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5, 첫 등교
* * *
대학이란 어떤 곳일까? 사실 이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대학은 그냥 대학이니까. 보통은 머릿속에 딱 떠오르는 이미지 자체로 충분했다.
일단 지식백과의 설명에 의한다면 이렇다.
『여러 학문분야를 연구하고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함양하는 고등교육기관.』
참으로 어렵게도 정의해 놓았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어느 한 분야를 정말 전문적으로 배운다는 것이다. 초·중·고등학교 때 우리가 국영수과사 등의 과목을 고루고루 배웠다면 이제 대학은 그보다 넓은 과목중에서 하나를 선택해 전문적으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한쪽 분야에 특화된 전문적인 지식인을 만들어내는 공간.
그리고 더불어 하나의 사회이기도 하다.
이제 갓 성인이 된 20대의 청년들이 모이며, 함께 친분을 쌓으며 공부한다.
여럿이서 스터디 모임을 가져보기도 하며, 전공에 대해 서로 논의하며 지식을 쌓고 교양을 쌓는다.
그러면서 가끔 술 마시며 친목질도 다지고, 그렇게 사교성과 지식을 고루 쌓는 게 대학교의 목표인 것이다.
적어도 나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대학교의 희망편일 뿐이다.
20대 초반에 딱 자기 진로를 결정하며, 그 진로에 맞는 과와 대학에 들어가길 성공하고, 거기서 또 열정적으로 임해 자기계발과 인맥 모두 거머쥐는 사람은 흔치않았다.
꿈이란 쟁취하기 어려운 것이고, 재능은 찾기조차 힘든 것이었으니.
세상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대충 대학에 몸을 맡기고 일단 시간을 끄는 이들.
잠시 결정을 유보해둔 채 물 흘러가듯이 입학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대학에서는 많은 비율을 차지할 것이다.
적당히 등급이 되는 과, 취업잘되는 과를 선택해서 들어가고 무작정 다닌다. 자기가 과 자체에 관심이 없으니 공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여기서 자기가 사교성이 있다면 어느정도의 대학 라이프를 즐기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엔 아예 나가떨어지는 경우도 더럿 있었다.
이쪽의 나, ‘이세원’은 후자에 속했다.
일단 대학이나 다녀보자는 생각으로 대학에 왔지만 생각과는 다른 대학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사경고까지 받은 애가 얘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이세원’의 똥을 치우기 위해 대학교를 가고 있었다.
‘내가 왜 가야하는지···.’
잠시 속으로 이런불평을 하며 한숨을 쉬었다.
뭐 어쨌든 제적은 면해야 했으니까.
지금까지 내놓은 돈이랑 시간이 있는데 제적은 너무 아까웠다. 일단 등교는 해봐야지.
[이번역은 ○○○역입니다. 내리실 분은 오른쪽 문으로─]
곧이어 지하철에서 안내음이 울리며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남녀역전 세계라 그런가 안내음의 목소리도 깔끔한 목소리의 남자였다.
나는 좌석에서 일어나 터벅터벅 밖으로 나갔다.
출근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꽤 많았다.
덕분에 안 그래도 더러운 눈매가 더욱 찌푸려진다.
‘왜 시발 9시 수업이야.’
피곤해 죽을 것 같다. 아침 6시에 자서 2시에 일어나는 나에게 아침 등교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면서 시발을 얼마나 남발했는지···.
탈주닌자 ‘이세원’의 마음을 약간이나마 이해 할 수 있었다.
‘이세원 너는 언제나 이런 싸움을 해오고 있었던 거냐구.’
그나마 다행인점은 학교와의 거리가 가깝다는 점.
일부러 자취방과 가까운 대학을 골랐던 건지, 가는데에는 20분이면 충분했다. 진짜 존나 다행이었다.
이윽고 도착한 강의실 문 앞. OO관 502호라는 명패가 문 앞에 보인다.
현재 시간은 8시 52분. 다행히 아직 시간은 충분했다.
“후우···.”
강의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낯선 장소는 언제나 떨리는 법이었다.
특히 나같은 아싸 찐따한테는 더더욱. ‘이세원’ 이 새끼 인간관계를 뒤져보니까 대학에서 사귄 친구도 없어 보였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나는 재수생이다. 비록 1살 차이이긴 해도 처음 친해질 땐 약간의 벽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세원’은 다수한테 쪼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먼저 다가가지도 않았고 말이다. 덕분에 맨 처음 친해질 기회를 놓쳤고, 무리들끼리는 이미 친해진 후였다.
“그러니까 시발 그 때···.”
“야! 오늘 체육교육과랑 5:5 내전 뜨는데 참여할···.”
“꺄하하! 그게 진짜야?”
그렇게 잠시 서있자 문 뒤에서 애들끼리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여자들끼리 서로 욕하고 장난치는 소리 남자들이 높은 목소리로 수다떠는 소리. 그 기묘한 광경에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제 슬슬 들어갈 때였다.
나는 최대한 조용히 들어가고자 생각하며 문고리를 돌렸다.
그런데···.
덜컥, 덜컥.
문이 안 열린다. 마치 무언가에 걸린듯이, 어딘가에 가로막힌 듯 문이 뻑뻑했다.
“아? 이거 왜이레···.”
그렇게 당황하길 잠시. 머릿속에서 ‘이세원’의 기억이 멋대로 튀어나와 상황을 알려준다.
