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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31화 (31/125)

〈 31화 〉 31, 소재 추천좀

* * *

언제나 그렇듯, 거사를 끝낸 뒤의 몸은 피곤에 짓눌리기 마련이다.몸 속의 에너지가 빠져나가자, 신체가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팔다리는 흐느적거리며, 머리는 묘하게 무겁고, 눈꺼풀은 뭐가 올라간 듯 자꾸 아래로 내려가기 일쑤였다.

옛날 사람들이 정기가 빠져나간 사람을 허약하게 표현하는 게 마냥 허구는 아닌 것이다.

물론, 고작 4발 뺐다고 사람이 뒤질 듯이 허약해지는 일은 없었다. 그저 좀 피곤할 뿐.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스읍─하아.”

밤거리를 거닐던 나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차가워진 밤공기가 폐 속을 드나든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공기는 낮보다 밤에 더 매력 있게 느껴졌다.

특히 야스를 하고 온 지금은 이 매연 섞인 공기가 상쾌하기까지 느껴졌다.

“흐음, 섹스한 날씨야.”

밤 11시 30분.

나는 지금, 성아린과 헤어진 뒤 제 집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는 모텔에서 나온 후 서로 밥이라도 먹고 가고 싶었다만··· 11시면 이미 식당 문은 다 닫아있을 시간이었다.

술집을 가려고 해도, 내일은 서로 할 일이 있다 보니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성아린도 미련이 남는지 모텔에서 씻고 나온 후 아쉬운 기색으로 나를 쳐다보더라.

뭐, 나도 아쉽긴 하지만 나중에 다시 만나면 되는 일이니까.

사는 곳도 서로 30분 거리이니까 시간만 잘 맞추면 만날 시간은 넘쳤다.

문득, 성아린이 헤어지면서 건넨 말이 생각났다.

“그, 그럼 잘 부탁해!”

제 딴에는 나름 용기 내면서 한 말인지 얼굴을 빨갖게 물들이면서 했던 말.

어색하게 올라간 입꼬리와 볼에 띈 홍조가 제법 웃겼다. 대체 뭘 부탁한다는 걸까.

잠시 물어보면서 놀려주고 싶었지만 힘찬 내일을 위해 참았다. 진짜 피곤하긴 했으니까.

대신 이런 말을 해줬다.

“그래, 내가 그려준 걸로 딸 잘치고.”

“! 아니!”

그렇게 얼굴이 빨개지는 그녀를 끝으로 나는 그녀와 헤어졌었다.

뒤에서 ‘나 딸 안쳐!’라는 되지도 않는 개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무시했다. 네가 나한테 몇 발 뺐다고 인증한 게 얼만데.

새하얀 걸 넘어 존나 투명한 구라핑이었다. 가히 성아린 씹물만큼 투명했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아까 전 일을 생각하며 걷길 몇 분. 나는 드디어 내 자취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요하고 아늑한 나의 보금자리가 보인다. 나는 대충 옷가지를 벗어던지고 매트리스 위에 누웠다.

풀썩­

부드러운 보금자리가 내 온몸을 감싼다. 하루 동안 쌓였던 피로가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후우.”

폐에서 저절로 숨이 내쉬어졌다.

모텔에서도 느꼈지만 침대란 정말 신이 내린 발명품이었다.

이쪽의 ‘이세원’이 침대를 살만한 형편은 안 돼도 굳이 매트리스만큼은 산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잠자리의 질을 이렇게나 올려주는데 빚을 내서라도 사야 했다.

‘···이대로 자면 편할 거 같은데.’

이 주 동안 쌓였던 나쁜 물도 빼냈고, 귀여운 섹파도 구했으니 마음 편히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집에 돌아오니 차가운 현실이 머릿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바로 내 통장 잔고.

최근에 좀 많이 쓴 거 같은데.

나는 잠시 핸드폰을 들어 은행 앱을 실행시켰다.

왜인지 오랜만에 들어가는 것 같은 앱이었다.

