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하비로 갈까요
“핫!”
탁해졌던 원술의 눈이 떠지며 나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정신을 잃었던 탓일까 나를 경계하듯 째려보는 그 모습에 나는 웃어 주며 무해함을 피력했다.
하지만 내 무해한 웃음이 아직 의심스러웠는지 고양이와도 같은 눈으로 나를 째려보는 원술.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는, 몰캉한 둔덕을 내 손 위에 올려두며 외쳤다.
“무, 무슨 짓을 한 거냐!?”
“저는 아무것도…….”
“내, 내가 왜 정신을 잃은 거지?”
“그건 저도 잘…… 저도 정신을 차려보니 갑자기 원술 님이 기절해계셔서…….”
“핫! 그렇군, 최면의 지속이 끝나서 그렇구나…….”
“그렇죠.”
“분명 아까 일은 모두 잊고 있는 거 맞겠지?”
“그럼요. 방금 제가 원술 님의 엉덩이를 내려친 일은 전부 잊었답니다?”
음음!
음부를 내 손 위에 올린 채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나는 괜히 한 번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음부를 자극해보았다.
“히끅!”
찌걱이는 소리와 함께 원술의 허리가 약하게 튕겼다. 그녀는 화를 내며 나에게 따졌다.
“무슨 짓이냐!”
“예? 갑자기 왜 그러시죠?”
“지, 지금 내 음부를 건드리지 않았냐!”
“네? 제가 손을 내밀면 당연히 음부를 올리는 것. 그것이 상식 아니었나요?”
“분명 그렇지만…… 건드리는 것은 실례다!”
“죄송해요, 너무 탐스러운 음부라 한번 만져보고 싶었는데…… 실례였나요?”
“타, 탐스럽다고? 크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너무 만지는 것은 지양해라. 너무 그러면 꼴사납게 가버릴 수도 있다.”
“네, 알겠어요.”
자신이 말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이상도 느끼지 못하는 원술. 나는 너무나도 잘 먹힌 최면에 만족감을 넘어 오히려 이상함을 느꼈다.
원래 최면이 이렇게 잘 먹히는 거였나? 원래 수많은 반복을 통해 얻어야 하는 노가다 작업으로 알고 있는데…….
모르겠다.
가후한테 물어보면 되겠지 뭐.
일단 지금은 원술한테 집중하자.
“원술 님, 혹시 원술 군의 중요한 약점이라던가 그런 것이 있나요? 저에게 알려 주는 것이 당연하니까요.”
“뭐가 당연하다는 것이냐? 그런 걸 우리군도 아닌 너에게 왜…….”
“아, 실수했네요. 거기까진 안 되나…….”
“뭐가 안 된다는 것이냐?”
“아니에요, 그럼 원술 님. 지금 동탁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돼지 같은 년! 가슴만 큰 멍청이! 유비를 치자고 했으면 빨리 치든가! 왜 건업에 계속 있는 것이냐! 지금 당장유비를 친다면 일주일 안에 함락할 수 있거늘!”
그건 나도 의문이다.
왜 유비를 바로 치지 않는 것일까? 유비에겐 의형제…… 아니 의자매 두 명이 있지만 우리에겐 여포와 장료, 고순, 가후, 이유가 있다. 그렇지만 지금 유비에겐? 병사도 부족하고 책략가는 더더욱 부족하다. 지금 유비에게 있는 책략가라곤 초반 개국공신 간손미 밖에 없을 것이니, 우리가 원술과 힘을 합쳐 유비를 친다면 서주는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 때문에?
그나마 가능성이라면 단 하나.
서주를 아주 그냥 불태워버린 조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지금 유비와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긴 했어도 그 미친 사이코패스 성격이라면 서주가 원술한테 먹히는 꼴을 볼 바엔 그냥 만만한 유비가 계속 통치하라며 도움을 줄 수도 있으니.
“저희도 시간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닙니다. 곧 있으면 저희도 떠날 것이니 조금만 참으세요.”
“……칫! 그런데 그걸 왜 네가 말하는 것입니까? 초선, 아니 초선 님……?”
나는 혼란스러워하는 원술을 보며 시간이 다 됐음을 직감했다.
“자, 원술 님, 오늘은 즐거우셨나요?”
“즈, 즐겁다니?”
“오늘 저를마음껏 물고 빨고 하셨잖아요. 옥새를 이용해 저항도 못 하는 저를 가지고 놀면서.”
“그, 그랬, 나?”
“그렇죠. 내일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나요?”
“그, 그렇지.”
“그럼 내일에 즐거움을 위해 오늘은 헤어져야겠네요. 엉덩이가 아픈 것은 길을 가다 넘어져서 그런 거죠?”
“그렇다. 내 잘못으로 달려가다 뒤로 넘어져 엉덩이를 땅에 꿍 찍었지…….”
크으으으으.
최면이 이런 맛이구나. 너무나도 쉽게 최면에 순응하는 원술을 돌려보내며 나는 그 뒤로 당장 가후에게 달려갔다.
“가후 니이이임!”
“도력을 꺼내세요.”
“넵!”
