“아니 그년은 뭐가 좋다고 그 새끼를 따라다니지?”
분명 더 잘해주는 것은 자신이다. 이세원과 달리 그는 그녀와 만날 때마다 밝게 대해주었다.
한껏 애교도 부려보고 목소리에 호의도 여러 번 담아주었으며.
자연스레 스킨십도 몇 번 해주기도 했었다. 그건 자신이 살아오면서 얻어낸, 여자애들을 홀리는 방법이었다.
그 정도면 웬만한 여자들은 넘어올 만 한데, 정작 이은별은 웬 딴 남자한테 들이대고 있으니··· 그저 화만 날 뿐이었다.
그는 애초에 꽤나 소유욕이 강한 성격이다. 자신이 한 번 점찍은 무언가는 어떻게든 얻어내야 직성이 풀리고, 얻지 못하면 꽤나 신경질을 부리는 유형.
그리고 이번에 그가 소유하고 싶은 물건은 이은별이었다.
“씨발.”
한호철은 자신의 엄지손톱을 물어뜯었다.
꽤나 히스테릭해 보이는 모습이었으나, 다행히 주변에 보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그가 눈에 띄지 않는 장소로 걸음을 옮겼기 때문이다.
그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아니, 내가 그 새끼보다 못한게 뭐라고.’
질척질척한 감정이 그를 통해 흘러나온다. 끈적한 열등감이, 비열한 분노가 호철 주위에서 넘실거렸다.
‘키도 비슷하고, 사교성은 내가 훨씬 좋고.’
얼굴은··· 솔직히 잘생긴 건 인정하지만. 애초에 외모만 보자면 자신 또한 밀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세원은 가만 보면 성질도 사납고 까칠해 보였으니까.
어쩌면 지금까지 친구 하나 없는 게 그의 성격을 대변하는 걸 수도 있었다.
‘외모만 반반한 찐따새끼인데.’
그에 반해 자신은 성격도 좋아 보이고, 사람들이 다가오기도 쉬운 귀여운 얼굴상.
목소리에는 생기가 넘치며 얼굴 표정도 다양하게 꾸밀 줄 아니, 주변에 호감을 보내주는 사람이 많았다.
‘좋아 해주는 건 난데···.’
활발하고 사교성 좋은 내가 특별히 좋아해 주겠다는데.
나 좋다는 여자들 다 버리고 특별히 그녀를 선택해 주겠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이은별에게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이세원이 마음에 안 들었다.
“좆같네.”
흔한 심리였다.
자신이 호감 가진 사람을 마냥 미워할 수는 없으니 대신 그 근처에 있는 인간을 미워한다.
사람이란 참 간사해서 고작 그것만으로 족쇄가 풀릴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명분만 주어진다면 사람을 거리낌 없이 미워할 수 있는 것이다.
정작 미움받는 사람은 아무 일도 안 했는데도.
그렇게 몇 주 전부터 쌓인 불온한 감정은 계속해서 커져, 어느새 한호철에게 이세원이란 죽일놈이 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때 마주쳤다면 자신과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칠 거 같은 새끼가, 저렇게 나대고 있으니 그저 짜증만 가세되어 가고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골탕 먹이지?’
그렇게 한참 동안 히스테릭한 감정을 분출한 한호철은 인적 드문 장소에서 빠져나왔다.
얼굴은 평소와 같이 평온해 보이나, 머릿속은 이세원을 어떻게 골탕 먹일지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다.
어떻게 해야 이세원을 떨어뜨릴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그 새끼의 꽃뱀짓을 멈추게 할 수 있는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는 고민을 거듭하며 길을 걸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걷기를 몇분.
그는 우연히, 쓰레기장 근처에서 뭐라 열심히 떠들고 있는 유보람과 이은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호기심이 동한 그는 이은별에게서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물었다.
“무슨 일이야?”
“아 그게······.”
그리고 이야기를 다 듣자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입가에 회심의 웃음이 걸렸다.
무언가 방법을 찾아낸 해결자의 웃음이었다.
‘이거다.’
이거라면 이세원을 조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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