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21,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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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란 무엇인가.
이에 관해선 분명 여러가지 의견이 나올 수 있었다.애초에 질문 자체가 간단하면서도 매우 포괄적이기에 관점에 따라 여러가지 대답이 나올 것이다.
미술 평론가 같은 경우엔 간단히 예술이라 답할것이고, 시각디자이너 같은 경우는 길거리를 쉽게 꾸며주는 도구하고 답할 수도 있었다.
아니면 평범하게 야짤을 즐겨보는 일반인들에겐 단순히 ‘꼴리는 거’라는 대답이 나올 수도 있겠지.
질문이 포괄적인 만큼 여러 대답이 나올 게 뻔했다.
나같은 경우에는 상상을 시각화 하는 도구라 말하고 싶었다.
남들이 생각하고, 욕망했던 무언가를 이차원으로나마 구현한다.
내가 그린 몇 개의 곡선들은 곧 여성의 팔이 되었고, 단색으로 때려놓은 색깔들은 곧이어 사람의 피부가 되었다.
내 손이 움직일 때마다 배경에, 인물에 생명이 들어간다.
상상했던 것들이 시각화 된다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이 좋았다. 마치 내가 작은 세상의 창조자가 된 느낌도 들기도 했고, 다른 사람이 내 작품을 보고 반응 하는 게 기쁘기도 했다.
이게 내가 입시에서 고배를 마시고도 그림을 놓지 못하는 이유이리라.
그건 야짤을 그리고 있는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좋네.”
나는 핸드폰에 온 여러 반응들을 보고 웃음 지었다.
‘글러먹은나’한테서 신청을 받은지도 벌써 5일.
그동안 나는 커미션 받았던 그림을 상대방에게 보여주고 팩시브에 게시까지 한 상태다.
다행히 이번에도 반응은 좋았다.
[글러먹은나: 와 ㄷㄷ]
우선은 ‘글러먹은나’의 반응이다. 대충 이틀 전 쯤에 대화한 기록이었다.
[글러먹은나: 기대는 있었는데, 진짜 그림 잘 그리네요]
[글러먹은나: 이 정도에 5만원? 캬 혜자나 다름없다]
상대방은 나 이외에도 가끔씩 커미션을 신청했었는지 대체적인 커미션 시세에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녀는 가성비 대비 퀄리티가 아주 좋다며 연신 내 그림을 칭찬했다.
[글러먹은나: 자궁이 큥큥 떨리네요]
[글러먹은나: 이걸로 5발은 뽑을 수 있을 듯ㅋㅋㅋ]
굳이 나한테 자위 보고만 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뭐, 만족한다고 하니 기분은 확실히 좋았다.
반응이 좋은 건 팩시브 쪽도 마찬가지였다.
[ ㅜㅑ;]
[그래 이렇게만 그리라고 ㅋㅋㅋ]
[남자애 쥬지 껄떡대는거봐 ㄷㄷ ]
다행히 내 전략이 통한 모양이었다. 적당히 투샷을 그려주고 상황만 충분히 꼴리게 표현한다면 이들은 여자가 그림에 들어가 있든 말든 호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요즘엔 팔로우 수도 조금씩 늘고 있고 조회수도 늘고 있었기에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호불호가 아예 안 갈리는 건 아니었다.
[아니; 근데 여자애 분량 좀 줄일 수 없음? 좀 부담되네;]
[ㄹㅇ ㅋㅋ 굳이 여캐 안 그려도 되니까 저 남자 사정하는 짤좀 그려오삼]
[작가님 레즈라서 불가능하답니다. 남자새끼는 역겨워서 못 그리겠데요]
[작가새끼 고어매니아라 그럼ㅋㅋ 첫 게시물보면 분명 저 남자도 자르려다 말았을 거다]
만 명의 사람이 바다를 보면 만 명의 바다가 있듯이, 작품 하나에도 여러 감상평이 나뉘기 마련이다.
다행히 지금까지 커미션 신청을 했던 두 명은 내 그림을 이해해줬지만, 그림에 그닥 꼴리지도 않은 여자애가 그림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보니 불호를 외치는 사람도 있긴했다.
몇몇 ‘여자’들은 여자 몸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없더라도 분량을 차지한다는 게 그다지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
선택과 집중을 해야할 때다. 어차피 볼 사람은 볼 테니 굳이 내 정신력 깎아가며 다른 소비자를 겨냥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 방향성은 이대로 가고. 나는 그렇게 결정하며 팩시브를 껐다.
그러자 갑작스럽게 몰려오는 공허감.
평소라면 일을 다 끝내고 나에게 주는 보상으로 해피타임을 가졌을텐데.
히토비랑 팩시브가 게이천지로 뒤바뀐 이후 제대로 된 해피타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야동 사이트와 av를 뒤져봐도 대부분 남자를 포커싱한 동영상이 대부분··· 이런걸론 딸쳐봤자 씨발 현타만 쌔게 올 뿐이다.
