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친구가 되자
“황명이다! 기주목 원소는 황실의 지엄한 명을 받아 황실의 사자를 받아들여라!”
원소는 눈앞에 내민 황실의 인장을 불만족스럽다는 듯 쳐다보았다.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듯이 자신을 쳐다보는 인물, 자신이 계획한 반동탁연합의 주연인 동탁이 눈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과거의 다툼 따위 지금 상황에서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원소는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기주목 원소, 황실의 지엄한 명을 받들겠습니다.”
“지금 당장 장안을 점거한 초패왕을 자칭하는 반역도를 제압, 또는 사살하기 위해 병사를 파견할 것을명령하는 바이다.”
원소는 동탁의 말에 잠시 눈을 감았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무엇이 이득일지, 지금 저 제안을 받아들이면 자신에게 올 이득은 무엇인지, 또 그 이후의 정세는 어떻게 될 것인지.
수많은 가능성을 계산하던 원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괴롭히는 두통에 원소는 얼굴을 찌푸리며 일단 답을 넘겼다.
“저희는 공손찬과 대립 중입니다. 물론 저희도 당장이라도 장안을 탈취하고 싶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알기론 공손찬은 민심과 병력을 잃고 성안에서 농성 중이라고 들었다. 설마 천하의 원소가 모든 걸 잃은 공손찬이 무서워서 꼬리를 말고 있는가? 연합할 때의 그 패기는 어디로 가고?”
뿌득!
동탁의 빈정거림에 원소는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여기서 화를 내면 삼류, 참으면 이류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 원술은 삼류였고, 한복은 이류였다.
“하하, 그때는 패기가 넘치던 시절이었죠, 동탁 님도, 저도. 한창 날뛸 때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일류는, 웃으며 받아치는 것이다.
“그랬지, 그때는 나도 세상이 다 나의 것처럼 느껴지곤 그랬지.”
“사람은 모두 실수를 하지 않습니까.”
동탁과 원소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고 동탁은 선심 쓰듯 원소에게 일어나라고 손짓했으며 원소는 거부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빨리 일어나도 괜찮은가? 아프다고 들었는데.”
“패기는 없어도 건강까지 잃은 나이는 아닙니다.”
“그렇지, 아직 현역 아닌가. 오랫동안 해야지.”
서로를 위하는 척, 배려하는 척 서로 인사를 나누던 동탁과 원소.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여포가 말했다.
“초선, 정치는 정말로 무서운 거 같습니다.”
“저도분신까지 만들어서 저를 괴롭히던 여포가 너무 무서웠어요.”
“……흠흠. 마운록, 그대는 어떤가?”
“분신……, 사랑하는 이가 수많은 사람에게 따먹히는…… 네!? 아, 어떠냐고요? 음, 어머니가 저런 말투를 사용하는 날엔 항상 집에 와서 아버지께 칭얼거리는 거로 보아 상당히 역겨운 거 같아요.”
씹덕 특, 굳이 쓸데없는 TMI까지 추가해서 말함.
하지만 책사진의 생각은 다른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크흑……, 우리 주군 잘한다……!”
“역시 동탁 님은 하면 되시는 분이었네요.”
“예상외로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으신 분이군요. 무릇, 주군이라면 신하에게 신뢰를 줘야 하는데, 확실히 그럴 자격이 있으신 분이군요.”
칭찬 일색인 책사진에 여포는 고개를 저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흥미를 이끌만한 인물을 찾는 행위.
“마음에 드는 사람은 있나요?”
“……아니요, 기본적인 수준은 높습니다만, 뛰어나다고 말할 인물은 얼마 되지 않는군요. 평균치가 높다고 할까요. 저 세 사람 말고는 딱히 별 볼 일 없는 인물들입니다.”
