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ready!
아이돌.
그것은 우상, 동경의 대상.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 인기로 먹고사는 존재, 그렇게 보니 신이랑 비슷하네, 잊히면 힘을 잃고 믿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은 존재.
하지만 신이 되는 것은 힘들 듯, 당연하게도 아이돌이 되는 길도 험난했다.
“하나! 둘! 거기서 팔을 더 깊게 뻗고! 너무 유려하게 하면 안 돼요, 지금 상처받은 서주의 백성이 원하는 건 그런 유려하고 고귀한 춤사위가 아니에요!”
“아, 알겠습니다!”
“다시! 하나, 둘, 그래요! 좀 더 강렬하게! 모두의 마음에 불을 붙일 수 있게!”
높으신 분에게 보여주기 위한 춤만 배운 나머지 강렬하고 중독적인 춤사위는 배우지 못한 나였다. 그렇게 춤을 봐주는 코치에게 깨지고…….
“음…….”
“저, 어디 잘 못 부른 곳이 있나요?”
“아뇨, 너무 잘 불렀는데……. 곡하고 너무 안 어울리는 세련된 창법이에요.”
“그럼 더 좋은 거 아닌가요?”
“저희가 원하는 건 모두가 다 같이 힘 놓아 부를 만한 노래인데 초선 님의 완벽한 기교와 목소리가 합쳐져서 마치 황궁에서 볼 법한 가극이 되어버려요. 물론 초선 님의 실력이 워낙 뛰어나셔서 이대로 가도 문제가 없을 거 같긴 하지만…….”
“바, 바꾸겠습니다!”
목소리가 아이돌이 아닌 마치 오페라에서 나올 법한 사람일 거 같다고 퇴짜 맞고……. 예전 무예와 마법에 재능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
아니, 그것보단 나은가. 지금은 그래도 고칠 방법이 있으니까.
그래, 노력 없이 얻는 건 없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노력, 그리고 더 많은 노력이다.
유려한 몸놀림은 배제하고 강렬하게, 마치 여포가 알려준 권법을 하듯이.
“그래요! 그런 강렬함! 완벽했어요 방금!”
한을 담지 않고 즐겁게, 모두가 따라 부를 수 있도록, 마치 여포가 미친 듯이 교성을 내뱉는 것처럼!
“조, 좋아요! 지금처럼 모두가 즐거워하는 것처럼…… 근데 왜 야한 거 같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내 모습에 코치들은 더는 가르칠 것이 없다며 데뷔를 빠르게 진행 시켰다. 녹음을 시작하고 춤 연습을 하는 모습을 녹화하며 최대한 빠르게 진행했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있기 마련, 모두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찾아왔다.
“미-축! 술 사 먹게 돈 좀 빌려줘!”
미축의 회사 건물이마치 자기 집인 거처럼 거침없이 들어와 돈 좀 빌려달라고 하는 불한당.
어린애처럼 키가 작은 어린애, 하지만 기운 만큼은 호랑이보다 큰 장수.
“장비 님?”
“어! 동탁과 여포의 남편!”
만인지적의 용사, 장비였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지? 여긴 7층인데.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술 사 먹으려고 하는데 돈이 없어서 돈을 빌리려고 왔지!”
“……머, 먹어도 되는 나이 맞으세요?”
“캬아앗! 너도 나를 어린애 취급하는 거냐!?”
그 모습에 술을 먹으려고 하는 모습에 살짝 골려주었더니 물에 빠진 고양이 마냥 날뛰는 장비.
“돈을 안 갚는 사람은 애새끼와 다를 바가 없죠.”
“히익!?”
“마치 부모에게 뭐 좀 사게 돈을 가져가는 철없는 애새끼처럼…….”
거대한 가슴이 먼저 모습을 드러내고 그 뒤에 미축이 문으로 들어오며 장비를 맞이했다. 나에게는 보여준 적 없는 아주 무서운 무표정으로.
“그, 미축……?”
“돈 갚으러 오셨습니까?”
“어, 언니가 봉급을 아직 안 줘서…….”
“왜죠? 장비 님이 원하면 술값 정도는 얼마든지 가져오실 수 있을 텐데요?”
“……술 먹고 사고 친 게 많아서 금주령에 걸려서 안 된대.”
“술을 드시는 건 안 되겠죠, 하지만 저에게 빌린 돈을 갚기 위함이라면 당연히 주지 않을까요?”
“그럴 바엔 그걸로 술 사지…… 히익!?”
미축은 거대한 가슴 밑으로 손을 넣어 팔짱을 꼈다. 장비 머리와도 같은 크기의 가슴이 위아래로 흔들리며 장비를 압박했고,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한 장비는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아, 알았어, 오늘은 여기서 물러나도록…….”
“기다리세요.”
미축은 침울해진 장비를 붙잡으며 말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그런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나, 나에게 무슨 짓을 시키려는 거야! 저, 전처럼 막 이상한 옷을 입힌 뒤에 아동복 광고로 쓰려는 거지!”
“아, 그건 일주일 뒤에 있으니 그때 오세요.”
“젠장!”
“하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에요. 그저 평가만 내려주시면 됩니다.”
“무슨 평가?”
