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44, 반찬
* * *
새벽의 공기는 미묘한 마력을 갖고 있었다.
급격하게 떨어진 기온은 주변에 차가움을 선사해줬고, 고요한 길거리는 소리에 죽음을 선물한다. 어제까지 웃고 떠들던 사람들은 전부 어디 갔는지, 지금은 술주정뱅이와 사람 몇 명이 남았을 뿐이었다.
흔한 새벽 1시의 시내의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을 시간.
“흐흠.”
성아린은, 이렇게 밤중에 돌아다니고 있노라면 자신이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하고는 했다.
어정쩡한 통금은 사라지고 마음 편히 어디든지 돌아다닐 수 있는 나잇대. 책임과 동시에 자유를 즐길 수 있는 나이.
그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이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하고 있는 중이었다.
왜냐하면 방금 막 어른들의 섹스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금 꽤나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걸을 때마다 조금씩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흐흐흠.”
이세원과는 아까 전 모텔앞에서 헤어졌었다. 마음 같아선 아침까지 함께 하고 싶었으나··· 가족이 있는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외박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 특히 성유진 그년이 문제였다.
놀러 갔다 온 자신이 외박까지 하고 오면 그녀가 자고 왔냐고 추궁할 게 틀림없었다. 그건 안 될 일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아···.”
끼이익.
문이 열리며 적막한 집안이 눈 안에 들어온다. 부모님은 주무시고 계신 건지 집 안은 암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성아린은 그걸 보며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휴우···.”
늦게 온 것 때문에 혼날까 봐 그런 게 아니었다.
자신의 치마 쪽에서 밤꽃 냄새가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나온 안도였다.
치마 위에 떨어진 정액을 열심히 닦는다고 닦았으나, 흔적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진득한 액체들은 이미 섬유 사이사이로 스며들어간 뒤였으니까.
얼핏 보면 평소 옷이랑 똑같으나, 유심히 보면 이질감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였다. 혹시라도 상황이 잘못 흘러가서 상대가 냄새라도 맡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깨어있는 사람이 없다는 건 좋은 소식이었다.
좋아 이제 이대로 자기 방까지만 들어가면······.
“왔어?”
그때였다.
딸깍!
갑작스레 불이 켜지며 한 인영이 나타난다. 거실의 끝엔 자신의 여동생이 서 있었다.
성아린이 놀란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깜짝아! 아직 안 자고 뭐해?”
“울 하늘같은 언니가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지.”
“하늘같긴 개뿔이···.”
성아린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평소에는 빨리도 잠들던 애가 이 시간까지 깨어있으니. 의도가 뻔히 보였다.
그렇게 잠시 서있자 성유진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잘 놀다 왔어? 분위긴 어땠어?”
“뭐, 뭔 개소리야. 그냥 친구 만났다가 온 건데.”
“그냥 친구는 무슨~ 그런 사람이 나한테 옷 추천까지 받아?”
역시, 이런 변명은 안 통하는 모양이다. 에둘러서 상대방의 성별은 말하지 않았었는데, 성유진은 이미 남자라고 확신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어쩔 수 없는 일.
성아린은 한숨을 한 번 내쉬며 대충 대답했다.
“···몰라, 그냥 적당히 만나고 왔어.”
야스를 적당히라 말할 수는 없지만, 굳이 그걸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알아서 생각하게 놔두는 게 편했다.
대충 얼굴에 웃음기를 지우고, 세상이 무너진 듯 한숨을 내쉰다. 물론 정보를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성아린의 연기였지만, 다행히 성유진은 대충 납득한 듯 보였다.
아마 나쁜 쪽으로.
“아··· 하긴, 언니는 숙맥이니까. 잘 못 풀렸을 수도 있지. 힘내, 괜찮아!”
“진짜 뒤질래?”
자연스럽게 위로를 건네는 그녀에게 성아린은 깊은 짜증을 느꼈다.
대화도 잘 텄고, 관계 진전도 잘 시키고 왔는데. 자동으로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성유진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자신이 원하는 반응이긴 했다.
저런 반응이면 계속 들러붙진 않을 테니. 일단 자신에겐 좋은 일이었다.
성아린은 잠시 동생을 노려보다가 한숨쉬며 말을 이었다.
“후, 됐어. 나 피곤해 비켜.”
얼른 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솔직히 그녀는 지금 대화하는 와중에도 냄새를 눈치채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상태였다.
