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47화 (47/125)

〈 47화 〉 47, 수상할 정도로

* * *

“아, 아직도 화나네.”

집에 들어온 후,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미 현관문 쪽에 아줌마는 돌아가셨는지, 밖에서 들려오는 인기척 따위는 없었다.

그렇기에 이리 중얼거릴 수 있었다.

잠시 한쪽 손을 들어 반대편 팔을 쓸어내려 본다.

오돌토돌 피부에 닭살이 돋아있는 게 느껴졌다.

이게 ‘이세원’이 느끼고 있었던 이세계의 어두운 이면이구나···.

잠시나마 녀석에게 동정심이 일었다.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진짜 돈을 벌어야 해.”

하지만 어떻게?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질문이 튀어나온다. 그러나 그 의문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사실,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일일 노가다를 뛰기는 싫다. 그렇다고 알바를 구하기엔 너무 시간을 많이 잡아먹힌다.

나에게도 안 맞는 일이었고, 애초에 내가 잘하는 건 따로 있었다.

나는 그림작가다.

가지고 있는 재주라고는 그림을 좀 그린다는 것 밖에 없었고, 활로를 찾으려면 이쪽으로 찾는 게 맞았다.

하여, 나는 구걸이라도 하기로 했다. 홍보는 어제 했으니 응, 이제 구걸해야지.

오해마라. ‘홍보’가 아닌 ‘구걸’이었다.

그 둘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었다.

아마도.

아무튼 나는 그대로 타로탈로스에 들어가 야짤 감옥에 발을 디뎠다.

이제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장소였다. 사방엔 게이 야짤이 들끓지만, 애써 터치만 안 하면 화를 입을 이유도 없었고.

무엇보다 여긴 외외로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야짤이 올라온다는 것을 빼면 이곳은 그냥 평범한 커뮤니티였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몰리기에 나오는 신박한 개소리가 많았고, 그런 개소리들을 보다보면 어느새 피식하는 나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말하자면 사람 냄새나는 장소인 것이다.

그 사람 냄새가 좀 지독하긴 해도 마음 편히 개소리를 올릴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하여, 나는 이곳에서 자주 활동하는 편이었다. 굳이 그림 관련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가끔씩 똥글을 싸지르는 건 재밌었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올렸다.

+

[님드류ㅠㅠ 제가 굶어뒤질 위기에 처했습니다ㅠㅠ]

제가 월세를 내야 하는데 아직 월세를 낼만한 돈이 없어요..

어찌 모아서 돈을 내더라도 생활비가 모자라서 금방 굶어뒤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ㅠㅠ

부디 이 불쌍한 그림쟁이를 도와주십시요ㅠㅠ

커미션이든 뭐든 다 받고 있습니다.

뭐든 좋으니 신청해주세요 제발ㅠㅠ

안 그러면 제가 시무라 아줌마한테 따먹힐 각입니다.

계좌번호 남깁니다

오리: 100x­xxx.....

+

글이 좀 비굴하긴 했지만··· 그래서 오히려 좋았다.

그래야지 날 불쌍히 여긴 이들이 돈을 내줄 것 아닌가!

실제로 나는 지금 불쌍한 위치에 처해있으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나는 여러 번 새로 고침을 누르며 달릴 댓글들을 생각했다. 분명 나를 동정한 누군가들이 내게 기부를 해줄 것이다······.

[레즈야...좀 추하다]

[상하차라도 뛰셈]

[시무라가 누구임?]

[네가 아줌마한테 왜 따먹혀ㅋㅋㅋ 아줌마가 레즈임?]

[ㅋㅋㅋ맨입으로 돈을 달라고? 조공이라도 하셈]

하지만 달린 댓글에 동정심이라고는 없었다.

갑작스레 짜증이 올라온다.

“이런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들.”

태클을 걸지 말고 공감을 해달란 말이야!

나한테 해답을 제시하지 말고 그냥 내게 돈을 보내라고! 난 성실하게 일하기 싫단 말이다!

마음에서 생기는 답답함에 속으로 외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얘네는 내가 남자인 걸 알까?”

모르겠지.

모르니까 저렇게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이다.

애초에 내가 공개한 적도 없었고, 어디 단서 될 만한 글을 남긴 적도 없었다.

내가 그리는 그림들도 대부분 여자들을 꼴리게 하기 위한 그림들 뿐이니, 나를 남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게 뻔했다.

현재 알고 있는 사람은 레이프합법화··· 즉, 성아린 뿐.

인터넷 세계에서의 나는 철저하게 여성이었다. 그걸 깨달은 나는 뭔가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흠··· 뭔가 손해보는 기분인데.”

