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10, 시작부터 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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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시브에서 그림쟁이가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하게도 그냥 그림만 올려서는 수익을 낼 수가 없었다.
팩시브는 그냥 그림을 올리는 커뮤니티일 뿐이지, 기부천사가 아니니까. 조회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돈이 들어오는 시스템은 아니었다.
물론 유명세는 얻을 수 있겠지만 고작 그 뿐, 나의 배고픈 배때지를 불려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짤쟁이는 어떻게 돈을 버는가?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후원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이다.
팩시브로 유명세를 얻고 그 유명세를 이용해 후원 사이트에 따로 후원자를 확보해둔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만화작품 하나를 그렸고 이걸로 돈을 벌려고 한다.
그러면 일단 이걸 팩시브에 올릴 때 일부러 일부분만 올리는 것이다. 중요 부위에 모자이크를 한다거나 아니면 아예 작품 절반을 잘라버린다거나.
그리고 풀버젼은 후원사이트에 올려두었다고 링크를 걸어둔다. 그럼 내 작품이 맘에들은 사람들은 돈을 내고서라도 그 작품을 보러오는 것이다.
상대는 질 좋은 딸감을 얻어서 좋고, 나는 돈을 얻어서 좋고.
이게 대표적인 짤쟁이의 돈버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나도 예전 세계에서는 이러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 이게 꽤나 수입이 짭잘했는데, 잘나가는 그림작가들 같은 경우엔 한 달에 3000만원을 넘게 벌기도 했다.
심지어 이게 좋은 게 일단 묵혀두기만 하면 돈이 계속 들어온다는 것이다.
작품은 계정이 유지되는 한 영원히 남아있었고 유입은 어떤 식으로든 들어오는 법이니.
마치 계속해서 우상향을 그리는 주식그래프와 같았다.
그래서 어느정도의 경력이 있는 음지작가라면 대부분 후원 사이트에 계정을 만들어두곤 했다.
일단 만들어두고 대충 작품 몇 개만 올려도 부수입이 들어오니까 안 만들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건 어느정도의 경력과 유명세가 있어야 사용가능한 방법이다.
이제 고작 그림을 4개 올린 나한테는 힘든 루트였다.
누가 내 이름을 알고 찾아와서 돈을 바치겠는가.
하물며 시간 또한 오래 걸렸다.
후원을 받는 작품은 그래도 어느정도의 퀄리티는 챙겨야 했으니. 그림 한장 띡 그려 올리는 것보단 스토리가 있는 만화를 그려 올리는게 일반적이었다.
대충 작품 하나를 구상하고 그림을 그린다고 해도 최소한 일주일이란 시간이 걸린다. 일주일 뒤면 굶어뒤질 나에게 후원 계정이란 너무 이른 이야기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두 번째 방법은 의뢰를 받는 것이었다. 이름하야 커미션(commission).
상대방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고 나는 그에 대한 노동비를 받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굳이 경력 필요 없이 어느정도의 실력만 있다면 충분히 돈을 벌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시간도 그리 오래걸리는 편이 아니다.
그저 상대방이 원하는 요구를 그림으로 구현해주는 것 뿐이었으니. 나 같은 경우엔 이삼일 정도면 작품 하나를 끝마칠 수 있었다.
아니, 간절함이 더해진 지금이라면 그 절반인 하루 만에도 가능하다!
“좋아써, 바로 조진다!”
곧바로 마음을 먹은 나는 곧바로 패기있게 글을 싸질렀다. 글을 싸지르는 커뮤니티는 BC.
내가 팩시브에 공지하나 올린다고 사람들이 알아주진 않는다. 무엇보다 나는 하꼬작가였으니 이렇듯 홍보가 필요했다.
Hala:
안녕 반갑다 커미션 받는다.
https://paxiv.net/·········
여기는 내 팩시브 주소고 보다시피 그림은 어느정도 그린다
장당 9만원이고
하루 안에 다 그려준다
원하는 그림 있는 애는 아래 링크로 연락줘라
https://open.kakau.com/······
일부러 페이는 살짝 세게 불렀다.
아무렴, 다른 걸 몰라도 그림 실력 하나는 자신 있었다.
원하는 대학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고작 그것 뿐.
원래 세계에서는 꽤나 이름 날리는 야짤러였단 말이다.
실제로 야짤을 그렸던 1년동안 그림실력이 상당히 늘기도 했었다.
