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46, 허무
* * *
전도서는 전한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0109xxxxxxx: 이세원 고객님 앞으로 현재 관리비 요금이 미납되어 있어 안내드리오니, 아래의 계좌로 납부를 부탁드립니다.
»총 납부하실 금액: 471,845₩]
“씨발.”
공수래 공수거(?手??手?).
우리는 모두 빈손으로 세상에 왔다가 빈손으로 죽으니 인생은 결국 무상과 허무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다. 고로 세상이란 결국 허상이란 말과 일통하니, 물질적인 것에 깊은 뜻을 품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가.
마찬가지로 내 30만 원짜리 우람한 통장도 좆같은 문자 하나에 한순간 공허로 변모하니.
내 안엔 그저 슬픔만이 가득 들어찰 뿐이었다.
“진짜 개씨발.”
사형선고와도 같은 문자에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실제로 얼얼했다! 너무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나머지 실제로 근육이 수축하는 것이다!
나는 마치 고혈압에 걸린 드라마 속의 환자처럼 내 목덜미를 사로잡았다.
곡소리가 자동으로 흘러나온다.
“어억··· 어어억···.”
차라리 이대로 쓰러지면 좋으련만. 지금 쓰러져서 이 일이 한낱 악몽으로 느껴지면 좋으련만.
뒤통수에 느껴지는 생생한 고통은 이곳이 잔혹한 현실이란 걸 일깨워주고 있었다.
깜빡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돈의 사신이 찾아온다는 것을.
한 달간 워낙 많은 일이 일어나 미처 대비할 겨를이 없었다.
그 결과가 지금 내 앞에 놓였다.
방심을 틈탄 기습은 본래 효과가 배로 들어가기 마련.
마찬가지로 미처 대비하지 못한 채 받은 세금 문자는 내게 커다란 충격을 주기 충분했다.
47만 원··· 고작 30만 원짜리 통장으로 채우기에는 너무나 많은 돈이었다.
심지어 고작 미납이 문제가 아니라 납부 이후에도 큰 문제가 있었다.
저 돈을 전부 관리비에 때려부으면, 앞으로 나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집에 남은거라곤 생수통 3개와 라면 두 봉지밖에 없었다. 놀랍게도 두 봉지는 5묶음 짜리 두 봉지가 아니라, 낱개 두 봉지다.
심지어 국물 라면도 아닌 양이 쥐좆만한 비빔라면이었다!
아주 철저하게 좆된 상황. 여태껏 쌓았던 업보가, 행위가 전부 내게 부메랑처럼 날아와 꽂히고 있었다.
외통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이 상황이 바로 외통수였다.
“진짜 어떡하지···.”
의자에 쪼그려 않은 나는 잠시 손톱을 물어뜯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딱히 돈 나올 구석이 생각나지 않았다. 홍보를 가볼까 생각했지만 애초에 홍보는 어제 한 번 갔다 왔고.
커미션 또한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진짜 노가다라도 뛰어야 하나···.”
작년 여름 때처럼, 주말마다 인력소에 가서 막노동을 뛰어야 할지도 몰랐다.
쨍쨍 내리쬐는 태양빛을 받으며 내 몸을 혹사시키는 것이다. 뒤지게 힘들긴 해도 돈은 꽤 되는 알바였다.
하지만··· 그건 하기 싫은데. 잠시 작년 때의 절박했던 시절이 기억이 나서 암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는 정말 죽을 각오로 살았지. 이제는 별로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기억이다.
그렇게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였다.
띵동!
현관문 앞에서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경쾌한 종소리가 내 귓가를 때렸다.
‘무슨 일이지.’
이 방에 찾아올 사람은 없는데.
가끔씩 오는 배달부를 제외하고는, 오가는 발길이 나 하나뿐인 곳이다.
혹시 잡상인인가··· 생각하며 나는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이 상황에 잡상인이라면 아주 기분이 나쁠 것이다.
잠시 문 앞에 붙은 렌즈로 밖에 서 있는 인간을 살폈다.
그곳에는 어느 중년의 아줌마가 서 있었다. 안경을 쓰고, 점장 차림을 한 어딘가 시무라를 닮은 아줌마였다.
행색을 보니 일단 잡상인은 아닌 거 같은데···.
그때 떠오르는 ‘이세원’의 기억.
(이세원): 이집 주인 아지매임
“아!”
그걸 들은 나는 재빨리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세상에 건물주라니. 지금 내 앞엔, 목숨을 앗아갈 사신이 당도해 있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녀가 돈을 안 줬으니 방에서 나가라고 한 마디만 해도, 나는 힘없이 길바닥에 나앉아야 할 위치인 것이다.
무조건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 어서오세요···.”
하여, 나는 최대한 공손한 어투와 모습으로 그녀를 맞이했다.
알바를 했을 때 지었던 영업용 미소를 띠고, 눈가에 거짓 친절을 잔뜩 집어넣는다.
현재 내 모습은 조숙하고 조용한 청년 그 자체였다.
이윽고 나를 발견한 아지매가 작게 미소를 짓는다.
“오, 세원 학생 오랜만이야~”
호의 섞인 시선이 나를 향한다.
···아니, 정정하겠다. 성욕 섞인 시선이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아래에서부터 위로.
가끔은 가슴과 사타구니에 시선이 머무르기도 하며, 마치 지렁이가 몸을 기어가듯 시선이 기었다.
노골적이진 않으나, 그렇기에 더욱 신경이 쓰이는 시선.
