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7, 레깅스 그녀
* * *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때. 당시 나는 꽤나 삐뚤어져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당시의 하루는 너무 지루했으니까.
하루 몇 시간씩 반복하는 크로키와 모작··· 그리고 그게 끝나면 다시 도형을 보며 양감을 잡는다.
실력 향상을 목표로 몇 시간씩이나 저 짓거리를 하지만, 정작 실력은 느는 것 같지도 않고.
내 옆에 있는 녀석들은 이상하게 나보다 훨씬 앞서나가는 것만 같아서 기분은 다운되어만 갔었다.
그리고 그런 기분 속에서 다시 하루 일과를 반복··· 성격의 어느 한 부분정도는 삐뚤어지기 충분한 환경이다.
스트레스가 쌓여 있었다고 봐도 되리라.
그래서 당시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했다.
나는 이렇게 노력하는데 왜 쟤는 나보다 잘 하는거지?
분명 똑같이 연습하는데 왜 쟤가 나보다 실력이 잘 늘지?
지금생각해보면 참 볼품없는 질투심이지만, 어쨌든 당시의 나는 그랬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만한 곳이 필요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잔인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딱히 그로테스크한 걸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뭔가 심오한 예술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그린 것 또한 아니다.
그럼에도 저런 그림을 그린 이유······ 단순했다.
내 안에 분탕충의 기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그린 잔인한 그림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렸다.
어? 저새끼 왜 잘그리지?
어? 저새끼는 하루종일 그리는데 지치지도 않나?
어······? 화나네?
···놀랍게도 당시의 나는 이런 사고회로를 거쳤고, 이 사고회로를 걸치면 그런 부류의 그림을 풀었다.
상대도 좀 꼴받길 바라면서.
‘아악! 내 눈!’
‘이 새끼 씨발! 제발 너 혼자 봐!’
‘낄낄.’
그때 애들 반응이 참 재밌었지.
새벽시간에 관리자 몰래 혐오짤을 올리던 새끼들이 이런 기분일까? 상대방이 좆같아할수록 내 기분은 더욱 좋아졌다.
즐거움이란 마치 비커속의 물과 같아서 안을 가득 채우려면 상대방의 감정을 훔쳐올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등학교의 나는 잔인한 그림을 자주 그렸다.
설령 보여주진 않더라도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이상한 그림을 그리는 게 어느덧 취미가 되어 있었다.
그런쪽의 그림 실력이 향상되면 더욱더 혐오스러운 그림을 보여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쌓인 실력은 지금도 남아있었다.
“설마 그게 도움이 될 줄이야.”
덕분에 지금은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다.
나보다 절단면을 잘 표현하는 녀석은 없었다.
나보다 피의 유체역학에 대해 박식한 사람은 없다!
“만족스럽군.”
닉네임을 ‘Hala’로 바꾼지도 벌써 5일이 지났다.
그동안 커뮤니티는 난리가 나 있었다.
누군가가 내 그림을 새벽시간대의 갤러리에 도배했기 때문이다. 그 무분별한 폭격에 수많은 사람들이 당했고, 주소를 타고 온 사람들 때문에 내 팩시브 댓글을 개판이 나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씨이발]
[개새끼야! 너 때문에 갤러리 개판 났잖아!!]
[쓸데없이 그림은 잘 그려서 혐오감이 배로 드네;]
[존나 궁금한 게 이 그림에 순애 태그는 왜 들어가 있는 건가요?]
그리고 테러한 사람은 나다. 사람들을 더 끌어모으기 위해서였다.
물론, 태그를 덕지덕지 달면 굳이 도배테러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조회수는 높아진다.
굳이 비씨까지 가져가서 이렇게 욕을 바가지로 먹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배홍보를 한 이유···.
‘반응을 봐야 한다.’
간단했다. 그곳만큼 직설적으로 평가를 해주는 곳은 없었으니.
아무리 ‘이세원’의 기억이 있다곤 하더라도 바로 역전세계에 적응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분명 어느 사소한 부분에서는 차이가 날게 분명했다.
그 간극을 알아내야 한다. 그 간극을 알아야 소비자층의 수요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의 고어 야짤이다.
이것만큼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취향도 없었으니 간극을 알아내기 쉬울 거 같았다.
봐라, 지금도 댓글창에서 호불호가 열심히 갈리고 있었다.
[oh! is so good!!]
[꼴알못 쉐끼들 이게 안 꼴린다고?]
[ ㅜㅑ ㅜㅑ 생체딜도 개꼴리네 ㅋㅋ]
전체 비율에서는 확실히 소수이지만, 분명히 있는 소비자층.
놀랍게도 세상엔 사람 팔다리가 절단나도 꼴려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내가 첫번째로 공략해야 할 소비자층은 바로 이들이었다.
‘생체딜도가 꼴리는 군··· 메모.’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내 팔로워 숫자를 보았다.
현재 내 팔로워 숫자는 150.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올려놓은 그림이 4개 밖에 없다는 걸 생각하면 꽤나 빠른 성장속도였다.
한 마디로 순조롭다. 역시 야짤은 옮았다.
‘정신적 데미지가 좀 쌔긴 하지만···.’
