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11화 (11/125)

〈 11화 〉 11, 심연(??)

* * *

──간과하고 있었다.여기가 어떤 세상인지.

[우뚝솟은거포: 마초남과 순정남이 서로 쥬지로 검대결 하는 거 그려주세요.아 참고로 마초남은 내공을 이용해서 중검(中?)이라는 검기를 쥬지에 두르는데···]

깜빡하고 있었다.

이상성욕이라는 게 얼마나 뒤틀릴 수 있는지.

[두부스님과의 질펀한하룻밤: 빡빡머리의 잘생긴 스님캐가 두부로 자위하는짤 그려주삼. 이때 두부는 약간 강도있는 부침용 두부로 해주고.]

방심하고 있었다.

그 이상성욕이 남녀역전 세상으로 넘어와서 얼마나 끔찍해질 수 있는지.

현재 내 눈앞에는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루미너스: 저기요.. 혹시 룰의 아라라는 캐릭터의 눈이랑 여우귀를 떼서 제 자캐 뷰지에 넣어줄 수 있나요? 아 참고로 제 자캐는 루미너스라는 캐릭터인데 눈은 파랗고 머리는 백발의 여자 모습이에요. 루미너스는 쾌락과 흥분이 반반씩 뒤섞인 표정으로 아라의 고통받는 표정을 반찬삼아······]

“오··· 씨발 신이시여.”

너무나도 끔찍한 광경에 나는 주님을 찾았다.

심연(??).

너무나도 깊은 심연이 이곳에 강림해 있었다.

공허와도 같은 우주속에서 광기를 퍼트리고 다니시는 니알라토텝님도 각혈할 만한 새끼들이 지금 여기에 있었다.

눈이랑 귀는 시발 왜 떼. 그걸 또 왜 보지에 넣고, 진짜 미친놈인가?

도저히 정신상태를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반쯤 따지듯 물었다.

[Hala: 아니 진심으로 그런 게 꼴려요?]

원래 구매자에게 이런 태도로 나오면 안 된다.

어쨌든 나에게 돈을 내겠다는 소비자였으니.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는 게 보통은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건··· 이건 아니다!

아무리 내가 돈이 간절하다고 해도 거를건 걸러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방의 정신상태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내가 이렇게 묻자 상대방이 태연하게 대답한다.

[루미너스: 에..? 상대방 표정을 보면서 내 자캐가 가버리는데..그게 왜 안 꼴려요...?]

마치 세상의 당연한 진실을 말하듯.

하늘은 위에있고, 땅은 발밑에 있다고 외치듯.

오히려 질문을 하는 나를 이해 못 하겠다는 듯 말하는 저 뉘앙스.

미친년이었다.

심지어 저게 ‘놈’이 아니고 ‘년’이라는 사실에 나는 다시 한 번 경악했다.

[Hala: 차단합니다. 다음엔 이런 요청 하지마세요.]

[루미너스: 아니; 아무거나 신청해도 된다면서요;;]

[루미너스: 야]

[루미너스: 이 시ㅂ]

[상대방을 내보냈습니다!]

“···하.”

피곤하다.

그림 그리기는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정신력이 바닥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신청자가 한참이나 남아있었다··· 내 홍보글에 어그로가 끌리면서 꽤나 많은 사람들이 모인 탓이었다.

내 게시글이 갤러리 인기글에 박히면서 지금도 꾸준히 조회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덕분에 반 장난식으로 신청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았다. ‘마음대로’라는 내가 무심코 뱉은 말에 진짜 지좆대로 신청하는 놈들이 대다수다.

“제발 정상적인 것 좀 나와라.”

나는 남은 신청자들 중에서 부디 정상적인 의뢰가 있길 바라며 문자들을 확인해 보았다.

[쇼타쥬지착정야스: 오네쇼타물 그려줘. 순진한 쇼타캐릭을 가슴큰 거유 언니가 꼬드겨서 따먹는 내용으로···]

오··· 이건 그나마 받을만 할 거 같았다.