순간, 기분 나쁜 감정이 제 가슴을 감싸 안았다.
‘이런 시발···.’
이런 게 시선 강간이구나.
길거리에서 받았던 게 시선 강간인 줄 알았는데.
그건 그냥 관심이었고, 이런 게 바로 시선 강간이었다.
기분이 좋진 않았고, 다만 좆같음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시무라 닮은 여자가 주는 관심은 별로 받고 싶지도 않았다.
아아, 시선도 화자에 따라 감상이 다르게 변하는 것이다.
사회의 비정한 현실을 하나 깨달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일단은 최대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뭐가 되었든 건물주니까.
“근데 여긴 어쩐 일로 오셨나요···?”
“에이, 섭섭하게. 세원 학생 우리 사이에 꼭 일이 있어야 오나?”
“아하하···.”
나는 그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욕지거리를 날렸다.
‘시발시발···.’
우리 사이가 뭔데. 제발 그런 무서운 말 좀 꺼내주지 말아줘!
등골에 오한이 드는 기분이었다. 니알라토텝님의 서늘한 광기가 내 몸을 갉아먹는다.
뭐지?
설마 과거의 ‘이세원’이 나 몰래 친해지기라도 했던 건가?
만약 그렇다면 진심으로 이 새끼를 죽여버릴 의향이 있었다. 비록 기억뿐이지만, 그 기억이라도 잘게 부숴주마.
그때 들려오는 ‘이세원’의 기억.
(이세원): 절대 아님;;;
다행히 아닌 모양.
비록 기억뿐이긴 해도, ‘이세원’의 기억 안에는 거북한 감상이 가득했다.
그러니까 저 말은 거짓.
그저 중산층 아지매의 철 지난 농담인 것이다. 그걸 깨달은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식겁했네.
하마터면 시무라 아주머니와 끈적한 사이가 될 뻔 했다. 저 끈적한 시선을 받으면서 따먹힐 뻔했다.
그 아줌마는 가슴이라도 크던데 이 아지매는 가슴조차 작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렇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자 그녀가 다시 입을 연다.
“다름이 아니라, 세원 학생 월세 이야기 때문에 왔어.”
“아, 넵.”
그걸 들은 나는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제부터는 진짜 본론이었다. 일단 사과부터 하기로 했다.
“그···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돈이 없어서. 들어오는데로 갚을게요.”
내가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그녀가 당황하며 손사래를 친다.
“아냐아냐! 괜찮아. 미납 때문에 뭐라 하러 온 거 아니니까. 세원 학생은 아직 학생이니까, 돈 없을 나이이긴 하지. 이해해.”
“아, 감사합니다···.”
일단 따지로 온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당장 길바닥으로 쫓겨날 걱정은 안 해도 돼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그녀가 큼큼,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관리비라고 온 거 있지? 그거 공과금이랑 월세 합친 요금이야. 따로따로 내기 귀찮을 테니까 ‘내가’ 묶어서 보내줬어.”
“아하.”
그래서 개인 번호로 온 것이군. 이건 좋은 일이었다. 따로 전기세 수도세 찾아내는 것도 일이었으니까.
어째서 국세청 번호로 안 오나 했는데, 그녀가 따로 정리해서 보내준 것이다.
‘내가’를 따로 강조하는 게 좀 그렇긴 했지만, 고마운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좋은 소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세원 학생 힘들 거 아니까, 이번엔 특별히 오만 원 깎아줄게. 천천히 내.”
“오.”
나는 이번엔 진심으로 고개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5만 원!
따지자면 그리 큰돈은 아니었지만, 한 푼 한 푼이 급한 나에게는 무척이나 커다란 돈이었다.
내 생명이 5일 연장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갑자기 눈앞의 아줌마가 천사로 보이기 시작했다.
순수한 호의(성욕)로 이렇게 출혈을 감수해주다니!
역시 사람은 좀 생기고 볼 일이다. 가끔씩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기잖아.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였다.
“그래. 이것도 다 세원 학생이 정감가서 해주는 일이야~”
불쑥!
그녀의 두 손이 갑자기 내 한쪽손을 사로잡았다.
“어?”
갑작스러운 부드러운 감촉에 당황하기도 잠시.
주물주물. 그녀의 손이 아주 은근히, 내 손을 주무르기 시작한다.
“혹시 힘든 일 있으면 말하고··· 이 아줌마가 웬만한 건 도와줄 테니까.”
질척한 호의가 내 몸을 타고 흘렀다.
내 손을 주무르던 두 손은 점차 올라가더니, 이제는 내 팔을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스르륵, 살결이 마찰할 때마다 오한이 등 뒤를 타고 오른다.
그런 상태에서, 그녀가 말한다.
“별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아들같아서 그래.”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팔을 뺐다.
생존의 위협을 지금 나는 느끼고 있었다.
“아하하··· 고맙지만 괜찮아요. 그럼 돈 되는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쾅!
문을 닫았다.
시선이 차단되며, 마음에 안도감이 찾아온다.
“하아···하아···.”
와아.
와아 씨발.
좆될뻔 했다.
하마터턴 내 몸이 따먹힐 뻔했다. 진심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었다.
진심으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애써 좋은 걸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래도 5만 원 깎았으니···.”
그건 다행이었다.
5만 원의 교환비로 정조의 위협을 느끼게 되다니.
조금 가성비가 안 맞긴 했지만··· 그래도 이득이 있는 게 어디인가.
“이제 돈만 벌면 돼.”
나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