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37화 (37/125)

〈 37화 〉 37, 타르탈로스

* * *

글러먹은나.나에게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이름이었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던 닉네임이었지만, 상대는 어느새 내 마음속에서 점차 크기를 키워갔다.

일단은 내 장기적인 고객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상대방이 내가 현실에서 아는 여자애였기 때문이다.

이은별.

현실에서는 밝고 활발한 여자애가, 익명성 안에서는 저렇게 음습한 모습이라니.

아직까지도 매칭 안 되는 그 둘의 모습에 혼란이 오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두 가지의 이름이 내 머릿속에서 부유하듯 맴돌았다.

그러나 그러길 잠시, 나는 상대방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어쨌든 질문을 해야 했으니까.

현재 시간은 11시 13분.

아직 자기는 이르고, 정확히는 잘 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아마 지금 시간대라면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이나 하고 있지 않을까.

[hala: 님]

[글러먹은나: 네?]

과연 내 예상이 맞는지 답장은 무섭도록 빠르게 왔다. 일단은 누워있는 게 맞는 듯했다.

[글러먹은나: 왜요?]

[글러먹은나: 빨리요, 저 딸칠예정이라 바쁨]

침대에 누워서 해피타임을 가질 예정이었구나. 그래, 그것도 잘 준비는 맞긴 하지.

그 문자를 보고 나는 이마를 탁 쳤다.

“이야···.”

왜 내가 신청받는 구매자들마다 이 모양인지.

잠시 현타가 오는 기분이었다.

제발, 조숙함이라는 걸 가져줬으면 좋겠다. 익명성이라는 방패을 믿고 너무 나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업보가 쌓이잖아··· 나중에 만날 때 어떡하려고.

잠시 머리가 어지러워졌지만, 그래도 물어볼 건 물어봐야 한다.

[hala: 다름이 아니라]

[hala: 제가 비씨에서 홍보글을 올렸다가 계정 차단을 당했거든요]

[글러먹은나: ? 뭘 올리셨길래 차단까지 당했어요?]

[hala: (사진)]

[hala: 이거요]

나는 상대방에게 방금 그 금태양을 보냈다. 온 몸에 갈색 광택이 나는 금태양이 그녀를 내려다본다.

그와 동시에 올라오는 반응.

[글러먹은나: 오ㅋㅋㅋㅋㅋ]

[글러먹은나: 와 안 그래도 반찬 뭐 하지 하면서 찾고 있었는데 이걸 만들어주시네]

[글러먹은나: 고마워요 잘 쓸게요]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래··· 마음껏 쓰렴. 네가 만족한다면 그걸로 됐어.

잠시 손가락으로 제 구멍을 쑤실 이은별을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물었다.

[hala: 네에..]

[hala: 그래서 그런데 혹시 어디 따로 홍보할 만한 사이트 없을까요?]

그러면서도 솔직히 큰 기대는 안 하고 있었다.

이미 성아린에게 물어보고 온 다음이다. 상당한 변태인 그녀도 모르는데 그녀라고 알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답은 놀랍도록 빨리 돌아왔다.

[글러먹은나: 애초에 왜 비씨에 홍보를 가요]

[글러먹은나: 타르탈로스에 올려야지]

웬 이름 하나를 알려 준 것이다.

그걸 본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hala: ..?]

타르탈로스가 뭐지.

내가 아는 건 타르타로스라는 명계의 지옥인데. 그것도 명계 가장 밑바닥에 있는 지옥 말이다.

갑자기 왜 심연의 감옥을 얘기하는 건가. 혹시 내 홍보를 볼 새끼들은 지옥에 기거하는 악마 놈들밖에 없다는 뜻일까.

그러니 꿈 깨고 조용히 굶어 뒤지라는 건 아닐까.

혹시 비꼬는 건 아닌가 해서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hala: 타르탈로스가 뭐예요?]

[글러먹은나: 아니, 야짤쟁이가 그걸 몰라요? ㅋㅋㅋ]

모르니까 물어보는거 아니야 씹덕아.

[글러먹은나: 비씨랑 비슷한 사이트인데 좀 더 규제가 약한 곳이에요.]

놀리는 듯한 말투에 잠시 짜증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글러먹은나는 제대로 설명을 해주었다.

마치 물 만난 물고기를 보듯 그녀의 입이 나불거리기 시작한다.

