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오히려 좋아
“별에 닿고 싶은 갈망이 생기셨나요?”
“……닿을 수 있을까요?”
“그럼요. 제가 인정한 여자인걸요.”
[주인공이 좌절하고 있을 때, 상냥한 귀족이 다가와서 말했다.]
[“당신은 제가 인정한 사람이에요, 그러니 이런 데서 쓰러지지 마세요.”]
[그 말을 남긴 채 상냥한 귀족은 사라졌다.]
“자, 잠깐!”
마운록은 초선의 말을 듣자마자 소설 속에 구절이 번뜩 떠올랐다. 바로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지만, 초선의 모습은보이지 않았다. 마치 마법처럼 사라진 인형에 마운록은 마력까지 써가며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정말로, 정말로 소설 속의 그인가……?”
주인공의 성장을 돕고 홀연히 사라진 그에 마운록은 그녀의 정체가 소설 속의 존재라 의심하게 되었고, 그와 만난 적이 있던 인물, 마초에게 재빠르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분명 들것에 실려 나갔지? 그렇다면 이 근처 시종이 어디로 옮겼는지 알 거야.
마운록은 처음 보는 시종에게 거침없이 말을 걸었다.
“어, 막내 아가씨……?”
“첫째 언니는 어디 있어!?”
“지금 막 의원으로 향했…….”
“고마워!”
땀을 흘리며 시종이 알려준 방향으로 달려나가는 마운록. 그 모습에 시종이 무심코 말했다.
“막내 아가씨가 말하는 거 처음 봐…….”
시종의 말을 들었는지 아닌지 마운록은 거침없이 의원으로 향했다. 아는 얼굴, 모르는 얼굴이 지나갔지만 마운록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달렸다. 처음 모든 사람의 시선을 무서워했던 마운록은 더는 없었다.
“어!?”
“운록이네?”
“너도 언니가 걱정됐구나!”
“잘 왔어!”
의원에 도착한 마운록, 그런 그녀의 앞에 마철과 마휴가 의원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죽이 잘 맞는 두 자매, 그런 언니들이 반가우면서도 살짝 겁이 났다.
아무리 성장했더라도 가족들은 좀 많이 거북했다. 특히 어머니, 분명 이 안에는 어머니도 계시겠지…….
[두려움을 이겨내는 용기!]
하지만, 마운록은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많은 고난을 겪고 성적 취향까지 변한 그녀는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고, 그렇기에 평탄하게 대답했다.
“응, 언니는 괜찮아?”
“괜찮아! 좀 많이 무리해서 몸 안이 엉망진창이지만!”
“완전 박살이 났지만!”
“언니는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그게 괜찮은 건가?
마운록은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고개를 끄덕인 뒤에 의원의 문을 열었다.
코로 들어오는 쓴 약재의 향, 건조한 바람. 그리고 그립고 정겨운 목소리들.
-내상이 심하십니다. 적어도 석 달은 정양해야 합니다.
-……어쩔 수 없죠, 만용도 부렸고, 경지에 발이라도 걸친 대가라 생각하면 싸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어미 앞에서 할 소리냐?
-이 정도면 좋은 결과 아닐까요?
-너의 어미로서의 답이다. 무인으로 말하면 당연히…… 요즘 젊은이들 언어로 말하면 개이득이지.
마운록은 천천히 정다운 말을 나누는 그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커튼으로 가려진 그 공간에 손을 내밀고, 그대로 옆으로 벌렸다.
“누구…… 운록?”
“……가, 강녕하셨어요? 어머니…….”
드디어 얼굴을 마주한 마운록과 마등, 언제나 마등이 찾아와서 마운록의 방을 두들기는 역할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마운록이 직접 마등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말을 건 것.
고작 그것뿐이었지만, 마등은 말로 허용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그녀는 멍하니 자신을 보며 살짝 웃음을 짓는 막내딸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 엄마 울어?”
“……엄마 안 운다. 살짝 먼지가 들어가서 그렇다.”
“의원에 공기가 나쁠 리가 없잖아. 청결 유지 진이 있을 텐데…….”
말도 안 되는 말에웃음을 지으며 마등 옆에 앉는 마운록. 그 아름다운 모습에 마초는 내상으로 인한 고통도 잊고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바라왔던 이상적인 모습, 그것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진료는 끝났으니, 저는 가보겠습니다.”
게다가 눈치 좋은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외부인이 사라지고 남은 세 가족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그럼, 내 몸이 튼튼한 것은 다 알고 있지 않니?”
“그래도, 상대가 그…….”
