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36화 (36/125)

〈 36화 〉 36, 차단

* * *

금태양.

금태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금발 태닝 양아치라는 뜻이었다.

누가 봐도 확고한 개성을 3개나 이어붙여 만든게 바로 금태양이라는 캐릭터였다. 누가 봐도 경박한 생김새를 한 채, 주로 질 나쁜 무리와 어울리며 남의 여자를 따먹는다.

이렇게만 보면 이만한 씹새끼가 없긴 했다.

그저 3류 양아치처럼 생긴 녀석이 감히 남의 여자를 따먹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금태양은 꽤나 알파메일적인 면이 많았다.

비록 성격은 더러울지라도 금태양은 여자라면 좋아할 만한 여러 신체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우월한 기럭지, 적당히 빠방한 근육, 잘생긴 얼굴, 그리고 거대한 좆까지.

히토비속 세상을 정복하기엔 안성맞춤인 조건 아닌가.

물론 작품에 따라 금태양의 생김새가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지만··· 적어도 내가 그릴 금태양은 저 특징들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래야 사람들이 작품을 볼 테니까.

이곳은 여자의 젖가슴보다는 남자의 근육이 더 가치 있는 곳이었으니, 최대한 좋은 조건들을 때려 박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성격만 조금 더러울 뿐인 완전한 알파메일의 금태양을 완성해 버렸다.

이쪽 세계의 ‘여자’라면 보기만 해도 아래가 반응할, 생물학적으로 우월한 남성을!

아마 내 기준의 관점으로 보자면 거유의 금발 태닝 갸루가 아닐까.

가슴을 출렁거리며 저를 유혹하는 흑갸루를 상상하고 있자니, 저절로 아랫도리가 움찔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확신했다.

이건 통한다.

“후우, 다 그렸다.”

탁.

마침내 만화의 끝부분을 끝낸 나는 타블렛 펜을 내려놓았다.

폐에서 튀어나온 한숨이 공중에서 흩어져 내린다.

내가 구상을 마친 뒤, 그림을 그린지도 벌써 일주일이나 지나 있었다.

그동안의 내 삶은 단조롭기 그지없었다. 아침에는 잠시 학교에 갔다 오고, 집에 와서는 온종일 그림을 그린다.

하루에 최소 6시간 정도는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던 것 같았다.

원래는 이렇게 성실한 성격이 아니었는데··· 다가오는 통장의 압박에 열심히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등 뒤에서 채찍의 위협을 느끼면서 일을 하던 흑인들이 이런 기분일까.

좀만 농땡이를 부리거나 오늘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가차 없이 가죽 채찍이 내리쳐진다.

채찍의 위협을 느끼면서 농땡이를 피울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 가죽 채찍이란 곧 통장이랑 다를 바 없었다. 아무리 아껴 써도 하루에 꾸준히 빠져나가는 통장을 보면 씨발 저절로 몸이 움직이는 것이다.

왜? 안 그러면 죽으니까!

며칠 뒤에는 잔혹한 0원 자리 통장이 나를 기다리게 될 테니까!

때문에 나는 성실히 일할 수밖에 없었다.

아아, 사람은 어느 정도 절박함이 있어야 작업 능률이 오르는 것이다.

잔혹한 코쟁이 새끼들이 굳이 흑인 노예들 뒤에서 채찍을 들고 있는 이유가 있었다.

그건 그저 그들이 지독한 사디스트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작업 능률을 위해서였을 뿐이었다.

뻐킹 레이시스트들의 마음이 살짝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역시 사람은 매를 맞아야 움직인다.

여튼저튼, 나는 일주일에 걸쳐 만화를 완성했고 그걸 바로 핀박스에 올렸다.

무료따윈 없다. 이제 이 만화를 보려면 나에게 월 5000원의 돈을 정기적으로 내야 했다.

만화의 내용은 참으로 간단하다.

성욕이 많은 우리의 친구 금태양이 주변에 이쁜 여자 캐릭터들을 헌팅 해 따먹는다는 내용이었다.

따먹히고 싶다는 이쪽 세계의 ‘여자’들을 공략하면서 내가 최대한 역하지 않게 그릴 수 있는 수준.

딱 이 정도가 나의 마지노선이었다.

이쪽에서의 첫 작품인 만큼, 스토리를 복잡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잠시 적응 기간을 쌓을 겸, 시각적 자극은 강하게 스토리는 단순하게 갈 생각이었다.

애초에 야한 만화를 보러 오는 건 딸을 치기 위해 서지 스토리를 보기 위해서는 아니었으니까.

이 정도가 적당했다.

이제부터 금태양은 여자들의 보지 즙을 마셔가며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나는 그렇게 기대하며 후원계좌의 숫자를 보았다. 분명 개꼴작을 알아본 소비자들이 황급하게 결제했지 않을까? 생각하며 말이다.

하지만.

[0?]

한 번 확인해 본 핀박스 안의 돈은 여전히 공허했다.

“크읍!”

