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8화 〉초패왕. (58/96)



〈 58화 〉초패왕.

첫 번째 황제는다름 아닌 헌제였다.

"하늘도 짐을 황제라 칭하는구나!"

진짜 이 나라의 황제가 황제 게임의 황제가 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


"그럼 황제께서는 이 통에 담긴 종이를 꺼내주십시오."


사회자를 맡은 장료가 말했다. 수백 개의 접힌 종이가 담긴 통을 바라본 헌제는 잠시 고민하더니 그냥 손에 집히는 것을 뽑았다. 그리고흥분된 표정으로 접힌 종이를 펼치는 헌제.


"어디 보자······ '부른 번호끼리 서로에 대한 생각 말하기?' 흠!  약하긴 하지만 재미있겠구나!"
"번호를 말씀해주시길, 참고로 황제는 본인도 지칭할 수 있습니다."
"됐다! 1번부터 5번까지 고르면 되는 거지?"

음······ 잠시 고민하던 황제는 다른 참여자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마운록을 제외하고 모두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누가 어떤 번호인지 추측할 수 없었다.


"에잇! 2번과 5번으로 하겠노라!"
"2번과 5번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
초선을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2번 여포 님과 5번 동탁 님은 서로에 대한 진심을······."
"힘만 센 무식한 년."
"젖소 년."
"어미에게 패륜 하는 쓰레기."
"탐욕스러운 돼지."

서로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인신공격을 날리는 둘의 모습에 초선은 혹시나 황제가 무서워할까 눈치를 봤지만 헌제는 동탁이 욕을 처먹는 것이 너무나도 즐거운 듯 체통도 없이 폭소를 지르고 있었다.


"이제 검도  드는 허약한 년."
"내가 검을 어찌 들겠느냐, 누구와 다르게 나는 걱정해야 할 것이 많다."
"큭······ 남자를 짜 먹는 음란한 마녀!"
"3초 안에 끝나는 조루년."
"지, 지금은 아니거든!?“


하지만 여포가 동탁을 말로는 이길 수 없었고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는 여포에 장료가 둘의 논전을 멈췄다.


"그만! 먼저 화를 낸 여포 님은  그릇에 담긴 술을 단번에 다 마셔주십시오."
"뭐? 내가 왜!"
"규칙입니다."

증오스러운 눈으로 동탁을 바라보던 여포는 자신에 눈앞에 놓인 술이 가득 담긴 커다란 그릇을들어 그대로 전부 마시기 시작했다.

"푸하!"

그 많던 술을 전부 비운 여포의 얼굴은 살짝 붉어져 있었다. 익숙지 않은 취기에 여포는 마력으로 취기를 없애려고 하자 장료가 말했다.


"마력으로 취기를 없애는 것은 불공평한 기술이니 금지입니다."
"제길."

취기를 날려 보내지 않은 채 자리에 앉는 여포, 그리고 다시 황제를 뽑는 시간이 왔다.


"어, 에엣?"
"저 애는 누구······ 아, 마등의 막내딸인가?"
"그, 그렇습니다! 잠시 수도를 구경하고 싶어서 왔는데······."


마운록은 그렇게도 원하던 소설과도 같은 상황임에도 마냥 기뻐할 없었다.
아니, 황제가  건 좋다, 미남들 사이에서 황제가 되면, 근데 지금 상황은 전혀 기뻐할 수가 없었다.


"저 애는 누군가?"

저 꼬맹이가 누구보고 애라는 거야!
······라고 말하기엔 저 애는 진짜 이 나라에 황제였다.

"불행하게 지금 이 시기에 수도로 온 서량태수 마등의 막내딸 마운록이라고 합니다."
"되었다. 서량태수도 아닌데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종이나 뽑거라."
"아, 아하하······ 네."

자신을 무시하는 헌제의 언행에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순순히 종이를 뽑는 마운록.

“그러니까…… ‘첫 번째로 고른 숫자가 두 번째로 부른 숫자에게 무릎 꿇고 개처럼 짖기.’ 라는데요?”
“…….”

정적.
여기에 그 누구도 그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황제, 상국, 마신교 고위 사제, 천하제일인, 상국과 천하제일인의 남편.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운록 자기 자신.


만약 하게 된다면 변방의 후계자도 아닌 자신이 해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운은 그 누구의 편도 아니었다.


‘자, 잘 생각해야 해, 잘 못 해서 황제 폐하가 다른 사람에게 개처럼 짖을 수도 있어!’


마운록은 잠시 생각했다, 아까 2번은 여포 장군, 5번은 상국이었으니 자신의 완벽한 두뇌 상으론 2번과 5번은 각각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 2번과 5번은 피해서…….

“3번이 1번에게 하는 거로 하겠습니다!”
“3번과 1번 님은 일어나 주시길 바랍니다.”

제발, 제발! 딴건 몰라도 3번이 황제 폐하만 아니면 돼!
하지만 이건 종속시행이 아닌 독립시행이었고, 마운록이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나왔다.


“3번 유백화 님, 1번 초선 님.”
“나, 낫! 나, 나나나란 말이냐아!?”


