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28, 예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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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이란 어떻게든 생기기 마련이다.그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완벽히 수평적인 관계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었으니까.
가장 단순하게 돈과 권력, 힘으로부터 시작해서.
세부적으로는 사람들끼리의 성향, 상성, 외모, 체형 등으로도 생기며.
심지어는 상황에 따라, 성별에 따라 주도권이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하는 것이다.
“아하, 그러니까 지금 대학을 다니시고 있다는 거네요?”
“네, 네······ 알바는 학교 끝나고 저녁에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레이프합법화와에 대화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나였다.
공적인··· 그니까 야짤 의뢰설명이 끝난 후 우리는 일상적인 대화로 넘어갔다.
그래도 일단 만난 이상 상대방의 대한 정보 몇몇은 아는 게 좋았으니까.
물론 일상 대화로 넘어갔다 뿐이지, 주로 내가 물어보는 건 똑같았다.
“그러면 나이는 몇인가요? 레이프합법화님?”
“스, 스물 둘이에요. 그리고 그 닉네임은 그만··· 이름도 알려줬잖아요.”
놀랍게도 같은 나이더라. 즐거운 사실이었다.
“그쵸 아린 씨, 근데 저는 닉네임이 편해서.”
나는 말을 하면서도 상대방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내가 한껏 놀린 뒤에도, 아직 이 상황이 어색한지 안절부절못하는 상대방이 보였다.
탁상 위에 올려진 손이 묘하게 떨리고, 얼음밖에 남지 않은 커피잔을 들었다 놨다 한다.
얼굴 쪽으로 가서는 홍조가 피부색의 절반을 차지했고, 시선을 잠시 마주하다가도 돌리기 일쑤였다.
이 상황이 어색한 모양이다. 딱 봐도 숫기가 없는 모습이었다.
‘여중, 여고를 나왔다고 했나.’
그러면 저 반응이 이해되긴 하지.
사람은 익숙한 상황에 오래 노출되다 보면 머리가 굳게 된다.
몇 년 내내 익숙한 동족들만 보게 되다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니 머리가 적응을 못하는 것이다.
분명 다른 것은 성별일 뿐인데, 다른 사람에겐 그 사실이 베를린 장벽처럼 높게 보일 수도 있었다.
심지어 그게 준비 안 된 소개팅이라면, 당장 몇 분 전에 음담패설이 오고 갔던 상황이라면.
어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느끼기엔 한심한 모습이겠지만, 나에겐 그저 귀여워 보일 뿐이었다.
시선이 자주 겹치지 않은 덕분에 외모를 관찰하기도 편했고.
나는 얼굴부터 차례대로 보았다.
마치 다람쥐를 닮은 똘망 똘망 한 눈이 보인다.
동글동글한 얼굴상에 코와 입이 오목조목 붙어있어 귀여움을 어필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브라운색의 단발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꾸며줘 밝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레이프합법화’라는 닉네임만 봤을 때는, 웬 음습한 처자일 줄 알았건만.
내 상상과는 정반대되는 이미지에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허나 중요한 건 고작 얼굴상이 아니다. 정작 중요한 건 흉부에 있었다.
나는 얼굴로 향하던 시선을 좀 내려 가슴 쪽을 쳐다보았다.
멜빵 치마 위에 걸쳐, 앞으로 툭 튀어나온 흉부가 보인다. 상당히 커다랬다.
거의 멜론만 한 게 흉부 위에 걸쳐져 있었다. 이은별도 그닥 작은 편은 아니었는데, 그녀는 거기의 1.5배는 되어 보이는 것이다.
크긴 하나,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딱 선호하는 사이즈였다.
찹쌀떡처럼 부드럽고 말캉할 것만 같은 질감이 자꾸 상상되었다.
덕분에 시선이 중력에 이끌려가듯 자꾸 아래쪽으로 향했다.
나는 슬슬 고민에 빠졌다.
‘어떡하지?’
슬슬 각인거 같은데. 대화는 충분히 했고, 서로에 대해 알만큼 알았다.
나이, 신분, 이름 알았으면 다 알은 거지 뭔 이야기가 더 필요한가.
마침 내 소중이도 슬슬 나쁜 물을 빼내달라고 아우성치는 중이다.
아니 그래도 술은 마시고 해야 할까.
“······.”
“······.”
잠시 침묵이 오갔다. 내가 갑작스럽게 입을 다물자 대화가 완전히 단절된 것이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내 시선이 부담스러운 건지, 아니면 침묵 가득한 이 상황이 어색한 건지 성아린이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 모습조차도 귀여워서 당장 덮쳐버리고 싶은 충동이 샘솟았다.
어떻게 해야할까. 술까지 먹고 가야 빌드업이 완벽할 거 같은데.
그때까지 참아야 할까?
···
아니, 난 못 참아.
“자! 그럼 일어나죠.”
나는 그렇게 외치며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곧장 그녀의 어깨를 잡아 위로 끌어올린다. 오프숄더 형태의 베이지색 니트에, 내 손이 올라갔다.
