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27화 (27/125)

〈 27화 〉 27, 야붕이

* * *

나는 카페의 감성을 좋아했다.카페는 뭔가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었다. 카페 전체를 꾸며주는 은은한 베이지색 조명과, 따듯한 느낌의 실내, 공기 중에서 올라오는 달콤한 냄새들은 사람의 마음속을 정리해 주고는 했다.

또한 카페 안에서 잔잔히 들려오는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없었던 집중력이 샘솟는 느낌까지 들곤 했다.

‘그래서 학생 때 자주갔었지.’

지금이야 그림만 그리지만, 그때는 그림뿐만 아니라 공부도 해야 했었으니까.

준비해야 할 시험이 코앞에 놓여져 있을 때마다 나는 카페에 출근하듯 오곤 했다.

물론 공부할 곳은 도서관 같은 데도 있었다만.

나는 너무 조용한 것보다 이렇게 적당한 소음이 있는 걸 좋아하는 인간이었다.

[hala: 저 도착했어요]

마지막으로 상대방에게 문자를 보내고, 유유히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딸랑­

하는 종소리와 함께 주변 풍경이 바뀐다.

주변을 달구고 있던 열기는 안에 들어옴에 따라 사라졌고, 자동차의 매연냄새 대신 달콤한 커피향이 콧속을 간지럽혔다.

그러고보니 자취하고 나서는 카페에 거의 가본적이 없었지.

오랜만에 보는 풍경에 잠시 감상에 젖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는 상대방이 앉아있던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금 막 문자를 확인한 건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는 그녀가 보였다.

단발 머리가 찰랑이며 시선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러면서 잠시 시선이 스쳤으나, 못 본 건지 이내 고개를 숙이고는 핸드폰을 두드렸다.

[레이프합법화: 어디예요?]

[레이프합법화: 안 보이는데]

진짜 못 본 걸까. 아니면 나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

나는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상대방이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똘망똘망한 눈, 그 아래 다크서클, 귀여운 얼굴상, 그와 대비되는 흉부.

하나하나가 시선에 들어오며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나는 걸으면서 문자 하나를 보냈다.

[hala: 여기에요, 거의 다 왔어요]

[레이프합법화: 아니 그니까 어디;]

답장이 오는 동시에.

“여기.”

내가 말했다. 이미 나는 그녀의 옆에 도착한 상태였다.

가게에서 들리는 음악을 비집고, 튀오나오는 낮은 음성.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상대방이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어?”

그리고 잠시간의 정적.

시선과 시선이 서로에게 맞닿았다.

한 걸음 남짓한 거리 사이로, 보이지 않는 선이 이어졌다.

상대방을 정면으로 인식하며 머릿속에 작은 정보들이 쌓여갔다.

그와 동시에 반응하는 상대방.

“어어? 어어?!”

시선은 정적이었으나, 반응은 동적이기 그지없었다.

똘망똘망한 눈이 크게 떠지며 얼굴에 당혹감이 퍼져나간다. 가만히 있던 몸이 잠시 움찔하더니 뒤쪽으로 상체가 멀어졌다.

“뭐야, 뭐예요? 당신­ 아니 작가님 남자였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얼굴이다. 방구석에서 야짤을 만들어주던 인간이 남자일 줄은 1도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럴 때마다 여기가 남녀역전 세계라는 걸 깨닫는다.

야짤을 그리는 것은 보통 ‘여자’고 ‘남자’랑은 관심사가 먼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는 것이다.

물론, 그게 그다지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네. 안녕하세요.”

나는 가볍게 말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아직도 상황이 잘 이해가 안 되는지, 당혹감으로 물든 표정이 보였다.

침착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나는 분명 상대방과 시선을 마주치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눈이 자주 부딪치지는 않았다.

상대방이 자꾸 시선을 피하기 때문이었다. 이성과 눈을 잘 못마주치는 듯 했다.

하긴 나도 자주 저러니까.

아무튼 나는 마저 소개를 했다.

우선 닉네임을 말했다.

“하라, 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상대를 어떻게 대할지 생각을 이어나갔다.

무슨 얘기부터 해야 할까, 주제는 어느 걸로 해야 할까.

···사실 처음부터 정해진 질문이다. 야짤로 대화를 텄고, 야짤로 만났다.

그럼 대화도 그거랑 관련된 걸로 하는 게 맞겠지.

마침, 나는 상대방에게 설명을 들으러 온 참이다.