내 취향은 아니라지만 그 정도 요청이라면 충분히 받아볼만 했다. 앞의 지옥같은 신청들보다는 낫지··· 그렇게 생각하며 요청을 수락하려던 찰나였다.

‘···잠깐.’

남역 세상인데 쇼타면···?

[Hala: 근데 그거는 아청법에 저촉되지 않나요?]

[쇼타쥬지착정야스: ㅇㅇ 걸리면 ㅈ대긴 해 ㅋㅋ]

그걸 참 자랑스럽게도 말한다.

[Hala: 법에 저촉되는 건 안됩니다;]

[쇼타쥬지착정야스: 그러면 그 반대버전도 괜찮음. 쥬지 큰 오빠가 순수한 로ㄹ······]

“야이 미친새끼야!”

나는 곧장 상대방을 강퇴했다.

[상대방을 내보냈습니다!]

후, 하마터젼 좆될뻔 했다.

굶어 뒤지는 게 아니라 내 인간성이 뒤질뻔했다.

“왜에··· 왜 정상이 없어 시발······.”

나는 반쯤 우는 심정으로 다음 신청자를 확인했다.

[나는나팔이 좋아: 괄약근에 나팔꽃고 나팔을 부는 사구마 부탁드립니다. 여기서 사구마는 마치 똥싸는듯한 얼굴로······]

[Hala: ㅋㅋㅋ]

[상대방을 내보냈습니다!]

나는 책상에 엎드려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흐흐···.”

걍 굶어뒤질까.

이런 개같은 세상. 이렇게 남자고추나 그려가며 살 빠엔 그냥 굶어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왜 나는 행복할 수 없는거야···.”

다른 소설 보면 다른 남자들은 여자 잘 따먹고 행복하게 다니던데··· 왜 누구는 방구석에 쳐 앉아가지고 남자꼬추 그려달라는 요청만 받고 있어야 되는거지······?

‘존나 개빡치네.’

순간 개빡쳐버린 나는 곧바로 갤러리에 들어가서 글을 하나 올렸다.

­­­

Hala:

야 나 실은 남자인데 나한테 대줄 여자 없냐

나 나름 잘생긴 편이고, 성욕 존나 이빠이한데 인터넷엔 혐짤밖에 없어서 해소를 못 하고 있다

적당히 예쁜 여자중에 나랑 만날 사람 없냐

­­­

이미 내 멘탈은 탈탈 털린뒤였다. 지금은 뭣 짓을 저질러도 다 괜찮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랜선만남을 고민했다.

보통 이런 커뮤니티에서 이성이란 묘하게 우대받는 경향이 있었다. 성욕이란 건 누가 뭐라 하든 꽤나 강력한 욕망이었으니.

어떻게든 빨아서 뭔가 얻어보려는 인간들이 많은 법이었다.

[오..진짜?]

[ㅋㅋㅋ ㅈㄹ]

[나 실은 남자임(출렁)]

[나도 실은 남자인데 뷰지달렸다고 사람들이 안 믿어주더라ㅋㅋㅋ]

[이 새끼 이상 성욕자들 때문에 정신 놨네 ㅋㅋㅋ]

[네가 그리는 그림 취향을 보고,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라]

하지만 역시나 개판이 나는 댓글창.

다들 안 믿는 분위기였다. 하긴 아무런 증거도 없이 다짜고짜 저런 말 하면 나같아도 안 믿을만 했다.

[인증이 없으면 뭐다?]

그래서 나는 가볍게 인증을 하려고 했다.

핸드폰을 키고, 대충 상체 부분을 찍어서 올리면 사람들도 믿어줄 것이다. 지금의 나는 멘탈 치유가 필요했다.

소위 ‘여왕벌’이 받는 성욕섞인 호감을 나는 받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냐 역시 하지말자.”

중간쯤 포즈를 잡던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 몸까지 노출하면서 관심을 끌고싶진 않았다. 괜히 이러다가 신상털릴지도 모를 일이고.

