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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13화 (13/125)

〈 13화 〉 13, 저녁식사

* * *

저번에 말한적 있나 모르겠지만. 나는 술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딱히 술맛 자체를 좋아한다거나, 술이 달달하다거나 해서 좋아하는 건 아니다.

술 자체는 언제 먹어도 존나 쓰고 맛없었다.

코를 찌르는 알코올 향과 입안에서 맴도는 쓴맛은 언제 먹어도 적응되지 않는다.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과일 맥주나 샴페인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 어떻게 먹어도 뒤에 남는 쓴 맛은 나에게 어울리는 종류가 아니었다.

따라서, 내가 술맛 때문에 술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였다.

그럼에도 내가 술을 좋아한다고 하는 이유.

간단했다.

술을 먹었을 때 그 특유의 알딸딸한 느낌이 좋았기 때문이다.

적당한 어지러움과 약간의 나른함은 내게 기분좋은 감정으로 다가왔다.

복잡한 머리를 조금은 지워주기 때문이다.

또한 알딸딸한 느낌으로 맞는 쌀쌀한 밤공기는 나름의 감성이 있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하고는 술을 자주 마셨지.’

나도 고등학교를 막 졸업했을 때는 친구가 꽤나 있었다.

드디어 성인이 되었다는 감정과 함께 고등학교 때의 진창 마시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제 막 입시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미성년자 때는 금지되었던 게 뚫렸다는 자유감, 그리고 대학에서 떨어졌다는 우울감까지.

여러감정이 합쳐진 채로 친구들과 술집 탐방을 다녔다.

일단 내일은 잊고 오늘 맘껏 즐겨보자는 생각으로.

친구들도 대학교에 입학하기엔 아직 2~3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었기에 정말 마음 놓고 자유롭게 놀 수 있었다.

그러다가 애들이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도 재수를 도전하며 자연스레 시간이 없어지게 되었지.

시간이 없어지니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졌고 자연스레 사이도 어색해지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먼저 연락하기도 두려운 것이다.

덕분에 혼자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아지게 되었다. 뭐, 혼자 마시는 술도 나름 운치 했었으니.

‘···생각해 보니 우울해지네.’

됐다 시발, 원래 인생이 그런거다.

콘크리트 숲속, 사람 가득한 무인도 속에서 한 번쯤은 느낄만한 외로움이었다.

나는 그게 조금 이른 시기에 찾아왔을 뿐이다.

나는 생각하고 넘기기로 했다.

그래도 오늘은 기분이 좀 좋은 날이었다.

오늘은 무려 술 상대가 있지 않은가.

심지어 여자! 남고를 나왔었던 나에게는 생소한 종족이었다.

“여기 근처가 술집 거리에요.”

이은별, 그녀가 내 옆에서 걸으면서 말했다.

남색빛을 뛰는 머리카락이 움직일때마다 찰랑거린다.

그녀의 머리는 낮보다 밤하늘에 더욱 잘 어울려 보였다.

현재 우리는 도심가 중심을 거닐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 강의가 끝났을때는 오후 3시쯤으로 꽤나 이른 시간이었다. 태양이 하늘에 밝게 떠있을 시간,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에서야 술집에 가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동안 다른 곳에서 놀았기 때문이다. 뭐 노래방에 간다거나, 오락실에서 시간을 보낸다거나···.

4시간 정도를 마치 데이트하듯 여러군데를 돌아다녔다.

나름 괜찮은 시간이었다.

그녀가 아무리 친화력이 좋다고는 아직 남남이라는 어색함을 지울 수는 없다.

이제 안면을 튼지 이틀정도밖에 안 지났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4시간의 유흥은 어색한 사이를 풀어주기 충분했다. 말도 좀 편하게 트고, 그녀가 어떤 성격인지 알기에는 충분했다.

“혹시 어디 좋아하는 분위기 있어요?”

기본적으로 밝고 싹싹한 애였다.

그리고 행동 하나하나에서 자신감이 엿보였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거리낌없이 말을 거는 모습이나, 주변 시선에 상관없이 웃고 떠드는 그 모습이나.

기본적으로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눈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예의를 지킬 수 있을 때는 지키고 즐길 때는 즐긴다.

그야말로 엄청난 사교성의 인싸가 아닐수가 없었다. 덕분에 옆에 있는 나도 더불어 인싸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상황에서 은은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마치 주변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것 처럼.

그 덕분에 살짝 기가 세보이는 것모습과는 다르게 사람에게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살짝 위화감 있는 미소긴 하지만···.’

뭐 어때, 그 정도는 인간미일 뿐이다.

나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글쎄, 솔직히 어디든 상관없는데.”

“오빠 상관없다는 말이 그냥 말 안 하는 것보다 나쁘단 거 아세요?”

나는 쓴웃음 지었다.

주변 거리를 잘 모르는데 어떡하라는 건가.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음식점 하나를 생각하고 입에 담았다.

“음, 그러면 주변에 이자카야 있어?”

이자카야란 일본식 분위기를 하고 있는 술집을 뜻했다.

은은하면서도 따듯한 분위기를 품고있는 술집이다. 단 둘이 가기엔 나쁘지 않은 장소였다.

여름보다는 겨울에 어울리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사실 그다지 상관있는 건 아니다.

“예! 있습니다. 안내할게요.”