무슨 강제 ts 당한 것도 아니고. 희소성이 있는데 그 이점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니.

‘화나네.’

순간 개빡쳐버린 나는 곧바로 핸드폰의 카메라 앱으로 들어갔다.

당장 뭐라도 이득을 보고 싶었다. 여자들의 성욕 섞인 관심을 나는 다시 받고 싶었다!

방금 같은 아지매라면 또 모를까, 익명성 안의 성욕은 서로 얼굴을 안 맞대도 되니 그다지 상관은 없었다.

하여, 나는 옷을 조금 들춰 내 몸을 찍기 시작했다.

최대한 각도를 맞추고, 내 배 쪽이 최대한 드러나도록 조정한다.

바지를 약간 내리고, 상의를 잠시 올렸다.

사타구니의 툭 튀어나온 물건은 안 드러날지언정, 그 위쪽 장골까지는 보이게.

가슴 위까지는 보이지 않지만, 그 아래 갈비뼈는 노출되도록.

말 그대로 복부 주의의 대부분을 찍었다. 잠시 사진을 본 나는 짧게 감탄을 내뱉었다.

“오.”

찍은 사진이··· 꽤나 역했기 때문이다.

햇빛을 잘 받지 않아 새하얀 피부가 내 눈안에 들어온다. 눈에 확 띄는 복근 같은 건 없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자잘 자잘 한 근육이 엿보였다.

응, 한 마디로 역겨웠다.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방구석에서 내 배 사진이나 찍고 있다니. 갑자기 자괴감이 몰아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나는 다시 감옥에 들어가서 방금 찍은 사진을 올렸다.

+

[조공짤 올린다]

(사진)

방금 막 인터넷에서 찾은 따끈따끈한 짤임

이제 돈 줘 ㅠㅠ

오리: 100x­xxx...

+

물론, 나란 걸 밝히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무슨 후폭풍이 몰아칠지 모르니.

가볍게 인터넷에서 찾아왔다는 거짓말을 했을 뿐이다. 어차피 나라고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테니 상관은 없었다.

글을 올리기 무섭게 댓글들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캬 ㅋㅋㅋㅋ오늘은 이거다]

[이런 은꼴이 또..사실 제일 꼴리그든요...]

[피부 하얀 거 봐 씨발놈ㅋㅋ 개따먹고 싶네]

[ㄹㅇ 침대 위에서 짐승처럼 울부짖게 해주고 싶다ㅋㅋ]

하나같이 꼴린다, 따먹고 싶다 하는 댓글들.

온갖 성욕 섞인 말들이 나를 희롱하고 있었다. 역시 음지답게 나오는 말들도 매콤하기 그지없었다.

그와 동시에 울려 퍼지는 달콤한 알림 소리.

[이세원님에게 방금 전 ‘잘 봄ㅋ’님으로 부터 2000원이 입금되셨습니다.]

[이세원님에게 방금 전 ‘윤지현’님으로 부터 3000원이 입금되셨습니다.]

놀랍게도 진짜 돈을 보내 준 것이다.

혼신을 기울여서 만든 내 구걸글은 추하다는 말밖에 없더니, 고작 복부 사진 하나 올렸다고 무려 5000원이나 받았다!

나는 애매하게 미소지었다.

“몬가··· 몬가 좀 그렇네······.”

일단 내 몸이 가치가 있다는 것은 기분이 좋았다. 이 바쁘게 굴러가는 현대사회에서 내가 무언가 쓸모가 있다는 것 아닌가.

누군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꽤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문제는, 그 가치의 방향이다. 내 몸의 가치란 대부분 성욕에서 발현되고 있었다.

마치 창놈이 된 기분이었다.

예전에도 야짤을 그린다면서 사이버 창놈이라고 농담 삼아 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진짜 사이버 창놈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람이 점점 타락해가는 느낌이 들었다.

“뭐 그래도 기분은 좋네.”

그래도 좋냐 나쁘냐로 따지면, 솔직히 좋은 쪽이 더 강했다.

고작 게시글 하나로 사람의 감정을 조종한다. 여기에는 묘한 쾌락이 있었다.

뭔가 중독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계좌 이름을 다르게 설정해서 다행이야.’

놀랍게도 이곳은 계좌의 이름을 가릴 수 있더라. 이름으로써 사람을 특정할 수 없으니 일단은 안도하기로 했다.

그렇게 잠시 댓글들을 보며 킥킥 웃고 있을 때였다.

띠링!

갑작스레 알람이 울리며, 카톡 하나가 떠오른다.

[글러먹은나: 뭐임? 님 돈 부족해요?]

왜인지 오랜만에 보는 듯한 글러먹은나··· 바로 이은별이었다.

