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음습한 음모.
“……후퇴하라고?”
“그, 그렇습니다,”
“지금 상황이 보이지 않냐? 유요는 도망쳤고 이제 남은 일은 성을 점령하기만 하면 돼, 다 이긴 싸움이라고!”
“히익?! 저, 저는 그저 원술 님의 말을 전하러 온…….”
“야.”
섬뜩한 목소리에 전령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이 벌벌 떨렸다.
지금 느끼는 감정은 공포, 커다란 호랑이 앞에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기분에 전령은 다리의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책, 진정해.”
“주유 어서 오고.”
“일단 이야기를 들어 봐야지.”
아름다운 목소리, 여자가 봐도 반할 거 같은 미색, 그 모습에 떨림이 조금이나마 진정된 전령이 무릎을 꿇은 채로 외쳤다.
“화, 황제 폐하의 명입니다!”
“뭣?”
“황제 폐하의 명으로 상국 동탁과 여포, 이유, 그 외 수많은 인물이 건업에 입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유요를 공격하는 것도 멈추라고…….”
“그 동탁이 황제의 명으로……? 뭔가 이상해 손책.”
믿기 힘든 일에 주유가 심각한 표정으로 손책에게 말했다.
자신의 어머니가 활약했던 반동탁연합의 대상, 그녀가 황제의 명의 명을 받고 건업에 있단다. 손책은 그 말을 듣더니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좋아, 마음에 들었던 녀석도 얻었으니 너의 말 대로 해주지.”
“가, 감사합니다!”
분명 손책은 원술 휘하의 장수이고 무릎을 꿇고 말하는 사람은 원술의 명을 받고 온 전령이지만, 손책의 분위기는 이미 원술을 뛰어넘었고 전령은 아무런 이상도 느끼지 못한 채 그대로 걸음을 돌렸다.
손책은거의 다 함락되어가는 성을 바라보다 혀를 다시며 외쳤다.
“전군! 퇴각하라!”
주유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뒤에서 군을 통솔하던 정보가 말했다.
“퇴각라니요? 지금 성을 함락하기 직전인데…….”
“황명이래요, 방금 전령이 왔다 갔어.”
“황, 황명이요!? 갑자기 여기서 어명이 왜 나옵니까?”
“몰라요, 지금 건업에 동탁도 있고 여포도 있고 그렇다는데 어떡해요, 가아죠.”
어쩔 수 없는 상황, 정보는 아쉽다는 듯이 성을바라보며 확성기를 들며 외쳤다.
[퇴각한다!]
화들짝 놀란 병사들이 뒤를 바라보았다. 병사가 보기에도 이건 다 이긴 싸움, 그런데 퇴각이라니. 하지만 그 뒤에 올 정보의 말에 모두 등을 돌려야 했다.
[황명이다! 모두 건업으로 돌아간다!]
그 말에 병사들이 검을 내리고 퇴각하기 시작했다.
손책은 혀를 찼다. 여태까지 강동을 공략하면서 후퇴란 없었거늘, 얼마 지나지 않아 원술에게서 독립하려고 했던 손책에겐 좋지 않은 징조였지만 별수 없었다.
“무슨 일 있나?”
“오, 우리 군의 새로운 무장! 태사자 아니야!”
“그렇긴 하다만, 아무튼 무슨 일 있는가? 갑자기 퇴각이라니.”
“자세한 건 나도 몰라, 가보면 알겠지.”
손책은 자리에서 일어나 말의 고삐를 잡고 태사자에게 내밀었다.
“말은 내가 죽여서 없지? 우리 군에 온 기념이다.”
태사자는 말에 고삐를 잡으며 전에 정찰하다 만난 손책과의 일기토를 떠올렸다. 손책이 자신의 말을 베고 자신은 그런 손책을 말에서 떨어트린 뒤 맨손으로 싸운 일.
“……나는 나중에 투구를 사주겠다.”
“뭐? 큭, 크하하하! 좋지, 얼마나 좋은 투구를 사줄지 기대하고 있겠다.”
맨손으로 싸울 때 손책은 태사자에게 투구가 벗겨진 것을 깨달으며 답했다.
