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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23화 (23/125)

〈 23화 〉 23, 4월인데?

* * *

나는 지구온난화를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다.그럴만 한게 나한텐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이야기였으니까.

당장 수십킬로미터 상공에 오존층이 파괴되든, 시시각각 북극이 녹아 곰들이 죽어가든.

나는 그걸 뉴스나 신문기사로만 볼 뿐 정작 방구석에서 허벅지나 벅벅 긁는 내가 지구온난화를 실감할 기회가 없는 것이다.

그건 결국 먼 지역 이야기였을 뿐이니.

그러나, 지옥철을 벗어나 학교로 걸어들어가고 있는 나는 지금.

지구온난화의 폐해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존나 덥네···.’

대한민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다.

3~5개월 즘에는 적당히 따뜻한 날씨가 지속되며 대지에서 꽃이 피어오르고.

6~8월은 여름이 시작되어 더운 날씨와 함께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

9~11월에 가을이 시작되어 무성했던 나뭇잎이 하나하나 떨궈져.

12~2월에는 마침내 겨울이 찾아와 나뭇잎에 잠시 죽음을 선사한다.

이렇듯 대한민국은 각 시기마다 온도가 뚜렷하며 그것을 선조들이 자랑처럼 내세우기도 했다.

우리의 사계절은 우리에게 강인함과 다양함을 선사해준다고. 어릴때 벤치에 앉은 할아버지가 소리치던걸 얼핏 듣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다 옛말.

지구온난화로 이상해진 기온은 대한민국에 여름과 겨울만 남겼고, 그중에서도 여름은 특히 존나 길고 더운 여름으로 만들고 말았다.

4월.

어느새 시간이 시간이 지나 현재는 날짜가 4월 중순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다.

원래는 날씨가 적당히 따듯해지고 아리따운 벚꽃이 이제 쇼를 마친 후 슬슬 질 타이밍이었지만.

니기미 옘병 벚꽃은 폈다가 뒤진지 오래였고.

그에 따라 봄도 같이 뒤진건지 어느새 날씨가 초여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후···.”

쨍쨍 내리째는 햇빛에 못 견뎌 나는 가디건을 벗었다.

다행히 아직 고온다습까지는 날이 미치지 않아서 땀이 막 나오지는 않았지만, 더운 햇빛은 얇은 가디건을 벗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침부터 일어나는 것도 좆같은데 거기에 더위까지 더해진다라. 세상 한 번 가혹하군.

다행히 날씨가 더워졌다고 해서 무조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름에 맛 보는 밤 공기는 겨울보다 달콤했고, 에어컨 튼 실내와 실외의 온도차를 느낄 때면 왜인지 모를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점은 바로 여자들 옷차림이 얇아진다는 것이다.

나는 보았다. 길거리를 걸어다니는 얇은 옷차림의 여자애들을.

“와, 갑자기 날씨 왜 이러냐 미쳤어 그냥.”

“구름 한 점 없는거봐. 존나 화창하네.”

누군가는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누군가는 속옷이 다 비치는 얇은 흰 티를 입는가 하면, 허리가 다 드러나는 크롭티도 드물지 않게 보였다.

오늘 날씨를 잘 재지못해 두꺼운 반팔티를 입은 여성들도, 이 날씨는 못이기겠는지 앞쪽 옷깃을 잡고 열심히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팔락팔락.

면 재질의 티가 흔들릴 때마다 그 뒤에 숨은 속살이 조금씩 비친다.

무방비하고, 무신경했다.

‘큼, 크흠.’

나는 속으로 헛기침을 날렸다.

정조관념이 바뀌어서 그런가. 이곳의 여성들은 주변 시선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옷의 노출도가 한층 높아졌으며, 그 마저도 조심할 생각없는지 저렇게 얇은 옷을 부채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오히려 조심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남자들 뿐이었다.

펄럭펄럭.

옷자락이 휘날리며 부드러운 살색이 보인다.

그 때마다 내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가는가 하면, 마지막 남은 도덕심을 지키기 위해 애써 돌리기도 했다.

나는 지금 심각한 갈등 위에 있었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그냥 당당하게 쳐다봐도 되는 것인가 아니면 눈 깔고 길을 걸어야 하는건가.

끝자락에 남은 작은 도덕적 책임감과 존나게 커진 본능이 속에서 씨름하고 있었다.

‘미치겠네···.’

안 그래도 요즘 욕구해소를 못 해서 자극에 예민한데. 내 밑의 소중이가 서서히 일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래도 무작정 지켜보는 건 아닌 건 같아 나는 고개를 돌렸다.

‘후, 진정하자.’

속으로 강같은 평화를 외치며 길을 걷는다.

그래도 다행인건 욕망을 참는 이가 나 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와, 온도 보니까 지금 28도네.”

“28? 진짜 미친 거 아니······.”

순간, 아까부터 활발히 대화를 이어가던 두 여성의 말문이 잠시 닫힌다.

왜 그런가 잠시 살펴보니 시선이 정확히 내 몸 근처에서 머물고 있었다.

여러 감정이 담긴 찰나가 흐른다.

“···냐. 여기가 대구도 아니고 벌써 쪄 죽이려 하네. 그렇지?”

“아, 아 응. 그렇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여자들은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아니, 저건 대화가 아니다. 정확히는 대화하는 척 하는 연기였다.

나한테 시선이 머물렀던걸 내가 눈치 못 채게 하기 위해 발악하는 것이다.

