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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25화 (25/125)

〈 25화 〉 25, 보보가

* * *

식욕, 수면욕, 성욕.흔히 인간의 3대 욕구로 불리는 것들이었다.

인간의 본능과 가장 밀접해 있으며, 어쩔때는 이성보다 먼저 뛰쳐나가는 존재들.

인간이 지금까지 존립가능하게 해줬으며 생명을 살아가게 만드는데 중요한 것들.

자 그럼 여기서 문제 하나를 내겠다.

3대 욕구 중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식욕이었다. 사람은 밥이 없으면 뒤진다.

몸에 들어가는 영양분이 없으면 뼈가 얇아지고 신진대사가 줄어들었으니까.

사람도 일종의 기계라 들어가는 연료가 있어야 돌아가는 법이다.

연료가 안 들어가는 기계는 작동을 멈추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사람에게 작동중지란 곧 죽음을 의미했고.

그렇다보니 생존과 직결되어있는 식욕이 중요도로 따지자면 원탑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이제 중요욕구는 알았으니 다시 질문을 바꾸겠다.

인간의 3대 욕구중, 일상생활에서 가장 참기 힘든 건 무엇일까?

다름아닌 성욕일 것이다.

다른 욕구들이 인간 개인의 생존에 초점이 맞혀져 있다면, 성욕은 인간이란 종족 자체의 보존에 초점이 맞혀져 있었다.

그런만큼, 다른 욕구들처럼 규칙적이지 않지만.

특정 상황이 되면 욕망의 기폭 자체는 기하급수적인 편이었다.

특히 눈 앞에 무언가 꼴리는 게 있을 경우, 다른 욕구들을 가볍게 찍어누르고 나온다.

지금 이 두 사람의 상황이 그랬다.

꿀­꺽.

진득한 목넘김 소리가 도처에 울려퍼졌다.

누구의 목넘김일까.

세원일수도 있고 은별이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둘 다일수도 있었다.

애초에 그런 걸 신경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술로 인해 사고는 마비되었고, 온 신경은 시각으로 향해 있는 상태.

몸 안쪽에서 들려오는 작은 목넘김─사실 그리 작진 않았지만─ 소리까지 신경쓸 잔여 집중력이 없었다.

“······.”

은별은 잠시 고개를 숙여 팔 쪽을 내려다보았다.

‘두껍네···.’

창백한 피부면서 생각보다 근육이 붙어있는 팔뚝이 보였다. 그림을 그린다더니, 팔을 많이 쓰다보니까 근육이 붙은 걸까.

팔이 조금씩 위치를 바꿀때마다 피부 안에 숨어있을 근육이 꿈틀거렸다.

그리 격동적인 움직임은 아니었으나, 체육을 주 전공으로 하는 그녀에게는 확실히 보였다.

오히려 은밀하게 보이는 움직임이 더 꼴리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 너머는 또 어떤가. 넓직한 어깨가 자기를 과시하고 있었으며, 푹 파인 쇄골은 옷깃 뒤에 숨어 은밀히 그녀를 유혹하고 있었다.

호감이 어쩌고 저쨌든, 사랑이 있든 없든 그녀도 ‘여자’다.

원초적인 욕망이 있었으며, 심지어 이쪽 세계의 ‘여자’는 그런 욕망이 몇배로 부풀려진 존재였다.

이세원이 치워낸 천막 한 장은 그녀에게도 파괴력이 높았다.

그것도 무척이나.

“······.”

“······.”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까전까지 서로 웃고 장난치던 둘은 어디갔는지, 지금은 어색한 남녀 한짝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미 비어버린 술잔을 홀짝이며, 텅빈 안주를 괜히 뒤적인다.

남녀관계란 작은 변화만으로도 이렇게 분위기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하하, 여기 좀 덥네···.”

결국 어색함을 참지 못한 이세원이 무슨 말이라도 했다.

손부채질 하는 시늉을 하며, 아침에 그가 보았던 여자애들처럼 옷의 앞섬을 잡고 흔들었다.

‘남자’가 아닌, 남자이기에 할 수 있는 무방비한 행동이었다.

펄럭펄럭.

