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41, 어색행
* * *
[오, 쇼팽의 흑건]
어두운 영화관 안, 스크린에서 멋들어진 연주가 흘러나온다. 스피커에 의해 증폭된 음량은 영화관 전체에 커다란 소리를 전달해 주고 있었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귀가 살짝 울리긴 했으나, 원래 영화관은 큰 음량이 매력으로 작동되는 곳이다.
그 정도야 감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애초에 소리가 큰 쪽이 몰입이 더 잘 되는 편이기도 하고.
[널 위해 이 악보를 가져왔어]
문제는, 지루하단 것이었다.
영화가 진행될 때마다, 스토리가 전개될 때마다 눈꺼풀이 조금씩 무거워진다.
올라오는 하품은 막아낼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뭔 샤랄라한 배경은 왜이리 자주 나오는건지. 잔잔한 은율이 흐를 때면 내 정신도 잔잔해져서 무의식 아래로만 빠질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졸립다···.’
그냥 졸린것도 아니고 존나 졸렸다.
눈을 감을 때마다 정신이 조금씩 혼미해지는 기분이었다.
애초에 멜로 영화란 장르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애정관계를 주로 다루며 서정적인 감성을 주로 자극하는 영화라니.
이게 뭐야··· 자극적인 장면이 없잖아. 그다지 감성적이지 않은 나에게, 멜로 영화란 커다란 벽이었다.
물론 이것는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이다. 멜로 영화가 내 취향에 안 맞을 뿐.
인기 있는 장르는 맞았으니, 다른 사람은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었다.
나는 혹시 성아린은 재밌게 보고 있나 해서, 그대로 옆을 쳐다보았다.
스크린 속의 장면을 눈에 담고 있는 그녀가 보인다. 일단은 보고 있는 듯한데··· 얼굴이 꽤나 무미건조했다.
응, 무미건조하다.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낭만도, 희끗희끗 보이는 아련함도. 전부 닿지 않는다.
눈 속에는 공허만이 담겼을 뿐이었다.
저 반응은 뭔지 잘 알고 있었다. 방금까지 나도 저런 얼굴이었으니.
바로 지루함이었다.
순간, 억울한 마음이 가슴속 싶은 곳에서 용솟음쳤다.
'아니, 네가 보자며!'
나는 그녀를 잠시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네가 골랐으면 최소한 너라도 재밌게 봐야지. 너까지 지루해 하고 있으면 어떡해.
세상에, 돈을 내고 지루함을 느끼다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학교도 아니고. 오늘 하루, 돈을 꽤나 효율적으로 버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 멜로 영화 좋지.
취향 맞는 사람이라면 재밌게 볼 것이다.
데이트할 때 보기 좋은 장르라는 말도 많았고. 일단 남녀 사이의 애정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로맨스 영화란 꽤나 효과적인 도구이기도 했다.
원래 로맨스 영화를 보고 나면 뭔가 아련한 사랑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니까.
그게 나비효과를 일으켜서 연애에 골인하는 사람도 많다고 들은 적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몇 번 데이트를 해본 후 서로의 취향을 어느 정도 알았을 때 가능한 일이다.
멜로 영화는 다른 장르에 비해 비교적 지루한 부분이 많은 영화였다.
아무래도 남녀 사이의 감정을 주로 다루는 영화이다 보니, 잔잔한 장면들이 꽤나 많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외적인 연출에 조금 힘이 빠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취향에 맞지 않으면 지루함을 느끼기 쉬운 장르였다.
아무래도 인터넷에서 추천한다고 무작정 이 영화를 고른 듯한데··· 역시, 너무나도 안일하고 편협한 시각이었다.
봐라, 결과적으로 둘 다 지루해 하지 않는가.
‘차라리 개그 영화나, SF 영화가 낫지.’
그건 장르 취향이 안 맞아도 흥미롭기는 하잖아. 첫 데이트의 영화에서 그 정도면 충분한 역할을 한 것이다.
호불호가 갈릴 만한 장르는 비교적 피하는 게 좋았다.
뭐, 같은 모쏠이 뭘 알겠냐만은··· 아무튼 내 생각은 그랬다. 원래 이론적인 거에 관해선 솔로들이 더 잘 안다고 하잖아.
[사륜!]
뭐 그래도 영화 자체는 볼만했다.
위에서 지루하니 뭐니 떠들긴 했지만, 그게 못 볼 수준이라는 말과 직결되지는 않으니까.
