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어디서 본 거 같은 시츄에이션?
방덕이 졌다. 압도적인 패배로.
마운록은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천외천.
하늘 바깥엔 또 다른 하늘이 있다. 그것을 느낀 마운록의 몸이 전율했다. 하늘은 높지만 바라볼 수라도 있지만 그 이상의 경지는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고작해야 편린만 느낄 수 있을 뿐, 그렇기에 재능의 격차라던가 차이는 느낄 수 없었다.
느끼는 것은 오로지 경의. 순수한 경의가 마운록에 눈에 감돌았다.
초선은 그 모습을보고 미소를 지었다.
‘어제 죽어라 대사를 외우게 한 보람이 있네.’
여포의 인지도 좀 올릴 겸, 착한 이미지로 만들겠다는 전략이 먹혀들었다. 대회가 끝난 지금도 여포의 인성이나 그런 것들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던가.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운록, 그녀가 이 경기를 어떻게 봤냐는것이다.
“경기는 재밌으셨나요?”
“네, 넷! 정말로……. 대단한 경기였습니닷!”
“어떤 점이요? 저, 저런 경기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게, 그러니까…… 좋았어요. 너무 좋았습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초선은 머리에 피가 쏠리는 것을 겨우 참아내고 원하는 대답을 듣기위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압도적인 강함이 정말 좋답니다.”
“가, 강함이요? 분명 용기를 더욱 좋아한다고…….”
“제가 마운록 양에게 그런 말을 했나요?”
“아, 아뇨! 그냥 그래 보이실 거 같아서 말해봤습니닷!”
이 씹덕을 진짜 어떻게 해야 할까. 솔직한 마음으론 이걸 꼬투리 잡아서 계속 갈군 뒤에 울려버리고 싶었지만 겨우 참아낸 뒤 머릿속을 정리했다.
초선은 잠시 대답을 생각했다. 마운록이 재능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라고, 그래서 여포를 이 대회에 끼어들게한 것이다.
“아직 여물지 않은 자가 여문 자에게 도전하는 용기, 그것도 정말로 좋아해요.”
“그럼……?”
“하지만, 저런 압도적인 힘, 그 누구도 좌시할 수 없는 무력. 유일무이한 사람에게 용기가 통용되기나 할까요?”
아무리 용기를 가지고 최강의 앞에 서봤자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 정도 차이가 나면 애초에 어떠한 것도 통용되지 않는다.
“그런 것을 보면, 뭔가 편안해지지 않나요?”
“편안…… 해져요?”
“그렇지 않나요? 저분 말고는 내 재능도, 다른 사람의 재능도 다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나요?”
바라볼 수밖에 없는 드높은 산은 희망을 짓밟지만 산맥 바라 볼 수밖에 없는 별에 오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은 없다. 여포같은 자를 제외하면.
“드높은 산도 하늘 아래에 있습니다. 돌아다니는 돌도,애매하게 높은 동네 뒷산도. 모두 똑같아지죠.”
“아…….”
“그렇기에 드높은 산을 보고 절망하지 않고, 편하게 별을 바라보며 달리면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별에 닿을 수 없다고 절망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요.”
마운록에게 방덕은 하늘이자 별이었다. 하지만 별은 따로 있었고 방덕은 드높은 산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초선에 마운록은 여태까지 믿었던 것들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우희 양은…… 별을 쫓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초선은 그 말에 끄덕이며 말했다.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별을 쫓아가려면 산을 올라야 하거든요.”
별이랑 최대한 가까운 가장 높은 산을요.
마운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초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수줍어서 오래 보지 못한 얼굴을 용기를 내어 천천히 살펴보던 마운록.
윤기 나는 흑발에 신이 빚은 듯한 얼굴. 그 외형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졌다.
문뜩 마운록은 이런 생각을 했다.
‘자고 일어나도 이분이 옆에 있다면 얼마나좋을까?’
주인공의 고민이나 문제를 해결해주던 상냥한 귀족.
그런 사람이랑 계속 함께하며 살아간다면, 방구석에 바로 나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며 살 텐데, 진짜로 별도 쫓을 각오가 되어 있는데.
“별을 계속해서 쫓다가 어느샌가 뒤를 돌아보면 산에 올라가 있는 자신을 볼 수 있겠죠. 비록 별은 잡지 못했지만, 산은 올랐으니 어느 정도 만족을…….”
“저기!”
“……네?”
“혹시 제 연인이 되어 주실 수 있나요?!”