옷깃이 휘둘릴 때마다 숨어있던 쇄골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그에따라 시선이 자연스레 끌려갔다.

혹여나 시선이 들키지 않을까, 최대한 억제해보려 하지만 생리적인 반응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흡사 야동을 보는 기분이었다. 시야 앞에 놓인 작은 스트릿 댄스였다.

아래쪽이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 씨.’

내가 이렇게 변태였나. 그냥 친구사이인 이성을 두고 생각을 하고 있다니. 뭔가 죄책감이 심장을 콕콕 찔러대는 느낌이었다.

‘후, 진정하자.’

이은별은 속으로 자신을 다스렸다.

심호흡을 하며, 머릿속을 하얗게 비운다는 상상을 한다. 자신이 가끔 교내 체육 대회에 나가기 전에, 긴장을 풀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하면 신기하게도 잠시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물론 그래봤자 멍청해진 뇌는 그대로였지만.

그래도 새로운 걸 알아챌 수는 있었다.

그녀는 이번엔 이세원의 몸 대신, 그의 시선을 보았다.

자신만 그를 쳐다보는 줄 알았는데, 이세원 그도 본인을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주로 복부쪽과 흉부 사이에서 시선이 왔다갔다 한다.

그걸 보고 있자 문득, 어제 자신의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남자도 여자 몸을 보고 어딘가 끌리는 부분이 있다고 했나.

그 말을 상기하자 자신이 여기까지 온 목적이 떠올랐다.

‘아, 그러고보니.’

굳이 이런, 얇은 크롭티를 입고 온 이유도.

애써 술 권유를 한 것도, 그렇게 술집으로 와 분위기를 무르익게 한 것도.

전부 호감작을 하기 위해서 아니였는가.

마침 정신도 적당히 몽롱하겠다. 내일 기억도 몇개 잃어버리겠다.

평소엔 잘 하기 힘든 얘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문득, 자신의 욕망이 올라오고 있기도 했다.

잘 안 넘어 오는 인간이다. 요 일주일간 거리를 둔 것만 봐도 그랬다.

그렇다면 자신도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큰 걸 걸어 볼 생각이었다. 자신에게도 꽤나 중요 부위를. 겸사겸사 자기 욕망도 해소하면서.

“오빠.”

그렇게 그녀는 말문을 열었다.

맨 정신이었다면 정신 나갔다고 들을 수 있는 말을.

“혹시 가슴 만져보실레요?”

*

두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에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으, 응?”

아래로 향했던 눈을 급히 위로 쳐올린다.

그러자 잠시 두 눈이 마주쳤다. 어째서인지 볼에 옅은 홍조를 띄운 그녀가 보였다.

뭐가 그리 부끄러운건지 두 눈이 잠시 교차할 때마다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방금 뭐라고?”

“아니··· 아까부터 가슴쪽을 쳐다보시길레.”

“아.”

망할, 그게 들켰었나.

하긴 너무 대놓고 쳐다보기는 했다.

제 중력을 다 발휘하는 가슴은 인력이 너무 강한 것이다.

시선을 떼어내려 해도 마치 자석처럼 눈이 따라붙었다.

그 때문에 이런 실수를 범하다니. 나는 나를 욕했다.

‘바보병신아···.’

속에서 안 좋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시선 한 번 잘못 놀렸다가 경찰조사까지 갔었던 몇몇 남자들이 나랑 겹쳐 보였다.

이제 나는 감방행이다. 현행범으로 체포될 게 뻔했다. 이제부터 시선강간죄, 성추행죄, 무슨무슨 죄가 추가되면서 경찰에 연행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다시 이은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말인데, 저는 괜찮으니까. 만져보고 싶으면 만져봐도 된다고 했어요.”

“···응?”

그러자 나는 문득, 아주 잠깐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은 성별에 대한 관념이 바뀐 곳이라는 걸 말이다. 멍청해져 버린 머리 때문에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이었다.

이 주일 내내 인지하고 있던 사실을 술좀 마셨다고 까먹어 버리다니.

이래서 술이 문제였다. 가끔은 익숙한 것들을 자연스레 머리에서 지워버리기도 하니.