남캐그림에 잔인함을 섞으니 받는 데미지가 좀 줄기는 했다. 하지만 정신적 데미지가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은 우람한 좆이 아니라 커다란 가슴이다.
그리고 싶은 것을 못 그리니까 마치 입시때로 돌아간 기분까지 들었다.
이건 안 좋다.
‘조만간 방법을 찾아야겠어.’
취미로 내가 원하는 걸 그린다던가, 소비자층을 만족시키면서 나도 만족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아본다던가.
어쨌든 방법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정신이 피폐해질 것 같았다.
[이번역은 ○○○역입니다. 내리실 분은 오른쪽 문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멍 때리고 있자 어느새 목적 역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지하철에서 내렸다.
지금은 대학교를 가고 있었다.
저절로 한숨이 튀어나온다.
“하···.”
가기 싫다.
수업도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고, 애초에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너무 피곤했다.
그리고 시발 아는 애가 없으니, 혼자 너무 뻘줌했다.
특히 쉬는 시간! 다른 애들은 서로 떠들고 장난 칠 시간에 나 혼자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고 있다.
괜히 눈치가 보이게 되는 것이다.
“진짜 자퇴 마렵네.”
그래도 어쩌겠어. 돈을 냈으니 가긴 가야지.
오늘 수업은 미시경제학과, 경제 통계학.
둘 다 뭔소린지 모르겠는 수업들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만큼 다른 애들도 몰라 보인다는 것.
그리 좋은 대학이 아니라서 그런지 공부를 하는 애와 공부 안 하는 사람이 확연히 나눠져 있었다.
덕분에 어느정도 암기만 하면 중간 성적 정도는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어제 그 부분에선 원딜을 지켰어야지!”
“상대 숟가락이 주제도 모르고 앞구르기 하는데 그걸 참아? 일단 난 못 참는 부류야.”
“됐고, 망나니 새끼야. 오늘 음료수는 네가 쳐 사라.”
교실 안으로 들어가니 여느때처럼 5:5 내전 얘기를 하는 뒷자리 여자애들이 보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체육교육과 애들한테 또 진 모양이었다.
‘쟤네들은 맨날 내전하나.’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조용히 자리에 가서 앉았다.
하필 남은 자리가 쟤네들 근처 자리밖에 없어서, 하는 수 없이 근처에 앉았다.
앉자마자 핸드폰을 확인해 본다.
현재 시간은 8시 43분.
아직 교수님이 들어오시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나는 이 자투리 시간동안 다시 그림이나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일상의 소소함 즐거움이다.
이따금씩 조회수가 늘어나 있는 걸 보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도 일단은 학교니까, 밝기를 최대한 줄였다.
다른 사람이 보면 곤란해질 게 뻔했으니까.
밝기를 줄여 다른 사람이 내 핸드폰을 못 보게 하는 것이다.
아침의 학교에서 야짤을 쳐 보고 있는 남대생이라··· 이것도 꽤나 꼴림 포인트가 아닐까.
이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팩시브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회수를 확인하려는 그 순간······.
쾅!!!!!!
갑작스럽게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들어온다.
푸른색빛이 감도는 듯한 검은 긴생머리에, 푸른색 야구모자를 한 여자였다. 모자를 써서 얼굴의 일부를 가렸음에도 갸름한 얼굴형이 그녀가 예쁘단 걸 알려주고 있었다.
“새끼들아! 대령할 음료수는 준비해 두었느냐?”
그리고 그 여성이 뒤쪽 자리로 걸어온다.
아까까지 롤얘기로 떠들고 있던 여대생들이 있던 자리였다.
나는 그때까지도 그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몸매가 오졌기 때문이다.
‘······와.’
과하지 않게 적당히 커다란 가슴, 잘록한 허리, 그리고 거기에 호리병처럼 이어지는 골반까지.
전체적으로는 슬랜더 체형인 거 같은데 나올 데는 다 나온 여자였다.
순간 모델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아오 좀··· 문 좀 살살 열라니까.”
“히히, 그것보다 음료수. 내가 애들 거까지 다 받아오기로 함.”
눈을 못 떼겠다.
아니, 왜 이러지··· 요새 야동을 못 봐서 그런가.
뜻밖의 자극에 몸이 눈 돌리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특히 저 아디다스 레깅스··· 미친 학교에 레깅스를 입고 온다고?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이게 과연 남녀 역전 세상인가?
얇은 나일론으로 만들어진 레깅스가 골반에 딱 붙어서 안 그래도 좋은 몸매를 적나라하게 강조하고 있었다.
“···응?”
이윽고, 그녀가 시선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린다.
나는 그 때가 되서야 겨우 시선을 돌릴 수가 있었다.
존나 엄청난 질량이다. 블랙홀인줄 알았다.
‘설마 들켰나···?’
솔직히 너무 뻔히 쳐다봤긴 했는데.
아무리 남역세상이라도 욕망섞인 눈빛은 들키기 꺼려지는 법이었다. 나는 부디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랐다.
“···?”
다행히 그녀는 눈치를 못 챘는지 시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야 얼른 음료수우. 지금 사러 가자아.”
“아, 알았어 새키야. 간다 가.”
그들은 그렇게 유유히 강의실 밖을 나갔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 들켰겠지.’
그때는 몰랐다. 그녀와 내가 어떻게 엮일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