마운록은 더는 생각이란 걸   없었다.
그녀는 그저 초점이 없는 시선으로 술병을 잡고 그대로 병나발을 불었다.

그렇게 헌제가 초선에게 무릎을 꿇고 개처럼 짖기 일보직전, 마신교가 입을 열었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폐하에게 그런 짓을 시키다니요! 말도 안 됩니다.”
“암요암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나도 황제를 개처럼 짖게 할 생각은 없다. 황제를 쪽 주는  이번 황제 게임의 본질이 아니니까.


“하지만 황제의 권위를 이용하면 게임의 재미가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그에 상응하는 벌칙이 필요하죠.”
“감히 폐하께 무슨…….”
“어찌하겠습니까? 폐하, 이대로 권위를 이용해 이 오락을 끝내시겠습니까? 아니면 벌칙을 받으시고 계속하시겠습니까?”
“으, 으으…….”


나는 모든 것을 걸었다! 도망칠 것이냐 맞서 싸울 것이냐?
다행히 황제는 도망치기만 했던 자신을 혐오하는 듯 짧은 고민 끝에 말했다.

“그, 벌칙이란 게 무엇이냐?”
“간단합니다.  술을 마시는 것이지요.”


이 오락엔 무엇이 담겨있나?

1%의 황제의 진위.
1%의 마신교의 목적.
1%의 시간 끌기.
1%의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국의 물건입니다.”


96%의 스피리터스가 있었다.
무려 알코올 도수 96%의 소독용 알코올보다 10%~15% 정도 높은 술.나는 작은 잔에 스피리터스를 따랐다.

“그, 그게 뭐죠?”
“술입니다. 전부 마시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이 작은 잔에 있는 술을 마시면 됩니다.”
“아직 폐하께선 약관의 나이도 지나지 않은 분입니다. 그런 분에게 딱 봐도 독해 보이는…….”
“아, 그럴 땐 흑기사를 부르시면 됩니다. 장료 님, 설명해주십시오.”

누구보다 이 게임을 가장  알고있을 장료에게 물었다. 이 게임은 클럽에서 자주 하던 게임이었고, 이성에게 인기가 많은 장료는 자주 클럽에 불려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게임을 즐기는 편은 아니라 사회를 자주 본 그녀였다.

“흑기사란 만약 벌칙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더는 먹기 힘들다고, 또는 관심 있는 이성의 시선을 끌기 위해 대신 벌칙을 받아주는 것을 말합니다.”
“들으셨죠? 자! 그럼 폐하를 위해 흑기사를 하실 분은 계신가요?”


당연하게도 손을 드는 사람이 있었다.


“제가 먹겠습니다. 주시지요.”

그녀의 말대로 나는 손에 들린 잔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잠시만요.”
“무슨 일이시죠?”
“전부 증발해서 다시 따라 드릴게요.”
“……예?”

나는 다시 잔을 가득 따라 주었다.

*
*
*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우, 우웨에에엑-!”
“제가 왕이네요! 자, 1번과 5번이 서로 볼에 뽀뽀하기!”
“와아! 저에요! 제가 1번이에요!  마운록이 말이지요!”
“지, 짐이 5번이다! 흑기사! 흑기사는 없느냐?”
“저기 토하고 있는데요.”


여포와 마운록은 만취, 마신교는 토를 하고 있었고, 나는 살짝 취한 정도, 원래라면 취하지 않을 정도로 마셨어야 했지만 동탁에게 가는 술을 모두 내가 마셨기에 살짝 취했다.

“조금은 줄 수 있지 않느냐.”
“임산부에게 술은 안 좋아요.”
“적당히 먹는 것은 오히려 좋지 않겠느냐?”
“연회용 술은 모두 도수가 쌔서 안 돼요.”

그리고, 동탁처럼 술에 취하지 않은 사람이 딱 한 명.


“으, 으읏. 쪽-.”
“와아! 황제 폐하가 제 볼에뽀뽀를…… 평생 잊지 않을 거예요! 쪽-.”
“여, 영광으로 알 거라!”


순수하게 호의를비추는 마운록에 취하지 않았음에도 볼에 뽀뽀를 해주는 헌제, 그 모습에 나는 시간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폐하, 즐거우신가요?”
“이게 즐거운 거로 보이느냐?”
“그렇지 않나요?”
“……사실 조금 즐겁다.”


히힛.
즐겁게 웃는 헌제의 얼굴을 보자 문뜩 그녀가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철이 들기도 전에 전대 황제인 유굉이 죽고 난이 일어났으며 해결되자 동탁에게 잡혀 눈치만 보는 황제생활을 겪은 어린애, 너무 불쌍한 인생 아닌가.

“생각을 바꾸실 생각은 없나요?”
“갑자기 무슨 소리냐?”
“……백성의 생명을 빼앗는 이 술법을 멈출 생각은 없으십니까?”
“뭐랏? 생명? 갑자기 무슨 생명이냐?”

마치 아무것도모르는 듯한 황제의 어투, 연기인가?