씹덕 특, 가끔가다 급발진함.
*
*
*
갑자기 뭔 소리고 이 씹덕아.
나는 급발진하며 고백하는 마운록에 인상을 찌푸렸다. 참아야 했지만 참을 수 없었다.
고백은 좋다. 귀여운 여자애가 나에게 고백하는데 기분이 안 좋을 리 있나. 근데 상황이 이상하니까 뭔가 고백을 들어도 전혀 기쁘거나 하지 않다.
기껏 오글거림을 참으면서 어떻게든 방밖으로 내보내려고 하고 있는데, 갑자기 왜 급발진이지? 차라리 모두의 앞에서 고백했다면 재밌기라도 하지 지금 둘이 있을 때 고백이라니 이건 재밌지도 않고 그렇다고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준비했나 뭘 했나.
“……저희 이틀 만났는데요?”
“운명, 저희는 운명이에요! 우희의 말을 듣고 제 마음에 빛이 찾아온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나는 안 그랬는데.
“함께라면 어떠한 고난도 시련도 넘어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별도 쫓아갈 자신이 있어요!”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저희는함께할 운명이에요, 저희는 함께 손을 잡고 거리를 걷고, 하늘에서 터지는 불꽃놀이를 보며 그대가 고백을 하지만 저는 불꽃놀이의 소리 때문에 듣지 못하고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소리를 듣고 서로 밀고 당기기를 하며 사랑을 돈독히 하며 결국엔 결혼 결말로…….”
안 되겠다. 진심으로 씹덕 망상을 외치는 마운록에 나는 빠르게 선을 그었다.
“HI 여포!”
“네?”
“기절시켜.”
순식간에 마운록의 뒤에 나타난 여포가 손을 뻗었다.
“느엥!”
괴상한 외침을 뱉으며 쓰러진 마운록.
쓰러진 마운록 뒤에 보이는 여포, 마운록을 보고 여포를 보니 너무나도 선녀 같은 모습.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여포, 운록 양의 말을 들었나요?”
“그렇습니다.”
“어? 평소와는 다르게 침착하네요?”
생각보다 침착한 여포의 모습. 갑자기 고백하는 마운록에 화를 낼 줄 알았던 나는 의외로 절도를 지키는 그녀의모습에 깜짝 놀라 물었다.
“아까 방덕 님과 싸울 때 어디 다치셨나요? 갑자기 왜…….”
“아뇨. 딱히 상처는 없습니다. 그리고 딱히 화가나지 않는 이유 말인가요?”
응응. 나는 격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만약 동탁이 이리했다면 바로 달려와 도끼눈을 한 채 화를 냈을 텐데. 뭔가 이상했다.
“별거 아닙니다. 이런 꼬맹이가 초선에게고백한 들…… 동탁년과는 다르게 딱히 화가 나지 않더군요.”
아하. 여포가 화를 내지 않는 이유가 그거였구나.
키도 작고 귀여운 상인 마운록, 내가 보기엔 귀엽게 생긴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남녀역전 세계의 특성상 이런 외모인 데다가 키도 작은 마운록은 남들이 보기엔 꼬맹이라는 이미지가 강해 딱히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포가 대견스러웠다. 요즘 들어 여포에게 여유가 생겨 남들에게 상냥해지고 자신에게도 관대해지는 모습이 망나니가 개과천선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대견해요, 여포.”
“그, 그런가요?”
그러니, 상을 주고 싶은데.
“여포?”
“……네엣?”
“기대하고 왔죠?”
끄덕끄덕.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나는 마운록을 방에 데려다 놓고 방으로 가려고 할 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
“여기서 하죠.”
“여, 여기서요?”
“왜요, 싫어요?”
“……아니요.”
나는 얼굴을 붉히는 여포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하나 더 요청할 게 있는데요.”
“무엇이든지 말하세요. 초선.”
마운록이 지금 나에게 바로 고백을 하는 모습을 보니 계획이 틀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그녀의 상태는 무예보다, 나에 대해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상태, 하지만 나는 곧 있으면 떠날 사람이다.
만약 마운록이 나를 잊지 못해 실연의 아픔에 빠진다면 다시방구석으로 돌아갈 확률이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보험을 하나 들어야겠다.
“별건 아니고…….”
“……?”
“마운록 양을 중간에 깨우고 싶은데요.”
“……네?”
“악몽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만 해주세요. 정신을 멍하게 하는 것은 제가 할 테니까.”
꿈이라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랑 사랑을 나누는 것을 보면 살짝 식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