그럴만한 게, 최근에는 돈이 들어온다고 방심해서 통잔 잔고를 확인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끔씩 5만 원, 10만 원씩 통장에 들어오니까 대충 쌓이고 있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나는 사회의 비정한 현실을 잠시 있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숨만 쉬어도 돈이 빠져나간다는 현실을.

[65,585₩]

그렇게 다시 마주한 현실은 참혹했다.

지독한 방심이 업보가 되어서 내 심장을 후벼판다. 나는 시팔 이해가 안 됐다.

“어, 어째서···?”

분명 최근에는 들어오는 돈이 많았을 텐데?

바로 며칠 전에는 우리의 물주, 레이프합법화께서 나에게 10만 원까지 보내주셨는데.

어째서 지금 내 통장 잔고는 개미 좆만하게 바뀌어 있는가. 나의 우람한 10만 원짜리 대물은 어디 가고 노발기 6만 원이 내 통장에 자리 앉고 있는가.

존나 억울하고 비참한 현실이었다.

“좆같네.”

머리가 살짝 어지러웠으나, 그래도 애써 정신을 차리고 잠시 원인을 분석했다.

정산 이력을 확인해보니, 최근 며칠간 나간 돈이 상당했다.

거의 7만 원에 육박할 정도였다.

어째서 이렇게 나갔는가 생각해 보니, 요즘엔 놀러 나간 시간이 많은 것이다.

이틀 전에는 은별이와 시내에서 놀았고, 오늘은 성아린과 커피를 마시고 모텔까지 갔다 왔다.

그뿐이랴, 집에서 생존하기 위해 나가는 식비까지 있으니. 돈이 들어온 만큼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래··· 시발 멋대로 논 내 잘못이지.”

사람은 숨 쉬는 것뿐만 아니라, 술 먹고 정액 싸지르는 데에도 돈이 들어간다.

잠시 반사회적인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현재 사회는 이렇게 발달했는가.

내가 술 좀 먹고 나쁜 물 좀 빼내겠다는데 거기에도 혈세를 빨아먹다니.

슬픈 사회구조에 눈물이 다 나왔다. 이게 디스토피아가 아니면 뭘까···.

띠링!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잠시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새로이 등록한 전화번호··· 즉, 성아린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성아린: 안녕하세요! 성아린입니다 ㅎㅎ]

[성아린: ‘성아린님이 40000원을 보냈습니다!’]

[성아린: 여기 모텔비에요. 생각해 보니 세원 씨가 낸 거 같아서···.]

[성아린: 오늘 즐거웠어요!]

그걸 보고 나는 감탄했다.

“이야···.”

이걸 보내주네.

전혀 생각치도 못하고 있던 돈이었다. 심지어 반도 아니고 모텔비 전부를 낼 줄이야.

생각해보니 여기는 남녀역전세계.

‘남자’가 돈을 내는 것 보단 ‘여자’가 돈을 내는 게 많은 세상이었다.

그녀 입장에선 ‘남자’인 내가 모텔비를 내는 게 뭔가 미안한 것이다.

나로서도 그냥 아무생각 없이 냈던 돈이다. 남자인 내가 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꺼낸 지갑이었다.

그래서 받을 줄 몰랐는데··· 새삼 이런데서 남녀간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고맙다! 덕분에 다시 십의 자리가 됐어.’

보내준 돈은 따로 거절하지 않고 바로 받았다.

솔직히 서로 즐긴 입장에서 돈을 다 받는 건 살짝 죄책감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정도로 내가 풍족하지가 않았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입장 차이를 이용하자. 다음엔 내가 사주면 되니까.

그렇게 돈을 받고 나는 답장을 보냈다.

[이세원: 고마워]

이 말도 잊지 않았다.

[이세원: 그리고 반말]

[성아린: 아]

[성아린: 응]

그걸로 대화는 끝이었다.

아직까지도 반말하는게 어색한 모양이었다.

‘레이프합법화’일 때는 이렇게 수줍은 애가 아니었는데···.

현실세계로 돌아온 성아린은 아쉽게도 그리 천박하지 않았다.

살짝 천박할 때의 그녀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일단 이걸로 생명줄은 연장됐고.”

내 목숨이 대충 4일 치 만큼 늘어났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었다.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아직까지 내 생활이 위태위태한 건 그대로였다.

