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48화 (48/125)

〈 48화 〉 48, 자본주의

* * *

현대는 자본주의 사회다.

개개인이 사유재산을 소유할 수 있으며, 평등보다는 자유주의를 외치는 그런 사회.

만인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유심히 지켜보지 않아도, 나 혼자 잘 하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는 사회였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어느 정도 성공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은 꽤나 괜찮아 보이는 사회체제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단 실패한 전적이 있는 공산주의보다는 나을테니까. 아직까지도 나라가 잘 굴러가는 걸 보면 체제 자체는 꽤나 합리적이라는 판단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만물에는 좋은 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너무 ‘자본’이란 말에만 초점을 맞춘 탓인지, 현대 사회는 물질 만능주의가 너무 뿌리깊게 내린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기 마련이다.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다.

사람의 뺨따구를 후려갈겨도 돈이 있으면 덮어버릴 수 있다.

사람 한 명을 차로 뺑소니쳐도 보석금과 뒷돈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쇠창살을 빠져나갈 수 있다.

성(?) 또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며, 도덕적 허영심 또한 돈으로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

그야말로 물질 만능주의의 세상인 것이다.

분명 공수래공수거에 의하면 물질적인 것에 탐을 내는 것은 의미 없는 짓일뿐인데···.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수양에 힘을 써야 할 것인데. 세상은 그것을 비웃듯 완전히 가치를 뒤바꾼다.

낭만이 없는 시대인 것이다.

그렇게 신념은 자본주의 앞에 으스러졌고.

철학또한 천박한 농담이 되어버렸다.

철학자는 동냥꾼으로 떨어지기 딱 좋으며, 예술은 한낱 부유한 자들의 노리개로 전락되어버리는 시대.

그런 시대에······.

“헤헤.”

여기 한 남자가 또 신념을 팔아재끼고 있었다.

바로 나.

30만 원짜리 우람한 대금에 꼬리를 개처럼 내려버린 나였다.

입꼬리에서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돈이 들어오니 편안하군.”

응? 신념? 철학?

어, 어쩌라고~ 현대는 자본주의 시대야~

그딴 돈 안되는 것보다 물질적인 게 백배는 나아~

시무라 아지매에게 따먹힐 각이었던 나에게 30만 원은 그야말로 구원의 동아줄!

이 상황을 한 번에 타파시켜줄 먼치킨의 펀치!

죽음과 정조의 위협에서 벗어나니 안도감이 자동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역시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가 훨씬 나았다. 만약 누군가가 내게 100만 원을 준다면 돼지처럼 울부짖으리라.

물론 그 때문에 남캐 야짤을 그려야 하지만··· 일단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게 중요했다.

나는 잠시 타블렛 펜을 놓고 그리고 있던 그림을 살펴보았다. 알몸의 금태양이 눈 안으로 들어온다.

자동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좆같군.”

금태양이 눈물 어린 표정으로 위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두 손은 묶여서 뒤로 향해 있고, 주변에는 야릇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반항 섞인 눈매가 관찰자를 째려보는가 하면, 눈동자 어딘가에서 얕은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부터 겁탈당할 제 처지를 아는지 얼굴에는 씨발 홍조가 꽤나 짙게 펼쳐져 있었다.

얼굴만 묘사시켜도 이정도였다.

하반부로 가서는 더 끔찍한 게 그려져 있었지만··· 정신건강을 위해 굳이 서술하지는 않겠다.

‘그때 추가할거 있냐고 물어보는 게 아니었어.’

나는 과거의 나를 잠시 자책했다. 아무 생각 없이 물어본 말이었는데.

그 때문에 눈물자국이랑 홍조가 추가되었잖아. 제 스스로 무덤을 판 격이었다.

덕분에 그릴 때마다 얼마나 자괴감이 몰아쳤는지··· 그래도 일단 그림 자체는 꽤나 만족스럽게 나온 편이었다.

외형을 표현하는 선들은 무척이나 깔끔했고, 캐릭터의 감정 묘사는 극에 달한 듯 보인다.

대비되는 색채와 명암은 정교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주변에서 보이는 이상야릇한 보랏빛 분위기는 주변을 은은하게 잘 꾸며주고 있었다.

누가봐도 상당한 퀄리티였다.

어찌보면 내가 지금까지 그린 것중 베스트5 에 들지 않을까.

분하게도 말이다.

비록, 남캐 단독샷을 그리지 않겠다는 포부는 팔아버렸지만.

나는 가지고 있는 신념중에 다른 것도 있었다. 어찌보면 고집에 더 가까운 신념이 말이다.

일단 의뢰를 받으면, 적어도 그 돈값은 확실히 하자는 것이다.

상대도 큰 마음을 먹고 내게 돈을 내면서 의뢰 신청을 넣은 것일테니.

나는 저번 세계에서 이런 마인드로 살아왔었고 그 덕에 꽤나 많은 인지도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마인드는 현재까지도 이어져 이제는 일종의 강박증 처럼도 느껴졌다.

일단 돈을 받았으면, 적어도 돈 값만큼 최선을 다하자. 이게 내 신조였다.

다만, 그림이란 분야가 그렇듯 평가는 무척이나 주관적이기에, 나 조차도 답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다행히 이럴 때는 방법이 있는데 바로 시간을 오래 들이는 것이다.

하루만에 뚝딱 만들어낸 그림보단 나흘동안 고민을 거듭해 만들어낸 그림이 더 퀄리티가 좋은 법.

물론 무조건 그런 경우는 없지만, 대부분은 맞는 정성의 공식이었다.

