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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야짤작가-3화 (3/125)

〈 3화 〉 3화, P도 미쳐버렸다

* * *

“···뭐지?”

편의점에서 나온 후 나는 생각했다.

‘원래 인싸가 저런건가?’

좀 이상한 여자였다. 뭔가 대화를 이어나갈 때마다 핀트가 어긋나는 느낌.

특히 마지막에 밤길에 남자는 조심해야 한다 말할 땐 대체 무슨 말을 하는가 싶었다. 근처에 빨간 마스크라도 활보하는 것도 아니고 원.

또 들어갔을 때 뻔히 쳐다보던 모습이나, 츄리닝을 뒤질 때 음흉하게 느껴지던 눈빛이나.

제 딴에는 몰래 본다는 것 같지만, 나한테는 뻔히 보였다. 솔직히 말해 어디 아픈 여자같이도 보였다.

‘뭐··· 세상엔 여러 사람이 있으니까.’

조금 찜찜하기는 했지만,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 살 건 다 샀으니까.

맥주 두 캔, 버터오징어, 그리고 과자까지. 이거면 밤을 지새우기엔 충분했다.

“충분하겠지.”

혼자 살다보면, 가끔 자기 의식에 잡아먹히는 경우가 있다.

주변에 이야기할 사람이 없으니 자꾸 부정적인 의식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 때는 과거에 실수했던 일이나, 실패했던 일이 이따금씩 머리속에서 재생되었다.

나같은 경우엔 일이 끝난 뒤나, 가끔 외로움에 시달릴 때 나는 자주 나타났는데 오늘이 마침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럴 때는 술이 제격이었다.

정신을 몽롱하게 해줘서 뭐가 내 생각이고 판단인지 불분명하게 해준다.

그냥 안주먹고, 술 마시고 하는 것만 해도 시간이 금방 죽어버렸다.

잡생각을 줄여주는 아주 고마운 친구인 것이다.

‘두 캔 가지곤 좀 부족하긴 한데.’

뭐, 어때. 대충 마시다 쳐 자면 되지. 아니면 보잘 것 없는 그림이나 그리던가.

그런 생각하면서 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밤공기가 시원하니 좋았다. 나는 밤공기를 즐길 겸 조금 천천히 걸었다.

“와···.”

“야, 저기 봐···.”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길거리를 걷는데 자꾸 시선들이 느껴지는 것이다. 마치 몸을 핥는 듯한 끈적한 시선들···.

심지어 그런 시선을 보내는 건 다 여자들이었다. 친구들과 술 마시고 돌아가는 여대생들, 회식에 끼어서 지쳐있던 회사원.

“······.”

“누나, 어디 봐!”

그리고 밤산책을 나온 듯한 커플까지.

길거리에서 지나칠 때마다 다 나를 슬쩍 쳐다봤다.

‘뭐, 뭐야.’

“아니, 그게 허허. 미안 절로 시선이 가네···.”

“어휴 여자들은 저게 뭐가 좋다고. 딱 봐도 몸 파는 일 할 거 같이 생겼구만.”

“자기야···! 들리겠어!”

지나가던 커플이 나를 보고 뒷담화를 깐다.

나는 살짝 어이가 없었다.

‘저 씨발놈이···.’

그럴 와꾸가 됐으면 했겠지. 누군 하고 싶지 않아서 23살 까지 순결지키는 줄 아나.

‘후, 참자.’

순간 빡이 쳤지만 나는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참았다.

나 이세원. 아싸 찐따이며 2명 이상에겐 본능적으로 분노조절을 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아무튼 그런 시선은 계속되었다. 아예 노골적으로 뻔히 쳐다보는 여성들도 있었다.

보통 여성들이 저런 시선을 보내면 은근 기쁠수도 있겠으나··· 영문을 모르겠으니 그저 무서울 따름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츄리닝 자크를 걸어잠그고 재빨리 자취방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

“···존나 뭐지?”