잠시 그 공허함에 내 마음속까지 뻥 뚫릴 뻔했으나, 그래도 나는 얼른 정신을 차렸다.

대충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올린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금방 발견하고 결제한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아무리 퀄리티 좋은 작품이 있다 하더라도 눈에 띄지 않으면 결제조차 할 수 없는 일.

결국은 어느 정도 눈에 띌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자신은 있었다. 놀랍게도 이쪽 세상은 금태양이라는 개념 자체가 애매모호한 듯했다.

남역 세계의 차이일까, 아니면 문화 발달의 과정에서 뭔가 차이가 발생한 걸까.

아무튼 이곳에서 금태양이란 캐릭터는 꽤나 희귀한 편에 속했다. 태닝남, 양아치남, 금발남 같은 건 있더라도 그 세게를 합친 혼종은 없는 것이다.

그건 나에게 꽤나 좋은 소식이었다.

어느 곳이든 희소성이란 돈이 되는 법이었으니까.

“좋아 그럼 홍보 드가자!”

그렇게 생각을 마친 나는 곧바로 홍보를 위해 비씨에 들어갔다.

이곳은 온갖 음습한 욕망과 생각이 가득 자리한 곳이니만큼 관심을 끌기가 좋았다.

애초에 내가 아는 곳이 이곳밖에 없기도 했고, 패북이나 잉스타같은 곳엔 홍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타닥타닥.

빠르게 키보드를 타이핑해 간단한 게시물을 하나 올린다.

[안녕하세요 핀박스 오픈기념 홍보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신입 작가 hala라고 합니다.

핀박스 오픈 기념으로 여러분들에게 홍보를 하고자 합니다.

https://finbox.com/.....

여기 핀박스 주소고요 혹여나 마음에 드시면 결제를 부탁드립니다.

주에 하나씩은 꾸준히 올리겠습니다.

요새 작가가 많이 힘들어요..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부디 저를 이용해 나쁜 물들을 빼시옵고 저에게 돈의 은혜를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여기 간단한 샘플도 첨부하겠습니다.

(사진)

감사드립니다.

최대한 예의를 차리면서 동정 표를 얻기 위해 약간의 불쌍한 척도 했다.

실제로 지금 내 처지가 위태위태한 것은 맞으니 거짓말은 없었다.

거기에 더해 만화의 일부분을 잘라서 올려주기까지 했으니 홍보는 충분히 되었으리라.

잘라낸 만화의 그림은 금태양이 상의를 벗고 있는 장면이었다.

로우앵글로써, 구도를 보면 금태양이 내려다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고작 그뿐인 그림.

노출된 아랫도리는 전부 가렸고, 맨살을 보이는 건 상체밖에 없으니 딱히 잘릴 일도 없으리라 생각했다.

“오.”

그렇게 게시물을 올리니 무섭도록 빠르게 올라가는 조회수.

나는 연속으로 새로 고침을 누르면서 올라올 댓글들을 생각했다.

자, 이번엔 너희에 그 개같은 테이스트에 맞춘 그림이다. 내가 피 토하며 그려놓은 생존의 결과물이었다.

이번에는 전처럼 욕만 할 수 없겠지. 분명 [ ㅜㅑ ㅜㅑ]나 [와 씨발 개꼴린다;]같은 댓글이 달릴 게 틀림없었다.

과연 내 예상이 예상이 맞는지 처음엔 내 생각과 비슷한 댓글이 달렸다.

­ㅇㅇ(221,223): 와 ㅋㅋㅋㅋㅋㅋ

­wqdf123: 근육봐라ㅋㅋ 나 자궁이 떨려와..

­ㅇㅇ(114,249): 헤으응..오빵..

하나같이 감탄하거나, 놀라워하는 댓글들. 그걸 본 나는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이건 통하는 모양이었다. 이번에 내가 홍보온 그림은 배척받지 않았다.

통장에 들어올 돈들을 생각하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기분이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감탄과는 다른 댓글이 달렸다.

­통매야: ㅋㅋㅋ 새벽도 아닌데 찐야짤을 올리네ㅋㅋㅋ

­유동이에옹: 레즈야.. 탄압이 두렵지 않은 거냐?

­짤보관소: 일단 짤은 저장함ㅋㅋ 근데 잘 가라 ㅅㄱ

“응?”

뭔 소리야.

탄압이라니. 이해되지 않는 소리들에 당황하기도 잠시.

갑자기 내 게시물이 지워지며 나에게 이런 알림이 왔다.

[귀하의 계정은 차단당했습니다.

차단기간: 30일 차단사유: 음란물]

“뭣?”

어이없는 문자에 자동으로 물음이 튀어나온다.

아니, 고작 게시물 하나 올렸다고 30일 차단을 당했다고?

심지어 가릴 데는 다 가렸는데 음란물 사유로?

존나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내가 환상을 본 게 아닐까 싶던 나는 다시 글을 올리는 시도를 해보았다.

하지만 올릴 때마다 돌아오는 건 똑같은 계정 차단 알림뿐.