그쪽에서 생활할 때는 장당 20만 원 넘게 받고 그릴 때도 많았다.
그러니까 9만원 정도면 내 수준에 비해 아주 싼 가격이었다. 하여 나는 자신감이 있었다.
···헌데.
[갸아악! 씨발!!! 내 눈!!!! 아무생각없이 눌렀다가 눈 테러 당했네 시발 ㅋㅋㅋㅋㅋㅋㅋㅋ]
[들어가자마자 사지 절단난게 눈 앞에 있네 홀리 쉣;]
[경력도 없는 하꼬새끼가 9만 원? ㅋㅋㅋㅋㅋ 양심 뒤져버리셨어요? ㅋㅋㅋㅋ]
[내가 이새끼 양심 찾아서 뒤져봤는데 ㄹㅇ 1도 안 남아있더라]
[말투 거만한거 봐라 ㅋㅋㅋㅋ]
하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아닛?”
어째서? 객관적으로 봐도 잘 그린 그림인데?
깔끔하고 가는 선, 세세하면서도 매력적인 명암, 피의 유체역학까지. 훌률한 반실사 그림체였다.
여기서 배경만 제대로 넣는다면 웬만한 일러스트랑도 비빌 정도였다.
나는 키보드를 두드려 채팅을 쳤다.
그래도 거만해 보인 건 맞은 거 같으니 이번엔 존댓말을 곁들여서.
[Hala: 아니 여러분 이 정도 그림에 9만원이면 그래도 싼 거예요; 심지어 야짤인데, 여러분은 여러분의 행복에 그 정도 투자도 못 하세요?]
[오..]
[그런 것 같기도..?]
[확실히 이 정도 퀄이면 낼 만한 가치가 있음 ㅇㅇ]
다행히 내 눈물 섞인 호소가 통했나보다.
망가져가던 민심이 점차 회복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성욕에 호소해야 한다. 성욕만큼 민심을 끌어올리기 좋은 수단이 없었다.
하지만 곧바로 달리는 다음 댓글들.
[아니 퀄은 좋은 건 알겠는데 솔직히 9만원은 좀 부담스러움; 얘가 뭔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ㄹㅇ ㅋㅋ 그렇긴 함. 9만원이면 치킨이 4마리인데ㅋㅋ]
[우리같은 방구석 처녀새끼한테 돈이 어디있다고 ㅋㅋ]
[님 처녀 아니잖아요]
[? 맞는데?]
[책상 위에 1000원짜리 딱풀이 섹파 아녔음?]
[이 씨발아]
“음···.”
나는 침음을 흘렸다.
이래서 섣부르게 커미션을 받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름값이 없으면 실력이 좋더라도 제 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좀 더 경력을 쌓고 의뢰를 받고 싶었는데, 돈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확실히 9만 원이 비싼 돈이긴 했다.
그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일반인들 중에서 고작 눈요기 한 번 하겠다고 9만원을 바치는 사람은 확실히 적을만 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채팅을 쳤다.
특별히 출혈 서비스다.
[Hala: 좋습니다. 그럼 7만원에 받겠습니다.]
7만원이면 딱 정가였다. 비싸다고 뭐라 할 수 없겠지.
[오 ㅋㅋ]
[새끼 장사좀 할 줄 아누 ㅋㅋㅋ]
좋다. 만족스럽다.
7만원이면 일주일 정도는 버틸 수 있는 돈이었다.
생명 연장과 함께 민심까지 챙기다니. 고작 2만 원으로는 못 버는 커다란 가치다.
만족스러운 결과에 나는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웃으면서 카카우 채팅을 열려던 찰나···.
다시 한 번 댓글이 달린다.
[어? 잠깐만 이새끼 그림, 며칠 전에 도배테러 했던 새끼가 올렸던 그림 아니냐? ㅋㅋㅋㅋㅋ]
마치 과거의 업보라는 듯, 수면위로 올라오는 기억.
동시에 그 기억을 상기시키기라도 한 듯 유저들 몇 명이 추가로 댓글을 달았다.
[어? 진짜네 ㅋㅋㅋㅋㅋ]
[으윽.. 머리가..으윽... 씨발새끼야!!!!]
[어딘가 익숙한 그림체다 했더니 그 새끼 그림체였누 ㅋㅋㅋㅋ]
어어?
[야이 씨발! 그때 우리가 얼마나 좆같았는지 아냐!!!]