결국 슬슬 새로운 돈벌이 수단을 생각해야 한다는 건데··· 다행히 이미 수단은 있었다.

이제는 진짜 때가 된 것이다. 핀박스 후원계좌를 만들 때가.

다행히 핀박스 계정을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팩시브 계정을 가지고 후원계좌를 작성한 뒤 열기만 하면 되니까.

‘문제는 거길 채우는 거지.’

여기부터는 순전히 나의 노력들이 들어갔다.

그걸 생걱하자 앞이 깜깜해진다.

“그러려면 결국 만화를 그려야 한다는 건데···.”

저번에도 말했듯, 사람들을 끌어모으려면 사진 몇개 올리기보단 아예 만화를 그려올리는 게 좋았다.

어느정도 스토리가 있다보면 사람들이 궁금해서 찾아오게 되니까.

스토리가 그리 많이 들어갈 필요도 없다.

그저 그림의 꼴림도를 올려줄 조미료 수준이면 되었다.

그래, 스토리. 그 망할 놈의 스토리.

그걸 생각하자 자동으로 욕이 차올랐다.

‘개같은 세상.’

하필 여기가 남녀역전 세상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것만으로도 동인지를 그리기가 몇 배는 어려워지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쪽 여자들을 꼴리게 하면서 나 또한 역겨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결국 동인지를 그리면 필연적으로 남자가 주 포커싱으로 나올텐데.

이런 걸 생각하면 자동으로 머리가 아파왔다.

“아, 몰라 나중에 생각해.”

그렇게 잠시 머리를 굴리던 나는, 이내 포기하고 이불을 뒤집어 썼다.

지금 구상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내일도 오전에 일어나서 등교를 해야 하는데 책상에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몸도 꽤나 피곤한 편이었으니, 머리를 굴려봤자 제대로 나오지도 않을 거 같았다.

‘그냥 이참에 진짜 웹툰을 그릴까···.’

잠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굳이 성인만화를 그리면서 내 정신을 피폐하게 할 바엔, 아예 양지로 나가서 웹툰 시장을 노려보자.

애초에 난 웹툰 작가를 꿈꾸고 미대를 준비하던 인간이었다.

그런 만큼 웹툰이라는 것에 미련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한 것이지만··· 그 선택지는 얼마 안가 폐기했다.

거기 시장이 얼마나 빡센데. 심지어 준비 기간도 핀박스 못지않게 더럽게 오래 걸렸다.

그렇다고 열심히 만화를 그려 올린다 해서 곧장 노력을 보상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모로 불안정한 선택지인 것이다. 당장 돈때문에 오늘내일 하는 나에게는 힘든 선택지였다.

세상살기 개빡세군.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자리에 누워있을 때였다.

띠링!

내 귓가 사이로, 다시금 카톡음이 울려퍼졌다.

경쾌한 알림이 제정신을 때렸다.

오늘은 카톡이 울리는 일이 많군.

아아, 마치 인싸가 된 기분이었다. 이 야밤에 누가 카톡을 보낸걸까.

나는 궁금해 하며 카톡을 확인해보았다.

대상은 ‘글러먹은나’였다.

무슨 일인지 꽤나 쌓여 있는 채팅.

[글러먹은나: ㅈ붖바ㅣ부비자ㅣㅣ] ­ 23:54 월요일

[글러먹은나: 님 ㅠㅠㅠㅠㅠ] ­ 00:21 화요일

[글러먹은나: 나 존나 병신짓함 ㅠㅠㅠ] ­00:22 화요일

[글러먹은나: 님] ­ 01:43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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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먹은나: 내 얘기좀 들어줘요] ­ 23: 51 수요일

상대방은 반쯤 정신이 나가있었다.

문득 시간을 확인해 보니, 채팅이 월요일부터 와 있는 게 보인다.

성아린이랑 대화하느라 내가 카톡방 확인을 못한 듯 했다.

‘?’

나는 그걸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얘 갑자기 왜이래?’

무슨 일이길레.

나는 일단 상대방에게 물었다.

[hala: 무슨 일이에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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