‘그럼 뭐야.’

나는 그녀의 말을 재해석 했다.

‘진짜 그냥 만지라는 소리야?’

와, 놀라운 일이었다.

가슴이란 어떤 곳인가.

그곳은 금단의 영역이며 거기까지 넘어가기엔 본래 많은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연인 사이라고 해도 편하게 만질수가 없는 곳이 가슴 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이제서야 술을 두번 마셨을 뿐이다. 서로 잠시 눈빛을 주고받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 만으로도 이런 권유를 받을 수 있다니.

이게 ‘남자’의 힘인가?

놀라운 힘에 잠시 컬쳐쇼크를 느꼈다. 문화충격을 받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는 이은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굳이 내 입장에선 거절할 필요가 없는 제안이었다.

···아니, 거절할 수가 없는 제안이었다.

성적 욕구란 존나게 강력한 충동이었고 그것을 한낱 정신력으로 버텨내기엔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애초에 이상황이면 시팔 부처도 예스를 외칠 것이다.

“그래도 여기서 만지는 건 좀 창피하니까, 다른 곳에 가서···.”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 그녀 스스로 말하면서도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하긴 나라도 ‘내 가슴 만질래?’라고 권유하면 쪽팔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철회는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나는 순순히 그녀 말에 따르기로 했다.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끝내고 대로변으로 나온다.

쏴아아­

길거리에 나오자 시원한 공기가 피부를 감쌌다.

날씨가 아무리 더워졌다고 하더라도 봄은 봄. 밤이 되면 자연스레 기온이 내려가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우리 둘 중 누구도 가디건을 걸치는 이는 없었다.

어차피 후에 있을 일에 방해만 될 테니까.

‘후···.’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이제 좀있으면 미지의 세계를 경험할 터.

가슴을 만지라고 해서 거기서만 끝날일이 아니었다. 서로 정신을 놓기 바로 직전까지 술을 마셨다.

그 말은 곧, 정신을 놓은 상태랑 다름이 없다는 소리였다.

사고가 마비되고 이성이 무의식 안에 잠겨가며, 신체의 특정 부위에 힘이 들어간다.

잘 하면 그 뒤쪽의 일까지 갈 수 있었다.

“이, 이쪽으로.”

그녀가 안내한 곳은 어느 골목길 이었다.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특히 사람이 적은 곳이 있다.

사람이 돌아다니기에 비좁거나, 담배꽁초나 술병같은 불건전한 것들이 돌아다니거나 그런 곳 말이다.

불건전한 놀이를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사람 둘셋이 골목길에 수직으로 서면, 그대로 자리가 꽉찰 공간.

비좁으되, 아늑한 곳이었다. 나는 정면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분명 같은 검은 눈이지만, 묘하게 남색으로 빛나는 듯한 눈동자가 보였다.

나는 말없이 잠시 그녀를 감상했다.

확실히 예쁜 외모였다.

이은별은 낮보다는 밤에 더 잘어울리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짙은 남색 머리카락은 마치 밤하늘을 닮은 듯 했고, 가녀린 팔과 다리는 가학심을 부추겼다.

평소에 활발했던 인간이 돌연 입을 닫으니, 그 특유의 고양이상이 살아나 분위기를 잡아먹었다.

그녀가 권유했고, 나는 수락했다.

이미 올 때 까지 온 상황.

나는 잠시 망설이다 그래도 가슴에 손을 얹었다.

“흣···.”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희미한 신음이 울려펴졌다.

활발하게 뛰는 심장이 여기까지 전달되어 왔다.

평소에 활기차고 목소리 밝은 그녀는 어디갔는지, 지금은 한 마리의 소동물이 있을 뿐이다.

얇은 면 재질의 크롭티와, 그 뒤에 있을 부드러운 흉부의 감각을 느끼며 천천히 손을 쓰다듬었다.

가슴이 아까보다 묘하게 부풀어있었다. 사람은 흥분하면 신체의 어느부위로든 티가 나기 마련이다.

아까보다 훨씬 새빨게진 볼이 그랬고, 묘하게 부푼 흉부가 그랬다.

