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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22화 (22/125)

〈 22화 〉 22, 몸으로 유혹해봐요

* * *

곳곳에서 게임 소리가 들려오는 피시방의 안 쪽.

일요일 낮이라 그런지 피시방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총소리, 칼소리,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기계음으로 변환되어 사람의 귀로 들어온다.

펑! 펑! 촤악!

적을 처치했습니다!

“야 야! 원딜 땄다! 지금 다 죽여!”

“달려라 탑! 길은 시발 뚫어놨다!!”

“우오오! 멈출 수 없는 맹고오옹!!”

곳곳에서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타에서 대승해서 기뻐하는 목소리와, fps게임에서 헤드샷을 당해 짜증내는 목소리 등.

무릇 피시방이란 여자애들의 천국이기 마련이다.

고사양 컴퓨터를 마음대로 쓸 수 있으며, 높은 그래픽의 게임을 하고 옆의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대화한다.

가격도 싼 편이었기에 친구들은 보통 나와서 만났는데 막상 할 일이 없으면 곧장 피시방으로 출근하곤 했다.

그리고 이은별도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같이 피시방에 온 참이었다.

요즘에는 경제학과랑 5:5내전이 없어서 피시방 가는 횟수를 줄였었지만, 이번에 다시 음료수 빵이 잡혔었기에 다시 합을 맞추어 봐야 했다.

특히 저번 내기빵에서 졌었기에 이번엔 특히 이길 필요가 있었다.

그런만큼 같은 과 동기들은 컴퓨터를 열심히 노려보며 게임을 하고 있었지만.

“하아.”

정작 팀의 딜러를 맡은 이은별은 모니터를 앞에 두고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자신이 잡은 라인이 잘 안풀려서가 아니다. 오랜만에 잡은 원딜 배인으로 죄수번호 2/8/4를 찍어서 시무룩 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최근에 이세원 과의 관계 진행이 잘 안 되어서가 주 이유였다.

지난 월요일에 이세원에게 사과를 전하고 벌써 6일.

그 동안 그와는 별 달리 시간을 가진 적이 없었다.

아니, 시간은 커녕 제대로 된 대화조차 나눈 적이 없는 상태.

애초에 서로 강의를 듣는 시간대가 다르기도 했고, 묘하게 그가 자신을 피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도 접점이 없어서 까톡을 보내볼까도 생각 했지만··· 이런 애매한 관계 속에서 보내는 카톡은 그저 어색하기만 할 뿐이라 금방 포기했다.

그리고 자신은 카톡보단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편을 선호하는 편이었으니.

아무튼 그런 이유로 더 이상의 관계 진전은 없는 상태였다. 아니 오히려 지금은 더 어색한 수준.

그것은 이은별에게 별로 안 좋은 소식이었다.

얼른 그를 꼬셔서 고백을 따내야 하는데, 그래야지 유보람의 5만원이 자신의 지갑으로 들어올텐데.

멀어지는 심사임당을 생각하시니 자꾸만 침울해졌다. 지폐다발 위에 그려진 그녀가 마치 ‘넌 자격이 안 되었다’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망할, 그 때 객기부리면서까지 내기를 하는 게 아니었는데.

사실 그녀는 충동적으로 내기를 해버린 일에 약간의 후회와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어쨌든 고백빵 내기라는 것은 이세원 그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었으며, 자신은 그걸 뒤늦게 깨달았었으니.

지난 월요일 날 사과를 전한 것도 이러한 죄책감이 섞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는 몰랐겠지만, 어쨌든 그녀는 사과할 때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사실대로 말하고 내기를 파 할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뺄 수도 없고···.’

발을 빼는 순간 곧장 유보람에게 10만원을 증정해야 했다. 쫄려서 튀어도 내기에서 진 걸로 치기로 했으니.

10만원은 꽤나 큰 값이다.

특히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빠져나가는 돈이 많은 그녀는 갑작스럽게 빌 10만원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어떤식으로든 내기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건데··· 그렇기에 진전이 없는 지금 이 상태가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다.

“하아.”

잠시 집중못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모니터 안의 캐릭터가 점차 죽어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한타하다가 물리고, 라인 밀다가 짤리고, 그리고 어쩔 땐 뻔히 시야가 밝혀진 데에 멍하니 걸어가다 죽을 때도 있었다.

“아니 이새끼 뭐해!”

“와, 원래도 벌레였던 년이 이제는 걍 단세포가 됐네.”

그렇게 이어진 게임은 패배. 게임의 핵심딜러인 원거리 딜러가 계속해서 짤리니 이길 수가 없었다.

결국 옆에 앉았던 친구가 참지 못해 소리 쳤다.

“아니, 새끼야. 오늘 왜이리 넋을 놓고 있어?”

유고은, 같은 체육교육과를 다니는 친구였다.

운동을 꽤나 좋아하는 애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잘 발달된 근육이 특징이었다.

