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2화, 편순이 이지연
* * *
평소랑 다름없는 날이었다.
“삶이란 뭘까.”
이지연은 편의점에 출근하면서 생각했다.
이 짓거리도 어느덧 6개월 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편의점에서 6개월 정도면 별의별 진상들은 다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자신은 오후 5시부터 밤 12시 타임.
광범위한 시간대 덕분에 정말 별의별 진상들을 다 만나볼 수 있었다.
친구들이랑 단체로 와서 떠드는 급식들부터 시작해서, 회식 끝내고 술진상 부리는 아줌마까지.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잼민이들아 제바알~”
오늘도 잼민이들이 흘린 라면 면발을 치운다.
핵불닭면이 어지간히 매웠었는지, 컵라면들 주위로 주시쿨이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마실 거면 시발 좀 깨끗하게 마시지 테이블 위로 아주 홍수를 만들어 놓았다.
“허, 이건 또 뭐냐.”
연노랑 액체랑 새빨간 색이 섞인 무언가.
불닭소스랑 주시쿨이랑 섞은 것이었다. 도대체 이런 짓을 해서 무엇을 얻으려고 했던 것인지, 두 개를 연성해서 뭐를 만들려고 했는지 이지연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후우···.”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자신은 편의점 알바. 도망칠 수가 없는 입장이다. 이지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정리를 시작했다. 내일 아침에 그 잼민이들이 꼭 피똥을 싸기 바라며.
······.
그렇게 손님맞이하고 진열대 정리하고, 창고 물품 확인하고 하다 보니 시간은 금방 갔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어느덧 10시 30분.
퇴근까지 한 시간 반 정도 밖에 안 남은 상태다.
“······.”
초짜들이라면 얼마 남지 않은 퇴근시간에 막 태도가 풀어질 시간. 하지만 숙련된 알바인 자신은 지금부터가 진짜임을 알고 있었다.
지금이 어떤 시간대냐?
술을 진창 마시고 회식자리를 끝낸 40, 50대 아줌마들이 출몰하는 시간대였다. 머리에 넥타이를 매고 휘청휘청 걸어 다니는 꽐라들이 나타나는 시간대란 말이다.
잼민이들이야 잠시 참고 있으면 알아서 흘러가겠지만 꽐줌마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욕설이나 해코지를 당할 때도 있었고, 그보다 더한 경우엔 경찰까지 출동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니 되도록 조심해야 한다.
다행히 짬바가 좀 찬 자신은 그분들의 눈밖에 나지 않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우선 첫째.
‘웃는 얼굴.’
가로되, 웃는 얼굴엔 침 못 뱉는다 하였다. 그저 생글생글 웃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둘째.
‘밝게 인사한다.’
‘그 분’들은 인사성이 밝은 사람을 좋게 보는 듯 했다. 설령 피치 못 할 상황이 생겨도 ‘어 꼴받네?’ 이런 생각이 ‘그래··· 예의 바른 청년이니 한 번 봐준다.’ 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인사 한 번으로 이 정도 발전이라니. 그야말로 좋은 생존 수법이 아닐 수 없었다.
좋아. 이지연은 웃는 얼굴을 장착하고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어느 손님이든 와라.
친절하게 ‘접대’해주마.
──딸랑.
그렇게 들어오는 10시 30분 이후의 첫 손님.
이지연은 들어오는 손님을 향해 밝게 인사했다.
“어서오세······ 어?”
아니 하려 했었다.
그런데 들어오는 손님의 외모를 보고 그대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뚜렷한 이목구비. 오뚝한 코와 날카로운 턱선이 보인다.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가 편의점의 조명 빛을 받아 하얗게 빛난다.
상당히 잘생긴 얼굴. 어디 무명 연예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삐쭉 쏟은 머리카락과, 다크서클이 짖게 내리깔린 시니컬한 눈매가 요상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저 옷차림···.
‘흐미 남사스러운거···.’
나시, 반바지, 그리고 대충 걸친 츄리닝의 무심한 패션. 집에서 입기에는 이보다 편한 게 없지만, 밖에서 입기에는 꽤나 도전적인 복장이었다. 심지어 츄리닝도 반쯤 걸치다 말아서 한쪽 어깨가 그대로 드러나있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안다면서도 시선이 자연스럽게 쇄골 쪽으로 눈이 간다.
물 부우면 웅덩이 생길듯한 쇄골······.
“안녕하세요.”
그 시선은 남자가 물건을 가지고 카운터까지 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턱, 물건을 카운터에 내려놓는다.
그제야 이지연은 자기가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 미친, 미친년아!!’
뭔 변태 새끼도 아니고 남자 몸을 그리 뻔히 쳐다보냐! 당장 신고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이지연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당장이라도 바닥에 머리를 박을 듯 눈앞의 남자에게 석고대죄를 한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온 양이 된 것 같았다.
앞으로 남자의 반응에 따라 자신의 미래가 결정된다··· 빨간 줄이냐, 아니면 별일 없이 넘어가느냐.
보통 사람이라면 오만상을 찌푸리며 따질 게 분명했다. 이지연은 자신이 좆됐음을 직감했다.
“에이, 아닙니다. 추레하게 나온 제 잘못이죠.”