미축은 나를 가리켰다.
“……저요?”
“예, 초선 님, 장비 님에게 그 춤을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가능해요!”
“뭘 하려는 건데?”
“그냥 보고 평가만 해주시면 됩니다. 솔직하게만 대답해주시면 술 하나 사 먹을 돈은 드리죠.”
“고작 술 한 병으로 누구 배를……, 음! 본인은 진심만을 말하니 혹평을 받더라도 슬퍼하면 안 돼?”
아무렴요. 나는 연습장 중앙에 섰다. 그러자 꺼지는 전등과 조명,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무대가 완성되었고 조용한 정적과 어두운 시야가 몸을 감싸자 심장이 쿵쾅대며 긴장하기 시작한 내 몸.
이 느낌, 동탁과의 첫 경험보단 아니지만 그에 비견될 만큼 두근거리는 느낌이었다. 떨리긴 하지만 그 떨림마저 희열로 다가오는 순간.
이것이 우상, 이것이 아이돌.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다.
자, 3, 2, 1.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쌌다.
*
*
*
“이, 이것은……!”
장비는 눈 앞에 펼쳐지는 격렬하고 강렬한, 말로 표현하지 못할 색다른 공연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장비가 보아왔던 공연은 곱게 분장한 가수가 관객의 눈치를 살피며 부드럽게 노래를 부르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렇게, 강렬한 비트와 파격적인 춤사위라니, 게다가 왠지 모르게 흥이 돋는 가사까지, 차분히 내려앉는 느낌을 주었던 여태까지의 공연과 다르게 무언가 속에서 뜨겁게 올라오는 느낌을 주는 공연이었다.
-자궁에 ☆!큥!☆ ☆!큥!☆ 하며 스며드는 나의 사랑, 그건 착각이 아니야♬
가슴을 뛰게 하는 춤사위 사이에 살짝 껴있는 초선의 애교, 장비는 자신의 키와 외모 때문에 남자에 대한 거부감이 있음에도 가슴이 뛰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춤선 하나하나가 살아있어……!”
춤에 대해 잘 모르는 장비였지만 무예에 관해선 손가락에 드는 그녀였기에 초선의 춤에서 느껴지는 선에 또 다른 강렬함을 받았다. 마치 관절이 뽑히는 듯한 움직임인데 자세히 보면 손가락 하나하나 세심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점점 그 춤사위에 빠져드는 장비.
-자모두 다 같이 불러요! 그녀의 입술을 터치! 마음을 캐치! 자궁에~
“쿠, 큥큥!”
-하며 스며드는 나의 사랑! 흘러내리는 사랑의 물방울~♬
어느새 하이라이트 부분을 같이 부르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장비는 그것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더욱 크게 따라부르며 온몸으로 음악의 몸을 맡기는 장비.
가슴에서 느껴지는 뜨거움. 그건 전쟁에서 느꼈던 질척한 감정이 아니었다.
온몸을 불태우는 뜨겁고 정열적인 불길, 모든 것을 불태우는 전쟁의 불길이 아닌 사람을 매혹하는 태초의 불길!
“최, 최고다 초선 쨩!”
장비는 이미 초선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이윽고 짧은 공연이 끝났다. 뜨거운 땀을 흘리는 초선을 바라보며 장비는 기립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어떠셨나요…… 라고 물어볼 필요도 없겠군요! 이야, 대성공이네요, 초선 님!”
그렇게 첫 공연은 대성공으로 막을 지었다. 어느새 초선의 팬이 된 장비는 자신의 애병, 장팔사모를 내밀며 말했다.
“자, 자필 서명 좀 부탁해!”
“자필 서명……? 아 사인 말하는 거구나! 물론 해드리겠습니다만…… 이거 귀한 거 아닌가요?”
“괜찮아! 그, 그리고…….”
“말씀하세요.”
“그, 큥큥 한 번 더 해주면 안 될까?”
초선은 부끄럽다는 듯이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손으로 하트를 만들며 외쳤다.
“그대의 자궁에~ 큥♡ 큥♡”
“냐흑-!”
“괜찮으세요?”
“아, 아니야! 너무 좋아서 그랬어!”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는 장비에 초선은 놀라 물었지만 장비는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말하며 장팔사모에 적힌 초선의 사인을 바라보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이름만 적어 줄 줄 알았는데 뭔가 하트도 있고 서명도 화려하네!”
“후후, 아이돌이라면 저를 좋아 해주시는 팬들에겐 당연히 이 정도 정성은 필요하지 않겠어요?”
“아이돌?”
“우상이라는 뜻이죠, 하지만 종교적인 의미는 전혀 없기에 신자라는 표현 대신 팬이라는 단어를 따로 쓴다고 합니다.”
“그렇구나…… 잠깐, 그렇다는 것은 이 춤을 모두에게 보여주겠다는 소리야?”
“그럼요, 아이돌에게 무관심은 독이랑 다를 바가 없죠, 마치 종교처럼 말이죠.”
장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런 공연을 자신만 보기엔 너무 아까운 것이었다.
“그럼 언제 할 건데?”
“그건 시간이 지나면 아실 겁니다.”
조용히 미소짓는 미축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서주에 강렬한 비트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