손가락으로 세 명을 가리키는 여포. 초선은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원소군에서 여포의 마음에 들만한 인물이라면, 일단 그 유명한 안량과 문추, 그리고 장합 정도일까. 그 외에도 중요한 인물, 심배, 저수, 전풍, 허유, 곽도라는 책사진에서 이름 있는 인물도 많았지만 여포는 그들에게 관심 없으니.
확실히 이렇게 보니 원소에게 이름 있는 장수는 얼마 되지 않아도 출중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장수들이 많았다.
그렇게 여포와 떠들다 보니 어느새 동탁과 원소의 논전이 끝나가고 있었다.
결론은 뭘까?
“그렇다면 우리가 공손찬을 잡는 걸 도와주도록 하지. 인의로 백성을 다스리던 인물을 죽인 공손찬을 치는 건폐하께서도 반대하지않을 것일세.”
“Nope……. 아닙니다. 황제 폐하의 사자에게 어찌 그런 일을 시킨단 말입니까? 부디 재고하여 주십시오.”
“어허, 우리가 도와줘야 얼른 우리를 도울 수 있을 거 아닌가?”
“그렇죠, 이것 참 고민이군요. 일단 그 이야기는 쉬시면서 하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연회를 준비했습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역시나 기승전 연회였다.
*
*
*
어째서 여기 사람들은 연회를 좋아하는 것일까.
즐거운 일이 있으면 연회.
슬픈 일이 있으면 분위기를 띄우려고 연회.
전쟁에서 이기면 연회.
누군가가 찾아오면 연회.
아주 그냥 전부 연회질이다.
“역시 원소는 다르군, 이 정도 수준이라니, 초선의 클럽과도 비슷한 수준이야.”
게다가 동탁은 연회를 평가하는 직업을 가진 듯, 계속해서 연회를 평가하고 있었다. 역시 주지육림을 외치던 우리 동탁이 맞습니다. 진짜 동탁은 전설이다. 하지만 클럽을 칭찬해줬으니 봐준다.
“Clup? Oh…… 전에 클럽에 가본 사람에게 물었더니, 제 취향에 부합하는 곳이더군요. 자세히 이야기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건 우리 군 모사인 이유에게 물어보도록, 일할 때 빼곤 클럽에서 사니까.”
“HaHa! 그만큼 재미있는 곳이라는 것이겠죠. 저희 업에도 클럽을 만들고 싶은데, 혹시 허락해주시겠습니까?”
“물론, 특별히 이름값은 받지 않지, 업이라면 홍보 효과도 많을 테니 말이야.”
원소는 클럽에 관심이 매우 많아 보였다. 흰색 정장, 화려한 손목시계, 굽 있는 하이힐, 그리고 서양적인 금발 웨이브진 머리와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간 서양 여신 같은 모습.
당구 같은 걸 알려주면 좋아할 거 같은데, 한 번 알려줘 볼까? 지금 우리 동탁군에 불신이 많은 거 같으니 먼저 다가가서 마음을 풀어줘야지.
그리고 저런 미녀가 큐를 잡고 허리를 숙이는 모습을 보고 싶으니까!
엉덩이 볼끄니까아아!
“가후 님. 혹시 이런 걸 만들어주실 수 있나요?”
“무엇이죠?”
“그러니까…….”
나는 대략적인 큐와 당구 테이블, 그리고 무게감 있는 작은 공의 대한 정보를 주었다. 그러자 가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충 알겠군요, 힘보단 기술이 중요한 게임을 만들 생각이십니까?”
“그렇죠, 지금 서로에 대한 불신이 심하니 화합을 하는 느낌으로 하면 어떨까 싶어서요.”
“알겠습니다. 내일까지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역시 가후!
저기서 즐겁게 클럽을 전파하는 클럽죽순이 이유와는 너무 달라! 클럽순이보단 공순이가 최고지!
그때, 동탁이 나에게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동탁에게 다가갔다.
내가 다가오자 원소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원래 여기 여성들인 남성이 다가오면 쳐다도 보지 않거나 이상한 눈길을 주는 게 정상인데 역시 원소, 남들과는 다른 마인드! 크게 된 사람은 역시 달라.
