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해줘
“개 잡것이……!”
항우가 분노했다. 여포에게로 향하던 시선이 동탁에게로 향했고 당장이라도 검을 휘두를 기세였지만, 동탁의 곁에는 내가 있어서 그런가, 항우는 검을 휘두르지 못했다.
순간의 주저, 그것을 놓칠 여포가 아니었다.
“동탁 이 개잡년아!”
……뭔가 이상한 기합을 넣으며 방천화극을 휘두르는 여포, 항우는 인간을 벗어난 반사신경으로 검을 돌렸다. 하지만 살짝 늦었는지 충격을 전부 흡수하진 못하고 옥좌로 날아가 박히는 항우.
“지금이에요! 튑시다!”
이미 호버바이크를 탄 가후가 시동을 켜며 말했다.그와 동시에 동탁을 맨 앞으로, 그리고 나, 이유, 장료, 여포 순으로 어전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어딜 가는 것이냐!”
역시나 큰 피해는 입지 않았는지, 순식간에 땅을 박차고 달려오는 항우, 그러자 가후가 품 안에 병을 꺼내더니 항우에게로 던졌고 쨍그랑 소리와 함께 병이 깨졌다.
“늘어나라!”
그러자 병 안에 있던 철들이 물에 불린 미역처럼 순식간에 커지며 항우의 앞을 막았다.
아무리 항우라도 저 철 덩어리들을 뚫고 올 수는…….
“같잖은 재주!”
있네?
아주 간단히 철 덩어리들을 부수고 순식간에 따라오는 항우의 여포가 마력을 끌어모았다. 그 모습에 항우도 칠흑의 마력을 모았다.
“장료! 초선을 앞으로내밀어라!”
“알겠습니다!”
“예!? 으어에엑!?”
갑자기 나를 집어 든 장료가 항우의 앞으로 내밀었다. 나의 얼굴을 본 항우는 멈칫하더니 혀를 차며 마력을 없애고 방어 자세를 취했다.
훙-!
여포의 마력이 항우에게 날아갔고 제대로 방어하고 있었기에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지만, 그만큼 거리는 벌어지게 되었다.
“이 비겁한 년……! 여포여! 그대의 남편이 지금 멋대로 조종당하고 있는데 어째서 그년의 밑에 계속 있는 것이냐!”
“……나도있고 싶어서 있는 게 아니다!”
“뭐라!?”
“초선의 아이만 배지 않았다면…….”
“아이……?”
항우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동탁이 그런 그녀를 비웃으며 말했다.
“초선은 내 남편이기도 하다!”
“뭐, 뭣!?”
처음으로 당황한 항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본 일처다부제도 가능한 세상이다, 그 반대는 당연히 생각도 못 하는 세상.
하지만 그 어려운 걸 내가 해냈습니다!
항우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생각을 그만두었는지 다시 우리를 향해달려오기 시작했다.
“변하는 것은 없다. 여는 우희를 되찾을 것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도망치던 우리는 드디어 고순이 있는 곳까지 오게 되었다. 오면서 마물의 방해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다행히 마물들은 전부 정리한 모양.
“충! 마물들을 전부 정리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함진영을 모아라!”
“알겠습니다! 함진영-! 방어 대형을 펼쳐라!”
고순은 이유도 묻지 않고 명령에 따라 함진영을 모았다. 이럴 때만큼 고순의 성격이 듬직할 때가 없었다. 당황하지 않고 고함 한 번으로 순식간에 함진영을 모은 고순.
“군대로 여를 막겠다고?”
그 모습을 본 항우가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일심동체의 군대인가? 하지만 개개인의 능력은 별로구나, 고기 방패밖에 되지 않을 텐데 그걸로 여를 막을 수나 있겠느냐?”
그 말대로, 함진영은 군대를 상대할 땐 최적의 병사들이지만 이런 규격 외의 존재에겐 일반 군대랑 다를 바가 없었다. 저 검이 한 번 휘둘러지면 몇백 명씩 우르르 쓸려나갈 텐데 일심동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이들을 희생시키는 일? 절대로 안 된다. 그런 쫄보 같은 짓은 절대로 할 수 없었다.
“함진영과 같이 싸운다면 승산이 있습니다. 희생은 크겠지만…….”
“……정말로 고기 방패로 쓰시겠다는 말인가요?”
“방법이 없습니다. 최대한 지치게 만든 다음 여포 님이 마무리를 날리는 수밖에…….”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정말로 방법이 없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항우의 뒤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이, 더러운 한 황실의 잡년들……! 너희는 도망칠 수 없다!”
