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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1화, H가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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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내가 그림을 그렸을 때.
나는 내가 재능이 넘치는 줄 알았다.
“세상에! 여보 우리 아이 그린 것 좀 봐요!”
“아니 진짜 우리 아들이 그린거라고?”
나는 어린 나이 치고는 꽤나 멋진 그림을 그렸었다.
첫 그림은 티비만화에서 자주 나오던 해골검사 캐릭터였는데, 선은 깔끔했고 고작 초등학생 주제에 명암도 어설프게 넣을 줄 알았다.
얼핏 보면 실제 전문가가 장난삼아 그린 팬아트처럼도 보였다. 고작 첫 그림에 그 정도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이야 이 정도면 천재네요~ 당장 화가로 데뷔해도 될 것 같아요.”
“그렇죠? 선생님? 우리 아이 재능이 있나 봐요.”
다른 사람이 느끼기엔 천재처럼 보일 것이다. 그래서 나도 내가 재능이 넘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입시미술의 길에 빠져들었다. 내 길은 여기밖에 없다고, 언젠간 잘나가는 웹툰 작가가 되겠노라고.
허나 그 각오에 비해 그림을 열심히 그리진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재능이 있었으니까.
다른 애들과는 달리 나는 몇 발자국 앞서 있었으니까. 실제로 그것은 맞았고, 교내 포스터대회 같은 데에 몇 번 나가서 상금을 타오기도 했다. 친구들도 나를 금손이라 불렀었다.
중학교 때의 나는 오만했다고도 할 수 있으리라.
“음··· 세원학생은 좀 더 노력해야 겠네.”
“이 정도로는 수도권 대학은 꿈도 못 꾼다.”
그런 오만은 고등반이 되고, 좀 더 큰 물에 들어가자 곧바로 깨졌다. 세상에는 나보다 재능있는 놈들이 너무 많았다.
입시 학원에서 빨간 사과를 진짜 사과처럼 똑같이 그렸던 녀석이 있었다. 애니 캐릭터가 좋아서 하루에 캐릭터만 20장 넘게 그려대던 미친놈이 있었다. 또는 아예 예고에 들어가서 이 길에 인생 전부를 건 녀석들도 많았다.
입시미술판엔 그런 애들이 수두룩했다. 나는 그걸 고등반에 들어와서 겨우 깨달은 것이다.
그 때부터는 나도 정신을 차릴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처음엔 자괴감에 6개월 정도 아예 그림을 놓긴 했지만··· 그래도 반 년 뒤에는 정말 제대로 해봤단 말이다. 다른 애들처럼 다시 기초부터 쌓는단 생각으로 구형, 원통형, 정사면체도 그려보고, 거지같은 크로키랑 모작도 번갈아 가면서 하루 13장씩 찍어냈다.
실제로 양감이 잡혔고, 구도가 눈에 들어왔다. 고등학교 때의 나는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고작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탈락입니다.”
“이게··· 그림은 참 잘그리는데 우리 대학이랑은 조금 안 맞는 거 같네요.”
고3이 되고 처음 지원한 입시는 처참하게 실패. 지원한 모든 대학에 떨어지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재수를 하게 되었다.
그래··· 딱 1년만 더 해보자. 그래도 안 되면 미대는 깔끔하게 접는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 번 더 열심히 달렸다. 이 때는 진짜 미친듯이 그렸다. 마지막 기회니 정말 죽을 각오로 해보자고.
몇 칸 짜리 단칸방을 얻어 자취를 하면서 잠 그림 밥 그림의 루틴을 반복했다. 부족한 돈은 주말 알바로 보충까지 했다.
하지만···.
“정말 아쉽습니다.”
“저희도 고민 많이 했어요.”
결과는 탈락.
그 때 깨달았다. 어설픈 재능은 결국 진짜 천재들을 이기지 못한다고. 나보다 어릴때부터 밥먹고 그림만 그려대던 놈들과는 경험치 자체가 다르다고. 그 때부터 나는 미대를 접었다.
······그래서 지금은 뭐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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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꼭지를 그렸다.
살색에서 핑크색으로, 핑크색에서 살색으로.
그 중간의 어딘가에 있을 법한 색깔을 선택해 원 안에 채워넣는다. 그러자 나름 분위기 있는 분홍 살색이 나왔다. 그 모습이 이어지는 살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그 다음엔 적당히 발광을 넣어줬다. 빛이 들어오는 기준을 잡아 그 쪽 방향으로 얇은 하얀색 줄을 긋는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볼 땐 윤기나는 젖꼭지로 보이리라.
그렇게 색과 명암을 대충 채워주니, 과연 꼴리기 그지 없었다. 풍만한 가슴에서부터 생겨난 유륜은 가히 화룡점정(???)이라 해도 손색이 없으리라. 그렇게 어느정도 그림을 그리니 완전나체의 여성이 완성되어 있었다.
“······.”
야짤작가.
다른 사람의 ‘나쁜 물’을 빼주는 일.
그게 지금의 나의 직업이었다. 처음엔 단순 용돈벌이로 하려했던 일이 지금은 아예 나의 직업이 되어있었다.
“후, 씨발 드디어 끝냈내.”
그림 하나를 끝낸 나는 가볍게 기지개를 폈다.
이 짓도 1년 정도 쳐 하다보니까 꽤나 손에 익게 되었다.
처음엔 그릴 때마다 자괴감에 휩싸였는데 돈맛을 보다 보니 이제는 별 이상한 커미션 신청을 받아도 내색 없이 해낼 수 있는 수준이다.