따로 돈이 부족하다고 얘기한 적은 없는데··· 이틀에 한 번꼴로 욕망글을 싸재끼는 그녀답게,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가 내 구걸글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발견하자마자 이렇게 개인 채팅을 보낸 것이고. 쉽게 추측해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그녀에게 서운한 것이 있었다.

활동은 꾸준히 하면서 정작 나에게 야짤 의뢰를 넣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참에 그녀에게도 구걸하기로 했다.

[hala: 네ㅠㅠ 작가를 위해 커미션 신청 해주세요ㅠㅠ 꼴리게 그려드림]

[글러먹은나: ㅈㅅ; 제가 지금 돈이 없어서;;]

[글러먹은나: 대신 돈 들어오면 바로 하나 신청할게요. 마침 보고 싶은게 있긴 했음]

“음.”

솔직히 그리 마음에 드는 답변은 아니긴 했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뭐 나중에 신청해 준다고 했으니 충분히 정상참작해 줄 수 있는 일이었다.

[글러먹은나: 그것보다 방금 올린 사진 뭐예요? ㅋㅋ 개꼴리네]

[글러먹은나: 혹시 다른 버전 없어요? 쥬지 깐 사진이라던가...]

사진 한 장의 파급력이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했다.

[hala: ㅡㅡ]

[hala: 없으니까 기대 마세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대화창을 닫았다. 복부 사진도 상당히 용기 낸 건데, 그 아래까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 그랬다.

모니터 앞 의자에 앉아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후···.”

조용한 방 위로 짙은 한숨이 올라가 퍼져내린다.

아래로 짓눌려져가는 한숨 조각들이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기분이 아래로 한없이 다운되어만 간다···.

생각해 보면 결국, 해결된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내 몸 사진으로 5000원을 벌어들이긴 했지만 고작 그것뿐.

쪼막만한 돈으로는 다가오는 월세의 위협을 해결할 수 없었다. 결국 오늘 한 거라고는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낄낄거린 것 말고는 없는 것이다.

자괴감이 온 몸을 몰아친다. 두려움이 제 몸을 압박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 작은 의문이 내 몸속에서 샘솟고 있었다.

“진짜 따먹히는 건 아니겠지.”

미납된 월세에 지친 아줌마가 다시 날 찾아오고, 이 단칸방으로 날 협박하며 내 몸을 갈취하는 것이다.

마치 에로 동인지처럼.

‘참는 건 몸에 좋지 않아요오~’

잠시 그걸 생각하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조울증이라도 도진 듯, 안 좋은 생각들이 자꾸만 심상 위로 떠올랐다.

그렇게 잠시 우울감에 빠져 있을 때였다.

띠링!

다시 한번, 채팅 알람음이 울려 퍼진다.

적막한 방 안에서 경쾌한 알람음이 제 머리를 강타했다.

나는 의자 위에 기대고 있던 머리를 들었다.

‘누구지.’

다시 한번 글러먹은나가 채팅을 보낸 건가. 아니면 성아린이 내게 말은 건 것일까.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수를 생각해가며 문자를 확인해 본다.

놀랍게도 문자는 이 둘 다 아니었다.

[qwer1: ㅎㅇ 커미션 신청하러 옴]

무려 새 커미션 신청자가 온 것.

“오!”

나는 당장 자세를 고쳐잡았다. 새로운 고객이다.

어려운 시기에 나를 도와주러 오신 천상의 동앗줄이었다!

정중하게 대할 필요가 있었다.

[hala: 안녕하세요! 무슨 그림을 그려드릴까요?]

[qwer1: 님이 그린 금태양 있잖아요. 그거랑 관련해서 신청 좀 하려고]

이런저런 미사여구 없이 담백하게 날아오는 문자.

상대방은 따로 뜸 들일 것 없이 곧바로 제 요구를 말했다.

의뢰내용은 대충 이랬다.

내 만화에 나오는 금태양을 가지고, 새 그림을 그려달라는 것.

여기까지는 좋았다.

금태양이야 최근에 워낙 많이 그려봐서 익숙하기도 하고, 인지도를 쌓는데도 좋을 테니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 금태양의 손을 밧줄로 뒤로 묶고, 목에 작은 목줄을 찬다.

두 다리 또한 구속구로 꽁꽁 묶여져 있으며, 그렇게 구속된 금태양을 침대 위에 넘어뜨린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금태양은 분함 반, 두려움 반 섞인 얼굴로 위를 바라보고··· 그런 상황에서 관찰자가 내려다보는 구도를 그려달라는 것이었다.

“미친.”

그 설명을 다 들은 나는 욕지꺼리를 날렸다.