특히 나같이 음지에 한 발쯤 걸친 사람들은 신상을 특히 조심해야 했다.

랜선만남이 궁금하긴 했지만 솔직히 여기서 만난 사람이 정상일 확률도 적고.

하아.

나는 한숨을 한 번 쉬고 핸드폰을 내려놓으려했다. 너무 지치는데 그냥 커미션은 포기하고 굶어뒤질까···.

­우웅

그런데 그 때 울리는 알림 하나. 나는 무의식적으로 다시 핸드폰을 확인해보았다.

[ㅇㅇ(118.220): 님 근데 아직까지 신청받나요?]

평범한 질문글. 나는대충 키보드를 두드려 대답을 해주었다.

[Hala: ㅇㅇ네 받습니다]

[ㅇㅇ(118.220): 오 그럼 나도 신청해봄]

아무래도 커미션을 신청할 모양. 안 그래도 이제는 신청글을 대부분 확인한 상태라 여유가 좀 있긴했다.

나는 제발 이번엔 정상적인 사람이 들어오기를 두 손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오픈채팅창을 열어 새로생긴 방을 확인해 본다.

[레이프합법화: ㅎㅇ]

벌써부터 글렀군.

“···하.”

한숨이 나왔지만 일단 들어보긴 해야지. 나는 친절한 말투로 상대방에게 물었다.

[Hala: 네 무슨 그림을 신청하고 싶으신가요?]

[레이프합법화: 네 그게]

[레이프합법화: 아 ㅋㅋㅋ]

[레이프합법화: 말하기 좀 그렇긴 한데]

생각보다는 순수한 모습. 저 끔찍한 닉네임과는 대비되게 은근 이런게 쑥스러운 듯 했다.

[Hala: 괜찮아요 편히 말해보세요]

어차피 앞에서 심연을 보고왔기에 웬만큼 어두운 것들은 충분히 버틸자신 있었다. 일단 뭐라 지껄이든 들어는 줄 수 있다.

[레이프합법화: 그러면 레이프물로 하나 그려주삼]

[Hala: 네네]

그러면 여자가 남자를 강제로 하는건가··· 생각보다 평범했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히 그려볼만 한 신청이다.

고려해봐도 괜찮겠지.

그렇게 나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였다. 상대방이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말을 이었다.

[레이프합법화: 아뇨아뇨. 여자가 남자를 따먹는 거 말고, 그 반대로]

“옹···?”

내 생각이랑 살짝 다른 게 튀어나왔다.

[레이프합법화: 평범하게 학교 다니는 여대생을 잘생긴 남자가 강제로 범한다는 컨셉으로···]

그러니까··· 역간물을 그려달라고? 아니 역간물이 맞나? 평범한 레이프물인가?

헷갈렸다. 남역세상이니까 역간물이 맞겠지.

뭐가 되었든 나는 생각했다.

“괜찮은데?”

이정도면 충분히 그려줄만 했다. 그런 류의 남자는 저쪽에서도 은근 그렸던 캐릭이었으니 자신도 있었다.

“드디어!”

나는 활짝 웃음지었다. 드디어 내가 그릴 수 있을 만한게 나왔다!

별것 아닌 사실일텐데도 그 사실이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그동안 얼마나 고단한 일들을 버텨왔는가!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레이프합법화: 가능할까여?]

[Hala: 아휴 당연하죠 하루, 아니 적어도 이틀 안에는 그려드리겠습니다]

새끼, 맘에 들었다. 드디어 나를 이 심연의 구렁텅이에서 나오게 해주다니.

거지같은 닉네임과는 다르게 꽤나 착한 친구였다.

좋다. 드디어 첫 일거리였다.

무려 5만원 짜리 일거리.

내 생명선이 5일 연장되었다는 사실이 슬프면서도 기뻤다.

“얼른 그려야지.”

시간이 없었다. 나는 약간 설레는 마음으로 타블렛 펜을 잡았다.

그렇게 내 첫 의뢰작은 역간물이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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