돈맛이 꽤 짭짤하더라.
덕분에 자취방 월세도 걱정없이 내고, 가벼운 사치도 부릴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불닭볶음면 컵라면에 스트링치즈를 추가한다거나, 더운날 에어컨을 18도로 잠시 틀어놓을 수 있다거나··· 그 정도 말이다.
“일단 저장.”
그림을 다 그린 나는 대충 폴더에 저장해놓고 바지를 내렸다. 오늘 일정은 다 끝냈으니, 이제는 잠시 해피타임을 가질 시간이었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그림을 그리다보면 욕구가 쌓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때는 이렇게 풀어줘야 한다.
“오늘은 자료조사도 겸해볼까.”
나는 그리 변명하며 한 사이트를 들어갔다. 앞글자가 H로 시작하는 사이트였다. 온갖 문명의 보고가 모이는 곳.
3D보단 2D가 땡기는 날이었다. 오늘은 무슨 그림이 올라왔을지 기대해보며 스크롤을 내려본다.
그리고 바로 욕지거리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씨발?”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죄다 평평한 가슴 뿐이다.
근육질의 남성들이 죄다 옷을 벗고 있었다.
“아니 미친 왜 게이짤밖에 없어.”
나는 빠르게 스크롤을 내렸다. 하지만 아무리 내려도 내려도 나타나는 것 헐거벗은 남정네 새끼들.
남정네 새끼의 핑크 젖꼭지가 강조된 걸 봤을때는 토악질이 나올 뻔 했다.
“사이트 해킹이라도 당했나?”
아니면 어떤 똥꼬충 새끼가 원피스라도 풀은 건가?
뭐가 되었든 좆같은 일이었다. 덕분에 화나 있던 내 쥬지도 팍 죽어버렸다.
마치 벌레라도 씹은 거 마냥 내 얼굴이 급속도로 찌푸려진다.
“에이, 텄다 텄어.”
오늘은 날이 아닌 걸 깨달은 나는 그냥 컴퓨터를 껐다. 이미 흥이 팍 식어버렸다. 디오니소스도 시무룩 한 채 파티를 파 할 정도였다.
도대체 똥꼬충 하나 때문에 몇 명이 피해를 입는 거냐. 나랑 디오니소스뿐 아니라, 기대감에 젖은 채 사이트에 들어온 수천만 딸쟁이들이 피해를 입은 것이다. 가히 천문학적인 피해가 아닐 수 없었다.
업로더 새끼 내가 찾아내면 꼭 죽인다.
“술이나 까야지.”
맘이 팍 상해버린 나는 기분을 달래기 위해 술을 좀 마시기로 했다. 맥주와 버터오징어가 땡기는 날이다.
마침 집 근처에 편의점이 있었기에 나는 급히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갔다.
딸랑
편의점 문이 열리며 종소리가 울려퍼진다.
카운터 쪽에 알바 한 명이 보였다. 어깨정도까지 내려오는 중단발에, 밝고 인상을 가진 여성이었다.
그렇다 여성이다. 심지어 딱 봐도 인싸같이 보였다.
본인, 인터넷에서는 온갖 여캐의 알몸을 관음하는 카사노바이지만 현실에선 여자면 면역력이라곤 하나도 없는 아싸였다. 당연히 인싸랑은 멀고 먼 벽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아.”
곧이어 그 여성이 나를 발견하더니 인사를 한다.
“어서오세··· 어?”
아니, 하려고 했다. 그러나 나를 보더니 고개 숙이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마치 시선이 고정된 듯이 나에게서 멈춰 있었다.
‘···뭐지?’
그 기묘한 행동에 나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행색때문에 그런가? 확실히 내 행색이 좀 초라하긴 했다. 삼선슬리퍼에, 반바지, 나시티 위에 대충 걸쳐 입은 츄리닝.
방구석 개백수가 따로 없었다. 음, 확실히 시선이 멈출만 하군.
“안녕하세요.”
어색한 침묵이 불편했던 나는 대충 고개 숙여 인사를 전한 후 옆 진열장으로 빠졌다.
아싸는 인싸의 시선을 계속 받으면 죽는 병이 있다.
체력바가 다 달기 전에 시야에서 사라져야 한다.
‘흐응, 흠.’
속으로 콧노래를 부르면서 즐거운 쇼핑을 시작한다.
우선 가볍게 맥주 두 캔. 그리고 버터 오징어.
이왕 사는김에 과자 한 봉지도 같이 조졌다. 이 정도면 맥주 두 캔은 확실히 비울 수 있었다.
두 손 가득 먹을걸 들고서는 카운터 쪽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도 편의점녀는 나에게로 시선이 못 박혀 있었다. 시선이 나를 기준으로 이리저리 요동친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아, 죄, 죄송합니다!”
뻔히 쳐다 본 게 실례인 줄 아나보다. 밝은 인상이 어쩔 줄 몰라하며 찡그려진다. 누가 보면 대역죄라도 저지른 줄 알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정도는 아닌데. 별 다른 감정이 없었던 나는 손사래를 쳤다.
“에이, 아닙니다. 추레하게 나온 제 잘못이죠.”
너무 미안해 하는 것 같아서 나는 장난스러운 말투로 괜찮다 말했다. 평소 잘 안 짓는 어색한 웃음도 함께 말이다.
인싸 같아 보이시는데 이 정도는 받아주겠지.
“······.”
그런데 아니었다. 알바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내 얼굴에 시선이 못 박힌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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