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4화, 내 통장 잔고 12만 원
* * *
“으윽!”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누군가가 내 머릿속을 멋대로 휘젓는 기분이었다.
내 기억이 아닌 이질적인 것들이, 마음대로 내 뇌 속으로 들어와 어설프게 자리잡았다.
허억, 허억.
숨이 가빠 왔다. 정신이 반쯤 나갔다 다시 들어온다.
어지러움에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하아, 하아··· 씨이발······.”
나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비틀비틀 일어났다. 그리고 정수기로 다가가서 물을 한 컵 떴다.
정신을 차릴 무언가가 나는 필요했다.
차디찬 냉수가 투명한 물컵에 쪼르르 담겼다.
꿀걱꿀걱
나는 얼른 냉수를 집어삼켰다.
목구멍으로 차가운 액체가 폭포수처럼 넘어간다. 덕분에 살짝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머릿속엔 이미 그 이질적인 기억이 자리 잡은 후였다.
“···지랄.”
나, ‘이세원’의 기억이다.
“이게 진짜라고?”
스스로도 개소리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머릿속으로 떠올려 본 건데 세상이 맞다고 말하고 있었다.
다름 아닌 그 이질적인 기억이, 머릿속을 헤집는 그 경험이 증명하고 있었으니.
설령 세상이 나 하나를 위해 트루먼쇼를 펼친다고 해도 내 머릿속을 헤집어 기억을 주입시킬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론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기현상.
그 기현상적인 경험이 기괴한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덕분에 나는 살짝 심란해졌다.
“아니···.”
무슨 예고라도 해주던가.
다짜고짜 데려오면 어쩌자는 거냐. 그곳에 남아있는 가족들은, 친구들은 어쩌고!
나는 장장 1시간 동안 앓는 소리를 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닥치면 사람은 적응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건 나도 똑같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해 온몸이 불안감에 휩싸였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후에는 결국 인정하기로 했다.
“···하.”
그래, 이미 떨어진 후다. 혼자 심각해해봤자 답도 안 나오고, 이 기현상에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없었다.
돌아갈 방법이 없으면 뭐··· 적응해야지.
생각해 보니 난 친구도 없었다.
나는 한탄하는 대신 들어온 ‘이세원’의 기억을 곱씹어 보기로 했다.
다행히 그 기억 자체가 나를 잡아먹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주체는 나였다.
어떤 느낌이냐면, 마치 열람실 한 구석에 따로 ‘이세원’의 기억이 전시되어 있는 느낌. 그래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그런 형식의 기억처럼 느껴졌다. 참 편한 기억방법이다.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녀석의 기억을 살펴보았다.
‘나이 22세, 이세원, 남자.’
키는 176cm에 몸무게 70kg.
일단 체형은 똑같고.
과거 또한 원래의 나와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였다.
똑같이 재능을 느껴봤고, 똑같이 절망해보았으며, 후에는 결국 실패했다. 두 번이나.
이 녀석도 전체적인 틀은 나랑 다를 바가 하나 없어 보였다.
그나마 다른 점이라면 이런 거.
근데 그 다른 점이 좀 컸다.
‘···이 새끼 고백도 받았었네?’
원래 세계의 나, 즉 본체인 아싸 이세원은 고백 따위 받아본 적 없다.
고등학생 때는 남고라 어쩔 수 없다 쳐도, 중학교 때는 남녀공학이었는데 고백 따위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좀 슬프지만.
그런데 이쪽의 ‘이세원’은 달랐다. 중학교 때는 두 번, 고등학교 때 한 번.
살면서 총 3번의 고백을 받아본 듯했다.
어째서인지 전부 거절했지만. 고백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누군가에게 확실한 호감을 줬다는 거 아닌가?
‘원래 이쪽 남자들은 다 이런가?’
살면서 고백 몇 번 받아보고 말이다.
머릿속에서 의문이 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로 내 얼굴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혹시 뭔가 차이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원래도 못생겼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는 나였다. 솔직히 말해서 본판 자체는 괜찮은 편이었다.
고등학교 때도 ‘이새끼 생긴 건 괜찮은데 성격은 왜 이따구지?’같은 말을 들어본 적도 있었다.
아무튼 외모에 어느 정도 자신감은 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적어도 평균은 되는 얼굴이었다.
문제는 그 이외에 어떤 차이가 있어서 ‘고백’이라는 결과까지 도출했냐는 건데······.
그렇게 거울을 확인해 본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
나다.
분명 나인데, 어딘가 업그레이드가 된 나였다.
피부는 잡티 하나 없이 깨끗했고, 코는 좀 더 오뚝했으며, 턱 선도 어딘가 날카롭게 변해있었다.
날이 선 눈매랑 그 아래 다크서클은 그대로긴 했지만··· 어쨌든 꽤 잘생겨 보인다는 것이다.
거울 버프를 빼도 그랬다.
“새끼 관리 좀 했나?”
생각보다 깔쌈한 내 얼굴에 감탄하면서 잠시 ‘이세원’의 기억을 뒤져보았다.
이쪽 세계의 ‘이세원’은 나보다 외모의 대한 관심이 높은 듯 했다. 가끔 밤에 얼굴 마사지를 한다거나, 스킨이나 클렌징 폼 등을 열심히 조사해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찾는 기억이 있었다.
사람은 관리하면 바뀐다더니, 고작 저 정도 노력만 들였을 뿐인데 본판이 충분히 빛을 발한 것이다.
좋다. 이건 좋은 소식이다.
예로부터 인상이 좋아서 나쁠 일은 없는 법이었다.
오히려 인생 개 꿀 빠는데 이것만큼 좋은 능력도 없었다.