나는 검은 도력을 손에 꺼내 그녀에게 보여줬다. 어두운 빛이라는 모순을 뿜어내는 도력을 가후는 마도구를 이용해 흡수한 뒤에쿨하게 뒤돌아서며 말했다.
“내일 다시 오시지요.”
“넵! 알겠습니다!”
*
*
*
원술에게서 도력을 빼앗고 난 뒤 가후에게 도착한 나는 밤을 새웠는지 다크 서클이 살짝 드리운 가후를 볼 수 있었다.
눈나아아아. 퇴폐미 쩔어요!
“완벽히 타락한 도력이군요. 도력의 장점은 잃어버렸지만 다른 장점을 얻은 그런 힘이네요.”
“무엇을 잃어버렸죠?”
“도력으로의 최면은 걸린 사람의 신체 회복을 도와주지만 타락한 도력에는 없죠. 하지만 최면 능력은 훨씬 더 좋아졌군요.”
그럼 좋은 거 아닌가? 회복 능력은 사실 필요 없었고 최면 능력이라는 것이 중요했는데 그것이 더욱 강화되었다?
그래서 원술에게 잘 걸렸던 거구나. 처음인데도 그렇게 잘 걸렸던 이유가 있었어.
“저도 도력과 마력을 동화시키는 데엔 성공했지만, 도력의 장점과 마력의 장점이 모두 사라져버린 결과만 나오더군요. 비결이라도 있으십니까?”
“그거야 간단하죠.”
도력을 완벽히 타락시키는 비결?
전혀 어렵지 않다.
“싫어하지만 좋아하게 하면 됩니다.”
“싫어하지만, 좋아하게 하면 된다고요? 그게 무슨 뜻이지요?”
“가후 님의 마력이 금 속성이니…… 그거와 관련된 쾌락을 보여주면 됩니다.”
금(金).
예로부터 황금은 인간의 탐욕을 보여주는 물건으로 애용됐다.
애초에 너무 물러 무기도 갑옷으로도 사용하지 못 하는 전혀 쓸모없는 금속이지만, 반짝거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효용을 다했다.
“도력은 선하니 탐욕을 멀리하는 성질을 가졌겠지요. 금의 가치를 전혀 모르고 지냈을 겁니다.”
“흐음…….”
“그러니 도력에게 보여주면 됩니다.”
금으로할 수 있는 완벽한 행위들을.
“금으로 맛있는 것을 사 먹고, 사람을 고용하며, 금으로 누구보다 편안한 생활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면 됩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동전 하나를 위해 가족을 팔거나, 사람을 죽이는 그런 나쁜 것을보여주면 안 됩니다.”
“왜죠?”
“그냥 딱 봐도 나쁘니까요. 저희가 도력에게 보여줘야 할 것은 욕망의 순기능입니다.”
만약 내가 마운록의 남편이었다면 도력은 타락하지 않고 그 검은 연기를 밀어냈을 것이다. 그건 선을 넘는 행위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마운록과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다. 연인도 아니었고 오랫동안 본 사이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사이였기에 도력은 그러한 쾌락에 빠져들었다.
“돈을 위해 고개를 숙이는 대신 열심히 일하며 가족에게 간식을 사주는 노동자의 모습. 돈을 이용해 할 일 없는 실업자들을 마음껏 가지고 노는 모습.”
도력이 싫어하는 탐욕과 탕진의 모습이지만, 딱히 나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행위들이.
“마음껏 갑질을 하지만 어찌 보면 나쁘지않을지도……? 라는 생각이 들면 됩니다!”
“그렇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뭘요. 아, 근데 저희 언제 유비를 치러 가죠? 초패왕은 지금도 강해지고 있을 텐데 이렇게 놀고 있어도 되나…….”
“그건 걱정하지않으셔도 됩니다.”
내일 바로 출진할 거니까요.
“……예?”
“물론 초선 님도 출진입니다.”
갑자기?
*
*
*
서주.
장안과는 다르게 농사도 잘되고 사람도 많은 그야말로 젖과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할 수 있는 땅이었던 곳.
물론 지금은 조조가 피와 살이 흐르는 땅이었다.
조조가 저지른 대학살 때문에 서주 근처 마을들은 가족을 잃고 실의의 빠져서 살고 있으며 농작물을 짓밟히고 강은 붉은빛이 돌고 있는 듯한 착각을 주었다.
아무리 조조가 한 일들이 많아도 이건 커버 못 쳐주겠다…….
관도대전 원소 파이팅! 담당 일진이 알아서 교정시켜 주세요! 중간에 폐사하지 말고!
“초선, 이만 마차에 들어가라.”
“……그럴게요.”
하지만 나는 조조에 대해 아무런 불평도 내뱉을 수 없었다. 내 부인이자 군주인 동탁도 조조보단 아니지만 악인이라 불리기에 충분한 일을 저지른 적이 많으니, 나는 동탁과 함께 마차에 들어갔다.
서주. 아직 상처아 아물지 않은 땅.
그런 곳을 다시 전쟁으로 물들여도 되는 걸까. 겉으로 볼 때는 몰랐지만 그 참사에 직접 와보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싸우지 않고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도착했다. 하비 성이다.”
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커다란 성을 마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