“그냥··· 누구 생각 하느라.”

“누구, 이세원 그 사람?”

순간, 이은별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뭐야 어떻게 알았어?”

딱히 누구한테 말한 적이 없는데.

“저번주에 같이 술 먹으러 가는 거 지나가다가 봄.”

“아······.”

아마 같이 이자카야를 갔을 때를 말하는 것 같았다.

하긴, 큰 길에 번화가였기도 하고 사람이 몰리는 시간대였기에 동기 한 명 정도는 마주칠 수도 있을 법 했다.

“와, 난 그때 엄청 신기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라 이세원 그 사람도 바깥 활동을 하긴 하는구나.”

이은별이 제 속으로 납득하고 있자 고은이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보니 얘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이세원에 대해 알고 있네.

문득, 궁금해진 그녀는 고은에게 물었다.

“근데 너는 세원 선배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아냐니. 그야 유명하잖아. 무려 학고를 먹었는데.”

“아···.”

하긴 그건 유명할만 했다. 학사 경고 먹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시 부족한 감이 있었다.

존재감이 부족한 사람은 학고를 먹었다 치더라도 그냥 잊혀질 것이다.

눈에 안 보이는 만큼 사람들의 기억에선 지워질 테니까.

사람들의 눈에 안 보였음에도 오히려 이름이 퍼졌다면 다른 특징이 있었을 터.

“그리고 잘생겼잖냐.”

마침 유고은이 실실 웃으며 다른 특징을 말했다.

그 말에 이은별은 속으로 동감했다.

‘확실히 잘생겼긴 하지···.’

취향을 떠나서 이세원은 확실히 잘생긴 편이었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균형 잡힌 비율, 떡 벌어진 어깨까지.

키는 아주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것조차 상회하는 오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어딘가 날카로우면서도 잔잔한 분위기가 말이다.

확실히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정작 날카로운 눈매 때문에 무서워서 다가가기 힘든 편이지만, 막상 대화하면 또 이미지랑 다르기도 하고.

“그래서 그 사람이랑 가까워지고 싶다고?”

유고은이 그렇게 말하면서 두 손가락을 겹쳤다.

좌수로는 동그란 링을 만들고, 우수로는 검지를 곧게 핀다. 그러고는 좌수를 격렬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퍽. 퍽.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퍼지며 손가락으로 작은 성관계가 만들어진다.

친한 동성끼리 모였을때 비로소 가능한 더티 토크였다.

이은별은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으···렇지.”

거기까지 갈 생각은 없긴 하지만, 어쨌든 가까워 지고 싶은 것은 맞았으니.

“그런데 생각보다 진도가 안 나가고?”

은별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유고은은 이런 주제에 대해서 나름 성실이 답해주는 편이었다.

자신이 모솔이라 그런지 나름 인터넷 연애 기술에 빠삭했기 때문이다.

물론 으레 모솔들이 하는 말이 그렇듯 그다지 실용성이 없는 게 많았으나.

모솔들이 하는 말이 그렇듯 어떤 사람의 관점으론 실용적으로 ‘들리기는’ 했다.

“그럼 네 매력을 한 번 어필해 봐.”

“···매력?”

그리고 이은별도 그 꿰임에 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고은이 컴퓨터를 끄며 말을 잇는다.

피시방에는 꽤나 오래 있었으니 이제 밖으로 나가려는 모양.

“그 왜··· 설렘 포인트 있잖아. 무심한 듯 챙겨준다거나, 남자들이 심쿵할만한 행동을 한다거나.”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시내에 나섰다.

“아니면 그냥 몸을 보여주는 것도 괜찮지.”

“···몸?”

이은별이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잘 가다가 갑자기 웬 몸?

그러나 이은별이 의문을 가지든 말든 유고은은 자기 근육을 뽐내며 말을 이을 뿐이었다.

“그래, 몸. 너가 몰라서 그렇지 남자들도 나름 몸매에 환장한다? 든든해서 기대고 싶은 몸이라던가, 관리하는 것 같은 몸이라던가.”

여자들이 남자의 몸을 보며 꼴려하듯, 남자들도 여자들의 몸을 보며 어딘가 설레하는 게 있다는 소리였다.

말은 좀 이상해도 맞는 말이었다.

외모는 사람에게 호감을 사는 좋은 방법이었고, 몸매도 곧 외모에 포함되니까.

“그니까 은근 슬쩍 자기 몸을 어필하는 거야. 우리는 특히 체교과니까 어디 가서 꿀릴 일도 없잖아.”

“그러게?”

어느새 이은별은 유고은에 논리에 동화되었다.

‘확실히 그렇긴 해.’

물론 대놓고 ‘내 신체를 봐줘!’하는 것은 변태로 오인받을 일이겠지만, 은근 슬쩍 어필하는 것은 괜찮을 거 같았다.