땅바닥에서 흙을 뿌리며 서로 개싸움을 벌인 둘, 하지만 그 둘은 그 일에서 기묘한 우정을 느꼈다.
“퇴각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래? 그럼 동탁에게 밑에서 울고 있을 우리 한심한 고용주를 구하러 가볼까?”
푸하하하하하-!
이미 손책의 병사나 다를 바가 없는 그녀들은 하늘이 떠나가라 웃었다. 그 모습에 태사자는 유요와는 다른 그녀에게 이끄는 힘을 느꼈다.
손책.
소패왕이라고 불리는 자가 건업으로 향했다.
*
*
*
“안주가 별로구나, 사세삼공을 배출한 원가의 대접이 고작 이거란 말인가?”
“이, 이것이 별로라는 말이, 아니 말입니까?”
“귤에다가 꿀에다가, 아주 그냥 단 거밖에 없구나. 육류는 없느냐?”
“고기보다 꿀이 더 맛있는데…….”
“술은 왜 이렇게 달고? 아주 벌꿀주밖에 없구나.”
오늘도 시작되는 동탁의 야리돌림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원술.
벌써 동탁이 건업에 온 지 나흘이 지났다. 그동안 동탁이 한 일은 오로지 연회 연회 연회 연회! 원술은 계속되는 이 상황에 진저리가 났다.
하지만…….
“술 한 잔 받으셔요.”
“크, 크흠! 감사히 받겠습니다.”
동탁과 여포의 남편, 초선에 따르는 술잔을 받는 원술의 얼굴은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붉어져 있었다. 전까지만 해도 여자가 되어서 한 남자를 공유하는 그들을 욕하고 절조 없는 남자를 욕한 원술이었지만…….
“저, 혹시…….”
“네?”
“아, 아닙니다.”
저 정도 외모라면 첩으로……. 순간 고민한 원술이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사세삼공 명문 원가의 자제, 천한 아비의 딸이 아닌 정실의 딸이다. 아무리 저 남자가 살짝 외모가 뛰어난…… 아니 좀 많이 뛰어나긴 하지만 그래도 첩으로 들일 생각은 없다!
“정실이라면…….”
“예? 무슨 말 하셨나요?”
“혼잣말입니다.”
조용히 벌꿀주를 삼키는 원술, 초선은 다시 동탁에게 술을 따라주려 등을 돌렸다.
그때 살짝 올라가는 초선의 상의, 왠지 몰라도 일체형이 아닌 상의와 하의를 따로 입은 초선의 복장은 몸을 살짝만 구부려도 하얀 속살이 보일 정도로 타이트했다.
힐끔.
그때만큼은 명문자제로서의 배려도 자존심도 없었다. 매끈한 등줄기, 살짝 그림자가드리워진 척추 라인에 원술은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동탁의 날카로운 시선도 알아채지 못한 채 계속 척추 라인을 바라보던 원술은 동탁의 차가운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무엇을 그리 즐겁게 보는가?”
“핫!? 그, 그게…….”
“아주 입에서 침이 떨어져도 모를 거 같이 쳐다보고 있더군, 명문가의 자제가 그러면 평판이 떨어지지 않겠나?”
“그, 그렇죠.”
동탁의 촌철살인에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원술.
‘한낮 지방의 잡졸 군웅이 운 좋게 그 자리에올라간 거 가지고 이 나를 모욕해!?’
하지만 입으로 꺼낼 용기는 없던 원술은 이윽고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하기 시작했다.
“에잇! 손책 그년은 언제 오는 거냐!”
“그, 전령은 보냈습니다만…….”
“쯧! 상국 어른이 오셨는데 왜 이리 꾸물거린단 말이야!”
인정하기는 싫지만 손책은 강동의 호랑이라고 불리는 손견의 딸, 그런 어미를 똑 닮은 손책은 그 기세가 대단했고, 그녀가 있어야 이 관계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거라 생각한 원술.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 진다했는가.
연회장의 문이 열렸다.
“호오, 저것이 그 손견의…….”