[아니 아직도 궁금한 게 대체 첫 번째 그림에 여자는 왜 그린 거임? 님 레즈임?]
[이분 양성애자랍니다. 글 내려주세요.]
[남자일수도 있자나]
[정신병자 아닌 이상 남자가 저딴 그림을 왜 그림;]
민심이··· 민심이 추락하고 있었다!
며칠전에 일어났던 도배테러 사건을 녀석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댓글창에서 수많은 욕설이 갱신된다.
너한테 커미션을 죽어도 안 맏기겠다는 불매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게 다 테러범 새끼 때문이다. 어그로좀 끌겠다고 고어짤과 여캐알몸을 번갈아가며 올리던 새벽의 그놈이 기억났다.
망할, 대체 어떤 민폐덩어리 새끼가 도배를 쳐 한거야?
‘···나구나.’
나였다.
홍보한다고, 반응 보겠다고 도배한 게 나였지. 유동 분신술까지 써 가면서 참 열심히도 도배를 했었다.
허 시발, 며칠전의 내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래선 안 된다.
“민심을 잡아야 해.”
타타닥!
나는 키보드를 움직여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Hala: 아니; 테러를 한 게 저도 아닌데 왜 그러세요. 저도 억울한 입장입니다;]
사실 테러범이 나라 억울할 거 하나없지만.
어쨌든 억울했다!
어차피 우회 아이피로 했던 도배라서 얘네들은 내가 한 짓인지도 모른다. 익명성 앞에서 보자면 테러범이랑 나랑 생판 남일 뿐이다.
증거가 없으면 곧, 내가 한 말이 사실이었다.
어차피 시팔 세상에 진실따윈 중요치 않은 법이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억울함을 호소할 필요가 있었다.
[Hala: 어떤 씹새키가 테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양심을 걸고 얘기합니다. 저는 진짜 도배같은 거 한적이 없어요ㅠㅠ]
지금 나는 의문의 테러범에게 똑같이 피해를 받은 불쌍한 짤쟁이다. 그저 한명의 선량한 피해자다.
나는 제발 이 진심이 담긴 호소가 통하기를 빌었다.
그러나,
[ㅋㅋ 그러기엔 네 그림에 당한 피해자가 너무 많다]
[어차피 누군가는 받아야 할 업보다. 달게 받아라 ㅋㅋㄹㅃㅃ]
[앞으로 네 그림은 불매운동 한다]
“하······.”
한숨이.
자동으로 나온다.
최선의 수라고 생각했던 행동이, 부매랑 처럼 돌아와 완전한 악수가 되어 있었다.
“으··· 이세원 멍청한 새끼야······.”
어쩔 수 없었다. 성난 유저들을 달래려면 단 하나의 방법밖에 없었다.
가격을 더 내린다.
[Hala: 하.. 그럼 당분간 5만원으로 커미션 받겠습니다. 부디 이걸로 노여움을 풀어주소서..]
[오 ㅋㅋㅋ]
[흠흠..내 그대의 정성이 갸륵하니 함 관용을 배풀어줌세]
[5만원 야짤 커미션 개꿀 ㅋㅋㅋ]
그제서야 활활 불타오르던 민심이 점차 식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민심 회복했으면 됐지. 지금 내 상황에 5만원도 감지덕지였다. 대충 2주 정도 할인가 유지하다가 정상가격으로 돌려놓으면 애들도 만족할 것이다. 그 다음부터 조금씩 가격을 올리면 되겠지.
나는 거기서 대충 미래설계를 그려나갔다.
[ㅋㅋ근데 야짤이면 진짜 아무거나 신청해도 되는거임?]
···그래서 저 질문에 대충 대답했는지도 모른다.
다른 생각을 하느라.
[Hala: ㅇㅇ 네 웬만한 건 다 받습니다]
[ㅋㅋ]
[ㅇㅋ]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선 안 됐다.
나는 아직 몰랐다. 남녀역전 세상에서의 이상성욕은 어떻게 발현되는지. 어떤 심연이 자리잡아 있는지.
이윽고, 오픈채팅방으로 사람이 들어온다.
[나는야스캇매니아 님이 오픈채팅방에 입장했습니다!]
[두부스님과의 질펀한하룻밤 님이 오픈채팅방에 입장했습니다!]
[쇼타쥬지착정야스 님이 오픈채팅방에 입장했습니다!]
“···아?”
그 아득한 닉네임들에, 나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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