[글러먹은나: 해외에 사이트 아이피를 두고 있다던데, 그래서 그런지 야짤을 마음대로 올릴 수 있어요. 혐짤을 올려도 웬만해선 안 잘리고, 그리고 또­]

원래 씹덕이 아는 것이 나오면 신나서 설명한다고 하던가.

그녀는 평소에도 ‘타르탈로스’라는 사이트를 자주 이용하는 것인지 내게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다.

시스템상의 이야기부터, 거기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까지.

설명을 대충 정리하자면 대충 이런 느낌이었다.

비씨랑 시스템이나 문화가 비슷하나, 대신 규제가 무척이나 약한 곳.

아이피가 해외에 있어서 사이트 차단이 당할 일이 없으며 그 덕분에 마음 편이 야짤을 올릴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거기까지 설명을 들은 나는 작게 감탄을 날렸다.

“오···.”

그런데가 있었다니. 이곳에 떨어진지도 3주가 넘게 흘렀는데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문득, 전생에서도 비슷한 사이트가 있었다는 게 기억이 났다.

아카이브였나··· 아마 그 이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런 비슷한 사이트가 이곳에서 이름만 바뀐 채 존재하는 것이다.

그건 내게 무척이나 좋은 소식이었다.

야짤을 올려도 잘리지 않는 장소라니. 그건 아예 나 같은 짤쟁이들을 위한 곳처럼 보이지 않는가.

홍보하기 무척이나 좋아보이는 사이트였다. 들어보니 유저 수도 꽤나 많은 듯했고 말이다.

[글러먹은나: 원래 그런 쪽 홍보는 이쪽 사이트에서 하는 게 국룰이에요. 애초에 그런 목적을 포함해서 만들어진 사이트이다 보니까, 따로 홍보란도 있고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감탄했다.

“캬.”

역시, 이쪽에 관한 일은 이곳의 원주민에게 물어보는 게 정답이었다.

내가 아무리 연구하고, 조사한다 하더라도. 몇 년에 걸쳐 나쁜 물을 빼왔던 이곳의 사람들에게는 한 수 접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녀가 땀과 즙을 흘려가며 얻어냈던 노하우가, 지금 나에게 전수되고 있었다.

[글러먹은나: 이제 됐죠? 저 이제 슬슬 못 참겠음. 반찬 잘 쓸게요 ㅋㅋ]

[hala: 아, 네 즐딸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딸치러 간 이은별에게 한 작별 인사를 끝으로 나는 대화창을 나섰다. 이제 그녀는 해피타임을 가질 것이다.

그녀의 존엄성을 위해 나는 굳이 머릿속으로 상상하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나는 그녀가 말해준 사이트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타르탈로스.

명계의 나락을 생각하며 인터넷을 돌아다니길 잠시. 사이트는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첫 번째 페이지에서 몇 번 내리다 보니 ‘타르탈로스’라는 이름의 사이트가 보였다.

나는 그곳에 대충 들어가 신규 계정을 만들었다.

처음 들어간 메인화면의 모습은 별다른 설명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글러먹은나’에게 충분히 설명은 들었으니 말이다.

“따로 감옥 목록을 볼 수 있다고 했지 아마···.”

이곳도 비씨와 마찬가지로 따로 갤러리를 만들어서 관리를 하는 모양이었다.

다만 좀 다른 게 있다면 갤러리라는 말 대신 감옥이라는 채널명을 사용한다는 것.

과연, 사이트 이름에 알맞은 단어였다.

메인 상단의 석 삼(三) 자처럼 생긴 아이콘을 누르자 몇 가지 추가적인 기능들이 보였다.

프로필 관리, 설정, 즐겨찾기 관리 등.

나는 그곳에서 ‘감옥 목록’을 찾아 눌렀다.

성욕이란 다양한 것이라, 모두가 이성의 몸을 보고 꼴린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세분화할 수 있는 일이었다.

촤라라락!

버튼을 누르자마자, 수십 가지의 감옥들이 하나둘씩 나열되기 시작한다.

게임 관련 감옥, 음악 관련 감옥, 소설 관련 감옥 등.

나름 정상적인 것들도 많았지만, 과연 음지와 연결된 사이트란 걸 자랑이라도 하듯, 대부분은 이렇고 저런 감옥들이었다.

나는 그걸 보자 곧바로 사이트를 나가고 싶어졌다.

[쇼타 감옥]

[슈팅게임 감옥]

[sm 감옥]

[근육남캐 감옥]

[발라드음악 감옥]

[우람한 좆 감옥]

[수인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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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채널들 사이사이에 끼어있는, 보기만 해도 정신이 아찔해지는 이름의 감옥들.