갑옷에 피를 묻힌 채, 호랑이와도 같은 기운을 퍼트리며 연회장에 들어오는 인물.
“소, 손책!”
원술이 그런 그녀를 반갑게 외쳤다.
“신 손책, 명을 받아 돌아왔습니다.”
소패왕의 등장이었다.
*
*
*
손책이 들어서자 연회장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동탁 위주로 돌아가고 있던 연회의 분위기가 손책에게로 쏠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동탁이 아니었다.
“그대가 손책인가?”
동탁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손책은 그런 그녀의시선을 피하지 않고 잠시 바라보다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상국 어른을 뵙습니다.”
“기운과 풍채가 대단하구나, 역시 호랑이의 딸은 호랑이라는 것인가?”
“칭찬 감사합니다.”
“하지만 내가 하는 호랑이는 누군가에 밑에 있을 그릇이 아닌데, 아직 어린 호랑이인가?”
신경을 긁는 동탁의 말에 손책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에 손책은 지지 않고 말했다.
“글쎄요 남자를 공유하는 웃어른보단 낫지 않을까요?”
그 말에 원술이 기겁하면서도 한 편으론 조금 꼬시는 마음에 호통도 맞장구도 치지 않았다. 본래 상국인 동탁에게 그런 말을 한 손책은 바로 머리를 박고 사죄를 해도 모자랐지만, 다혈질 기질이 있는 손책은 신경 쓰지 않았다.
“크하하하! 그렇지, 나도 마음 같아선 저기 술 마시고 있는 년을 치우고 싶긴 하다!”
하지만 동탁은 호탕하게 웃으며 재치있게 받아쳤다. 그러자 웃음을 참지 못한 원술 군에서 조금씩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 대장! 참아! 지금 여기서 날뛰면 안 돼!”
“이유 님, 여포 님을 말릴 준비를.”
물론 여포 군은 웃을 수 없었지만.
아무튼, 동탁은 손책을 향해 말했다.
“어떠냐, 저년을 치워주겠나?”
“그건…….”
손책은 고개를 돌려 동탁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붉은 머리를 한 채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
여포.
손책은 무방비하게 술을 마시는 모습에서 빈틈을 찾을 수 없었다.
“흠, 아직 어린 호랑이에겐 무리인가?”
“……큭!”
손책은 침음성을 흘렸다.
지금 동탁이 저렇게 말한 이유는 하나.
‘여포도 못 이기면 깝치지 말고 짜져 있어라.’
그런 의미를 담고 있었다.
손책은 분한 마음에 이를 악물었다. 그러자 손책의 기운이 점점 더 강해지기 시작했고 정신력이 약한 이들이 살짝 겁에 질리는 현상까지 일어났다.
하지만그 기운도 금방 제압되었다.
“……큰 호랑이가 와도 괜찮을 겁니다.”
편안한 자세로 손책의 기운을 단번에 제압하는 여포.
그 모습에 원술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손책 저 맹랑한 년이 꼼짝도 하지 못하는 모습은 오랜 기간 아래에 두었음에도 본 적이 없는 모습.
“이런 어린 호랑이가 많이 흥분했나 보군.”
원술은 동탁의 말을이해할 수 있었다.
‘같잖은 애 빨리 내보내라.’
믿었던손책마저 당하는 모습에 원술은 이를 갈며 말했다.
“……손책, 이만 들어가라.”
“알, 겠습니다.”
굉장히 자존심이 상한 모습으로 뒤로 돌아가는 손책. 동탁에겐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어린애가 본다면 울음을 터트릴 만한 얼굴이었다.
“자! 연회를 계속하지!”
원술은 마치 왕이 된 듯한 동탁의 모습에 복수를 다짐했다.
‘내 이를 잊지 않겠다!’
하지만 복수할 방법이 없었다. 황제의 명을 받고 온 그녀를 암살할 수도 없고, 비협조적으로 나올 수도 없었다. 그때, 원술은 동탁의 옆에 있는 초선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비열하게 웃었다.
‘네 남편을 더럽혀주마!’
원술은 품안에 있는 옥새를 매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