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현자 타임
던전(Dungeon).
판타지라는 요소에 빠지면 안 되는 요소 중 하나로알 수 없는 이유로 산속이나 동굴, 또는 지하 같은 인기척이 없는 공간에 등장하는 것이 이 세계의 던전이다.
“던전이요?”
“예, 허창에 근처에 있는 산에 나타났습니다.”
“근데 왜 공략하지 않고요?”
“그게……. 난이도가 상당합니다. 이미 수십 번의 시도를 했는데도 전혀 깰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조조군이요? 제가 알기론 인재들이 꽤나 많다고 들었는데…….”
“그만큼 난이도가 상당하다는 뜻이겠지.”
던전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보상이 크다. 그 말인즉슨…….
“그 던전을 털자, 이 말인가요?”
“바로 그겁니다!”
던전은 생성된 그 영지에 귀속되고 그 보상을 조정에 보고한 뒤에 검사를 받고 소유권을 얻는다. 일부 던전은 보상인 천년하수오를 채집하지 않는 이상, 백년하수오가 일정 기간마다 새로이 나오는 던전도 있다. 물론 인간의 욕심 때문에 사라진 던전이지만.
그래서 당연히 다른 영지의 던전을 터는 것은 불법이고 걸리면 던전에 가치만큼 보상해야 하므로 대부분 그냥 넘어가는 추세이지만, 지금은 뭐다?
난세.
아, 솔직히 던전 하나 터는 게 서주 대학살보다 심한 일이겠냐고.
“하지만 그걸 어떻게 믿지? 조조의 끄나풀이 우리를 함정에 빠트리려고 속이는 것일 수도 있지.”
“어떻게 해야 저를 믿으시겠습니까! 제가 바라는 건 오직, 조조의 파멸뿐입니다!”
나는 피를 토하는 듯 외치는 진궁을 바라보며 거짓말은 아닌 거 같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진궁은 조조를 조지기 위해 여포에게도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으니까.
“……나쁘지 않군요. 그 조조군의 장수와 책사들이 해결하지 못한 던전이니 엄청난 물품이 나오겠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간악한 조조년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 너무마음에 들군요.”
책사진들도좋은 생각이라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분명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띠익!”
나는 손으로 커다란 X를 만들며 틀렸을 때 나오는 기계음을 내었다.
그러자 진궁이 나를 쳐다보았다. 분노와 자괴감이 섞인 눈이었다. 도력이 생긴 이후로 그런 감정이 너무나도 잘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말했다.
“다른 사람의 파멸을 바라며 달려가는 곳에 낙원은 없습니다.”
“……선인 같은 말을 하시는군요. 죄송하지만 저는 그런 걸 믿지 않아서.”
“믿으라는 소리가 아니에요.”
“저는 그 미친년이 죽을 뻔한 위기를 몇 번이나 살려주고 땅까지 내주었습니다. 이 난세를 끝낼 사람이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그녀를 따랐죠.”
알고 있다.
진궁은 조조의 결단력과 냉철한 판단을 보고 그녀를 따랐고 실제로 조조는 난세를 거의 끝낼 정도로 세력을 키웠다.
“하지만 그녀는 난세를 끝낼 위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인재를 따르게 하는 권위가 있고 결단력이있지만, 인(人)과 의(義), 그리고 충(忠)이 없습니다. 인재들은 그녀를 보고 따르지만, 백성들에게 사랑받지 아니하며 그 길에 옳음은 없고 자신의 이기만 있고 나라에 대한 충성이 없습니다. 그런 그녀를 제가 살렸습니다. 그래서 불쌍한 여백사 일가가몰살당했고 서주에서 그런 대학살이 일어난 겁니다!”
진궁은 아직도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는다는 듯, 이를 갈았다.
“저는 그녀를 막을 책임이 있습니다. 지금 초선 님이 왜 그러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장안이 함락되고 초패왕이 부활했으니, 하지만 허창에는 분명 어마어마한 물건이 있을 것이…….”
“아뇨.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아직도 자기 잘 못을 모르네.