내 말에 이은별이 충성을 하며 걸어나갔다.

앞장서서 걸어나가는 그 모습에 나는 괜히 피식 웃음이 튀어나왔다.

이자카야는 얼마 가지 않아서 도착할 수 있었다.

술집 거리라더니 진짜 군데군데에 술을 파는 음식점이 놓여있는 모양. 지금보니 길거리에서 웃고 떠드는 남녀가 꽤나 보였다.

‘새벽에 나오면 꽤나 더럽겠네.’

군데군데 버려져 있을 담배꽁초와 전봇대 근처에 부쳐질 김치전들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나는 그녀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옹···.”

안은 꽤나 고급스러웠다.

나무 목재로 이루어진 식탁, 방석이 깔린 목재 의자, 그리고 어두운 주변을 밝히는 주황색의 등불까지.

저녁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이런 종류의 음식점은 밤에 와야 분위기가 더 살았다.

우리는 가게 끝의 구석진 자리에 가서 앉았다. 조금 기다리자 종업원이 메뉴판을 주고 돌아간다.

“오빠 뭐 드실레요?”

“너가 먹고 싶은거 골라. 가게는 내가 정했잖아.”

“음··· 그럼 어묵탕이랑 닭꼬치 어때요?”

“좋지.”

술은 우선 소주 2병을 시켰다.

그러자 은별이 눈을 살짝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오빠 술 쎄요?”

아무래도 초반부터 2병이나 시키자 놀란 모양.

“응?”

나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2병이면 한 명당 1병 정도인데?

고작 한 사람당 한 병 정도일 뿐이다.

나로서는 이제 막 기별이 갈 만한 양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뭔가 걱정스러운 눈이다.

이은별은 약간 말하길 뜸들이더니 조심히 말했다.

“남자들 평균 주량이 소주 0.7병 정도라던데···.”

0.7병?

뭐냐 그 애매한 숫자는. 심지어 양도 좆만했다.

아무래도 남녀역전 세상에선 주량도 역전된 모양이었다.

“조심해야죠. 벌써 저녁인데 집 갈 때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용모만 보면 자기가 지킴 당해야 할 것처럼 보이는데, 오히려 내가 걱정을 받고 있었다. 그 괴리감이 묘했다.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 그 정도로는 안 취하니까.”

“오··· 술 좀 마시나 봐요?”

“조금은, 너는?”

“저야 존나 쎄죠.”

이은별이 짐짓 허세를 부리며 제 가슴을 쫙 펼쳤다.

흉부를 내밈에 따라 볼록한 가슴이 눈앞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 나는 아래쪽으로 향하는 시선을 가까스로 잡았다.

‘후···.’

때때로 하는 저 무심한 행동이 나를 당황하게 했다.

당당하게 보고 싶었지만 아직 그러기엔 거리감이 있었다.

솔직히 말해 답답한 거리감이었다.

가능하다면 줄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기회에 은근 슬쩍 묻고자 했다.

“주문 나왔습니다.”

곧이어 종업원이 식탁위에 각종음식을 놔두었다.

가스버너위에 올라간 어묵탕이 보글보글 끓었고, 닭꼬치 위에 뿌려진 소스에서 윤기가 흘렀다. 그 먹음직스러운 모습에 우리는 얼른 술을 깠다.

맛있는 안주가 있는데 술을 안 깐다니 죄악이나 다름없었다.

“우리 건배 할까요?”

“그래.”

그녀가 가볍게 제안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짜안

잔이 부딪치고 술잔이 비어진다. 술은 나름 빠르게 비워졌다. 이런 자리에선 제정신을 유지하기 보단 적당히 머리를 멍청하게 만드는 게 좋은 법이었다.

알딸딸한 정신은 사람이 말을 하기 좋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수다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처음에는 별 시답잖은 얘기에서 시작해서 점차 분위기가 풀어져 간다.

슬슬 무슨 말을 해도 넘어갈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그 쯤에서 나는 물었다.

“갑자기 술은 왜 먹자고 한 거야?”

어쩌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속되던 의문을.

“에이, 술 먹자는데 이유가 필요한가요. 그냥 먹고 싶으니 까 얘기해 본 거죠.”

내 질문에 이은별이 답했다. 어물쩡 넘어가려는 듯한 대답이었다. 내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다.

“진짜 그게 다야?”

내가 눈치가 좀 없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알수 있었다.

어제 처음 만난 사람한테 밥을 권하고, 오늘은 갑자기 술을 마시자니.

‘진도가 너무 빠른데.’

아무리 생각해도 빠르다.

사교성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교성을 발휘하느냐 마냐의 일이었다.

마치 호감을 가진 이성에게 작업하듯 다가오지 않는가.

실실 웃는 저 모습이나, 리액션 해주는 모습이나.

전부 누군가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취하는 제스처처럼 보였다.

그래서 궁금했다. 그녀가 나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그러는 것인지.

나는 그런 의문을 가진 채 그녀에게 물은 것이다.

지금 이건 작업 거는 것인가? 일부러 호감작을 하고 있는 건가?

만약 맞다면 나는 기꺼이 당해줄 자신이 있었다.

따먹을 생각이라면 기꺼이 따먹혀 주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목소리에 나도 호감을 잔뜩담아 이야기 했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속뜻이 전해지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전해져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인가.

“···글쎄요~?”

그녀는 실실 웃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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