자신을 한신의 후예라고 밝힌 마신교, 그녀가 항우의 뒤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의식용 칼을 든 채로. 그때 굉장히 불안한 느낌이 나를 관통했다. 그 느낌은 다른 사람도 느꼈는지 가후와 이유가 그녀를 향해 마법을 뿜어냈지만, 항우의 손짓 한 번에 허무하게 사라지는 마법.
“재밌는 짓을 하는구나.소환 의식인가?”
“초패왕이시여, 힘이 필요합니다.”
“좋다.”
초패왕이 손을 내밀었다. 의식용 칼이 항우의 손을 한 번 베자 항우의 피가 땅으로 떨어졌다.
“패왕에게 굴복한 사흉이여! 그대를 굴복한 자가 너희를 부르니 군대를 이끌고 이 땅에 강림하라!”
그녀가 외쳤다. 그러자 항우의 피가 스스로 움직이더니 이윽고 술법진이 그려졌고 그 위로 거대한 통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계로 향하는 문…….”
이유가 말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최상급 마물을 필두로 수많은 마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거 큰일 났구나.”
이제 전면전도 소용이 없게 되었다. 항우 혼자도 힘들었는데 수많은 마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으니.
“저건 불가능합니다. 저자의 마력은 저희보다 떨어지는데 어떻게 마계의 문을…….”
“……아마도 항우 때문일 겁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마계를 지배하는 악마 사공작. 사흉이라 불리는 악마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힘은 서로 비등하기에 마계의 왕은 항상 공백이었죠, 하지만…….”
그걸 항우가 모두 굴복시켰고, 항우가 마계의 왕이 된 것이지요.
“마왕(魔王). 모든 마물과 악마의 왕. 그녀라면 마계의 문은 손쉽게 열 수 있겠죠.”
“……그렇다는 것은.”
“저희만의 문제가 아니게됐습니다.”
가후는 외 알 안경을 쓸어 올리며 마계의 문을 쳐다보았다.
마물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며 나오는 한 인물.
중요 부위만 겨우 가린 복장을 한 채 머리에는 소의 뿔이 달렸고, 그에 맞춰 동탁과 비견될 만한 거대한 가슴을 자랑하며 나오는 여성.
“흐음, 인간의 냄새가 가득해.”
“도철, 다른 년들은?”
“통로가 약해서 더 오면 부서져. 그래서 일단 내가 먼저 왔지.”
도철이라 불린 여성은 그렇게 말하곤 시선을 돌려 우리 쪽을 한번 쭉 훑었다.
“흐음, 숫자는 천 명? 고작 이거 가지고 우릴…… 흐음?”
도철은 여포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흠칫 놀라며 몸을 뒤로 뺐다.
“뭐야 저년? 존나 쌘데? 그 옆에 언월도 든 년도 많이 쌔고.”
“너로는 무리다. 마물의 통솔이나 신경 쓰도록.”
“으응, 매우 자존심 상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죽기 싫으니까 말이야!”
장난스럽게 답하는 도철, 하지만 우린 웃을 수 없었다.
“……마초 정도의 실력인가, 장료, 너보다 살짝 강하다.”
“대장, 그게 문제가 아니야.”
장료의 말대로, 이대로 가면 필패. 눈앞에 있는 마물들은 우리를 잡아 먹을 듯이 쳐다보고 있었고 우리의 사기는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 함진영이 아니었다면 무기를 놓칠 정도의 전력차.
무력으로는 절대로 이 일을 해결할 수 없었다. 가후와 이유는 정말로 몇 명을 희생시킬 전략을 짜고 있었고 동탁도그것에 동의하는 분위기. 하지만 나는 절대로 허락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 나섰다.
“초패왕!”
“초선!?”
내 기행에 놀란 일행이 나를 쳐다보았다. 항우와 도철의 시선도 나에게로 향했고 나는 그들을 향해 외쳤다.
“거래를 하러 왔다!”
도박이지만, 누군가가 희생하는 쓰레기 같은 전개보단 훨씬 낫다.
“말해 보아라, 우희. 저들의 목숨을 원하나? 들어주겠다. 너만 나에게로 온다면…….”
“안 된다! 그런 건 이내가 허락…….”
“아니! 싫은데!”
나의 빠른 대답이 뒤에서 나에게 외치던 동탁은 물론 항우도 당황하며 나에게 물었다.
“그, 그럼 무엇이냐?”
“첫 번째! 우리를 아무런 이상 없이 밖으로 보내줄 것!”
“그리고……?”
“두 번째! 장안의 백성들을 평안히! 성군처럼 다스릴 것!”
“또 있느냐?”
“세 번째! 서량은 건드리지 말 것!”
“……그것을 들어주면 뭘 해줄 것이냐?”
“없다!”
“뭣?”
“해줘!”
그냥!
해줘!
해달라고!
나의 박력에 항우는 뒷걸음질까지 치며 당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