절대로 그리기 싫은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뭐지.

뭐지 이 새낀.

나는 분명 내 팩시브 공지에 커미션 조건을 만들어 올린 적이 있었다.

무려 글씨체 강조까지 하면서, 홍보를 갈 때조차 꼭 지참해서 가는 조건이 말이다.

첫 번째 조건은 남자 단독샷은 죽어도 안 그리겠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 조건은 너무 하드한 그림은 지양하겠다는 조건이었다.

근데 지금 그림 신청을 한 ‘qwer1’은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어기고 있었다.

남자 단독샷에 하드하기까지 했다.

공지를 읽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읽을 지능조차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 새끼는 고작 몇 줄짜리 글조차 읽지 못하는 난독증 환자임이 틀림없다.

새 의뢰 소식에 들떴던 내 기분이 급속도로 차가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반대급부로 짜증이 울컥 솟아오르기까지 하고 있었다.

“후, 진정하자.”

그래도 나는 애써 내 마음을 다스렸다.

그래, 깜빡하고 못 읽을 수 있지. 너무나도 꼴리는 내 그림체에 그냥 무지성으로 신청을 넣은 경우도 생각해야한다.

그렇기에 일단은 공손히 물어보기로 했다.

[hala: 저.. 혹시 제가 올린 공지글은 보고 오신건가요? 남자 단독샷은 안 그린다 얘기했었는데..]

[qwer1: ㅇㅇ 보고 왔음]

“뭐지.”

진짜 뭐지 이새낀?

내 마음속에서 상대방의 호감도가 더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글을 못 읽는 불쌍한 난독증 환자에서, 예의라고는 하등 차릴 줄 모르는 멍청한 무뢰배 새끼로.

그렇다면··· 녀석은 공지를 읽고도 무지성으로 신청을 했다는 소리가 된다.

생각해 보니 저 새끼 말투도 마음에 안 들었다.

속에서 들끓던 짜증이 이제는 분노로 바뀌기 시작한다.

여태껏 쌓여있던 우울감이 분노와 합쳐져 인상을 확 찌푸리게 했다.

됐다. 더 들어볼 가치도 없다.

나는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하기로 했다.

아무리 내가 돈이 없다고는 해도 저딴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hala: 미안하지만, 그런 그림은 신청 안 받아요;]

[qwer1: 10만원]

[hala: ..?]

하지만, 상대방이 갑자기 딜을 하기 시작했다.

10만원··· 기본 커미션 값에서 무려 3만원이나 오른 값이다. 확실히 마음이 이끌리긴 했다.

특히, 돈이 부족한 지금은 유혹이 꽤나 강렬했다.

하지만, 3만 원에 내 신념을 팔 수는 없는 법. 내가 아무리 굶주림에 허덕인다 한들, 고작 저 정도에 제정신을 갉아먹을 순 없다.

[hala: 죄송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qwer1: 15만원]

[hala: ...??]

뭐지?

진짜 진짜로 뭐지 이 새끼는?

이로써 새 번째 하는 질문이었다. 기본 커미션 값의 두 배를 넘었다!

고작 한 장의 그림으로 두 배의 돈을 받다니··· 과연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내 신념을 고작 15만 원에 팔아재낄 수는 없었다!

하여, 나는 다시 거절하려고 했다. 눈가에 피눈물이 담기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hala: 정말 감사하지만.. 그래도 제 신념이...]

[qwer1: 아 귀찮게..20만원]

[qwer1: 아니다 그냥 30만 원 드릴게요, 그려주삼]

[hala: ...!!]

30만!!!

거의 외주 최소값 아닌가. 커미션 하나 받는데 평균가의 4배 이상을 주다니!

손가가 덜덜 떨렸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고작 좆만한 신념 하나 팔아버리는데 30만 원씩이나 준다니··· 유혹이 안 될 수가 없었다.

하물며 지금의 나는 굶주림에 허덕이는 거지 신세.

옛날 못 살던 중세 시대에는 빵 한 쪼가리에 제 자식마저 노예로 팔아버리는 부모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고작 신념 하나 파는 데에 30만 원이면 충분한 거 아닐까?

아무런 가치도 없는 신념을 30만원으로 교환하면 이득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샘솟았다.

그러니 이건 불가항력이었다.

일개 인간으로써는 어쩔 수 조차 없는 유혹의 자연재해였다. 나는 그렇게 자기 타협을 하며 상대방에게 문자를 보냈다.

[hala: 좋습니다! 헤헤.. 혹시 뭐 더 추가하실 건 없나요 선생님?]

그렇게 말하는 내 모습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비굴했다.

* *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