아마 저 브라자 뒤엔 유두가 단단하게 서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돌연 가슴을 움켜쥐었다.

콰악!

예고도 없는 갑작스러운 기습.

“하으읏···?!”

한손에 가득, 물풍선을 쥐는 듯함 감각이 일었다. 동시에 높은 고음이 연약하게 귓가를 때렸다.

이렇게 갑자기 움켜쥘 줄은 몰랐는지 얼굴에 옅은 당혹감이 올라와 있었다.

크게 뜬 두눈 위로 흔들리는 동공이 보였다.

그럼에도 제지는 하지 않을 모양이었다.

그녀가 등 뒤로 보낸 두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은별은 두 팔을 뒤로 보내 뒷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그게 마치 편하게 만지라고 하고 있는 거 같았다.

나는 그걸 보고 좀 더 과감하게 손을 놀렸다.

“흐읍···! 하아···!”

두 손을 이용해 가슴을 이리저리 굴린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가슴이 내 손길에 따라 이리저리 변형되었다.

한 쪽 가슴이 위쪽으로 올라 위치차가 생기기도 하며, 두 가슴이 겹쳐 잠시 짓눌리기도 한다.

은별의 얼굴이 더더욱 빨게지고 있었다. 홍조를 넘어서 이젠 얼굴자체가 붉었다. 너무나도 붉게 물들어서 바늘로 콕 찌르면 터질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

신음섞인 숨결이 공중위로 흩날린다. 거칠고, 짙은 숨소리였다.

나는 내 숨소리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한 걸음 다가갔다.

이제는 한 걸음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거리. 잔뜩 상기된 얼굴이 뚜렷하게 보였다.

숨결과 숨결이 부딪치며, 공중에서 뒤섞여 흐트러졌다.

기온은 분명 상온인데, 숨결이 너무 짙어서인지 마치 육안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누가봐도 흥분한 모습이었다. 한계치까지 먹은 술이 일차로 사고를 정지시키고, 지속된 애무가 생각을 녹인다.

순간, 이게 야스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나도 한계치였다. 우뚝 솟아오른 사타구나가 바짓섬을 뚫고 나올 것 같았다.

몽롱한 정신상태에 어울리는 몽롱한 상황이다.

나는 그대로 손을 들어 그녀를 모텔로 대려가려 했고······.

“그, 그마아아아안!!!!”

······갑자기 제지당했다?

“그만! 이 정도면 충분하죠? ”

그녀가 내 두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옥타브는 높은 느낌이었다.

새빨개진 얼굴로 애써 웃음을 만드는 게 보였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여기서 뺀다고?’

그게 무슨 개소리인가. 이미 잔뜩 흥분한게 눈에 보이는데.

여기서 뺄 순 없었다. 이미 갈 때까지 간 상황이고, 서로 적당히 욕망도 분출되고 있는 상태다.

아니, 존나게 분출되고 있는 상태였다. 흐트러졌던 숨결이, 부풀어올랐던 신체가 그것을 증명한다.

여기서 발을 뺀다는 건 구멍을 보여주고 넣지 말라는 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남자가 칼을 빼들었으면 무라도 베어야 하는 법. 그건 여기 사는 ‘여자’도 똑같지 않은가!!

하지만 그녀가 입을 여는 게 더 빨랐다.

“그! 여기까진 그으, 더 만져댔다간 그 뒤로까지 갈 거 같아요! 아직 알아갈 것도 많은데, 또! 속궁합도! 생각해봐야 하니까! 서로 취향도 알아보고! 그러니!”

횡설수설, 어쩌구 저쩌구.

말이 꼬인다. 머릿속에 너무 많은 단어가 선입력 되어 문장이 매끄럽지 못했다. 아직까지도 진정안된 호흡은 제멋대로 악센트를 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계속 뭐라뭐라 하고 이었다.

아니 난 그 뒤로까지 가고 싶은데.

그렇게 이어지던 말에 갑갑함을 느낄 무렵, 그녀가 돌연 작별인사를 고했다.

“아무튼 오늘 재밌었어요! 그럼 다음에 봐요!”

“아! 잠깐!”