덕분에 나는 지금 욕구불만 상태였다.
가만히 멍 때리고 있을때마다 나의 소중이가 놀아달라고 아우성을 치는데 그때마다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마땅히 칠만한 자료도 없는데 욕구는 계속 쌓이는 상태라니.
순간 내 작품 보고 해결할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으나, 아쉽게도 나는 내 그림을 보고 꼴리는 타입이 아니었다.
내 그림을 보고 꼴리기 이전에 작품을 그리면서 맘에 안 드는 부분이 먼저 찾아졌으니까.
아까 그렸던 팔이 묘하게 긴 것 같아보이기도 하고, 두 눈의 위치가 미묘하게 어긋난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럴때면 이미 그렸던 그림은 전부 엎고 새로 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그래봤자 다른 사람에겐 눈치채지 못할 만큼 미묘한 차이겠으나··· 아무튼 나는 그랬다.
그렇다보니 내 그림으로는 욕구를 해결하기가 어려웠다.
순간 눈물이 나려 그런다.
‘크흡!’
남의 욕구는 잘 해결해주면서 정작 내 ‘나쁜물’은 빼낼 수가 없다니.
대체 이 무슨 모순이란 말인가!
이건 마치 불감증에 걸린 창녀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다 나는 불감증에 걸린 사이버 창남인 것이다!
남들의 성욕을 풀어주면서 정작 내 성욕을 풀 수 없는 잔혹한 운명인 거다!
슬픈 사실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나도 섹스하고 싶어···.’
까똑!
그렇게 잠시 비탄에 빠지고 있을 때였다.
의식의 틈새 사이로 알람음이 파고든다.
메신져 알람이었다. 대충 손을 휘적여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레이프합법화’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레이프합법화··· 언제 들어도 천박한 닉네임이다.
상대가 보낸 내용은 간단했다.
[레이프합법화: 와! 드디어 알바비 들어옴ㅋㅋ]
[레이프합법화: 하 힘든 한달이었다]
알바 비용이 이제야 들어온 모양.
상대방과는 이렇게 가끔씩 카톡을 주고받고는 했다.
원래는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커미션 얘기로 몇번 이야기를 주고받다보니 금방 가까워지더라.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은근 말이 잘 통했기에 시간 때우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물론 처음에 말을 주고 받을 때는 약간 어색한 느낌이 있었지만, 일주일 정도 지난 지금은 여러모로 편해진 상태였다.
[레이프합법화: 돈이 아기씨 주입당하듯 들어오네;]
[레이프합법화: 흐읏.. 커다란 거근에 가버릴 것 같다 ㄷㄷ]
[레이프합법화: 앗 오타 거금 ㅎㅎ]
[레이프합법화: 근데 거근에도 가버리고 싶긴 해 ㅋㅋ]
···너무 편해진 것 같기도 하다만.
‘원래 저러지 않았는데.’
처음 커미션 신청하러 올 때는 나름 수줍움도 타고 조심스러워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일주일만에 애가 타락해서 음담패설을 날려대고 있었다. 마치 순수한 아이가 더렵혀진 걸 본 느낌이었다.
뭐 애초에 야짤신청을 하러 왔던 녀석이니 그리 순수하진 않았지만.
“하여간 익명성이 벼슬이지.”
얼굴 보고 얘기하지 않으니까 저런 소리도 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상대방의 말에 답장해줬다. 가슴속에서 약간의 기대감이 넘실거린다.
[hala: 오 축하드려요 ㅎㅎ]
[hala: 그럼 이제 다시 커미션 신청하는 건가요?]
저번에 대화했을 때 그녀는 알바비가 들어오면 곧장 의뢰를 맡기겠다고 했다. 굳 나에게 카톡으로 알리는 이유는 커미션을 신청하기 위함일터.
과연 그 예상은 적중했다.
[레이프합법화: 앗 넵 ㅎㅎ]
[레이프합법화: 이번엔 한 번에 두개 신청하겠습니다]
“오.”
심지어 두 개였다. 무려 10만원 짜리 의뢰!
저절로 목에서 감탄이 나왔다.
역시 알바비가 방금 막 들어와서 그런지 씀씀이가 커다랐다.
나는 당연히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카톡으로 박수치는 이모티콘과 고개를 숙이는 이모티콘을 동시에 보낸다.
내 나름의 감사의 표시였다.
그 뒤로는 잠시 의뢰 요청이 있었다.
상대방이 원하는 구도와 상황을 말하고 나는 그걸 머릿속으로 계획을 잡는다.
이번에 그릴 작품은 모텔에 가고 있는 남녀였다.
다만 여기서도 상대의 취향이 반영되었는데, 여자는 반쯤 강제적으로 끌려가다시피 가는 것이다.