마운록은 여포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하복부가 뜨거워졌지만, 가족 앞이라 그런지전과 같은 뜨거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이다. 말을 꺼낼 수 있겠어.
“아, 근데 언니…… 전에 대회장 단상 기준 우측에 있는 숲에서 본 남자 있잖아.”
“…….”
“혹시 그 사람…….”
“무슨 소리니?”
“……뭐?”
무슨, 소리냐니?
“기억 안 나? 대회 이틀 차에 경기 직전 언니가 이름을 물어봤던 그 남…….”
“그때라면…… 대기실에 있었는데?”
“거, 거짓말!? 내가 똑똑히 봤는데? 그 옛날 언니가 도심에서 날라댕길 때 남자 꼬실 때의 말투로 우희를 꼬시는 걸…….”
“어,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 거니? 아무튼! 나는 그런 남자는 만난 적이없단다!”
마초의 부정.
그 말에 마운록은 혼란에 빠졌다.
아, 아닌데, 분명 언니랑 만났는데……? 근데 왜 언니는 모른 척하는 거지? 어머니가 곁에 있어서?
“그때 마초는 대기실에 있었다.”
“……진짜요?”
마등의 확인사살.
그렇다면 내가 본 것은……. 대체 뭐지?
“그, 환상이라도 본 것이니?”
“화, 환상이라고?”
“꿈에서 본 것을 착각이라도 한 것이냐? 아직 어리구나.”
모두의 부정에 마운록은 정말로 그녀가 환상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해버렸다.
만약, 그가 내 상상으로 만들어낸 책 속의 인물이라면?
그가 자신에게 특별하게 대해준 이유가 책 속의 설정을 따라서?
그 아름다운 외견도 전부, 내 상상……?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피부, 향기, 선명한 눈빛이 지금도 생생한데, 그것이 전부 상상이라고?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자신의 기감을 속이고 사라질 수 있는 신비함.
기절하고 눈을 뜨면 자신의 방 안에 있었다.
이게 환상이 아니면 뭘까?
“하, 하지만, 우희가 분명 내 마력을 일깨워줬는데……?”
마력.
모든 정황을 뒤집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 어째서 마력 불능이던 마운록이 순식간에 마력을 일깨웠을까?
“그렇다면 속성의 문제 아니겠느냐?”
“속성이요?”
“우리 마씨 가문은마력의 속성은 광(光)과 전(電)이다, 그리고 빛은 환영을, 번개는 속도를, 그렇기에 마력을 개화한 너는환영을 본 것이지 않겠느냐? 마력을 일깨우는 환영을.”
어머니의 말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니까, 본래부터 마력이 각성하려는 조짐이 있었고 빛 속성의 마력 때문에 환영을 보았다?
“그럼, 그 모든 것은 환영……?”
“그렇단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환영을 본 거겠지.”
“……그런가.”
쉽사리 납득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고개를 끄덕이는 마운록에 마초와 마등은 속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잘 통한 거 같으냐?’
‘완벽히 속은 거 같습니다.’
‘초선 님이 속이라고 해서 속였지만 마음이 편치 않구나, 근데 우희라는 남자는 무엇이냐?’
‘으, 으음…… 운록이가 자주보던 책에 나오던 거 아닐까요?’
마운록이들리지 않게 작게 속삭이던 마등과 마초. 사실 환영은 진실이 아니었고 모든것은 초선이계획한 바였다.
나중에 마운록을 놀리기 위해 계획한 장난질이었지만, 초선이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럼 그 꿈도, 내가 원하던 것?”
여태까지 잘 못 된 것, 악몽이라고 치부했던 것이 사실은 자신이 원하던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 마운록. 그것은 자신을 괴롭히려고 꾼 악몽이 아니었다.
자신이 바라던 이상. 자신이 원하던 것.
“손님 받아라!”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병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칠게 커튼이 열리며 보이는 사람은다름 아닌 마초를 쓰러트린 여자.
“걱정돼서 와봤습니다. 따님은 괜찮으십니까?”
갑자기 예의 바르게 변한 여포와.
“아…….”
“괜찮으신가요?”
우희와 똑 닮은 머리 색과 외모를 가진, 아름다운 남성이 있었다.
마운록은 무심코 그 이름을 불렀다.
“우, 우희…….”
“여기 여포 님의 남편! 이랍니다!”
아.
마운록의 눈이 죽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죽은 눈이 아닌 검은 열망이 담긴 눈.
“오…….”
“오?”
“오히려 좋아…….”
마운록은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