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9화 〉초패왕? (59/96)



〈 59화 〉초패왕?

제물 소환.
강력한 존재일수록 소환에 필요한 제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소환을 행하는 사람도 굉장히 높은 수준의 실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조건을뚫고 소환에 성공하면 대부분 소환된 고위 존재나 마물들은 시전자의 말을 따른다.


“초선, 내 뒤로.”
“동탁…? 알겠어요.”


물론 소환한 존재도 의사가 있고 거절 의사도 밝힐 수 있었다.


“어, 어째서! 증오스러운 유방의 후손과 한신의 후손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이 세운  나라에!”
[…….]
“부디 초패왕께서는  탐욕스러운 나라를 무너트리고 정의를 바로 세우기를 바랍…….”
[네가 한신이냐?]
“예?”
[저 은발 꼬맹이는 유방이고?]


초패왕은 귀찮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말했다.


[한신도 없고 유방도 없다, 직계 후손도 아닌 이젠 잔재밖에 남지 않은 피로 나를 불러보겠다고? 죽고 싶으냐?]
“그, 그것은…….”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들어주고 가겠다, 더  말 있느냐?]

이야, 초패왕님 성격 너무 화끈하신데.
나는 점점 좋은 쪽으로 흘러가는 상황에웃음을 지었다.
그러게 누가 현역에서 물러난 양반을 불러오래!

“제, 제발 한 번만 재고해주십시오! 비록 유방과 한신은 아니더라도…….”
[귀찮구나, 여는 가겠…….]
“우희와 필적한 아름다움을 가진 남성이 있습니다!”

……뭐?
갑작스러운 급발진에 모두가 놀랐다. 동탁 뒤에 숨은 나는 물론이고, 물론 아직도 취기를 몰아내지 못한 마운록은 놀라지 않았지만.

[감히.]
“컥!”
[더러운 입으로 우희를 언급해?]

분노한 초패왕의 목소리에 맞춰 정체를  수 없는 힘이 마신교의 목을 조였다. 그리고 공중에 뛰어지는 마신교, 그녀의 목에 핏줄이 올라왔고 얼굴은 터질 듯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죽어라.]

무자비한 기운이 그녀에게 몰아쳤다. 감히 반항할 생각조차 못  그저 그 기운을 정면으로 맞은 그녀의 칠공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 나라를 무너트리겠다는 일념, 그것 하나로 그녀는 버티고 있었다.

“제… 제, 발, 저 검은 여성, 뒤에…….”
[…….]


그런 기개가 마음에 들었을까, 초패왕은 그녀를 놓아주었다. 칠공에서 피를 흘리고 토하는 그녀에게로 가던 기운이 이번엔 이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좋다. 구경은 해주지.]

초패왕의 기운이 우리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무언가가 위에서 누르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  돼, 나는 괜찮아도 동탁에겐…….

[……거기, 임신한 검은 여자, 여의 자비로 너는 아무런 압박도 가하지 않았다. 자리를 비켜라.]


다행히도 초패왕은 임신한 동탁을 배려해주었다.
아니 근데 그걸 전부 들리게 말하시면…….

“이, 임신!? 너 임신했느냐?!”
“느에? 임…… 신? 그, 그건 안 돼! 몸은 빼앗겨도 마음까진 빼앗길 수는…… 으힣♡”

동탁의 임신을 모르는 헌제와 마운록이 놀라며 동탁을 쳐다보았다. 마운록에게는 들켜도 입막음을 시키면 되지만 황제는…….

“이, 임신!? 이 더러운 여자가 나의 천사쨔응에게 무슨 짓을 한거냐능!”
“우-효오오! 아이가 있는 유부남? 으히히히! 피가 끓어 오른다!”

이런 젠장, 몰래 숨어서  장면을 보고 있던 이각과 곽사에게도 들켰다.
임신은 축복받아야 마땅한 일, 하지만 동탁은 적이 많은 군주, 무조건 숨겨야 좋은 일이었다, 나중에 배가 불러오면 들킬 일이었지만…….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싫다.”
[……자비는  번뿐이다. 임산부, 비켜라.]
“거절한다.”

두 번의 거절에 아까 마신교의 목을 조른 것과 같은 기운이 동탁에게로 쏟아졌다.  기운은 만전의 동탁도 막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하고 신속했다. 그렇다면 이대로 그 공격을 맞아야 하는가?


아니.
우리에겐 천하제일인이 있다.


[호오?]

초패왕의 기운이 동탁에게로 쏟아지다 어떠한 기운과 부딪혔다. 그리고 그 기운은 검붉은 기운에 점점 잠식되더니, 이윽고 형체도 남가지 않고 잡아먹혔다.


그 일을 행한 여포는 온몸에 검붉은 마력이 폭발하는 듯이 솟아 오르며 자신의 기운을 초패왕에게 아낌없이 남발했다.  모습은 가히 무신, 초패왕에게 밀리지 않는, 오히려 압도하는 분위기가 여포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여포는 방천화극을  채 말했다.


“패배한 개가 누구를 넘보는 것이냐.”
[그 힘…… 한계를 초월했구나!]
“너야말로 죽고 싶지 않다면 꺼져라, 여긴 패전국의 왕이 올 곳이 아니다.”