실제로 피곤하기도 했고 그녀는 얼른 침대에서 쉬고 싶었다.
“아, 그래. 오늘은 쉬게 해줌.”
다행히 순순히 길을 비켜주는 그녀. 성아린은 여동생을 지나쳐 그대로 제 방으로 걸어갔다.
터벅터벅 걸어갈 때마다 방문이 점차 가까워진다. 그렇게 방문 손잡이를 잡은 순간, 그녀는 무언가가 떠올랐다.
“아 맞다. 유진아.”
“응?”
다시 고개를 돌려 성유진을 쳐다본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제 여동생이 보였다.
그래도 도움을 받았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혹시 먹고 싶은 치킨 없어? 내가 내일 사줄게.”
“오, 뭐야. 웬일?”
“그냥. 사주고 싶어서.”
“음··· 지금은 딱히 생각나는 건 없는데. 내일 생각하고 말해도 돼?”
“어, 그래.”
“진짜 웬일이야 근데? 나중에 두말하기 없기다?”
“두말 안할테니까. 내일 꼭 말해라 진짜.”
성아린은 그렇게 말하고 진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문 밖에서 “치킨~치킨~”흥얼거리는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는 대충 옷을 옷걸이 위로 걸어놓고는, 속옷만 입은 상태로 침대 위로 쓰러졌다.
새벽에 세탁기를 돌려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일 일어나서 몰래 빨 생각이었다.
“으으, 허리아파.”
몸을 눕히자, 오랫동안 짓눌려있던 허리가 비명을 지른다. 오늘 온종일 움직여댔던 몸에서 곡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고통조차도 올라오는 행복을 막아낼 수 없었다.
“헤헤.”
모텔에서 있었던 일을 상기하자, 자동으로 웃음이 피어오른다. 그녀에게 있어서 오늘의 섹스는 특히나 기분이 좋았다.
조금 거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애초에 자신은 그런 상황을 더 좋아하기도 했고. 덕분에 꽤나 흥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차디찬 눈매와 날카로운 분위기도. 상황이랑 잘 어울리는 외모였기에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특히 마지막에 그건 엄청 좋았지···.’
그녀는 이세원이 자신의 위에 올라타 무자비하게 박아댔던 그때를 상기했다.
두 팔은 완전히 봉쇄당해 제대로 저항조차 못하고, 몸은 짓눌려서 거센 압박감이 자신을 감싼다.
솔직히 좀 아프긴 했지만···생각해보면 그때가 가장 기분이 좋았었던 것 같았다. 몇번인가 자신이 상상했던 망상을, 현실에서 그대로 실현한 것 아닌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걸 생각하자 또다시 보지쪽이 젖는 느낌이었다.
“······한 번만 할까?”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손가락을 옮겨 자신의 질 쪽으로 넣었다.
이미 섹스는 모텔 안에서 질리도록 했지만, 아직 한 번 정도는 더 자위로 갈 수 있을 거 같은 그녀였다.
성아린은 방금 전 일을 반찬 삼아 자위를 한번 할 생각이었다.
찔걱
“아흑···.”
작은 신음과 함께, 질척질척한 질 안쪽이 느껴진다. 이세원이 싸질러댔던 정액이, 그대로 그녀의 보지 안쪽에 남아있었다.
찌걱찌걱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미끈거리는 백탁액이 만져졌다.
“흐으으···.”
성아린은 아직도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자신의 안쪽에 남자의 정액이 가득 들어차 있다니. 새하얀 정자들이 질 안쪽을 더럽히고 있다니.
그걸 생각하자 짙은 만족감이 제 감정을 사로잡았다.
평생 꿈만 꿨었던 일이다. 남자랑 자보면서 자신의 취향까지 맞춘다니.
그저 망상으로만 고이 간직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현실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낭만같은 건 없다. 설령 있더라도 그것이 자신에게 찾아오는 일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뤄질 리 없는 꿈들은 금세 포기하는 편이었다.
소심한 자신은 현실에서 남자를 만나기가 어렵다.
어렵사리 만나더라도 취향을 맞추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망상을 그저 망상으로만 간직하고, 소소하게나마 커미션을 넣어 그림으로나마 구현한 것이다.
거기까지가 제가 꿈꿀 수 있는 마지노선인 줄 알았기에.
“으흑···!”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이런 식으로 관계가 맺어질 줄은.
