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19, 일상
* * *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정정하겠다.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면 좋은 이유는 이미 들어본게 많으니까.
대충 활동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느니,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하고 정신건강을 맑게 해준다느니 하는 소리는 지겹도록 들어왔다.
적어도, 아침에 일어난 나의 정신 건강은 당장 자살하고 싶어질 정도로 안 좋으니 저 말은 분명 개소리가 틀림없다.
자 그럼 다시 본 이야기로 넘어와서, 새로운 질문을 하겠다.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도록 발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쉽게도 이건 인터넷을 뒤져봐도 그리 자료가 나오지 않았다.
하여, 뇌피셜로 조금 써재껴보고자 한다.
태초의 인간··· 그니까 원시 인류는 분명 위험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사방엔 사나운 짐승들이 우글거리고, 주위를 비춰줄 이렇다할 불빛은 없다. 그때 있던 불빛이라고 해봐야 하늘에서 내려오는 햇빛이랑 손에든 자그마한 횃불이 전부였을테니.
그런 상황에서 밤이란 정말 무서운 존재였다.
시야는 좁아져서 주변을 탐색하기도 쉽지 않은데, 나보다 피지컬이 몇 배는 좋은 짐승들은 밤에도 잘 볼 수 있는 눈을 타고났으니까.
최악의 리스크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좋든 싫든 밤에는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채집 효율도 안 나오고 위협은 배로 증가한 밤을 굳이 돌아다니는 미친놈은 없었다.
아니, 있더라도 분명 다 뒤졌겠지.
그러다보니 선조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가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해가 뜨는 시간에 기상해 최대한 많은 활동을 하고, 저녁에는 체력을 비축한다. 이게 그들의 가장 기초적인 생존전략이었다.
그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는 문화가 인류사 전체에 뿌리내리고, 그게 세대를 거친 지금까지 유지되어왔다······.
이게 바로 내 추측이었다.
······그렇다면.
‘그러면 씨발···.’
인류가 이미 지구의 정점에 선 지금은, 주위에 우리를 위협할 동물따윈 없고 어두운 밤조차 전구과 led로 정복해버린 현재 문명은.
굳이 아침에 일찍 일어날 필요가 있는가?
‘있냐고 새끼들아.’
갑작스레 올라오는 억울함에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지하철 손잡이에 압력이 들어간다.
지금 이순간 나는 한 명의 혁명가고, 인류사의 계몽가였다.
썩어빠진 관습따위는 갈아치울 필요가 있다.
사람은 자유의지가 있으며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존재였다. 또한 개개인의 개성이 다 달라 새벽에 자는게 알맞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침에 등교를 강제하는 건 야만인과 다를 바 없는 일처리다. 탄압과 강제의 역사였다!
학교는 지금이라도 새벽 학기제를 도입해야 한다!
···하고 나는 지옥철 안에서 외쳤다.
물론 속으로.
“···후.”
속으로 억울함을 토로하니 좀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개소리인거 안다. 개소리인거 아는데, 이런 식으로라도 분을 삭여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른 아침부터 학교에 끌려가는 상황을 견딜 수가 없으니.
‘···졸립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위에서 무언가가 짓누르듯 눈꺼풀이 감기고 있었다. 시야에 잠시 암막이 쳐지며 세상이 어두워질 때마다, 뇌가 스위치를 잠시 끄며 작동을 정지한다.
아침에 흔히 겪는 졸림 증상이다.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렇게 중력에 의해 고개를 아래로 떨구기를 몇 분, 나는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번역은─]
열차 안에 울려 퍼지는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밖으로 나온다.
현재 시간은 8시 32분. 강의 전까지는 아직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
뻑뻑한 강의실 문을 최대한 섬세하게 열어 안으로 들어간다.
들어가자 마자 들려오는 소란.
“자자, 오늘의 죄인 참수식이 있겠습니다. 라인 관리라는 핑계로 로밍 한 번 안 오다가 그대로 게임까지 말아먹은 버러지 미드녀석. 앞으로.”
“아니, 내가 성장해야 한타를 이기지. 당해준 너네들이 병신이라니까?!”
“반성하지 않는 모습이 심히 괘씸하오니 오늘 음료수 당번은 이새끼로 하겠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왔다고 생각했는데도 강의실은 이미 사람이 꽤나 차 있었다.
어김없이 룰 얘기를 하고 있는 뒷자리 여자애들, 앞자리에서 숨 쉴 틈도 없이 수다를 떨고 있는 남자애들.
처음에는 누가 누군지도 몰랐었는데 한 일주일 정도 다니니 대충 어떤 식으로 무리가 지어져 있는지 보였다.
‘대충 두 무리.’
첫 번째로는 항상 시끄럽게 룰 얘기를 하고 있는 뒷자리 여자애들. 체육교육과랑 친해 보이며 존재감이 큰 게 특징이다.
두 번째로는 항상 시끄럽게 수다를 떨고있는 앞자리 남자애들.
“─아니 그래서 어제 누나가 나한테 뭐라 하는 거야.”
“헐··· 넘 하당.”
항상 수다를 떨고 있긴 하지만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잘 몰랐다. 애교 섞인 목소리가 좆같아서 일부러 안 들으려 하는 의도도 있었다.
