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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화 〉용기를 내는 법 (43/96)



〈 43화 〉용기를 내는 법

익숙한 천장이다.
마운록은 안락한 침대에서 일어나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첫 번째 히어로와 두 번째 히어로의 피규어가 손을 들어 자신을 반기는 모습에 손을 들어 그들과 인사하고 자연스럽게 화장실로 향했다.


멍한 얼굴로 세수를 하던 마운록은 거울을 바라보았다. 평소와 똑같은 얼굴, 첫째 언니와 똑같은 머리 색, 나름 관리도 해서 날씬한 몸매.


“……근데 가슴이 없네.”


마초 언니는 풍만한데 나는 왜 그럴까, 마휴 언니나 마철 언니 가슴이 작긴 하지만 나만큼은 아니었다. 키도 딱히 크다고 할 수 없고 외모도 언니들은 귀엽다고 말했지만 귀여운 것은 남자들에게 인기가 없다.


……갑자기 난 왜 외모를 평가하고 있을까?


“어제 일…… 꿈이 아니겠지?”


마운록은 어제 있던 은밀한 밀회를 떠올렸다. 밤꽃 향기를 쫓아 도착한 장소엔 세 번째 히어로가 있었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다 울었던 장면의 대사를  뒤에 기절했더니 지금 이 상황이었다.


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상식적으로 책 속에 있는 존재가 밖으로 나올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마운록은 전력으로 그것을 부정했다.

“이 요동치는 심장, 불타오를 만큼의 열정, 입술에 새겨진 그의 피부의 느낌, 모든 것이 생생해. 그리고…….”


속에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꾸물거리는 느낌, 미약하지만 무언가 느껴지고 있었다.
고작 개미만 한 것이 움직이는 느낌이었지만 그럼에도 마운록은 그 움직임에 감동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제가 당신의 엘리베이터가 되어드리겠습니다.


정말로 그를 만난 뒤에 무언가가 달라지고 있었다. 진짜 사다리가 되어주는 듯한, 아니 엘리베이터…… 근데 엘리베이터가 뭐지.


어쨌든 좋은 거겠지! 마운록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두근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아, 또 오지 않으려나, 그때까지 책이나 보고 있어야겠다!’

다시 침대에 누워 세 번째 히어로가 나오는 장면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
*
*


“운록 양…… 전혀 성장하지 않았어.”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다시 침대에 눕는 마운록을 바라보는 나와 여포, 그리고 마초.
내가 그렇게 말하자 마초는 죄송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괜찮습니다. 예상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정도의 일은 모두 예상했다. 애초에 수년 동안 주는 밥 잘 먹고 옷도 챙겨주고 필요한 것도 사주는 방 안에서 놀고먹은 애가 바로 바뀌겠는가? 그랬다면 그냥 여기에 온 이유도 밝히고 여포에게 부탁만 하면 끝날 일인데 이렇게 연기까지 하며 그녀를 속이고 있겠는가.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에요, 죄책감이 들고, 자괴감이 드는 생활이 계속되면 사람이 피폐해지고 그러지만, 다행히 운록 양에겐 한 줄기 희망이 있죠.”


나는  안에서 [변방의 후계자……]를 꺼냈다.

“바로  책, 아무리 죄책감을 느끼고  해도 이 책에 나오는 일들을 상상하며 죄책감을 없애는 방도를 찾았고, 이제 죄책감을 없애는 방법에 중독이 된 거지요.”
“중독…… 말입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이 책을 보며 버티는 것이지요. 힘들 때 마음에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끄덕끄덕.
마초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렇기에 운록 양은 거기에 중독이  것입니다. 지금 운록 양에게 마력을 느낄 수 있는 몸이 된다고 해도 마초 님의 경지에 이르기까진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죠.”
“…….”

마초는 빈말로라도 거짓을 말하지 못했다. 마초의 재능은 여포를 제외하면 감히 대적할 자가 없는 재능에 소유자였고 아무리 마운록이 재능이 뛰어나도 마초처럼 되려면  길이 멀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언니에겐 닿을 수 없어, 겨우 오르지 못할 산에 들어갔는데 너무 높아, 올라가려면 얼마나 걸릴지 짐작도 못 하겠어.”

내가 여포에게 느끼는 감정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여포를 전투로 이길 거 같지가 않았다. 정(精) 마법이 있더라도 여포는 전부 방어할  있었으며 그렇다고 무예로? 바로 순삭이다.

“다시 운록 양이 방구석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간단하죠, 그저 즐길 정도로, 아니면 너무 높은 목표를 잡지 않고 하던가…….”

여포를 싸움으로 이겨서 무엇을 하겠는가, ‘세계 최강’이라는 타이틀은 매우 탐나긴 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꼴리는 ‘세계 최강도 양물을 밖으면 꼼짝 못 해!’ 타이틀이 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여포와 함께 무예를 배우고 가끔 신체 접촉을 하는 생활이 즐거웠다.

하지만.
마운록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자신의 실력이 좋아지는 것을 느낄수록 마초와의 간격이 더욱 잘 보일 테지, 이미 쉽게 포기하는 성격으로 변한 마운록이 그것을 버틸  없을 것이다.

그래도 언제나 방법은 있었다.


“그렇게 긴 시간이 걸려도 집착할 만한 것이 필요하죠.”

그렇기에 나는 마초에게 연극을 제안했다.

*
*
*

“밤꽃 향기!”