그걸 보자 나는 이 사이트의 이름이 왜 타르탈로스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허.”

여긴 씨발, 진짜배기 지옥인 것이다!

대한민국에 기거하는 심연의 사는 악마새끼들을 모아다 때려박은 게 바로 이 장소였다!

정신이 어지러워지는 간판문들이 보인다.

과연 저 안에는 어떤 절망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떠한 창의적인 것들이 나를 괴롭히려고 할까.

생각하기만 해도 부랄이 떨리고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사람은 자기 상상만으로 이해 못 하는 것을 보면 미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른바 크툴루식 논리였다.

저 우주 저편에 기거하시는 니알라토텝님이 오직 촉수만을 보여주시는 것도.

혹여나 그분의 진체를 보게 되면 미쳐버릴 수도 있기에 모습을 감추는 것이다.

상상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미친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감히 상상조차 못하는 짤들을 보면 내가 미치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두려움까지 들었다.

“후우, 후우, 진정하자.”

잠시 오한을 느끼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다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결국은 내가 선택한 길이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 했다.

나는 다시 심연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가지각색의 감옥들이 보였다.

골든 샤워를 위한 감옥, 남의 똥꼬를 탐구하는 감옥, ntr을 좋아하는 감옥들까지.

나는 혹시라도 잘못 클릭하지 않기를 바라며 계속 리스트를 내렸다.

그렇게 나는 드디어 원하는 감옥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야짤 감옥]

다른 감옥들에 비하면, 무척이나 평범해 보이며 광범위한 이름의 감옥.

광범위한 만큼, 유저수가 많은 장소였으며 그렇기에 홍보하기 제격이라고··· 글러먹은나가 아까 설명해주었던 게 기억났다.

나는 그녀의 말대로 감옥을 클릭해 채널 안으로 발을 들였다.

다행히, 들어가자마자 사진이 보이는 시스템은 아닌 모양이었다.

다른 곳처럼, 게시물을 눌러야 내용물을 볼 수 있는 사이트였다.

나는 홍보글을 작성하기 전, 어떤 어떤 게시물들이 있는지 잠시 살펴보았다.

[추천 10개 넘으면 이 그림 작가 알려준다]

[남자의 정액은 딸기 우유맛이 난다는데 진짜일까?]

[이놈 따먹고 싶으면 개추 ㅋㅋㅋ]

“······.”

아주 가끔, 자신도 모르게 자살이 마려워지는 순간이 있다.

썩어빠진 세상에 혐오감을 느껴 그대로 목숨까지 지워버리고 싶은 경우가 말이다.

아무래도 나는 지금이 딱 그런 순간인 듯했다.

“···얼른 올리고 나가자.”

그냥 나는 체념하고 얼른 나가기로 했다. 상태를 보니 어쨌든 규제는 없어 보인다.

누가 뭐라 하든, 그건 좋은 소식이었다. 어쨌든 나도 이들과 한배를 타야 했으니까.

아까 비씨에 올렸던 게시글을 그대로 복사해서 이곳으로 가져왔다.

약간의 동정표과 성실함을 강조한 홍보글.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사진을 잘라내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로우 앵글로 비친 금태양은 이번엔 상체뿐만 아니라 하반신까지 전부 드러내고 있었다.

울근불근 한 근육이 시선을 사로잡으며, 우뚝 솟은 가운데가 사람들을 자극해 줄 것이다.

나는 그렇게 기대하며 홍보글을 올렸다.

올리기 무섭게 달리는 댓글들.

­wqwk12: 오? 뭐임? 오랜만에 홍보네

­아기씨주입: 오 ㅋㅋㅋㅋ 그림 봐 개꼴린다;

­암갈비쥐: 헤으응..오빠.. 나 밟아줭..

­급한사람: 와ㅋㅋ 잘 그렸네 바로 결제 간다

이번에는 맞지 않는 테이스트에 피토하는 사람도, 내 게시글을 자르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올린 하나의 게시글은 그렇게 익명의 바다를 유랑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멘탈이 좀 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좋아하는 반응을 보니 작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마음껏 봐라.”

좋든 싫든, 나는 이제 이들과 공생 관계다. 이젠 이 무대를 적극 이용해야 했다.

수많은 관심 속에서, 나는 계좌에 들어올 돈을 상상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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