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깽판을 치자
빠바밤!
빠밤!
뜨거운 석양 아래 황야를 달리는 천 명의 도적단……, 아니 천 명의 함진영과 우리 동탁군의 주력들.
“저는 왜 온 거죠……?”
“에이,마운록양은 저희 명예 동탁군이잖아요.”
“예에?”
물론 손님 입장으로 온 마운록도 있었지만 뭐 어떤가!
방구석에 처박힌 것보단 훨씬 낫잖아!
“역시 서류 더미에 갇히는 것보다 이게 훨씬 낫구나!”
“그러게요!”
아무리 말이 익숙했다지만 오토바이의 조작은 말보다 훨씬 더 쉬웠고 금방 오토바이에 익숙해진 함진영과 우리는뜨거운 석양을 등지며 양주로 향하고 있었다.
다그닥다그닥.
“흠, 어디 칙칙한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만?”
“……그딴 철 쪼가리보다 적토가 훨씬 더 빠르다.”
물론 호버바이크랑 속도는 비슷하지만 힘은 훨씬 더 뛰어난 적토를 내버려 두고 오토바이를 탈 이유가 없는 여포는 적토마를 탄 채 단 한 번도 뒤처지는 일 없이 우리와 같이 달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들을 말리며 말했다.
“싸우지 마시고, 그래서 원술을 설득할 계획은 뭔가요?”
지금은 오토바이나 적토마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원술, 유비, 조조의 사이를 중재하거나, 또는 한 쪽을 멸망시켜 어떻게든 싸움을 끝내 모든 제후를 모아 항우를 무찔러야 한다.
“간단하다.”
“예?”
“서주를 친 다음에 유비를 조조에게 주고 원술과 화해시킨다.”
“……예?”
“조조는 어미를 죽인 유비를 잡아서 좋고 원술은 서주의 지배권을 얻게 되고 우리는 제일 약한 세력을 쳐서 좋고.”
그렇긴 한데……. 하지만 나는 왜인지 끌리지 않았다. 유비가 삼국지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 그런가, 유비라는 이름에 호감도가 있었다. 백성을 위한 나라를 위한, 위선이라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그런 것이라고도 하지만.
솔직히 서주 대학살이라는 미친 짓을 저지른 조조보단 낫지 않겠냐.
손권? 그건 평가 대상 외다.
폭군이라고 불리는 동탁도 사실 일 잘하고 탐욕스러운 돼지라는 이미지도 탐욕스러운 가슴 돼지로 바뀌었다. 애초에 세상이 남녀역전인데.
하지만 호감은 호감인 거고 나는 지금 동탁군이니 아무리 유비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도 딱 봐도 좋아 보이는 계획에 토를 달 수는 없었다.
그래, 차라리 유비군을 멸망시키고 우리 진영으로 흡수하면 되는 거 아닌가, 우린 황제도 제대로 대우해주고 백성을 위해 일도 잘하고, 옛날에 좀 말썽 좀 부렸지만 현재랑 미래가 중요한 거 아닌가!
“성문이 보입니다!”
장료의 말에 생각을 멈추고 앞을 바라보았다.
“건업이다!”
여남과 수춘을 지배하던 원술이 조조에게 밀려 도망친 곳, 건업의 성문이 보였다.
[……저, 정지! 웬 이상한 철 덩어리를 타고 오는 이들이여!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공포에 찬 목소리로 우리에게 외치는 경비에 우리는 품안에 있는 깃발을 들었다.
董
[동……? 동이라면…… 도, 동탁군!?]
“동탁, 저 사람 너무 소스라치게 놀라는데요.”
“쯧, 경비란 년이 매가리가 없구나.”
하지만 저 반응에 이상함을 느낀 이유가 말했다.
“뭐지? 분명황실의 인장이 담긴 편지를 보냈을 텐데.”
지금 우리의 입장은 황제의 말을 전하러 온 사자의 입장.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곧 반역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저런 반응이지? 옥쇄를 가지고 아예 다른 나라를 세우는 것은 나중에 일어날 일일 텐데……?
그때 동탁이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전에 마등이 전령보다 더 빨리 온 일이 있었지.”
“……저희 며칠 만에 여기까지 왔죠?”
장안이 아무리 중앙 부분에 있다지만 건업은 서쪽 끝자락에 있는 곳, 이 세상이 본래 중국보다 더 좁고 말이 마력을 지닌 인간의 힘을 버티기 위해 훨씬 더 빠르고 강력하다지만, 전령은 사람 아닌가.
“평범하게 말로 달린다면 일주일은 걸리죠.”
“……저희 고작 사흘 걸렸는데요.”
잘 거 다 자고 온 게 이거다. 천 명의 군이 움직이니 당연히 다른 군웅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대부분 황제의 인장 하나로 해결되었고 말의 피로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고장이나 과열이 된 것도 가후가 다해결해주니까 거침없이 양주로 달리기 어언 사흘.
우린 전령보다 훨씬 더 빠르게, 양주로 와버렸다.
“……나흘 동안 기다려야 하나요?”
“일단 함진영은 여기서 대기하고, 나와 여포, 이유와 초선이 먼저 들어가지.”
계속 기다릴 순 없으니 적의가 없다는 것을 내보내기 위해 우리 네명만 우선 건업으로 향했다.
꿀물의향기가 맡아지기 시작했다.
*
*
*
“도, 동탁군이 여기에 왔다고!? 정말이냐 양홍!?”
“그렇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탈것을 타고 성문에서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있습니다.”