“장안의 백성들 대부분이  생명력을 빼앗는 술법에 걸려있지 않습니까. 미약한 양이지만 백성의 생명력을 빼앗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잠깐, 무슨 소리냐? 생명이라니! 짐은 그런 소리를 듣지 못 했다!”
“그게 무슨……?”
“간단한 이야기지 않느냐.”

동탁은 무심하게 눈앞에 놓인 안주를 하나 집어 먹으며 말했다.
설마, 황제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른 채 이용만 당한 거라고? 정말로?


“진짜 빡대가린가……?”
“뭣!? 그거 지금 짐에게 말한 것이냐!?”
“약관도 안 된 꼬맹이를 너무 고평가하는구나.”
“잠깐, 그렇다면 저 술법으로 무엇을 하실 생각이었습니까?”


 많은 생명력을 가지고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검은 그림자를 헤치고 나온 사람은…….


“상국!”
“이유냐? 가후까지 데려왔구나.”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셨더군요.”

이유와 가후, 오랜만에 보는 그들의 얼굴은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이유라면 몰라도 포커페이스가 패시브인 가후도……?


“당장, 당장 이곳을 빠져나가야합니다.”
“설명 해 보거라.”
“저 생명력을 흡수하는 술법에 적힌 문구, 그것의 정체는…….”
“마신을 강림시키는 것이지요.”

마지막에 들린 목소리, 그것은 이유도 가후도 아니었다.
취기를 마력으로 없앤 마신교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시간을 끄시던 이유가 이것이었군요, 이것의 정체를 알아채기 위해, 하지만 그것은 실책이었습니다. 이제 마신을 강림시키기 위한 제물은 모두 모였습니다.”
“무, 무슨 소리는 하는 것이냐! 이것은 그저 마물들을 조종하기 위해 백성들의 마력을 약간 흡수하는 것이라고…….”
“당연히 거짓말이지요. 이제 연기는 끝입니다. 그거 아세요? 난 너같은 어린애를 보살피느라 짜증나 죽는 줄 알았어!”
“뭐, 지, 지금 네가, 짐에게 그딴 말을…….”


나는 상황을 순식간에 파악했다. 나는 황제에게 다가가 그녀를 껴안았다.

“폐하, 저 사특한 자의 말을 듣지 마시옵소서.”
“네, 네가 어찌! 짐에게 해 준말은 무엇이냐!  백성이 나를 찬양하게 한다고 그러지 않았느냐!”
“우리 멍청한 황제, 그게 진실이라 믿었나? 하지만 어떡하나, 내가 말한 것 중 대부분이 거짓말인데?”
“가, 감히! 감히 네놈까지짐을 능멸…….”
“폐하.”


쪽.
나는 기습적으로 헌제의 볼에 키스를 날렸다.
이건 기회다. 황제의 신임을 얻을 기회. 나의 갑작스러운 키스에 화내던 것도 잊고 얼굴을 붉히며 나를 쳐다보는 헌제.

“저를 보세요.  얼굴을 보세요.”
“보, 보고 있다.”
“잘생겼죠?”


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헌제.


“제 목소리는요?”
“가, 감미롭다.”
“그러니 잠시만, 제 말만 들으세요.”
“으, 응, 알겠다.”


나는 순식간에 황제를 구워삶으며 황제의 앞으로 나갔다.


“남성 뒤에 숨는 황제의 꼴이란! 참으로….”
“여포.”
“…못났구나.”
“2초 줄게.”
“뭣!? 꺄악!”


순식간에 취기를  여포가 순식간에 다가가 그녀의 배에 주먹을 날렸다. 그대로 날아가 벽에 처박히는 마신교.

“……2초도 너무 길었네요.”

이겼다! 마신교의 난 끝!

“이야, 대장!  강해진  같은데?”
“……자신을 의심하고, 한계를 뛰어넘으면 된다.”
“엥? 그게 뭔 소리야.”

이렇게 끝나면 좋았을려만.

“아직 끝이 아닙니다.”

가후의 말에 나는 마신교를 쳐다보았다.


“크, 크하하… 쿨럭-! 이겼다고 생각하나?! 천만에!”


그녀가 토한 피가 땅에 떨어졌다. 그 피들이 붉은 마력이 모인 곳으로 날아갔다.


“마신이시여! 저의 부름에 답하소서! 한신의 후손인 저의 피를 바치노니, 여기 있는 증오스러운 한신의 후손과 유방의 후손을 직접 벌하소서!”
“큰일이군요! 마신이 소환되려고 합니다!”

강력한 돌풍이 불었다. 장안 백성들에게서 모은 생명력이 정순하게 요동치더니, 이윽고 마신의 존재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크윽!”
“이 위압감은 대체……!”


저게…… 역발산기개세, 초패왕, 여포 이전에 무신이라 불렸던 인물. 대부분이 그 존재감에 몸을 떨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


그중에서도 오직, 여포만이 자신의 애병을 꽉 쥐고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존재감이 가까워져 왔을 때, 마신교가 외쳤다.


“마신이시여! 제 소원을 들어주시려 이곳에…….”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예상을 벗어난…….

[……싫다.]


완벽한 거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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