오늘 하루 존나 이상한 일 투성이군. 자취방에 돌아온 나는 츄리닝을 벗으며 생각했다.

여자들이 뭐 단체로 발정난 것도 아니고··· 덕분에 밤공기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빠른 발걸음으로 돌아와야 했다.

집 안에 들어오니 편안하고 따듯한 공기가 나를 사로잡았다. 고작 9평짜리 좁은 집에, 가끔 외로움에 휩싸이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만큼은 편안한 공간이었다.

나는 재빨리 술을 까고 그대로 컴퓨터 앞에 자리잡았다. 그냥 벽이나 보면서 술을 마실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아까 전에 그림도 못 올렸고···.’

대충 마감작업하고 이제 P로 시작하는 사이트에 투고해야 했다. 사이트의 이름은 팩시브.

그 누구든지 가입만 하면 자유롭게 그림을 업로드 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그림 커뮤니티 사이트였다.

하루에 올라오는 그림 갯수만 해도 2만 건. 당연히 하루 이용자 수는 그의 몇 배나 된다.

음지 양지 가리지 않고 그림을 업로드 할 수 있었기에 웬만한 그림쟁이들이라면 보통 팩시브에 가입되어 있었다.

나 또한 그런 그림쟁이들 중 하나였고, 나름 인지도 있는 야짤러였다.

그림체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 깔끔하면서도 특색있는 묘사, 탄탄한 기본기까지.

그런 이유에서 내 그림은 꽤나 인기있는 편이었다. 그 덕분에 돈도 모아서 월세도 낼 수 있는 거고.

꿀꺽.

그렇게 나는 맥주 한 모금을 마시며 팩시브로 들어갔다. 파란 상단과 함께 여러그림이 놓여진 메인 화면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바로 욕이 올라왔다.

“···씨발?”

H에 이어서 P까지 남자들이 뒤덮고 있었다.

섹시한 남캐, 큐티한 남캐, 여리여리한 인상의 남캐까지.

지금당장 메인의 인기순위에 올라와있는 그림만 이 정도였다. 그 아래로는 또 뭐가 있을지 나로선 상상조차 안 됐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냐··· 진정하자. 여기만 이런걸지도 몰라.’

그래도 일단 정신을 차렸다.

팩시브는 음지 양지를 통합하는 사이트라 가끔 인기 순위에 저런 그림이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트위터나 인스타를 타거나, 단순히 그림실력이 압도적으로 좋으면 저렇게 메인 화면에 노출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저건 양지다. 좀 더 음지로 내려갈 필요가 있었다.

나는 설정을 눌러서 검열기능을 확인해 보았다. 역시나 R­18, R­18G가 활성화 되어 있지 않았다.

살짝 안심했다. 그래, 그럼 그렇지. 아무렴 팩시브까지 이상해질리가 없다.

나는 그리 생각하며 R­18G를 켰다. 그리고 대충 최신 일러스트 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엔 절망밖에 없었다.

“오, 신이시여···.”

메인화면이 순한맛이었다면 여기는 매운맛.

아니 매운맛을 넘어, 크툴루 신화와 맞먹을 정도의 파괴력을 갖고 있었다.

여기를 봐도 거근, 저기를 봐도 거근··· 씨발 쇼타에 흑인 쥬지는 어떤 미친 새끼가 그린거야.

“니알라토텝이여···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내리시나이까.”

제가 당신 촉수로 촉수물 망가를 그려서 그러십니까······ 거 좀 그릴 수도 있지 우주적 존재께서 쪼잔하게 왜 그러십니까.

정신이 아득해지는 광경에 나는 얼른 팩시브를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잊어야한다.

알콜로 뇌를 씻어야 했다.

망설임도 없이 곧장 맥주를 원샷때린다.

“···크으.”

탄산이 넘어가며 목에 따끔함이 감돈다. 차가운 게 들어가서 그런지 머리가 살짝 차가워졌다.

‘왜 팩시브까지 저러지?’