나는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원소 님, 초선이라고 합니다.”
“Oh, 저도 반갑습니다.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는군요.”
“무슨 소문을요?”
“그대의 미모에 관한 것을, 마치 꽃과도 같다,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 같다, 그런 소문이 많았죠, 하지만 모두 거짓이었군요.”
“그런가요, 기대에 못 미쳐서 죄송…….”
“NoNoNo!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저…….”
원소가 한쪽 무릎을 꿇고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내 손에 작게 입맞춤하며 나에게 말했다.
“어찌 꽃과 보름달이 그대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는 것뿐이었습니다.”
“칭찬에 감사드려요.”
마치 신사와도 같은 말과 행동. 흰색 정장이 부끄럽지 않을 행동을 보여주는 원소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거, 기혼자에게 너무 끼를 부리는 거 아닌가?”
물론 뒤에서 들려오는 차가운 음성에 바로 미소를 지웠다.
원소는 그 차가운 목소리에도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Sorry, 이거 죄송하군요. 너무 아름다우신 분이라 저도 모르게…….”
“실례인 것을 알면 그 손을 놓는 것이 어떤가?”
“이거 또 실례.”
동탁의 경고에도 내 손을 최대한 어루만지며 손을 놓는 원소.
이 여자, 위험하다. 내 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 느낌은…… 옛날 어린 시절 많이 놀아본 사람의 느낌!
소위 말하는 일진! 자세히 말하자면 힘센 일진들 뒤에 곱상한 얼굴로 앉아 있는데 사실 그 사람이 일진 중 최고봉이라는 그런 느낌!
찡긋─☆
저 동탁 안 보이게 윙크하면서 끼 부리는 거 보소!
양아치! 일진! 깡패!
“Clup을 만드셨다고 하던데, 맞나요?”
“예, 제가 기획하고 디자인도 모두 제가…….”
아니, 현실에 있는 걸 그대로 따라 만들어서 내 머리에서 나왔다고 하는 내가 더 양아치인가?
아무튼,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나는 철면피를 깔고 말했다.
“혹시 관심 있으신가요?”
“물론이죠, 장안으로 보낸 사절에게 들은 것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더군요. 그 이유를 이제 알겠습니다.”
“왜죠?”
“그대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슴이 뛰지 않겠습니까?”
어머나.
나도 모르게 원소의 말에 웃으며 생각했다.
그, 그런가? 그치, 나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만들었는데, 내가 클럽을 표절하긴 했는데 디자인이나 그런 건 살짝 내가 손본 것도 있…….
“초선, 술잔이 비었다.”
“아, 네!”
핫!
또 넘어갈 뻔했다!
내가 이렇게 꼬시기 쉬운 사람이었나? 물론 그건 맞지만……. 원소는 뭔가 마성의 매력이 있었다. 나는 동탁에게 술을 따르며 마음을 다스렸다.
동탁은 자꾸 나에게 추파를 보내는 원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웬일인지 연회 도중 일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이제 충분히 생각했나?”
“……그건 아직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우리가 도우면 필승이야, 병사는 천밖에 되지 않지만 정예병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장수들 또한 뛰어나지, 아무리 수성만 한다고 한들, 순식간에 성문을 깨부수고 공손찬을 제압할 수 있다.”
“……아, 죄송합니다. 살짝 두통이 오는 군요. 대답은 내일로 미뤄야겠습니다.”
“아까는 건강은 멀쩡하다고 하지 않았나?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늙은 게 죄는 아니니.”
“……죄송합니다. 내일 다시 얘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
몬가, 몬가 싸우고 있음.
역시 하루라도 빨리 이 둘의 사이를 좋게 만들어야겠다.
그렇게 연회가 끝나고 다음 날.
-본초야───!! 노-올자──!!!
조조가 찾아왔고, 동탁과 원소는 서로 머리를 탁,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