“그럴 수가……!”
원술이 화려한 권좌에 주저앉으며 자신의 양 갈래머리를 부여잡았다.
“대체 어째서……? 설마 반동탁연합의 일을 복수하기 위해……!?”
“그럴 리가없습니다. 바로 옆에 조조와 원소, 마등도 있는데 하필 이 먼 건업까지 와서 저희를 칠 이유가…….”
“당연히 이 원술이 대단해서 그런 거 아니겠냐! 하! 너무나도 잘난 것도 문제인가?”
갑작스레 등장한 동탁에 의논을 하기 위해 모인 인원이 원술에 말도 안 되는 개소리에 꿈틀거렸다. 그나마 머리가 좋은 양홍이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원술 님의 대단함을 말로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일일이 말로 하시지 않아도 저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흠! 당연한 거 아니겠냐! 좋다, 이 원술에게 도전해 온다면 난 피하지 않겠다. 인원도 고작천 명? 감히 나를 얕보다니, 각오하는 게…….”
“속보입니다! 동탁과 이유, 그리고 여포가 지금 성문 앞에서…….”
“히에에엑!? 여, 여포오오?!”
원술은 여포라는 말에 기겁하며 권좌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무력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각각 제후들이 보낸 뛰어난 무장들을 애처럼 가지고 논 그 무력, 치졸하게 세 명이 동시에 공격해 쫓아 보낸 괴물.
“고정하십시오! 아무리 여포라고 해도 원술 님의 재능에 비하면 태양 아래 반딧불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게다가 여포는 자기 어미인 동탁과 함께 초선이라는 남자와 동시 결혼이라는 짓을 하지 않았습니까?”
“두 여자가 한 남자에게 빠지다니!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지 않습니까?”
혼신을 다한 중신들의 아부에 원술은 다시 근엄한 표정으로 권좌에 앉으며 말했다.
“흐, 흐흐, 그렇지! 고작 남자에게굴복한 여자를 이 몸이 신경쓸 필요가…….”
“손님 받아라!”
하지만 그때 문이 열리며 들려온 목소리. 갑작스러운 불청객에 원술이 눈을 찌푸리며 외쳤다.
“누구냐! 감히 이 원술 님의 공, 간에 들어온…… 년이…….”
하지만 심술 난 원술의 목소리는 가면 갈수록 작아졌다. 중신들도 기겁하는 눈으로 문을 쳐다보며 외쳤다.
“여, 여포!?”
“동탁까지…… 어떻게 이곳에……?”
“겨,경비는 대체 무엇을…….”
동탁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원술은 듣거라!”
“무, 무슨!?”
“어허! 이것이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동탁이 거대한 가슴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무언가를 꺼냈다. 실내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도록 특수 설계한 황실의 인장. 그 찬란한 빛에 원술의 중신들이 수군거렸다.
“저것은 틀림없는 황실의 인장……!”
“황제 폐하만이 만들 수 있다는 그 인장이 어째서 저런 역적의 손에!?”
오직 황제만이 만들 수 있는 인장, 황제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증거, 동탁이 폭정을 저지를 때 그토록 얻고 싶어 했지만 얻지 못한 것.
“모두 황제 폐하의 앞에 무릎을 꿇어라!”
그것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 황제의 말을 전하는 것으로 듣는 자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그 말을 들어야 했다.
“어, 어째서네년이……!”
“지금 황제 폐하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것인가? 그 말인즉슨…….”
“아, 아니다!”
원술은 바로 권좌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며 동탁은 원래의 목적을 말했다.
“원술은 듣거라! 지금 자신을 초패왕이라 자칭하는 역적이 수도를 점거했으니 한의 충신으로 당장 나라의 평안을 위해 장안으로 군사를 보낼 것을 명한다!”
“그, 그게 무슨 말…….”
“혹시 황제 폐하의 명을 거부할 셈인가?”
“아, 아닙니다!”
너무나도 쉽게 굴복하는 원술, 그 모습에 지켜보던 양홍이 말했다.
“통촉하여 주십시오! 저희는 아직 끝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뭐라? 지금 그것이 수도가 점거당한 것보다 중요한가?”
“저희 군은 많은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서쪽엔 육강이, 남쪽엔 유요, 북쪽엔 유비가…….”
“유요는 조정에서 정한 양주자사일 터! 그녀와 육강에겐 이미 언질을 보내놨으니 괜찮다, 그러니 당장 그들에게 보낸 병력을 회군하고 수도의 탈환을 돕거라!”
“아, 아직 북쪽의 유비가 남았습니다!”
동탁은 그 말에 잠시 고민하는 척하더니 말했다.
“좋다, 그 유비가 문제라고 하였느냐?”
“그, 그렇습니다만?”
“원래라면 안 되지만 사안이 급하니 어쩔 수가 없구나. 원술은 듣거라!”
“예, 예…….”
“지금부터 너희를 도와 유비를 치겠다. 그럼 불만 없겠지?”
원술은 양홍을 바라보았다. 양홍은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원술,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성문을 열고 천 명의 용사를 받아들여라, 그리고…….”
“그리고……?”
“오랫동안 달려왔으니 피곤하구나. 연회를 열거라!”
동탁은 표정이 썩어가는 원술을 바라보며 크나큰 기쁨을 느꼈다.
여태 동안 너무 착한 부인으로만 지냈다.
끝없는 서류 더미, 백성의 목소리, 이제 지긋지긋하던 찰나였다.
폭군 동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