협박이든 위협이든 해서 남자가 강제로 데려가는 듯한 모습을 그려달라는 요청이었다.
여자는 반쯤 공포에 질린 표정을 하며, 남자는 그걸 보면서 희희낙락한다.
남자의 한 쪽 손에는 가슴이 움켜쥐어져 있으며,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여자가 움찔거린다.
그럼에도 여자는 주변시선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다만 견딜 뿐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모텔의 끝에는 무자비한 섹스.
[레이프합법화: 와; 상상만 한 건데도 벌써 아랫도리가 젖는 거 같네]
역시 상대의 닉네임답게 음습하기 그지 없는 요청이었다. 이 인간도 약간의 마조히스트적인 성향이 있어보였다.
나는 이해했다면서 그 정도는 가능하다고 곧장 승낙했다.
[레이프합법화: 다른 하나는 음.. 혹시 나중에 말해도 되나요? 저도 고민해봐야 해서]
[hala: 넵 당연히 됩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나중에 고민 좀 하다가 알려준다고 했다. 이번에도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나도 그리는 데에 어느정도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중요한건 내 돈에 다이렉트로 10만원이 꽃힌다는 것이다. 드디의 십의 자리가 될 내 통장을 생각하니 기쁨이 멈추지 않았다.
[hala: 넵^^ 그럼 그림이 완성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레이프합법화: 네~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ㅎㅎ]
그 후로 대화는 끝나게 되었다.
의뢰가 하나 들어왔고, 돈도 들어왔다.
이제는 그리기만 하면 되는 상황. 그러나 나는 이미 흐름이 끊긴 대화창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생각의 주제는 이것.
“흐음···.”
‘레이프합법화’는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말이 좀 천박하긴 해도 대화도 잘 통하고, 사회생활도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문득, 상대의 뒷면이 궁금해졌다.
“흐으음···.”
물론, 이건 그다지 영양가 없는 생각이다. 익명성이 있는 이유는 그 뒤에 상대를 보호하기 위함이고, 뒤에 어떤 놈이 있는지 모르는 이상 시간들여 파고 들었다가 낭패만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
무려 이 주 가까이 강제 금딸을 당했고 그로 인해 my소중이가 놀아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상태.
현재 내 머리를 조종하는 것은 이성이 아닌 똘똘이였고, 고추를 놀릴 수만 있다면 약간의 수고 정도는 기꺼이 감수 할 수 있었다.
뇌를 잠식한 똘똘이가 꺼낸 말은 이것이었다.
“만나볼까?”
생각해보니 이곳은 남녀역전 세상이고 이 곳에서 나는 나름 잘생긴 편이었다.
그것은 저번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두 여자가 증명한다. 그 때는 별 생각이 없어서 그녀들의 반응이 잘 이해가 안 갔는데 집에와서 생각해보니 그 반응은 이성을 봤을 때의 쑥스러움이었던 것이다.
내가 예쁜 여자를 보면 잠시 굳는 것처럼, 몸매 좋은 여자를 보면 자연스레 시선이 가는 것처럼.
그들도 나랑 똑같은 사람이었고 그렇다보니 나한테 잠시 그런 시선이 왔던 것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만나봐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하면 섹스까지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근데 그래도 위험부담이 있는데···.”
잠시, 머릿속으로 고민을 이어갔다.
이성과 똘똘이가 눈 앞의 핸드폰을 두고 싸운다.
치열한 공방전이 머릿속에서 펼처지고 있었다.
눈 딱 감고 한번만 만나보자는 똘똘이 측과, 굳이 익명성을 버리고 내가 앞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는 이성 측.
확실히 현실만남은 위험했다.
특히 나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은 얼굴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야짤 작가는 대한민국에서 반쯤 불법이라 특정성이 성립되는 순간 빨간줄을 그을 수도 있었다. 상대방이 신고해버리면 그대로 경찰행이니까.
물론 나한테 커미션의뢰까지 넣는 ‘레이프합법화’라면 그럴리는 없었지만······.
조심할 필요는 있었다.
“에이 그래도 랜선만남은 이르지.”
결국 승리한 건 한 줌 남아있는 이성 측이었다. 그래, 상대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뭘 만나려고 해.
심지어 나는 랜선만남따위 한 번도 해본적 없었다.
이건 아직 보류해야 하는 방법이다.
“하하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는 헛웃음 지으며 핸드폰을 멀리 치워버렸다.
아무리 내 뇌가 소중이에 의해 마비되었다 한들, 고작 고추 하나때문에 위험부담을 안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레이프합법화’와는 일단 지금의 관계를 유지한다.
그게 지금의 내 판단이었다.
현실 만남은 최후의 수단.
뇌가 똘똘이에 반쯤 잠식당한게 아니라 완전히 잠식 당했을 때 쓸 방법.
그러니 아직까지는 만날 때가 아니었다.
“하하하···.”
아직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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