하지만 눈 앞의 남자는 간단하게 용서했다. 마치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일부러 농담까지 건네면서
이지연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
‘···천산가?’
설마 이렇게 쉽게 용서해주다니. 이지연은 마치 남성에 뒤에서 날개가 보이는 것 같았다.
새하얗고 성스러운 날개가.
“저, 계산해 주세요.”
그렇게 쳐다보기를 잠시, 곧이어 그 남자가 말했다. 그제서야 이지연은 자신이 편순이인 것을 자각했다.
“아, 죄송합니다! 얼른 계산해 드릴게요.”
오늘따라 실수가 많았다. 얼타는 거에 말도 더듬고.
진상들이 올 시간에 잘생긴 남자가 온 탓이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헤헤, 여깄습니다.”
이지연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물건들을 건네주었다. 맥주 두 캔과, 버터 오징어, 과자가 담겨있는 봉투가 손에서 손으로 옮겨진다.
“그런데 춥지않으세요? 요즘 밖에 쌀쌀하던데.”
그러면서 은근 슬쩍 물었다. 사실 대화를 좀 더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 초반에 병신 크리를 좀 터뜨리긴 했지만 애초에 이지연은 사교성이 밝은 인물이었다. 잘생긴 얼굴에, 어딘가 낯선 분위기. 이지연은 눈앞에 남자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다.
그리고 살짝 걱정도 되었다.
“그리고 밤이라 남자가 혼자 다니기 위험하기도 하고···.”
처음 날씨에 대해 물어보면서, 본 질문은 뒤에 숨긴다.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화법이었다.
저런 외모에 저런 복장이다. 대한민국 치안이 좋다고는 해도, 어떤 미친년이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심지어 요즘엔 묻지마 폭행범이라든자, 성폭행범이라던지 말이 많은 시기였다.
“?”
그 질문에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못들었다기 보다는 아예 질문자체를 이해못했다는 표정.
잠시의 침묵 끝에 나온 그의 대답은 이거였다.
“아아, 저는 상남자라 괜찮습니다. 안 추워요.”
상남자. 핀트가 살짝 어긋난 듯한, 그 어이없는 대답에 이지연은 피식 웃고 말았다.
“푸흡, 재밌으신 분이네요.”
“제가 한 재밌음 해요.”
생각보다 대화가 편하다. 과연 천사같은 분이셨다.
그래서 더욱 걱정이 되었다. 거리가 가까워서 저런 복장으로 편히 나온 것 같은데.
아까도 말했듯이 어떤 미친년이 나올지 모르는 세상이다. 이지연은 잠시 대화를 이어나가다가 다시 한 번 조언을 했다.
“그래도 밤에 나올때는 조심하세요. 언제 어디서 이상한 여자가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네?”
그리고 생기는 정적. 남자가 대체 뭔 소리를 하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고요?”
“네? 아뇨 그··· 이상한 여자들 많으니까 조심하라고···.”
그리고 정적.
“······.”
“······.”
다시 정적.
순간 이지연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챘다.
‘어? 너무 나댔나···?’
그래, 생각해보면 자신도 저 남자의 몸을 뻔히 쳐다봤었지 않나. 그런 주제에 변태새끼가 뭐라도 된 듯 충고하면 자신고 기분나쁠만 했다.
‘이지연 이 병신새끼야···.’
침묵이 이어진다. 남자는 오랫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그냥 넘어갈 생각인지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보니 얼마죠?”
이제보니 대화는 끝인모양.
이지연은 시무룩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네··· 7050원 입니다.”
남자는 그 말을 듣고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오른쪽 주머니, 왼쪽 주머니.
그러나 찾아봐도 뭐가 없는지 그의 인상이 약간 찌푸려진다. 그 찌푸림 조차도 분위기 있었다.
“아 씨··· 이게 왜 없지? 안주머니에 있나? 잠시만요.”
이윽고 남자가 추리닝 안 쪽으로 손을 넣는다. 순간 이지연은 당황했다.
‘!!’
추리닝이 나풀거리며 나시 안 쪽이 보였다. 푹 파인 쇄골, 은근히 넓은 어깨.
얇은 나시티 사이로 가슴도 보일락말락했다.
“아, 뭐지? 분명 가져왔는데.”
“아으, 아···.”
이지연은 눈 둘곳이 없었다. 얼굴에 홍조를 띄운 채 시선을 위쪽으로 향한다.
그럼에도 시선이 살짝씩 아래쪽으로 향하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대놓고 야한 것보다 은근히 야한게 더 꼴리다는데··· 지금이 딱 그짝이었다.
그의 뒤에있던 천사의 날개가 마치 박쥐날개처럼 바뀐다.
어느덧 천사가 인큐버스가 되어 있었다.
‘아니, 너무 무방비 한 거 아니야?’
혹시 그쪽 일하는 사람인가?
잠시나마 의심 될 정도였다.
한참동안의 스트립쇼 후.
“아, 여깄네요.”
그는 정확히 7050원을 주고 편의점을 나갔다. 그 발걸음이 너무 쿨해서 미쳐 잡을 생각도 못 할 정도였다.
“아···.”
이지연은 한동안 그 문짝을 바라보았다.
잠시 꿈을 꾼 기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