“그래서 무슨 의뢰를 맡기겠다고 했죠?”

첫 만남부터 야짤에 대해 논하는 남녀라.

상대방의 반응이 기대되는 주제였다.

*

레이프합법화··· 성아린은 나름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자부하는 편이었다.

경제 상식을 잘 알고 있다거나, 인생의 경험이 많은 것은 아니다.

다만, 평범한 소시민으로써 세상이 그리 격동적이지 않다는 사실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인연에 관해서는.

뜻밖의 만남이란 만화나 드라마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세상은 넓고 복잡하지만, 그 복잡한 만큼 신기한 일이 자주 일어나는 곳은 아니었다.

동인지에 나오는 변태 치한은 그저 동인지 안에만 있는 것이고, 식빵을 물고 달려드는 남학생은 그림체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설령 그런 일이 지구 어딘가엔 일어나더라도,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건 너무 희박한 확률이니까.

그렇기에, 생판 모르는 남을 만나면서도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냥 ‘hala’라는 작가도 당연히 여자겠거니, 나랑 비슷한 인간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야, 그딴 하드한 걸 그리는 사람이 남자일 리 없었으니까.

자신의 천박한 말을 거부감 없이 들어주는 사람이 ‘남자’라고는 전혀 생각이 안 들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기에 잔잔한 호수처럼 편안하게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이다.

여중 여고를 나온 그녀에게, ‘여자’끼리의 음담패설은 그다지 긴장되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그런데.

“그래서··· 이쪽 부분을 어떻게 그려달라는 건지, 상황이 뭔지 좀 더 설명이 필요한데요.”

어째서 자신의 앞에는 웬 미남자가 앉아 있는 걸까.

“아, 거기는··· 그, 스타킹이 막 찢긴 상태인데 거기에 흥분한 여자가 허벅지를···.”

그리고 자신은 왜 그 남자에게 자신의 망상을 설명하고 있는 걸까.

이해가 안 되었다.

아니, 이해는 되는데 그게 머릿속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자신은 야짤을 신청했고, 어쩌다 보니 작가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뿐이다.

고작 그뿐인 사실이었으나, 문제는 상대방이 이성이라는 것이다.

“허벅지를···.”

그것만으로도 이 대화는 단순한 의뢰 내용 설명에서 수치 플레이로 바뀌어버렸다.

자신의 입으로 망상을 하나하나 묘사할 때마다 창피함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다.

“···허벅지를?”

잠시, 말이 멈춰서 그런가.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무심하게 물었다.

목소리의 고저 없이, 조용하고 무감정한 목소리였다.

순간, 두 눈이 마주쳤다. 날카롭게 떠진 눈초리가 자신을 째려보고 있었다.

꽤나 잘생긴 얼굴이었다. 오뚝한 코와, 갸름한 턱선, 진한 눈썹까지.

객관적으로 봐도 잘생긴 얼굴이었고, 평소 남자를 만날 기회가 적은 그녀는 특히 그렇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얼굴이 날카로운 분위기와 합쳐지니, 묘한 압박감을 뿜어내는 것이다.

마치, 학창 시절 존재했던 남자 일진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자신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였고, 여중 여고라 남자 일진을 만날 기회는 없었지만.

아무튼 느껴지는 위압감은 분명 그런 종류인 것이다. 상위 포식자에 의해 자동으로 몸이 움츠려드는­

“허벅지를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재차 물음이 들려온다.

목소리에 감정이 없기에, 괜히 더 부정적으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이 강해졌기에, 괜히 들리는 목소리에 안 좋은 감정이 담겨져 있는 것 같고···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그의 물음이 마치 잘못을 추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상대방은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차피 자신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시간을 더 끌어봐야 상대방 심기만 거스르게 할 뿐.

성아린은 눈을 딱 감고, 다시 한번 질문에 대답했다.

“여, 여자가 조수를 뿜으면서 허벅지를 적시는 그런 상황이에요···!”

아.

얼굴이 새빨개진다.

목 위쪽이 전부 화끈한 느낌이었다.

마치 러브레터를 쓰던 찐따가 일진한테 들켜 그걸 낭독회하는 느낌이었다.

아아, 낭독회가 이런 기분이었구나. 들리지 않는 비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성아린은 다시 책상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죽고싶다···.’

그녀는 그저, 얼른 시간이 지나가길 바랐다.

‘···귀엽네.’