(이세원) : 우리 대학교 좀 오래돼서 문이 다 녹슬어있음.
‘아하.’
그렇다면 힘을 좀 세게 주면 되겠군. 그리 생각하며 힘껏 문을 열자······.
쾅!!!!!!!!!!
마치 온 세상의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겠다는 듯.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내보겠다는 듯.
존나 세게 열리는 문.
강의실의 벽과 문이 서로 충돌하며 사방에 소음을 전파했다. 깜짝 놀란 사람들이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시에 들려오는 ‘이세원’의 기억.
(이세원) : 근데 힘주면 존나 큰소리 내면서 열림. 어그로 다 끌리니까 조심ㅋㅋ
불현듯 내가 좆됐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건 맨 처음 알려줬어야지 씹새끼야!!’
얼른 머릿속의 그놈에게 소리를 쳐봤지만,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5 : 5 내전을 계획하던 뒷자리 여자들, 앞에서 수다떨던 남자들, 조용히 핸드폰을 하고 있던 몇몇 학생들까지.
전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이곳으로 시선을 집중한다. 수십쌍에 달하는 눈빛이 오로지 나를 향해 있었다.
“······.”
“······.”
지독하리만치 어색한 침묵. 영겁같은 몇 초가 흐른다.
‘시발, 시바알······.’
쪽팔려서 죽을 거 같다. 나는 이런 시선을 버티지 못 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
결국 시선을 버티지 못한 내가 얼른 자리로 들어갔다. 최대한 무표정을 가장하면서, 가장 구석진 자리로.
이 어색한 공기는··· 나는 모른다. 푸는 방법도 모르고, 풀 자신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조용히 자리에 앉는 것 뿐이었다.
그래도 내 최선이 통했던 걸까. 아이들은 그제서야 내게서 시선을 떼고 서로 떠들기 시작했다. 가끔씩 나를 흘끗흘끗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참을 만 했다.
‘자퇴하고 싶다···.’
그렇게 들어온 지 몇 분 만에 자퇴가 마려워질 무렵.
드디어 교수님이 들어온다. 50대 정도의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출석을 불렀다.
“김우성.”
“네.”
“강윤미.”
“네에.”
앞 학번부터 차례대로 이름이 호명된다. 내 학번은 중간정도에 걸쳐있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나 내 이름이 불렸다.
“이세원?”
“네.”
대답하자 교수님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눈이 외외라는 듯 크게 떠져 있었다.
“오오, 이세원 학생 출석했군요? 이거 오랜만입니다. 하마터면 영영 못 보는 줄 알았네요. 호호호.”
그러더니 혼자 무슨 말을 해준다. 입으론 웃고있었지만 눈은 딱히 웃는 거 같지 않아보였다.
그 말의 속뜻을 알아채기란 어렵지 않았다.
이른바 꼽주는 거였다.
‘시발.’
지금까지 수업에 안 나오고 뭐 했냐는 거다.
교수님들은 당연히 내 학사경고 소식을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그들이 출석을 기록했을 테니까.
여태까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가. 제적위기가 되니 슬금슬금 나오는 모습이 곱게 보일리가 없었다.
‘누군 학교 다닐 줄 알았냐고···.’
잠시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걸 그가 이해할 리가 없다.
“하하······.”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어색하게 웃는 것 뿐이었다.
입꼬리를 어거지로 올려서 미소를 만들어줬다. 이게 내 최선이었다.
교수님도 더 할말은 없는지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자자, 그럼 수업 시작합시다.”
그가 펜을 잡고 화이트보드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수업의 시작이었다. 이제 떠들던 학생들은 집중할 시간.
그러나 아직까지도 강의실 안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와, 저 분 오셨네. 이번학기엔 처음 보는 것 같다.”
“아까 문 열 때 봤냐? 박력 넘쳐서 오줌 지릴 뻔했다.”
내 뒷자리에 있는 여자애들이 나를 보고 소곤거렸다. 제 딴에는 조용히 말한다는 것 같은데 나한테는 다 들렸다.
서로 킥킥대며 뭐라 뭐라 떠든다.
근처의 남자애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저 형 좀 이상한 거 같애···.”
시발 왜 갑자기.
“응? 무슨 일 있어?”
마침 근처의 남자도 비슷한 생각을 한 듯 했다. 목소리에 비음이 섞인게 살짝 깨긴 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을 대변해 주어서 마음에 들었다.
“아니, 내가 저 사람이랑 비슷한 곳에서 자취하거든? 거리도 가깝고. 근데 어젯밤에 갑자기 소리지르는 소리가 들리더라···. 무슨 못 볼 거라도 본 것처럼 큰 소리로 비명 지르던데 덕분에 깜짝 놀랐어.”
그러나 남자의 논리는 타당했다.
머릿속으로 기억 하나가 스쳐 지나간다.
‘아.’
어제 통장 잔고를 확인했을 때의 일이었다.
그게 들렸구나.
‘미친, 조심 좀 할 걸···.’
아니 근데 어쩔 수 없었다. 갑자기 돈 천만원이 사라지고 빚이 600만원이나 생겼는데 어떻게 소리를 안 질러?
불가항력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뼈아픈 실책인 것도 맞았다.
저 남자는 충분히 나를 정신병자로 볼 만 했다.
‘하, 얼른 끝나라···.’
나는 마치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으로 수업을 들었다.
대학교의 첫날은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