그 때문이리라.

이 그림을 그리는데 5일이 걸린 것은. 내가 보통 커미션을 끝내는 시간보다 무려 두 배는 더 써버렸다.

‘죽는 줄 알았지.’

러프 그리고 선을 딴 후 채색과 명암을 넣는다. 그다음은 수정과 수정과 수정의 반복··· 거기에 더해 금태양 3화까지 마감시켜야 했으니.

나로서는 꽤나 빡센 일정이었다.

그 중간중간 받은 정신적 타격을 제외하고도 말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그림을 완성시켰고 그걸 그대로 ‘qwer1’에게 보냈다.

[qwer1: 올ㅋㅋㅋ]

[qwer1: 봐봐, 하면 되잖아요]

[qwer1: 금태양 저 씨발롬 언젠가 참교육 당하는 걸 보고 싶었어]

다행히 우리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은 상대방은 꽤나 마음에 들은 모양이다.

채팅창에서 만족스러운 반응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hala: 헤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다음에 또 신청해주십시오...]

나는 그렇게 비굴하게 답장을 날린 뒤 채팅창을 닫았다.

그리고 잠시 상대방에 대해 생각했다.

‘얘는 대체 뭐하는 새끼일까···.’

일단 돈을 주기는 했어도. 그다지 좋은 감정은 없었다.

뭐가 되었든 물주한테는 호감이 생기기 마련이던데, 얘는 특이 케이스였다.

다름 아닌 나에게 남캐 단독샷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돈을 주긴 했어도 감히 나의 정신력에 지대한 타격을 먹였는데.

호감이 막 생길 리가 없었다.

하물며, 태도도 어딘가 무례했고, 돈을 먹이는 방법도 강압적이었으니.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는건가···.’

···잘 아네.

세상의 진리를 너무나 잘 알았다.

그래서 더 마음에 안 들었다!

사람 부리는 법을 너무 잘 알잖아!

그리고 그걸 제외하고서라도 궁금한 건 많았다.

어째서 커미션이라는 것에 30만 원이나 들이박는 것일까. 그 정도면 나 이외에도 수많은 그림쟁이들을 부릴 수 있을 텐데.

내가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린다고는 해도, 저 위에 있으신 분들에 비하면 아직 한참 부족한 편이다.

그런 돈이라면 그냥 다른 사람에게 신청해도 될 텐데.

혹시 뭐 저작권 의식이라도 하는 걸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에이, 됐다 됐어.”

그렇게 생각을 이어나가던 나는, 이내 손바닥을 휘저었다.

이해하려고 해서 뭐해. 원래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으신 분들의 생각은 이해하기 힘든 법이다.

지금은 일단 내가 거지 신세에서 벗어났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나는 마우스를 움직여 커미션한 작품을 픽시브에 올렸다.

의뢰 주의 반응은 보았으니, 이제 평범한 독자들의 반응을 볼 차례였다.

솔직히 어떤 반응을 할지 꽤나 기대가 되었다.

‘금태양도 올려야지.’

어찌어찌 끝낸 금태양 3화도 팬박스에 올렸다. 이로써 오늘 할 일은 전부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끄으으···.”

나는 기지개를 한 번 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푹신한 매트리스 위로 몸을 던진다.

오랫동안 혹사당하던 척추뼈가 안정을 되찾고, 활발히 굴러가던 뇌가 활동을 정지한다.

편안한 감각이 내 몸을 사로잡았다.

“흐아아.”

하루의 고된 노동 끝에 오는 휴식이라니.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아마 이건 또 다른 종류의 섹스일 것이다. 이렇게나 기분이 좋은데 섹스가 아닐 리가 없었다.

“이대로 자야지.”

이미 침대 위에 누운 이상 일어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것은 침대라는 것의 존재 의의를 부정하는 멍청한 짓거리였다.

하여, 나는 이대로 조금 뒹굴뒹굴하다 잠에 들 생각이었다.

이럴 때는 댓글 반응을 보는 것만큼 시간을 잘 죽이는 일도 없는데··· 그건 일단 좀 참기로 했다.

이번엔 타르탈로스가 아니라 평범하게 핀박스와 팩시브에 올린 것이니.

반응을 보려면 어느정도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나는 궁금한 걸 조금 참기로 했다.

솔직히 ‘qwer1’이했던 커미션 작품 반응이 상당히 궁금한 편이었다.

그건 내 계정에서 여태껏 지향했던 장르와 지극히 다르기 때문이다.

마치 순애물을 그리던 인간이 ntr로 드리프트 하는 것처럼, 평범하게 하렘을 지향했던 누군가가 갑자기 bl 물로 노선을 트는 것처럼.

평소 멜돔(펨돔)물을 주로 그리던 곳에서 반대 장르의 그림이 튀어나온 것이다.

그런만큼 어떤 반응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안 좋았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제발 민심 떡락해라!’

부디 퀄리티 좋게 나온 내 그림이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왜?

난 다시 그리기 싫으니까!

나는 그 공급자의 역할을 맡기가 싫으니까!

수요가 있으면 곧 공급 또한 필요하기 마련.

그 말은 즉, 수요자가 없으면 공급 또한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내가 그리는 건 멜돔물이면 충분하다.

지금도 충분히 살만한데 굳이 다른 곳까지 장르를 뻗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제발 이번 게시물이 인기가 없기를 기도했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내일은 섹스나 한따까리 해야지.”

본래 고된 노동의 끝엔 보상이 따라야 하는 법.

평범하게 아린이나 괴롭히기로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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