마운록은 책을 읽다가 느껴지는 밤꽃의 향기에 바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정말로 또 향기가 나기 시작했어.

황급히머리를 빗으며 치장을 했다. 어제는 경황이 없어 대충 씻은 머리로 나갔지만 오늘은 절대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으리, 심기일전의 마음으로 마운록은 한껏 정갈한 차림을  채로 밖으로 나섰다.


또  장소에서 대회를 보고 계시겠지?
벅찬 마음으로 비밀의 장소로 달렸다. 대회 중이라 시종도 만나지 않고 곧바로 그 장소에 도착한 마운록은 땀을 닦고 몸가짐을 고쳤다.


다시 만날그분……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모르네. 오늘 물어봐야겠다.

“크흠, 어제 경황이 없어서 통성명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나에게 그대의 아리따운 이름을 알려주시겠습니까?”

크으! 멋지다 마운록!
어떤 남자든 이 대사를 들으면 반해버리지 않을까?


지극히 씹덕 망상을 하던 마운록은 짙어지는 밤꽃 향기를 맡으며 그곳으로 들어갔다.
부푼 마음을 애써 진정시킨 채, 바위에 걸터앉아 함께 대회를 보던 사랑의 바위로.

“……그런… 너무… 요.”
“그때…… 좋았….”


하지만, 멀리서 들리는 소리에 마운록은 순간 걸음을 멈췄다. 어제는 들리지 않았던 말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누구지? 대체 누가 그와 이야기를 하는 거야?

건방지게.


마운록은 표정을 굳힌  그곳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감히, 감히 어떤 년이 마씨 가문의 저택에서……! 청소를 하던 시종? 순찰을 돌던 병사? 어떤 년이든 가만두지 않을 거야.

권력을 이용해 찍어 누를 생각까지 하던 마운록의 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하지만, 그 걸음은 천천히 느려졌다.


“어제 경기를 보셨습니까?”
“그럼요, 마치 말과 한 몸이  듯한 움직임을 어떻게잊을까요?”

윤기 나는 흑발과 자신의 머리카락과 똑같은 색을 가진 여인.
선남이 내려온 듯한 목소리와 가장 동경하던 사람의 목소리가 겹쳤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사랑하는 사람과 동경하는 사람의 즐거운 듯한 웃음이었다. 하지만 마운록의 기분은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외모로 보나 옷으로 보나 귀한 집에 자제인 듯한데, 이야기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저에 대해 궁금하신가요?”
“무척이나요.”

동경하던 언니는 자신이 계획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했다.
내가, 내가 먼저 물어보려고 했는데.
내가 먼저 만나고, 먼저 말을 나눴는데.

“비밀이에요. 하지만 조건을 풀면 말해줄 수도있죠.”
“그것이 무엇이죠?”
“이 대회에서 우승할 것. 저는 강한 사람을 좋아한답니다.”

그 말에 언니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답했다.


“결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기대하고 있을게요.”

마초는 그 말을 남긴 채 숲을 나섰다. 마운록이 있는 방향 반대로 나가 다행히 들키지 않은 마운록이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침울하기만 했다.


그는 강한 여성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자신은 그 조건에 부합되는가?
아니다.


마초 언니는 그 조건에 부합되는가?
당연하다.

나는, 그를 좋아할 자격도 없는 거 아닐까? 나보다 더욱 멋지고 몸매도 좋고, 훨씬 더 강한 언니를 본 뒤에 나를 보면 그는 어떤 생각을 할까?


언니에 반의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반푼이년.
몸매도 빈약하고 키도 작은 꼬맹이.

그런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할퀴어지는 느낌에 마운록은 발걸음을 뒤로 돌렸다.


애초에 어울리지않아.
주인공처럼 신념도, 기술도 있는 것도 아니야.
나같은 년은 아무것도 될 수 없…….

“무예만이 강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갑자기 들려오는 감미로운 목소리에 마운록은 시선을 돌렸다.
그는 대회를 보면서 독백을 흘리고 있었다.


“무예가 약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를 내는 사람이 더욱 강하지 않을까?”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을 하는 모습. 그것조차  속의 히어로와닮았다.

“용기란 무엇일까요?”


잠시 고민하던 모습을 보이던 그는 놀랍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두려움을 품고 저에게 다가오던 분이 있었죠. 그분은 어째서저에게 다가왔을까요? 밖에 있는 것만으로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분이었는데.”

그러다 환호성이 들렸고, 잠시 상념을 멈춘 그가 대회가 펼쳐지고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마대가 낙마를 한 채로 창을 들고 마초와 대적하고 있었다.
어쩐지 사촌 언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했는데 출전한 거였구나. 하지만 운이 나빴다, 하필 마초 언니를 만나다니. 그런데 어째서? 낙마까지 했는데 항복을 하지 않는 거지?

“그렇군요.”

세 번째 히어로는 무언가 깨달은 듯이 말했다.

“강자의 돌진을 용기라고 말할 순 없겠죠.”

마치 자신에게 말하는 듯이.


“용기란 두려움을 아는 것. 그것을 지배하고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용기.”


아무리 마초가 강해도, 그녀에게 지금 용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마운록은 숨을 내쉬었다.
두려워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용기.
마운록은 용기를 내보도록 했다.


“하, 하루만이네요! 저희 어제 만났죠!? 반가워요! 아하하! 그러고 보니 저희 이름도 모르네요!  이름은 마운록입니다!”

물론 씹덕 냄새는 없애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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