“집안도 예전 내가 사는 곳이랑 비슷하고···.”
그 뒤로도 나는 한참동안이나 ‘이세원’의 기억을 뒤져보았다. 바뀐 세상에 잘 적응하려면 기존의 정보가 필요한 법이니까.
그런 점에서 녀석의 기억은 쓸만했다. 나랑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상식들이 이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1살부터 돌려대던 ‘이세원’의 기억은 어느덧 21살의 시작을 열람하고 있었다. 미대 입시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던 시절의 나다.
이때의 나··· 그니까 원래 나는 여기서 야짤 작가를 택했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내 능력을 살리면서, 돈도 어느 정도 벌 수 있는 직업이었으니까. 대한민국에선 살짝 불법에 걸쳐있긴 해도 당시의 나에겐 이만한 일이 없었다.
내 그림을 좋아라하는 수많은 사람들 덕분에 자존감을 회복하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의 ‘이세원’도 비슷한 길을 걷지 않았을까 예상했다.
녀석도 그림에 미련이 남았었을 테니까.
“응?”
···그런데 아니었다. 녀석은 이때부터 완전히 나와 다른 노선을 탔다. 뜬금없이 이상한 대학에 들어가더니,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대학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평범하게 학식 먹고, 친구 사귀고, 공부하고······ 다른 학생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아니, 아니다.
정정하겠다. ‘이세원’은 그것도 제대로 못했다.
잠시 제대로 다니는가 싶던 녀석이 점차 나태해져갔다.
수업이 듣기 싫다고 빠지고, 어쩔 땐 피곤하다고 빠지고, 후에는 아예 대학교에 발을 들이지도 않았다.
원래의 나도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는 있었다. 서로 술도 마셔보고 새 친구도 사귀어보고 CC도 해보는 상상.
녀석도 그런 걸 기대하고 들어간 듯한데, 막상 대학생활이 자신의 환상이랑 다르니 그대로 방에 틀어박힌 것 같았다
그 병신 같은 모습에 나는 속으로 한탄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하이고 이 병신새끼야···.”
그래도 수습할 건 수습하고 가야지. 차라리 휴학을 하던가 완전 결석이 말이 되냐.
그딴 건 현실을 부정하고 미뤄두는 것 밖에 안 되었다.
빨리 포기하던가, 아니면 끝까지 붙잡고 늘어지던가 해야지. 녀석은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이다.
덕분에 녀석이 내야할 학비랑 월세가 걱정되었다.
나가는 돈이 장난이 아닐 텐데.
···응? 잠깐만 월세?
‘그러고 보니 얘, 어떻게 자취하는 거지?’
나 같은 경우엔 그림 그려서 돈을 번다지만 녀석은 아니잖아?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곧장 핸드폰을 켜서 내가 자주 쓰던 은행 어플로 들어갔다. 이때만큼 가슴이 조마조마한 적이 없었다.
“설마 시발, 시발 아닐 거야.”
원래는 10,xxx,xxx정도 되는 금액이 써져있어야 한다.
내가 1년간 뼈빠지게 일해서 모은 돈이다. 설마 그게 없어졌을 리 없다!
나는 제발 그대로 있기를 바라며 잔고를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128,100₩]
현실은 참혹했다.
“꺄아아아아악!!!!”
진심으로 소리 질렀다.
애써 적응해가던 내 머릿속이 홀랑 다 타버리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이세원’의 기억이 더 잘 타라고 기름을 끼얹었다.
갚아야 할 학자금 600만 원이 넘음.
심지어 이 집 월세도 부모님한테 몇 번 빌린 거임.
“아아아악!!!!!!”
아니야! 이건 현실이 아니야아악!!!
너무나도 참혹한 광경에 나는 그만 정신을 놓을 뻔 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개백수에 가지고 있는 빚만 600이 넘는다고? 팩시브에서 가지고 있던 고정 독자층은 애초에 없었던 거라고?
‘이세원’ 이 개새끼야!!!!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어이가 없었다. 공포감이 온몸을 잠식했다.
마치 니알라토텝님이 내 앞에 있는 기분이었다. 니알라토텝···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600만 원짜리 빚이었던 것이다!
그 어떤 것보다 무서운 사실이었다.
“후··· 진정, 진정하자.”
한참을 발광하던 나는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그래, 어차피 지랄해봤자 바뀌는 건 없는데 그냥 인정해야지. 참으로 좆같은 사실이었다. 아니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으니 봊같은 사실인가.
나는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다시 녀석의 머릿속을 뒤져보았다.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걸 찾길 바랐다.
다행히 ‘이세원’은 계속 하던 알바가 있었다. 카페알바였다.
‘이세원’의 유일한 수익활동이었다.
“···오.”
근데 얼마 전에 그만뒀다고 한다.
“히히, 시발.”
이쯤되니 화보다는 웃음이 나왔다. ‘이세원’ 이 쓸모없는 새끼 같으니라고.
나는 녀석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그래 내가 다 해결해야지.
돈이든 뭐든 생각할 건 많았지만, 사실 지금 가장 급한 건 이거였다.
핸드폰에 와 있는 사무적인 한 문자.
[귀 학생은 20○○1학기 학사경고 대상자임을 알려드립니다. 성적이 향상될 수 있도록 학점관리에 최선을 다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사항은 학사지원팀을 방문해 주십시오.]
바로 학사경고 문자였다. 좀 있으면 너는 우리 학교 일원에서 배제되니 빨리 나오라는 내용.
아직 제적 처리는 되지 않은 거 같은데 거의 그 근처까지 가 있었다.
이걸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였다.
“후··· 가야지.”
간다. 학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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