왜, 학창 시절에도 너 몸 좋다라면서 복근을 만지려 하는 애들 몇몇 있지 않았던가.

그거랑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가면 될 것이다.

‘좋아. 그럼 한 번 시도해보자.’

물론 다짜고짜 신체를 어필할 생각은 없었다.

적당히 분위기를 만들고, 타이밍을 잡는다.

이은별은 그렇게 속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였다.

“짜식, 그래도 너도 여자였구나.”

텁.

유고은이 이은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게 묘하게 기분나빠서 이은별은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뭔 개소리야.”

지도 모솔이면서 왜 갑자기 성장한 자식 보는듯한 얼굴을 하는가.

“아니, 난 네가 레즈새끼인 줄 알았어. 그렇잖아? 딱히 남자얘기도 별로 안 하고, 운 좋게 고백받아도 시큰둥하고 하니까. 난 그냥 남자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지.”

“아···.”

그거야 내 취향이 아니니까.

라고 그녀는 속으로 답했다.

“어?”

그때였다.

시내의 반대편에서 어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귀염상의 남자애가 반가운 기색을 띄우고 있었다.

한호철.

이세원과 같은 경제학과를 다니고 있는 남학생이었으며, 유보람 때문에 여러번 놀러가다 보니 안면을 튼 남자였다.

뒤에 다른 친구들이 있는 걸 보니 시내를 돌아다니다 은별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녀를 발견한 호철이 반갑다는 듯 달려왔다.

“은별아~오랜만~!”

가성섞인 저음이 귓가에 울렸다.

그가 한껏 애교를 섞어가며 은별에게 말을 걸었다.

“뭐야아~ 너도 친구들이랑 놀러왔구나?”

호의 섞인 시선이 그녀를 비춘다.

호철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마치 그녀를 유혹하듯 움직이고 있었다. 밝고 상큼한 느낌이 주위에 은은히 퍼져나간다.

은근슬쩍 애교를 부리는 그 모습에 체육교육과 친구들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본래 지켜주고 싶은 ‘남자’란 ‘여자’들에게 통하기 마련이다.

그런만큼 호철의 밝고 상큼한 느낌은 거친 체육교육과 친구들에게 통하고 있었지만, 이은별은 그냥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하하, 응···.”

그래 이런 느낌.

이런 느낌이 내 취향이 아니라고.

지금껏 고백해온 남자애들도 대부분 이런 느낌이었다.

어딘가 수줍음을 탑제하고, 애교가 섞인 채 귀여움을 어필해 ‘여자’의 보호본능과 모성애를 자극 하는 모습.

다른 이들에겐 통할지 모르겠으나 이은별에겐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느낌의 남자는 부담스럽기만 했다. 꼭 침대위에서도 수줍어서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이렇게 보니까 되게 반갑다. 이것도 인연인데 같이 놀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호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뒤에 있는 자신의 친구들을 가르켰다. 자신의 무리와 똑같은 숫자의 남성들이 보였다.

순간, 이은별의 친구들이 눈을 빛냈다.

혈기왕성한 20대의 그녀들에게 이성과의 유흥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날카로운 눈초리가 이은별을 찔렀다.

그 중 모솔인 유고은의 눈빛이 가장 부담스러웠는데, 거절하면 물리적으로 죽을 것 같았다.

‘솔직히 싫은데.’

굳이 관심도 없는 이성들이랑 어색하게 안면을 틀 바엔, 그냥 이대로 편한 친구들과 놀고싶은 그녀였다.

이은별은 속으로는 거절하고 싶었으나, 이런 분위기에서 맘대로 거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고개글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와! 그럼 애들 불러올게!”

그렇게 호철은 자기네 무리쪽으로 잠시 방향을 돌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은별은 문득, 이세원 선배가 생각났다.

‘그래도 이런 걸 보면 그 선배가 편하긴 하네.’

관계가 어색한 것 뿐이지 막상 만나서 대화하면 딱히 어색한 부분도 없었다.

다른 남자들이랑 다르게 가식도 잘 안 부리고 성격도 꽤 털털한 편인 것 같았으니.

편한 분위기를 느꼈던 건 이세원 뿐만이 아닌 것이다.

물론 저번에 술값을 독박쓴건 살짝 화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서 그것도 잊혀졌고.

어쨌든 호감은 있다는 게 그녀의 솔직한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아직 사귀고싶다 라는 생각까지 발전하지는 않았다.

사귄다는 것은 언젠가 잠자리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고, 그녀는 자신의 성 취향을 밝힐 생각이 없었다.

그건 부끄러우니까.

‘에이, 생각해서 뭐해.’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머리에서 지워버리자.

지금은 어떻게 해야 유보람에게서 5만원을 뜯어낼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차례였다.

“그럼 어디부터 가실래요?”

“전 어디든 좋습니다. 오빠.”

어느새 말문을 튼 일행들을 따라가며, 이은별은 마저 계획을 세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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