아차 하는 맘에 이은별을 부르기도 잠시, 그녀는 빠른 속도로 멀어졌다.

과연 체육교육과라 그런가 달리기가 빨랐다. 술을 먹어서 균형감각이 흔들릴텐데도 암튼 존나 빨랐다.

나는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

“안 돼애!”

보지 보여주고 가!!

보여주는 김에 섹스도 좀 하고가!!

“크흐흑!”

눈물이 앞을 가렸다. 허무하게 사라져버린 아다 부수기에 마음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달밤의 이벤트는 그렇게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

머리가 어지럽다.

한껏 달아오른 열이 빠져나가지 못해 신경을 녹이는 듯한 기분이었다.

지금 내 머릿속을 달아오르게 하는 건 단순히 분노인가, 아니면 그냥 섹스가 마려운 것일까.

알지 못했다. 애초에 씨팔 섹스를 못 했으니까.

“하.”

나는 터덜터덜 집에 들어와 조용히 침대위에 누웠다. 술때문에 정신은 몽롱한데, 막상 잠은 오지 않았다.

분출되지 못한 성욕이 잠을 방해하고 있었다.

사타구니 중앙에서 my소중이가 놀아달라고 아우성 친다.

아아, 불쌍한 나의 소중이여 결국 너의 짝은 오른손밖에 없는 것인가.

이게 다 이은별 그 년 때문이었다. 도대체 마지막에 도망친 이유가 짐작되지 않았다.

아니, 대체 왜 간거지?

반응을 보면 별로 싫어하는 느낌도 아니었던거 같은데. 싫어했다면 애초에 손이 닿는 것부터 거부했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여자에 대해 모른다 하더라도 그게 흥분한 상태인 걸 모를 수가 없었다.

분명 걔도 한계치였던 거 같은데··· 도망치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아, 결국 이렇게 자야하는 건가.

외로운 밤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띠링!

머리위에서 경쾌한 알림음이 울렸다. 내가 머리 맡에 대충 던져두었던 핸드폰이었다.

‘···뭐지.’

나는 무거운 머리를 쥐흔들며 핸드폰을 확인해 보았다.

방금 막 레이프합법화 한테서 문자가 와 있었다.

[레이프합법화: 와 님 님ㅋㅋㅋㅋㅋㅋ]

[레이프합법화: 나 방금 개꼴리는 상상함;;]

[레이프합법화: 저번에 커미션 예약 맡겨놓은 거 지금 신청할게요. 지금 당장 이걸 기록해두어야 겠음]

“······.”

아무래도 이 저녁에 개꼴리는 아이디어가 생각난 모양이었다.

도대체 이 야밤에 머리회로가 어떻게 굴러갔기에 야한 생각이 난 건지.

나는 상대방의 채팅을 보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

그러고보니 저번에 이런 고민을 했었지.

‘레이프 합법화’를 현실에서 마주해볼까 말까 하는 고민 말이다.

상대가 말하는 꼬라지를 보면 상당한 변태겠다. 한 번 만나봐서 진득한 몸의 대화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익명성의 위험때문에 잠시 보류했었지. 상대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만나는 건 위험하다고.

현실만남은 내가 최후의 수단으로 써야 한다면서 말이다.

뇌가 똘똘이에 완전히 잠식되었을 때, 이성의 끝자락조차 파뭍혔을때나 쓰기 위한 수단.

거기까지 생각하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지금 아닌가?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만나볼까?’

저번에 내게 했던 질문과 똑같은 질문이었다.

그리고 저번과 똑같이, 질문에 뒤따라 이성이 잠시 올라와 속삭인다.

대충 익명성이 어쩌고··· 형사 신고가 어쩌고···.

“닥쳐 시발.”

나는 그것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지금 이 상태에서 이성이란 하등 쓸모없는 새끼였다.

술 때문에 존나 약해진 새끼가 어딜 본능 앞에서 까부는가.

그래,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아무도 없이 조용한 집안, 메트리스위에 누운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만나보자.”

슬슬 상대방을 현실에서 만나볼 때가 되었다.

나는 ‘레이프합법화’를 따먹을 생각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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