물론 이미 눈 까지 마주친 상태라 의미없는 짓이긴 하다만··· 나는 성의를 봐서 속아줬다.

그리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스쳐지나가는 두명.

“와··· 방금봤냐? 개꼴림.”

“나 아래 살짝 젖은거 같애.”

내 뒤통수로 뭐라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대충 이런느낌으로 나는 계속 시선을 받고 있었다.

물론 방금 저 두 년들 만큼 노골적으로 보진 않았지만, 티안나게 흘끗흘끗 바라보던 여자는 꽤나 많았다.

하나같이 욕망이 들어차 있으며, 이성 이전에 본능이 나섰던 모습이었다.

나는 그저 반팔에 긴바지를 입었을 뿐인데. 이것조차도 누구에겐 꼴림으로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 노골적인 시선이 은근 나쁘지 않다는 것.

아니, 오히려 좋은 기분도 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호감섞인 눈빛으로 봐준다는 것 아닌가. 물론 호감의 대부분이 성욕이긴 했지만 누군가에게 호감을 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마치 내 가치가 올라가는 기분이랄까.

문득, 속에서 이런 단어가 떠올랐다.

‘이런게 시선 강간?’

오··· 시선강간.

나쁘지 않을지도.

살짝 바바리맨의 마음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내 몸을 보여주면서 상대방의 반응을 즐긴다.

이건 또 나름의 유흥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옷은 다시 입어야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든 일단 부담스러운 시선은 맞았기에 나는 다시 가디건을 걸쳤다.

살짝 덥긴 했지만 어차피 땀은 안 나고, 학교도 거의 도착한 상황이었으니.

언제나 그렇듯 강의실 안에는 벌써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건 내가 늦게 온 탓도 있을 것이다.

어제 늦게까지 그림을 그리느라 잠을 살짝 설쳤으니까.

나는 대충 남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리고 얼마 안 지나 교수님이 들어오신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그럼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제 버티는 일의 시작이었다.

*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럼 다음에 봬요.”

교수님이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강의실을 나간다.

그에 따라 학생들이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유다! 라고 얼굴에서 외치는 것 같았다.

월요일 아침, 3시간 연달아 일어나는 전공수업은 힘든 법이었다.

우르르르.

교수님이 나간지 얼마 되지도 않아 학생들이 뛰쳐나간다. 무척이나 빠른 속도였다.

“후우···.”

나는 그걸 잠시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난지 5시간도 안 지났는데 벌써 피곤이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이게 다 강의 때문이다. 사람 머리에 숫자나 이론같은 무시무시한 걸 때려박으려니까 뇌에서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하여간 이세원 개새끼···.’

오늘도 어김없이 이쪽 세계에 살았던 ‘이세원’을 씹었다. 너가 대학만 가지 않았더라도 이런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을텐데.

뭐 그래도 수업내용이 알차서 뿌듯함이 있기는 했다. 외계어같던 전날과 달리 몇번 들어서 그런지 이해되는 내용도 몇개 있었고.

머릿속에 뭐가 들어간다는 과정은 괴롭지만, 지식이 늘어난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강의실 밖으로 나가자 한산한 복도가 나를 반긴다.

이미 같은 반 애들은 대부분 빠져나가고 없을 시간이었다. 나는 일부러 이런 타이밍에 나오곤 했다.

어차피 빨리 나가봤자 집까지 돌아가는 데는 몇 분 차이밖에 나지 않았고, 굳이 같이 내려가면서 어색함을 느끼고 싶진 않았으니.

몇 분을 버리고 심리적 편안함을 얻는다. 꽤나 괜찮은 가성비였다.

“아 오빠!”

그렇게 한산한 복도를 터벅터벅 걷고 있을 때였다.

저번주처럼, 누군가가 나를 큰 소리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연히 이은별.

나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쪽으로 튀어오고 있는 그녀가 보인다.

‘···헙.’

그리고 잠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이은별이 입은 복장. 그게 꽤나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허리가 그대로 보이는 얇은 재질의 크롭티와, 그에 따라 희미하게 비치는 남색 속옷. 굴곡진 몸매를 드러내는 듯한 꽉 조이는 청바지까지. 전체적으로 타이트한 복장이었으며, 그에 따라 그녀의 잘 관리된 몸매가 부각되고 있었다.

잘록한 허리가 정신을 교란하고, 그에 대비되는 커다란 흉부가 시선을 흡수한다.

만약 상의에 입고 있는 푸른색 가디건이 아니었으면 그대로 넋 놓고 쳐다봤으리라.

전과 같은 복장은 머리에 쓴 야구모자밖에 없었다.

“히, 드디어 나오시네요. 꽤 오래 기다렸었는데.”

그렇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이은별이 헤 웃으며 말한다.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어 응.”

뭐지. 갑자기 무슨 일이지.

원래는 자주 입는 레깅스를 제외하면 비교적 펑퍼짐한 차림으로 입고 다니는 애였는데.

커다란 박스티를 자주 입고 다니는 녀석이었는데. 왜 갑자기 차림이 바뀐 거지.

날씨가 더워서 저렇게 입은 건가?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무슨 일이야?”

일단은 물었다. 이렇게 계속 멍하니 있어봤자 당황한 티만 날테고 그럴수록 사고도 마비될 테니까.

그저 가만히 있을 바엔 뭐라도 말하는 게 나았다.

굳이 시간 내면서까지 나를 기다린 이유가 있을 터.

“아, 별건 아니고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같이 술 마시러 가실레요?”

오랜만에 듣는 거 같은 술 권유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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