그래도 이 반에선 가장 활발한 듯 보여서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리더는 외모관리를 열심히 하는지 나름 잘생긴 편이었고.
‘이름이 한호철이었나?’
상남자 같은 이름에 비해 행동은 씹게이스럽기 그지 없지만.
“아, 맞당~ 나 이번에 새로 가방 샀는데 어때?”
목소리에 한껏 비음이 낀 모습.
가끔은 자기 외모를 이용해 남자애들한테 애교를 부리기도 하는데 그걸 우연히 목격할 때마다 속이 뒤집혔다.
남자가 부리는 애교라··· 뭐, 여성에겐 통하는 듯 보이니.
어쨌든 가장 규모가 커 보이는 무리는 저 두 무리였다.
반에서 제일 존재감 크고 활발한 애들.
뭐, 그 이외에 다른 학생들도 많지만 대부분 둘 셋으로 이루어져 있어 무리라 부르기도 애매하고.
저 두 무리에 비하면 그다지 존재감이 크지도 않았기에 아직 머리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고작 30명 남짓한 반 안에도 여러 인간군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을 단기간에 다 외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잠시 자리에 앉아 기다리자 교수님이 들어오며 수업이 시작되었다.
자, 이제 지루한 시간을 버틸 때였다.
*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입니다. 모두 수고하셨고요 다음주에 뵙시다.”
“수고하셨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차례대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모두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었는지 마지막 수고하셨습니다에 기쁨이 담겨 있었다.
나도 그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속으로 작게 미소지었다.
마침 다음 수업도 없었기에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폭신한 매트리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거라 생각하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크흐흐, 기다려라 매트리스 내가 너의 음탕한 속살을 마구잡이로 범해주마!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애들은 벌써 다 나갔는지 강의실은 벌써부터 조용했다.
남은 것은 미처 필기를 다 못해서 남아있는 여자애들 몇 명 정도.
얼마 정도 남아있을까 궁금해서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두 세명 정도의 여자애들이 강의실에 고르게 분포해서 앉아있었다.
각자 친구들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지 아니면 먼저간건지 다들 혼자였다.
‘어? 잠깐.’
순간 이건 기회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친다.
아까까지야 전부 무리 지어있어서 말을 걸기가 좀 부담스러웠지만 혼자 남아있는 지금이라면 충분히 대화가 가능한 상황.
나, 소심한 성격의 이세원. 다수한테 약하고 소수한테 강해지는 타입. 지금이라면 충분히 안면을 틀 수 있는 기회였다.
좋다 이대로 돌진하자.
그렇게 움직이려는 순간, 한 여자애와 두 눈이 마주쳤다.
1초도 안 되었을 법한 짧은 시간, 가히 찰나와 다름 없는 시간동안 상대의 동공과 내 동공이 겹친다.
“······!”
그리고 바로 눈깔을 내려까는 상대방. 나를 향하던 시선이 그대로 아래로 쳐박힌다.
“······.”
나는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흐음.’
과연 저 눈깔 내리깔음엔 무슨 의미가 담겨있는 걸까. 이성과 눈을 마주쳤다는 부끄러움에 못이겨 고개를 떨군걸까, 아니면 단순히 내 눈깔이 사나워서 그런걸까.
‘뭔가 후자같은데···.’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궜다면 귀가 빨개지거나 암튼 뭐가 신체반응이 일어나겠지, 저렇게 눈치를 보진 않을 것이다.
‘나 눈빛이 사납나···.’
그 때 들려오는 ‘이세원’의 기억.
(이세원): 나 예전부터 눈빛이 무섭다는 얘기를 많이 들음
알아 시발, 알고 있으니까 얘기해 줄 필요 없어. 그건 나도 많이 들은 얘기니까.
슬픈 일이었다. 내 내면은 이렇게 소심하고 여린데 남들은 겉모습만 보기에 그걸 몰라준다니.
“···후.”
이래서야 다가가고 싶었던 마음도 사라지기 마련이다. 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강의실 밖으로 나섰다.
“아! 찾았다!”
그리고 밖으로 나서자 들리는 누군가 외치는 소리.
나는 소리가 난 곳으로 곧장 고개를 돌렸다. 이은별이 밤하늘을 닮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순간 인상이 찌푸려진다.
‘쯧.’
저번 사건 이후로 이은별이 곱게 보일리가 없었다. 날 가지고 내기를 하려던 그 모습은 아직도 앙금이 남아있었다.
허나 인상을 찌푸린 것도 잠시, 나는 얼른 인상을 풀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응? 무슨 일이야?”
자아, 가면을 쓰는 거다. 굳이 상대방에게 속마음을 보일 필요는 없는 법.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어느정도 밝은 얼굴로 그녀를 맞이했다. 다행히 알바하면서 쌓은 표정관리 실력이 어디 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아··· 다른 게 아니라.”
내 앞에 선 그녀가 잠시 뒷목을 긁적였다. 아무래도 뭔가 할 말이 있는 모양.
곱게 뻗은 두 다리가 바닥 위에서 우물쭈물 거렸다.
그러길 잠시, 그녀가 갑자기 머리를 아래로 숙였다.
“죄송해요. 저번주에 일 사과하러 왔어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