불현듯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아니, 어이없네.”

그것은 내 생존본능에서 기인한 분노였다.

계정 차단은 단순히 그 정도로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글을 못 쓴다는 것은 곧 나를 홍보할 수단 하나가 막힌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건 큰일이었다.

나 같은 인간에게 홍보란 꽤나 중요하다. 일단 보는 사람이 많아야 인지도가 올라갈 테고, 그런 만큼 내 작품을 결제하는 사람도 많아질 테니까.

물론 팩시브에 노출된 샘플이 있으니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알아서 찾겠지만··· 모두가 그처럼 자발적일 리는 없었다.

“가릴 데 다 가렸는데 왜 짤려 시발.”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던 나는 성아린에게 의견을 물었다.

비교적 온순한 성격의 그녀는 이렇게 뭔가를 물어보기가 좋았다.

[hala: 님]

[레이프합법화: ?]

[hala: 아니 저 방금 계정을 차단을 당했는데 너무 억울해서]

[hala: (사진)]

[hala: 이게 차단 당할 그림이에요?]

나는 그녀에게 방금전 게시물에 포함했던 사진을 보냈다.

이런 걸 물어볼 때는 1대1 오픈채팅방을 사용하는 게 편이었다.

개인 채팅방이랑 그다지 큰 차이는 없지만 뭔가 사무적이게 되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자동으로 존댓말이 나왔지만, 뭐 이쪽 채팅으로는 나도 이게 편했으니까.

[레이프합법화: ㅜㅑ; 잘 그리셨네;]

[레이프합법화: 아니 이거 그대로 올리셨어요?]

[hala: ㅇㅇ]

[레이프합법화: 그러면 당연히 잘리죠 가슴이 그대로 노출됐는데]

“···가슴?”

뭔 소리야.

[hala: 가슴 노출하면 짤림?]

남자인데?

[레이프합법화: 당연한걸 왜 물어요 당연히 짤리지]

[hala: ..?]

[hala: 허]

순간, 나는 이곳이 상식이 다른 곳이란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는 당연히 나의 기준에서 생각했지. 남자 가슴 따위야 수백 번 노출돼도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허나 아니였던 것이다!

이쪽 세계 ‘여자’기준에서는 가슴또한 충분히 꼴림 포인트였다.

어설프게 양지에 걸친 게 아닌, 완전히 음지에 있는 그림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이 산산이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진짜 적응을 못하겠네···.”

그래도 일단은 내 잘못이 있었음은 알았다.

내가 차단을 먹은 이유는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 뿐. 홍보수단이 막혔다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나는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hala: 그럼 저 어떡해요ㅠ 돈 벌어야 하는데]

[레이프합법화: 애초에 누가 비씨에 홍보를 가요]

하긴, 그렇긴 했다.

거기가 규제가 완만한 편이라고는 해도 선은 확실히 있는 편이었으니.

핀박스 홍보를 가기에는 다소 애매한 커뮤니티이긴 했다. 야짤을 올리는 순간 짤리게 될테니. 설마 이렇게 바로 잘릴 줄은 몰랐지만···.

하지만 어떡해.

내가 아는 곳이 거기밖에 없는데.

이쪽으로 넘어오면서 몇몇 사이트 주소가 바뀐 건지, 내가 알고 있는 곳들을 잘 찾기가 어려웠다.

하는 수없이 나는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아마 야붕이인 그녀라면 알고 있지 않을까 하며···.

[hala: 그럼 어디 다른데 홍보할 데 없어요?]

[레이프합법화: ㅁ?ㄹ]

[레이프합법화: 그런 건 작가인 님이 더 잘 알지 않아요?]

하지만 돌아오는 건 모른다는 대답 뿐. 실망감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hala: 모르니까 물어보지 씨빨!!!!]

[hala: 됐어요, 도움 안 됨 ㅅㄱ]

[레이프합법화: ;;]

[레이프합법화: 일단 핀박스 결제했어요]

[hala: 오]

[hala: 고마워요^^ 잘 쓰삼]

[레이프합법화: 아니;; 뭘 써, 안 써요!]

나는 그대로 채팅방을 나갔다. 뒤에 그녀가 말한 거짓말은 당연히 무시했다.

탁.

핸드폰을 내려놓자 차가운 적막감이 나를 찾아온다.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이마를 집고 중얼거렸다.

“그럼 어쩌지···.”

30일을 기다릴까 싶었지만, 그건 안 되는 일이다.

다른 때야 상관없겠지만 지금은 한 푼 한푼이 귀한 상황.

깔짝깔짝 들어오는 돈으로는 절대 만족을 못 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커미션도 잘 안 들어오니까··· 결국 빠르게 핀박스를 굴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잠시 고민을 거듭했다.

어떡해야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가, 또 따로 물어볼 사람이 없는가.

문득,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다시 핸드폰을 들고 채팅창에 들어간다.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나는 중얼거렸다.

“얘한테 물어볼까···.”

내 눈은 ‘글러먹은나’라는 닉네임에 향해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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