이세원은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고, 시선이 뱅글뱅글 돌고 있다. 좀만 더 놔두면 머리 위 쪽으로 수증기까지 올라올 거 같았다.

그 모습이 마치 겁먹은 다람쥐를 보는 느낌이 들어,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샘솟는 것이다.

처음엔 이렇게까지 놀릴 생각은 없었는데, 상대 반응이 워낙 재밌어야지.

초면부터 시선을 잘 못 마주치더니 이야기를 시작한 직후부턴 아예 당황해서 말도 잘 못하는 게 보였다.

그걸 지켜보는 게 너무나도 재밌어서 이야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중간에는 움츠려드는 게 귀여워서 일부러 무표정을 유지하기까지 했다.

전에도 말했듯, 난 입다물고 있으면 꽤나 신경질 져 보이는 인상이다.

나는 이번에 그 인상을 좀 이용해 보기로 했다.

“아하, 그럼 약간 물에 젖은 질감을 표현하면 되겠네요? 스타킹 색깔을 좀 더 어둡게 하면 되려나.”

“그으렇죠······.”

다시 한번, 기어들어 가는 듯한 대답이 들려온다.

나 참 그 활발하던 ‘레이프합법화’는 어디 갔는지, 지금은 방구석 야붕이가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근데 하나 궁금한 점이 있네요. 분명 상황을 보면 여자 캐릭터가 강제로 당하는 듯한 느낌인데, 왜 얼굴은 홍조까지 띠면서 좋아하고 있는 거죠?”

“그건···.”

“그건?”

“가, 강제로라도 쾌락은 느낄 수 있잖아요···!”

아하. 역시 이 분야 권위자라 그런가.

말 하나하나에서 철학이 담겨 있었다.

아무튼 대화는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

이세원이 추궁하듯이 물어보면, 성아린이 마지못해 대답을 한다. 성아린이 대화를 주도하는 적은 없었다.

자기 멘탈 챙기기도 바쁜지, 이세원이 물어보면 고장 난 기계처럼 대답할 뿐이었다.

아쉽게도 이 대화는 오래가지 않고 끊겼는데, 더 물어보면 진짜로 얼굴이 터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팽글팽글 도는 눈에 묘하게 눈물이 글썽거렸다. 여기서 ‘여자’가 운다는 건 무슨 무게를 가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이세원은 이어지던 대화를 멈췄다.

“아니, 근데 너무 조용하시네.”

물론, 커미션 관련 대화만.

이런 재밌는 장난감을 여기서 그냥 놓을 수는 없지.

“네, 네?”

이세원에 말에 그녀가 반응했다.

안 그래도 그녀 스스로 자신이 너무 찐따같다는 생각은 하고 있던 참이었다.

원래는 말도 좀 편하게 하고 그럴 작정이었는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남자인데! 그것도 잘생긴!

여중 여고를 나온 ‘여자’에게 다른 성별이란 그 이상의 의미로 적용되기 마련이었다.

성별만 다른 걸 빼면 똑같은 인간인데. 대화도 통하고, 찾아보면 공통의 관심사도 있을 평범한 인간일 텐데.

그걸 알면서도 막상 만나면 움츠려드는 것이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신체 반응이었다.

“채팅창에서는 그렇게 활발하시더니.”

그리고, 이세원이 그 말을 꺼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지금까지 쳤던 채팅 내역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얄팍한 익명성을 믿고, 필터링 없이 지껄여댔던 말들. 천박하기 그지없던 저번의 대화들.

“!!”

고작 커미션이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해댄 말들은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였다.

아마 저 카톡 내용을 들고 경찰한테 보여주면, 경찰은 곧바로 날 감옥으로 처넣지 않을까.

“왜요, 막 거근에 가버리고 싶다. 이거 좆 개꼴린다. 자기 지금 3발 정도 뺐다. 이런 말 자주 했었잖아요.”

“그, 그만···.”

“그런 거 남자한테 말하면 큰일날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시선이 아래속에 파묻힌다. 심장이 부정적인 쪽으로 쿵쿵 뛰었다.

이미 책상에 처박혀 있던 눈이건만, 이젠 아예 바닥에 찰싹 붙어있었다.

이미 잔뜩 달아오른 열기 때문에 머리가 정전되는 느낌이었다.

아마 지금 상대방은 잔뜩, 경멸하는 눈을 하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지 않을까.

‘좆됐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푸흡.”

귓속으로.