아무 생각 없이 그림 의뢰를 넣었던 작가가 알고 보니 남자였고, 현실에서 만나 이렇게 섹스를 할 줄은.
꿈만 같은 일이다. 만화같은 곳에서나 일어날 일이었다
성아린에게 있어서 이세원은 자신의 망상을 이뤄줄 수 있는 현실 안의 꿈이었다.
심지어··· 심지어······.
‘내가 처음이라니···.’
모텔에서 한바탕 한 후엔, 잠시 침대에 누워 편안한 대화 시간을 가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옷을 다 입고 있었을 때 했던 대화는 어색하기 그지없었는데.
나체상태로 했던 대화는 그리 편하게 다가올 줄이야. 역시 사람은 몸의 대화를 해야 한다.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아무튼 성아린과 이세원은 섹스 후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 가끔씩 장난도 치고, 서로 몸도 주물럭 거리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녀는 거기서 놀라운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이 그가 처음이듯, 그 또한 처음이 자신이라는 것.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능숙해 보이던 그가 알고 보니 자신과 똑같다니.
하지만 동시에 믿지 못할 것도 없었다. 일단 그가 적극 주장하기도 했고, 굳이 그걸로 거짓말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그걸 생각하자 자동으로 기쁨이 차올랐다. 언제나 처음이란 소중한 것이었으니.
“흐윽···흐으응···.”
성아린은 그 기쁨을 연료삼아 손가락을 가속했다. 흘러나오는 신음을 참으며 연신 질입구를 쑤셨다.
손가락이 움직일때마다 강한 쾌락이 신경을 자극했다.
그러나.
“뭔가···부족한데.”
그렇게 한참 자위를 반복했을 무렵이었다. 그녀는 절정 직전에 잠시 손가락을 멈췄다.
이대로도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긴 했지만, 뭔가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다.
반찬은 충분히 있으나, 뭔가 결정타가 부족한 듯한 느낌.
뭐 반참삼을거 없나··· 하고 그녀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발견할 수 있었다. 옷걸이 위에 정갈하게 걸려진 자신의 치마를.
정확히는 그 치마 위에 묻은 정액을 말이다. 그녀는 침대 위에서 일어나 제 치마 쪽으로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때마다 미약했던 밤꽃 향이 점차 강해진다. 가까이서 보니 꽤나 많이 얼룩진 검은색의 치마가 보였다.
자신이 미처 다 못 삼키고 치마위에 토해낸 정액들.
양이 어찌나 많았는지, 아직도 입안의 밤꽃 향이 나는 것 같았다.
그녀는 피식 웃으면서 작게 불평했다.
“너무하지··· 그걸 어떻게 다 삼키라고···.”
물론 원망따윈 담기지 않은 불평이었다. 누구는 정액에서 딸기 우유 맛이 난다고 하던데 아니더라.
저녁식사로 파스타를 먹고 와서 그런가, 그것은 꽤나 짭짤하고 비릿했다.
식감도 낫토처럼 미끈미끈하니··· 좋은 말로도 맛있다고는 못할 맛이었다.
“······.”
하지만, 그것에 자꾸 흥분하는 것은 왜일까. 분명 비릿하고 맛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이런 게 꼬카인이라는 건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얼굴을 자신의 치마에 파묻었다.
그리고 잠시 심호흡을 했다.
“스읍하아.”
불편하고 답답한 감각과 함께, 은은한 밤꽃 향이 폐 속 깊숙이 들어갔다 나온다.
자신의 신체 구석구석이 그의 것으로 더럽혀지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흐으···.”
벌레들조차 소리 내지 않은 적막한 방 안속, 손가락이 찌걱찌걱하는 소리만이 요란하게 울려펴졌다.
“좀만 더···.”
그녀는 한동안 냄새를 맡다가 이내 혀를 내밀었다.
자신의 치마에 얼굴을 파묻고 절정하려 하는 변태라니··· 잠시 자괴감이 들긴 했지만 충분히 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번엔 못 삼켰으니까.’
다음을 기약하는 거다.
혹시라도 그런 상황이 오면 다음에는 꼭 다 삼켜내고야 말겠다는 포부였다.
응, 그니까 지금 이 행위는 연습이다. 밤꽃향에 적응하기 위한 일련의 훈련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합리화를 하며···.
쪽.
얼룩진 부분에 입술을 맞췄다.
조심스럽고도, 조용하게.
마치 그에게 키스를 건네듯.
절정은 꽤나 쉽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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