과거의 명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라 했던가. 그런 만큼, 스토리는 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역전 세상이라 그런가, 남녀 주인공의 역할이 바뀐 것도 꽤나 신기했다.
[샹오위!]
특히, 여주가 예쁘더라.
*
영화가 전부 끝난 뒤, 그들은 다시 건물 밖으로 나왔다.
시간이 벌써 꽤나 지났는지 밖은 벌써 밤이 되어 있었다.
“끄으으.”
이세원은 밖에 나와서 잠시 기지개를 폈다. 오랫동안 앉아있어서 그런지, 굳어버린 몸이 비명을 질러댄다.
나른함에 빠져있던 정신이 밖에 나옴에 따라 점차 각성해갔다.
그는 짤막하게 영화의 감상을 내뱉었다.
“뭐, 나름 볼만했네.”
그게 끝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하이라이트가 좋았다. 후반부는 흥미진진했다. 뭐, 그런 말 없이.
그저 나름 볼만하다 뿐. 그 말을 들은 성아린은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자신이랑 감상이 똑같아서 나온 웃음이 아니다. 그 감상이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 초라해서 그런 것이었다.
이세원이 그녀의 얼굴에서 지루함을 읽었듯, 그녀 또한 이세원에게서 지루함을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을 위해 그다지 티는 안 내는 것 같지만, 그녀도 눈이 있었다. 행동이나 표정에서 어느 정도 감정을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아린이에게는 그 배려가 꽤나 아프게 다가왔다.
‘뭐지, 분명 인기있는 영화라 했는데···.’
인터넷에서 오랜 시간 망령처럼 떠돌아다니며 찾아낸 영화였다. 많은 사람들의 추천을 받은, 소위 이성에게 인기 있는 영화였단 말이다. 그런 만큼 제가 지루한 것도 참으면서, 그의 반응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막상 저런 반응이 나오니 침울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그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기분이었다.
즐겁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자, 배애서 소리가 들려왔다.
꼬르륵.
뭔가 우렁찬 소리가 신체 밖으로 퍼져나간다.
속이 비었으니, 무언가 넣어달라는 신호였다. 그러고 보니 꽤나 오래 밖에 나와있던 것에 비해, 속에 들어간 음식은 없었지.
슬슬 밥을 먹어야 할 타이밍이기는 했다.
“아···.”
그런데 이렇게 크게 알려줘야 할 필요가 있는지··· 좀 작게 울려줘도 되잖아.
이성으론 어쩔 수 없는 생리현상에 그녀는 얼굴이 빨개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있길 잠시, 소리를 들은 이세원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슬슬 밥 먹을 때가 되긴 했네. 속이 빈 걸 보니.”
“···그러게.”
“어디 밥 먹을 때 없나··· 혹시 아는 곳 있어?”
그 질문을 들은 성아린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있었다. 코스에서 식사를 빼놓을 수 없는 일.
그런 만큼 식사 장소 또한 골라온 그녀였다. 마침 가게가 근처에 있기도 했다.
‘이번에 만회해야 해.’
그녀는 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 여태껏 뭔가 꼴사나운 모습만 보여준 것 같은 그녀였다.
최소한 식사시간만큼은 그를 재밌게 해주고 싶었다.
“응, 이쪽이야.”
그녀는 가볍게 말한 다음 그를 식당 쪽으로 이끌었다.
도착한 곳은 꽤나 고급 져 보이는 파스타집 안이었다.
천장에는 주황색 빛을 내는 전등이 달려있고, 벽에는 울퉁불퉁한 벽돌들이 끼어있어 분위기를 꾸며준다. 꽤나 잔잔하고 아늑한게 대화하기 좋아보이는 장소였다.
이세원은 가게에 들어오면서 작게 감탄했다.
“오.”
나름 괜찮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코스를 보면 솔직히 불안하긴 했었는데, 아무래도 식사 장소는 꽤나 무난한 장소를 택한 듯했다.
파스타집 좋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식사는 뭐를 해도 상관이 없긴 했다.
저번에 은별이랑 갔었던 까르보나라 전문집 같은 걸 빼면, 그는 대부분 가리지 않고 편이었으니까 말이다.
‘으.’
잠시 그때의 맹맹한 맛이 생각났지만 얼른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 맹맹한 맛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는 까르보나라 뿐만 아니라 많은 종류의 파스타가 준비되어 있는 듯했다.
평범한 토마토부터 시작해, 짬뽕, 크림, 오징어 먹물까지 여러 종류가 다 있었다.
크, 그래.