“푸하하! 재밌네. 놀리는 맛이 있어. 걱정마요, 뭐라 하는 거 아니니까.”

─다시 한 번 귓속으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태껏 들어본 적 없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

목소리에 담긴 고저차는 여전히 크진 않았으나, 그 안에 담긴 말까지 감정이 없진 않았다.

말투에 즐거워 죽겠다는 느낌이 가득했다.

그제서야 그녀는 시선을 올렸다.

날카로운 눈매는 그대로였으나, 그와 대비되게 활짝 웃는 입가가 보인다.

그제서야 성아린은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노, 놀리고 있었구나!!’

처음부터 상대가 놀리고 있었단걸. 자신의 반응을 보며 즐기고 있었단 걸.

그걸 깨닫자 머릿속으로 묘한 분노가 차올랐다. 여태껏 느꼈던 쪽팔림이 설움으로 치환되는 중이었다.

성아린은 이세원을 째릿 노려보았다.

그걸 본 이세원이 웃으면서 말한다.

“큭큭, 죄송해요. 반응이 너무 재밌어가지고. 화 가라앉혀요.”

물론, 화가 났다고 해서 성아린이 뭐라 한 건 아니었다. 그렇게 하기엔 상대가 무서운 것이다.

낭독회를 시킨 화난 일진이, 웃고 있는 일진으로 바뀐 것 뿐.

일진은 여전히 일진이었고 거기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이 있었다.

그래도 시선만큼은 제대로 마주칠 수 있었다.

어쩌면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 보는 그의 눈.

그에 따라 전체적인 조형이 보였다.

날카로운 눈은 단순히 날카로움에서 끝나지 않았다.

차분히 내려앉은 머리가 분위기를 만들고, 눈 밑으로 내려온 다크서클이 묘한 퇴폐미를 만들어냈다.

거기에서 이어지는 가느다란 목선과, 반팔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쇄골.

은근히 넓은 어깨와 길게 뻗은 팔까지.

아린은 잠시 화내는 것도 잊고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어? 아직도 화났어요? 아 좀 미안해지네. 잠시만요, 그러고 보니까 보내줄 게 있어.”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걸 아직도 째려보고 있다고 착각한 걸까.

남자는 잠시 핸드폰을 들더니 뭔가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띠링!

그러더니 울려오는 알람음.

남자의 핸드폰이 아닌, 성아린 자신의 핸드폰이었다.

아린은 곧바로 핸드폰을 들어 알림을 확인해 보았다.

‘hala’라는 닉네임에게서 온 사진 하나.

가볍게 터치를 하자 그가 보낸 사진을 볼 수 있었다.

그건 며칠 전에 자신이 신청했던 또 다른 커미션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그림을 받지 않았었지.

아직 다 완성을 못한 줄 알았는데, 직접 만나서 주려 했던 모양이었다.

성아린은 그림과 맞은편에 앉은 남성을 번갈아 보았다.

그림은 모텔에 가고 있는 남자와 여자를 표현한 그림이었다.

여자는 강제로 끌려가는건지 묘하게 안색이 어두웠고, 남자는 그런 여자를 보며 묘한 웃음을 띄고 있는 중이다.

여자의 어깨에 올라간 팔은 그대로 아래까지 향해 커다란 가슴을 주무르고 있는 중이었으며.

그림에 나온 여자는 싫어하는 듯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찾아오는 쾌락은 저항할 수 없는지 묘하게 숨이 거칠어져 있었다.

고작 그림이기에 행동은 정지되어 있으나, 표현된 상황은 동적이기 그지없는.

그 특유에 표현력과 그림체로 사람을 환혹 시키는 듯한 그림.

그제서야 이 그림을 그린 작가가 눈앞의 남성이라는 것이 실감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그림에 그려진 남성의 미소와, 맞은편에 앉은 남성의 미소가 겹쳐지며 시야가 다르게 보였다.

즐거운듯 올라간 입꼬리와, 속을 알 수 없는 눈동자.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옷의 안쪽까지.

길거리에서 보면 자동으로 눈이 돌아갈 법한 미남이, 자신에게 태연히 야한 그림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인지되었다.

비현실적인 상황에, 비현실적인 일의 연속이었다.

아린은 다시 홀린 듯 남성을 쳐다보았다.

묘한 웃음을 띠면서 자신을 쳐다보는 남성은··· 그래, 솔직히 말하자.

좀 야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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