“네, 넷?! 잠시만요 일단 이 손 좀 놓고···.”
갑작스레 닿는 신체 접촉에 그녀가 당황하는 게 보였다. 안 그래도 빨개졌던 얼굴이 다시 한번 빨개지는 모습이었다.
나 참, 고작 어깨에 손이 닿았을 뿐인데 이렇게 당황하면 어쩌려고.
그래도 저항할 생각은 없는지 가만히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녀를 조종하듯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아장아장 걸어 카페 밖으로 나왔다. 내 발걸음을 따라 움직이는 그녀가 퍽 웃겼다.
밖은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만난 시각이 비교적 늦은 6시라 그런가.
카페에서 한 시간 정도밖에 있지 않았음에도 금방 밤낮이 바뀌어버렸다.
어둑어둑해진 주위를 바라보며 나는 얕게 미소 지었다.
밤은 좋다.
마치 온갖 불온한 짓거리들을 가려줄것만 같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어깨를 잡았던 손을 풀고 대신 팔걸이를 했다.
내 오른팔이 그녀의 양쪽 어깨에 한 덩이씩 무게를 올려놓는다. 음, 높이가 적당한 게 기분이 좋았다.
“?!”
그와 동시에 반응하는 그녀. 이제 움찔하는 것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다.
동그란 눈이 더욱더 커졌다. 저기서 더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는 그렇게 팔걸이를 한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숫기가 없는 그녀는 이런 작은 접촉에도 면역이 없는지 한껏 몸을 움츠려들었다.
덕분에 데리고 다니기 편했다.
한 걸음 두 걸음, 이제는 저녁이 된 길거리를 걷는다.
한참을 이동하자 그녀가 물었다.
“잠시만요!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모텔이요.”
나는 담담히 답했다.
분명 이 근처에 하나 있었던 것 같은데.
시내에서 모텔이란 생각보다 찾기 쉬운 존재였다.
늦은 저녁만 되면 불붙은 남녀들이 앞다투어 찾아왔으니까.
유흥이 자리하는 곳엔 항상 모텔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여기도 시내니까 모텔 두어 개 정도는 금방 찾을 수 있겠지.
“모, 모텔?!”
내 대답이 그렇게 충격이었을까. 그녀가 새된 목소리로 외쳤다.
하긴, 처음 만난 사람이 갑자기 자신을 모텔로 데려가려 한다.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도 처음 보는 여자가 갑자기 나를 모텔로 끌고 가려 하면 당황할 테니까.
나는 성아린을 보며 물었다.
“왜요 싫어요?”
커다란 눈동자에, 다시 내 모습이 비친다.
차갑게 내려깔린 눈이 그녀를 압박하고 있었다.
당황하는 것 하고, 좋고 나쁨은 또 다른 종류의 문제였다.
그리고 내 생각이 맞다면 아마··· 그녀는 이런 강압적인 상황을 좋아할 것이다.
“아뇨··· 그, 그건 아닌데···.”
내 눈초리에 그녀가 꼬리를 말 듯 눈을 내리깔았다.
그 모습이 마치 작은 소동물을 보는 것 같았다.
상황이 어떻든, 결국 성욕은 이성이랑 상관없이 작동하는 것이다.
나는 실제로 그녀의 눈에 얽힌 성욕을 보았다.
무려 카페에서부터 봐왔던 눈이었다.
커다란 눈은, 그만큼 시선을 잡아채기 좋은 장치다. 모니터가 큰 만큼 그 안에 일어나는 변화를 잡아채기가 쉬운 것이다.
제 딴에는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한 듯했지만, 자꾸만 아래쪽으로 향하는 시선을 눈치 못 챌 리가 없었다.
즉, 이미 저쪽도 내 몸을 어느정도 원하고 있다는 뜻.
나는 여기서 한 마디를 더 했다.
“그리고 이미 당신이 말했잖아요. 하고 싶다고.”
“예? 제가 언제···.”
“왜, 어제 카톡에서···.”
거기까지 말한 순간.
동그란 눈동자가 격동했다.
의문에서 깨달음으로, 깨달음에서 경악으로.
이내 모든 사실을 알아낸 그녀가 외쳤다.
“처, 처음부터! 그런 생각으로!”
지금 내가 말하는 건 어제 나눈 카톡의 대화 내용이었다.
만약에, 어떤 남자가 찾아와서 너를 덥치려 하면 어떨 거 같냐. 그 질문에 그녀는 절하면서 먹힌다고 답했다.
사실 그 순간부터 이 상황은 예정된 거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미 서로 합의를 했는데 무슨 말이 필요할까.
“만날때부터 그런···!”
그래서 나는 말했다.
“쉿, 시끄러우니까 이제 닥쳐요.”
뭐라 말하려하던 그녀의 말을, 다시 목구녕으로 쳐집어 넣는다.
조곤조곤 말하던 목소리가, 낮게 깔린다.
입가에 짓고있던 미소를 지우며, 강압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눈매가 다시금 제 힘을 발휘했다.