이게 근본이지. 무릇, 파스타집이란 토마토가 있어야 근본이라 칭할 수 있는 것이다.
까르보나라 전문집이라는 컨셉을 위해 토마토 파스타를 뺀 그곳은 근본이 아니었다.
그렇게 성아린과 이세원은 각자 맞은편에 앉았다.
각자 메뉴판을 보면서 가벼운 대화가 오간다.
“뭐 먹을 거야?”
“그러게··· 딱히 생각하는 건 없는데. 혹시 추천해 줄 거 있어?”
“음, 여기 까르보나라를 되게 잘 만든다고 했던 거 같아.”
“제발··· 그것만 빼고 추천해봐 좀.”
어쨌든 대화가 오가긴 했다.
그렇게 시킨 음식은 토마토 하나, 짬퐁 파스타 하나였다. 이세원이 토마토, 성아린이 짬뽕 파스타였다.
“주문 확인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종업원이 주문을 확인한 후 메뉴판을 가지고 돌아간다.
직후, 둘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작디작은 테이블 위에 올라간 것은 자그마한 냅킨과 포크들뿐이다. 신경을 분산시킬 건 그 무엇 하나 없었으며,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가게 안에서 잔잔한 음률이 흐르고 있었다.
힐링 되는듯한 음악에 온몸의 긴장이 풀리는 것만 같았다. 대화하기 딱 좋은 타이밍.
성아린은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제 입만 열면 되는 일이었다.
그녀는 서두를 열기 위해 입을 열었다. 폐 속에 공기를 빨아들이며, 머릿속으로 말문을 정리한다.
머릿속에 여러 단어들이 떠올랐다가 무너져 내렸다.
자 이제······.
“······.”
······무슨 말을 하지?
신기하게도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문장은 없었다.
생각해 보면, 크나큰 오류가 있었다.
대화하기 편한 분위기 좋다. 잔잔하고 무드 있는 장소도 물론 좋았다.
어느정도 스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분위기를 적극 이용해서 꽤나 호감작을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느 정도 대화하며 웃고 떠들기만 해도, 친근함을 쌓아가기엔 충분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그녀가 말주변이 없다는 것이었다.
좋은 분위기를 활용하는 것도 결국 그 사람의 능력이다.
솜씨 좋은 달변가라면 설령 허름한 뒷골목이라도 상대방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법이었다.
그 말은 곧, 그 반대의 예도 가능하다는 뜻.
아가리에 달린 모터따위 없는 그녀는, 좋은 분위기가 와도 활용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녀는 편해질 때는 한없이 편해지지만, 어느 정도 벽이 있는 상대는 꽤나 어려워하는 편이었다.
“오늘 날씨가 좋네···.”
결국 입에서 나오는 건 아무 영양가 없는 중얼거림뿐.
낮에 걸어 다닐 때도 중얼거렸던 말이었으며, 이게 도움이 안 된다는 건 당사자인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지독하리만치 어색한 침묵이 그녀를 짓눌렀다. 애써 입을 열려 해도 ‘남자’에겐 무슨 주제가 어울릴까 하는 의문에 저절로 닫히기 일쑤였다.
그 침묵은 음식이 나올 때까지도 지속되었다. 상큼한 토마토 냄새와, 짭짤한 짬뽕의 향이 공기 중에 섞여 혼합된다.
“후우.”
결국 먼저 입을 연 쪽은 이세원이었다. 사실 그도 그다지 말주변이 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리 불편해하는 성아린보다는 대화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어째 첫 만남이랑 바뀐 게 없는지. 뭔가 데자뷰가 느껴지는 상황에 이세원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평소엔 뭐하고 지내?”
처음엔 가벼운 일상 대화부터.
“나? 나야 그냥 학교 갔다 온 다음 알바하면서 지내지···.”
“뭐 비슷하네. 나도 학교 갔다 온 다음 일만 하거든.”
굳이 처음부터 흥미로운 주제, 유쾌한 대화를 할 생각은 없었다. 이 어색한 공기를 조금 덜어낼 정도.
무난하지만 대화는 끊기지 않을 정도의 주제가 좋지 않을까··· 그리 생각할 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일상 대화는 꽤나 괜찮은 것 같았다.
“일이라면 그 그림 그리는 거?”
“그래 너네들 반찬 만들어 주는 거.”
“··· 그렇게 자주는 안 봐.”
잔잔하지만 편안하게, 가끔씩 말이 끊기진 하지만 단절되는 일은 없이.