초패왕을 향해 거침없는 언사를 보여주는 여포.
아, 너무 멋있다…….
동탁도 멋지지만 역시 전투에선 여포의 멋을 따라갈 수가 없다. 역시 내 부인들!사람으로 만들길 잘했어!

[이름이 무엇이냐?]
“여포.”
[여포, 한계를 초월한 힘을 가졌음에도 어째서 저런 나약한 년의 밑에 있는가?]
“……난 한 번도 저년의 밑이라고 생각한 적 없다!”
“너무 슬프구나, 딸아.”
“넌 닥쳐!”
[그럼 어째서?]

초패왕의 물음에 여포는 동탁의 뒤에 있는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손만 내밀어 위 아래로 흔들며 화답했다.


“예전에는 그랬지, 누구보다 높은 곳에 서 있고 싶었지.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은 관심도 없다.”
[무엇을?]
“……그의 옆이 가장 높은 곳이니까.”


꺄아아악!
어머나 어머나 어떡해, 손발이 오글거려, 근데 그렇게 싫지는 않은 느낌? 오히려 너무 달달해서 살짝 두근거리기도 하는 거 같고…….

[……깨달은 게 고작 사랑놀음이냐?]
“맘대로 지껄여라, 네놈은 이해하지 못할 테니.”
[…….]

여포의 말에 갑자기 말이 없어진 초패왕.
혹시 화났나,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빨리 깨달았다면 좋았을 것을.]
“뭐?”
[되었다. 흥이 식었다.]


그녀가 그리 말하자 압박하던 기운이 아예 사라졌다.

[여는 이만 가겠다.]


정말요?


[하지만 저자의 마음을 빼앗은 남자가 누군지 궁금하긴 하구나. 얼굴을 한 번 보여줄 수 있겠느냐?]
“안 된다.”
[쩨쩨하구나, 본다고 얼굴이 다는 것도 아닌데, 그냥 보고 바로 돌아가겠다, 여가 약속하지.]
“너는 끈질기구나, 절대로 안 된…….”
“……얼굴만 보여주면 바로 돌아가실 건가요?”
“초선!”


내가 물었다.
초패왕이라는 자가 약속을 어길 리도 없었고, 얼굴만 보여주면  상황이 바로 끝나니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약속하지.]
“그럼…….”

나는 동탁의 뒤에서 슬며시 옆으로 나왔다.
됐지? 이제 돌아가는 거지? 이제 멀쩡한 장안에서 다시 뒹굴거리는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거지?


하지만기대는 보기 좋게 배신당했다.

“아닛?!”
“약속을 어길 셈인가!”


생명력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칠흑의 마력이 어전을 덮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포의 마력을 뚫고 오는 압도적인 존재감이 느껴졌고.

초패왕이 강림했다.

“나앗!”
“헤으응……♡”
“우, 우효…….”
“히데붑!”

헌제, 마운록, 이각, 곽사가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유와 가후의 상황은 그나마 나은 편이긴 했지만, 그들도 압박감이 심한지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잠깐, 그렇다면 동탁은……?

“난 멀쩡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동탁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뭐지? 같은 검은색 마력이라 호환되는 것이 있나?

아무튼, 좋은건 좋은 거니 넘어가고, 우선 나쁜 것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건 이유도 같았는지 그녀가 물었다.


“어째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겁니까! 당신은 긍지 높은 초패왕…….”

후웅-!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압도적인 마력의 폭풍, 이유는 마력으로 급히 몸을 보호했지만 초패왕의 마력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유 님!”
“괘, 괜찮습니다! 가후 님이 도와주셔서…….”

하지만 다행히 가후의 재빠른 대처에 큰 피해는 없었다.
나는 공격이 날아온 곳을 바라보았다. 칠흑색의 마력으로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때문에 초패왕인 그녀가 약속을 어기고 직접 강림했는가. 그녀는 내 얼굴만 보면 간다고 약속까지 했다. 하지만  얼굴을 보자마자 그녀는 강림했다.


……잠깐.
그럼 이거 또…….

나 때문이야?

“하,”

그때, 칠흑의 마력 속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기가 찬다는 듯이 웃던 그녀는 이윽고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쿠긍…….
그녀가 웃자 천장에서 돌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기본적인 방어 술식이 걸려있는 어전의 건축 자재를 뚫고, 그녀의웃음은 어전을 진동시켰다.

이윽고 웃음은 점점 작아져 완전히 멈췄을 때, 차갑고 오만한 목소리가 어전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400년을 찾아 헤맸다.”

이윽고 칠흑의 마력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초패왕.
동탁과 비슷한 검은 머리 색과 어깨까지 오는 머리카락.

“우희를 만나게 해주겠다는 악마의 거래를 받아들이고 마계로 갔다, 하지만 우희는 없었지, 약속을 어긴 그 악마놈을 찢어 죽이고 덤벼오는 악마놈들을 모두 찢어 죽였다. 그럼에도 우희는어디에도 없었다.”


칠흑의 갑옷과 검은 검집을  패왕의 모습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오늘 드디어 이 항우의 반려를 찾아냈구나.”

그런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희.”
“……저요?”

……나는 초선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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