“···!”
그 모습에 그녀가 잠시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러면서도 진짜 입을 닫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잠시 그녀의 닉네임을 상기했다.
성아린, 레이프합법화.
어째서 이런 닉네임을 지었을까.
그녀의 의뢰를 받을 때면, 항상 성향이 어딘가로 치중되어 있는 게 느껴졌다.
본래 커미션이라는 것에는 자신의 취향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특히 그 커미션이 단순히 딸감용으로 신청한 거라면, 그 그림에는 십중팔구 상대방의 욕망이 묻어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욕망은 이거겠지.
이런 강압적인 상황. 자신의 의지여부와는 상관없이, 상대방의 행동 여하에 따라 자신의 처지가 결정난다.
무언가 강제되는 상황속에서 그녀는 성욕을 증폭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소원에 따라, 그 상황을 연기해주기로 했다.
어깨에 걸쳐놓았던 손을, 그대로 아래로 떨궈 커다란 가슴속에 집어넣는다.
“흐읍?!”
그와 동시에 들려오는 신음.
가슴골에 들어간 오른손에 따듯한 열기가 전달되어왔다. 보드라운 감촉이 손바닥 전체를 감쌌다.
나는 옷 속에 집어넣은 오른손을 이리저리 굴렸다.
팔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어깨가 살짝 거슬렸으나, 본게임은 나중이다. 지금은 예열 타임이었다.
풍만한 가슴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 베이지색 니트위로 적나라하게 보였다.
오른 손바닥이 움직일 때마다 커다란 살덩이가 이리저리 변형된다. 모찌떡이 탄성까지 가지면 이런 느낌일까.
“흐읏···! 흐으······.”
성아린은 숨소리를 거칠게 내뱉으면서도 신음을 참고 있었다.
마침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웬만하면 안 들킬텐데, 그럼에도 조심하는 모습이었다.
볼위로 떠오른 홍조가 얼굴 전체를 전염시킨다. 동그란 눈에 물기가 맺혀 질척거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 아까 전 그녀에게 전해준 그림이 생각났다.
그 그림도 이런 상황이었지. 남녀 한 쌍이 한밤중의 거리에서 모텔로 걸어들어가는 느낌.
뜨거운 신음이 매연 섞인 길거리에 동화되며, 흐릿한 신음이 귓가에 파고든다.
강압적인 상황에서 여성은 이렇다 할 저항을 하지 못하고, 남자는 그 모습을 보며 즐긴다.
이야 이것참, 마치 이 상황을 두고 그린 것 같지 않은가.
망상속에서만 펼치던 상황을 직접 마주한 그녀는 어떨까.
어떤 감성을 느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오른손을 움직였다.
“···?!”
이번에는 아예 브라 안쪽까지 파고드는 손길.
오돌토돌 돌기가 올라온 유륜이 느껴졌다.
그 중앙에 단단하게 선 젖꼭지가 손가락을 방해했다.
괜스레 그 유두가 괘씸해서,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단단히 선 유두를 끼워넣는다.
“!! 잠시만! 흐읏! 잠시만요···!”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는지 여태껏 가만히 있던 성아린이 반응했다. 신음섞인 목소리로 작은 저항을 표현한다.
“가만히.”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성아린의 작은 저항은 그렇게 무의미하게 끝났다.
고저없는 목소리로 단 세글자 단어를 지껄이니 진짜로 입을 다무는 것이다.
그녀도 이 상황을 즐기는 건가.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면서도 나를 방해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편하게 만질 수 있었다.
그렇게 몇 걸음 정도 걸으니 어느새 모텔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간의 온갖 질척질척한 욕망이 흐르는 곳. 남녀가 교접하며 나오는 신음이 티비 소리를 대신하는 장소다.
나는 망설임없이 안쪽으로 들어섰다. 바지 위쪽으로 우뚝 솟아오른 소중이가 꺼내달라고 목놓아 외치고 있었다.
그렇게 카운터에서 계산을 마치고, 받은 호수는 502호.
아무리 그래도 카운터 앞에서 가슴을 만지고 있을 순 없었기에 그때는 잠시 손을 빼냈다. 그때 성아린이 아쉬워 하는 기색을 내비치는 게 참 볼만했다.
끼익 덜컥.
아무튼 그렇게 복도를 거닐어, 방 안쪽으로 들어선다.
단조로운 방 안이 눈에 들어온다. 침대 하나, TV하나, 냉장고 욕실 등등.
작은 침묵이 우리 둘을 감쌌다.
“······.”
“······.”
아마 이때만큼은 나도 성아린이랑 같은 감성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미지의 장소를 놔두고 가슴이 쿵쿵 뛰는 기분. 묘한 설렘과 끈적한 공기가 육체를 자극했다.
감상만 하고 있을 생각은 없다. 나는 그대로 성아린을 침대위에 밀쳤다.
“꺄악?!”
묘한 비명소리와 함께, 침대위에 미끌어지는 그녀.
이제 본게임에 들어갈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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