“그러고보니 너는 무슨 알바 해?”
“나 호프집에서 서빙알바 하고 있어. 낮 5시부터 밤 11시까지.”
“낮에도 호프집에 사람이 오나?”
“별로 안 오긴 하는데, 그래도 바쁜 편이야. 미리 청소해놔야 해서.”
“아하.”
그렇게 대화가 이어졌다. 식사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갔다.
*
식사가 끝나고 나오는 길.
시간은 이제 저녁을 넘어 한밤중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막상 놀 때는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 줄 몰랐는데, 역시 주말은 빨리 지나가는 모양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다시 한번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아아, 아인슈타인. 그는 언제나 옳았다.
그들은 지금 다시 길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이때쯤이면 즐길 건 다 즐겼고, 배도 다 부른 상태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남녀라면 아마 이때쯤에 헤어지지 않을까 싶은 타이밍이다. 성아린은 슬슬 데이트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마침 자신이 계획했던 데이트 코스도 전부 소모시킨 참이었다. 마지막 코스로 남산타워까지 가서 경치 구경이 있었지만··· 실현하기 힘든 일이란 건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정도에서 끝내는 게 맞았다.
“오늘 어땠어···?”
그래서 그녀는 이세원에게 물었다. 원래 이런 걸 묻는 건 안 좋다고 듣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이세원의 솔직한 감상을 듣고 싶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오늘 계획은 실패한 거 같았으니까···.
즐겁게 해준다고 다짐했으면서 오늘 하루 꼴불견인 못습만 보여준 기분이 들었다.
예열로써 들어간 인형 뽑기 가게에서는 쌩돈 만 원만 날렸고, 고심해서 고른 영화는 척 봐도 지루해 하는 기색이 강했다.
대화를 위해 준비한 식사 장소에서는 막상 자신이 어버버 해대서 이세원이 주도하는 형태가 되었지 않은가.
전체적으로 못난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물은 것이다. 혹시나, 얼굴만 그럴 뿐 재미는 느꼈지 않았을까.
미약한 희망을 품으며.
“음, 그냥 그랬어.”
그러나 돌아오는 말은 잔혹했다.
“아······.”
그녀는 탄식을 내뱉었다. 역시, 그럼 그렇지. 지루해 하는 모습이 뻔히 보였는데, 뭘 기대했는가.
결국 그녀의 계획은 실패한 거였다. 그를 즐겁게 해주겠단 계획이, 그럼으로써 한밤중의 시간도 가져가겠다는 계획이 허물어진 것이다.
침울함이 그녀의 마음에 엄습했다.
그러나, 이세원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재미는 있었네.”
“응?”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아린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냥 그랬다며?”
“어, 솔직히 갔던곳들은 그냥 지루하기만 했는데. 그래도 날 위해서 준비한 거였잖아? 그건 기쁘더라.”
라고 말하며, 그는 작게 웃었다. 이세원은 진심이었다.
솔직히 누가,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뭔가를 준비해 주겠는가. 설령 지루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지만, 정성이 느껴져서 좋았다. 옆에 서서 성아린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편이었고.
그러니 결과적으로 보면 재밌다는 쪽이 더 높았다. 그거면 된 일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지금까지 메인은 아니었잖아?”
이세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성아린의 손을 붙잡았다. 그의 눈이 마치 늑대처럼 번뜩거린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와 씨발.’
대체 얼마나 참은거지?
낮부터 지금까지 가슴에 시선이 수십 번 정도 간 것 같았다. 저 어깨 위에 걸친 크로스백은 꼴림 포인트인가.
커다란 가슴 사이에 끼인 게 마치 파이즈리를 하는 것 같이도 보였다.
그걸 볼 때마다 제 소중이가 얼마나 비명을 질러댔는지. 그녀가 준비한 게 많아 보여 여태껏 참은 것이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었다.
이제부터는 자신의 시간이었다.
이세원은 그녀의 손을 강압적으로 이끌었다. 마침 근처에 모텔이 있으니 가는 것은 금방이었다.
“어엇, 잠시만.”
성아린은 끌려가는 손에 잠시 당황했다. 무슨 남자가 이렇게 성욕이 왕성한지. 뭔가 역할이 뒤바뀐 느낌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의 전개에 그녀는 마음의 준비를 못 하고 있었다.
그녀의 작은 저항을 본 이세원이 그녀에게 묻는다.
“왜 섹스하기 싫어?”
“···아, 아니.”
성아린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조용히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 성욕에는 솔직한 편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