덕분에 약간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저긴 테러 당하기 힘든데?’

히토비가 테러당하는거면 그래, 이해 할 수 있었다.

그쪽은 일러스트는 따로 받지 않고 만화만 받으니, 비교적 업로드수가 적은 편이었다.

누가 고히 간직하던 판도라의 상자를 풀었다면 1~2페이지 잡아먹는거야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팩시브는 아니다.

아까도 말했듯 하루 올라오는 그림의 양만 2만 건.

절대 한 명이 나선다고 테러할만한 공간이 아니었다.

설령 해봤자 잠깐 노출되다 사라질 뿐.

저렇게 아무리 내려도(총 10페이지까지 내려봤다.) 게이짤이 나오는 건 불가능한 것이다.

이상함을 느낀 나는 얼른 BC사이트를 들어가보았다.

별의별 갤러리와 별의별 놈들이 다 모이는 곳.

팩시브가 저 지랄이 났다면 갤러리도 높은 확률로 개판이 나있을 게 뻔했다. 그곳에도 딸쟁이는 모이는 편이니까.

아니, 꽤나 많은 비율이 딸쟁이다.

그래서 나는 기대를 품고 BC를 들어갔다.

이때만큼 개판을 기대했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갤은 참 평화로웠다. 평화로운 딸쟁이들이, 평화롭게 딸감을 논하며 딸쟁이들과 논의하고 있었다.

­­­

ㅇㅇ(128,131):

[본인 오늘 개꼴리는 야짤 찾음 ㅋㅋ]

쇼타가 흑고츄 세우고 울먹이는데 퍄퍄.. 개꼴리더라 ㅋㅋㅋ 덕분에 두 번 뿜었다

­ㅇㅇ(31,1): 주소

­ㅇㅇ(222,121): 주소 시발아

└ㅇㅇ(128,131): 응~ 너네가 알아서 찾아 ㅋㅋ

­­­

­­­

글러먹은나:

[잘생긴 남자한테 밟히고 싶다]

적당히 근육있고 잘생긴 남자한테 사정없이 밟히고 싶다

구둣발로 지근지근 밟히면서 경멸해하는 그 눈빛을 올려다보고 싶다...

­ㅇㅇ(117,58): 닉값미쳤고;;

­ㅇㅇ(203,170): 진짜 또라인가

­암갈비쥐: “가짜”

­­­

평소와 다름 없는 모습이었다. 평소랑 다름없는 정신병자들이 열심히 개소리를 싸대고 있었다.

여기서 논하는게 남자가 아니었다면 정말 평소의 모습일텐데.

“···허.”

어이없는 장면에 나는 탄식을 흘렸다.

이쯤되면 슬슬 다시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었다.

테러를 당한 게 아니라, 뭔가 내가 놓치게 있는 게 있음을.

어떤 위화감을.

‘그러고보니 오늘 하루종일 이상했지···.’

다행히 그 위화감은 쉽게 짐작되었다.

그럴만한게 오늘 하루종일 티를 냈으니. 잠깐 편의점 나갔다 오는 것 만으로도 그 위화감을 느낄 정도였다.

여자들이 이상하다. 아니 여자들뿐만 아니라 그냥 남녀 전부 이상했다. 남자들은 무슨 씹게이마냥 여자들한테 앵기고, 여자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변태적인 느낌이 있었다. 마치 머릿속에 무언가가 바뀐 모습.

‘그럼 뭐야.’

머릿속에 어떤 생각 하나가 필연적으로 스친다.

‘성별반전이라도 일어났단 건가?’

내가 생각해도 개소리 같은 말.

정말 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지껄이려는 무렵이다.

내가 한 말을 내가 다시 부정하려는 그 순간.

“으으윽!”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흘러들어왔다.

이질적이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기억. 분명 다른 상식인데도 어딘가 통하는 곳이 있는 경험.

그건, 이쪽 세계에 살던 ‘이세원’의 기억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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