“가정을 하나 해보죠, 만약 여포가 조조에게 달려가 바로 목을 따버리면 어떻게 하실 거에요?”
“……그, 그럼 제 모든 것을 이용해 동탁군을 보좌하겠습니다! 이래 봬도 상급 토(土) 속성 마법사이고 계책도 잘 내니…….”
“만약 우리가 백성을 갈취하고 죽이는 패악을 저지른다면요? 우리 동탁 소문 들었죠?”
마! 조조만큼은 아니어도 우리 동탁이도 웬만큼한다 이거야!
동탁이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는 거 같지만 애써 무시하며 진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그때는, 그러니까…….”
“제가 왜 이런 말을 하게요!”
바로 그 이유는……!
그때, 진궁이 나보다빨리 입을 열었다.
“……제 복수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거군요.”
“한 떨기…… 예?”
“지금 여기서 조조를 죽여도 변하는 것은 없고, 비슷한 일은 일어날 테니 제 탓을 하지 말라는 뜻은 잘 알겠습니다.”
갑자기 뭔 개소리야? 내가 할 말은 그게 아닌데?
하지만 내 말에 모두가 감명받았다는 듯 책사진들이 나에게말했다.
“좋은 말이군요. 고작 한 명이 커다란 해일을 막을 순 없다…….”
“일어날 일은 무조건 일어난다. 이야, 역시 초선 님이 상국보다 훨씬 지혜로운…… 아, 언제 오셨습니까, 상국?”
“일년 동안 클럽에 출입을금지한다. 이유.”
“안 돼애앳!!!”
아, 아니, 내가 말하려는 건…….
[한 떨기의 꽃 같은 당신이 복수를 위해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습니다.]
[어, 어맛! 정말 멋져요! 반해버렸어욧! 당신에게 모든 걸 바칠게요!]
이런 전개를 예상했는데…….
“좋은 말이군요. 현자가 말하는 것처럼. 하지만 저는 그 말을 아직 이해할 수 없나 봅니다.”
“아, 아니…… 그게…….”
“아직도 눈에 선명합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자기 가슴에 꽂힌 칼을 쳐다보던 여백사, 손자를 껴안고 살려달라 외치는 노인이 손자와 함께 쓰러지는 모습이…….”
“……그, 그렇죠, 그 끔찍한 광경을 보고 제 말에 금방 불길이 사라지는 것도 이상하죠.”
“이해해 주시는 겁니까?”
이해했다.
지금 책사진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이해했다!
나는 최대한 현자와도 같은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내가 생각하는 우화등선한 선인을 생각하며 말했다.
“만약 조조의 야망을 저지했을 때, 뭘 하고 싶으신가요?”
“……후일 말인가요.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계속해서 생각해보세요. 답이 나오는 날, 진궁 님을 믿겠어요.”
“알,겠습니다.”
나, 잘한 거 맞겠지……?
뭔가 이상한 느낌에 가후와 이유를 바라보았다.
“진궁, 저자의 계책은 믿을 만했지만 진궁이란 사람은 믿을 수 없었죠. 하지만 초선 님의 지혜로 이제 진궁이란 사람을 믿을 구석이 생겼네요.”
“대단합니다! 역시 큰일은 남편에게 맡기라는 옛말이 옳았네요! ……그러니 제발 클럽 출입 제한 좀 풀어주시면 안 될까요? 초선 님이 만드셨으니…….”
“이유 님, 저는 아이디어가 좋지만 돈이 없어 망할 위기에 처했던 중소기업이고 동탁은 대기업이에요.”
“젠장!”
음, 반응 보니까 잘한 거 맞는 거 같다.
왜 이런 상황에 도달한 지 모르겠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나는 동탁을 바라봤다.
“동탁! 허창으로 가요!”
“우리 전부가 가면 당연히 조조가 뭐라 하지 않겠느냐, 천 명이 넘어가는 숫자 아무리 빠르게 달린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걸린다.”
“……그럼?”
“여포, 가후, 그리고 진궁, 이렇게 세 명이 가면 되겠구나.”
“뭐 임마?”
하나를 해결했더니 하나가더…….
나는 다시 열린 173회 투기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