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2화 〉기절한 나를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진짜 연인이랑... (42/96)



〈 42화 〉기절한 나를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진짜 연인이랑...

“조, 조조, 좋아, 좋아합니다! 저 무예 진짜 좋아합니다!”


벌벌 떨며 말하는 마운록을 바라보며, 나는 애써 웃었다.

기껏  속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해서 말해줬는데  하나도 맞춰주지 않고   말만 하는 마운록, 이러면 내가 열심히 대사를 외우고 어떻게 하면 극적으로 보일까 고민하며 이 장소를 셋팅 한 의미가 없잖아.


그렇다고 화내면 책에 나오는 소년의 가면이 깨지게 되어버리니 표정을 유지한 채 상냥히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같이 보실래요?”
“아,알겠습니다!”

대회는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마대의 해설자 역할과 중앙 단상 위에서 연무장을 지켜보는 마등. 그 모습에 마운록은 혹시나 들키지 않을까 심장이 떨려왔다.


“이리 오세요.”

하지만 그녀의 손을 잡아채는 손길에 마운록은 떨림도 아닌, 편안함을 느꼈다. 여태껏 방 안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편안함, 아니 방 안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느낌을 받은 마운록.

이런 편안함과 두근거림이 언제더라, 분명 마초 언니와 함께 수련할 때는 느꼈던……. 괜시리 먹먹함을 느낀 마운록은 용기를 내어 초선을 따라 대회에 눈을 돌렸다.

[아앗-! 마완의 공격! 하지만 간단히 막아내는 마철! 서로의 기량을 뽐내고 있습니다!]


“앗…….”

그곳에는 어머니의 의자매인 한수의 부하, 마완과 셋째 언니 마철이 말 위에서 나무 봉을 휘두르며 싸우고 있었다.

[아앗! 거기서반격이! 마완의 반격이 제대로 들어갔습니다! 고통스러운 듯 잠시 말을 돌리는 마철! 팽팽하게 이어지던 승기가 넘어갔습니다!]


“앗…….”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던가, 마운록은 마철이 당하는 모습을 보자 저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옛날부터 장난을 좋아하고 엉큼한 구석이 있는 듬직한 언니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력 불능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 언니였다.

[아아… 위험해 보이는데요! 꽤나 아픈지 맞은 부위를 만지며 숨을 고르는 마철! 엇! 말씀드리는 순간 마철이 결의의 찬 모습으로 마완에게 돌진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울어준 언니에게 뭐라고 했던가.
분명 그따위로 장난만 칠 거면 마력을 나에게 줘, 내가 더 잘  자신 있으니까, 라고 했었지, 멍청한 년, 그게 할 소리냐 쓰레기 새끼야.

보면 볼수록 점점 마음이 무거워져 갔다. 기껏 상냥한 히어로와 만나서 안정됐던 마음이 다시금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물론 그걸 그저 지켜만 볼 자칭 여심 캐치 신사 초선이 아니었다.

“저기 보이시나요?”
“예……?”
“방금 치명상을 맞은 분, 아직 포기하지 않았어요.”
“아…….”
“옛말에이런 말이 있죠.”

지금도 회자되는 명언.


“포기하면 거기서시합 종료, 라구요.”


초선의 말에 마운록은 마철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새하얀 백마를 탄 그녀는 봉을 쥐고 마완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마완도 이에 말의 허리를 차 봉을 거칠게 휘두르며 서로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불리하다. 마운록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판단을 내렸다. 마완은 작은 타상 말고는 멀쩡했고 마철은 반격으로 인해 치명상을 입었다. 서로의 실력차가 크지 않은 이상 당연히 부상을 입은 쪽이 훨씬 불리했다.


마대도 그것을 아는지 마철의 부상을 입에 담았다.

[격돌합니다! 서로에게 창을 찔러 넣는 두 선수! 하지만 이러면 부상을 입은 마철 선수가 더욱 불리…… 아앗! 이게 어떻게  일입니까!]

이대로 가면 마철의 패배는 확정이었다. 서로의 창이 부딪히려고 하는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마철의 창이 마치 마법처럼 사라지고 간발의 차로 마완의 창을 피한 마철이 마완의 얼굴을 창으로 후려쳤기 때문이었다.


대비도 못 한 채 정통으로 얼굴을 맞은 마완은 결국 말에서 떨어졌고 얼굴을 부여잡고 일어나려는 마완의 목에 마철의 창이 걸렸다.

“……졌다.”

[허영창(虛榮槍)! 신묘한 기술로 창을숨기고 얼굴을 가격한 마철의 승리입니다!]
-와아아아아아!


마씨 가문의 창술로 마완을 이긴 마철이 쓰러진 마완을 일으켰다. 훈훈한 마무리에 관중들도 환호하고 단상 위에서 지켜보던 마등도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휴……,’

마운록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많은 이들에 환호를 받는 마철을 바라보았다. 방구석에 박혀 책만 보는 자신과 다르게 수련으로 인한 성과를 보여주며 모두에게 인정을 받는 모습에 부럽다고 생각해 버렸다.

‘나도 저렇게…….’


초선은 저 모습을 동경하는 듯 바라보는 마운록에 미소를 지었다.


‘첫 번째 단추는 끼웠다.’

방구석 폐인을 밖에 나오게 하려면 우선 밖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소인지 알려줘야 했다.
쿰쿰한 이불 속에서 책을 읽으며 망상에 몸을 비트는 것보단 저렇게 밖으로 나와야 할 동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했다.


‘물론 그것만으론 안 되지.’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자신은 이룰 수 없는, 그러니까 책에서 나온 것처럼 올라갈  없는 산이다. 올라가다가 너무 힘들어 포기하는 것도 아닌, 입구조차 발을 디딜 수도 없는 산.


그런 산을 보여줘봤자 계속 동경하고 선망하며 쳐다만 보다가 결국 다시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 분명했다. 오히려 더욱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절대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없을 때 이야기였다.

“와아! 정말 멋진 기술이네요! 대체 어떻게  걸까요?”


마운록은 마력 불능으로 판정받기 전, 마초처럼 되려고 마철 마휴보다 훨씬 더 많은 수련을 받았다. 마초의 말로는 재능도 있었다고 했으니 분명 이론은 빠삭할 터.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이 자신 있는 분야에 관심을 둔다.
씹덕 특, 자신이 아는  나오면 말 많아짐.
과연 그녀는 이걸 참을  있을 것인가?

“허영창 말씀이신가요? 저것은 마씨 가문 창법의 기술 중 하나로 진짜 엄.청 어려운 체득 난이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분신이 보이는 듯한 속도로 창을 휘둘러 환영을 만드는 것인데  정도 속도를 맨몸으로 하기엔 힘드니 마씨 가문의 창법의 기술인 부분 궁신탄영(弓身彈影)을 이용해야 하는 기술입니다. 하지만 궁신탄영이라는 기술이 고난이도의 기술이므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지요. 하지만 그렇기에 마씨 가문은 부분 궁신탄영이라는 기술을 만들어 순식간에 몸을 이동하는 것이 아닌 팔 부분만 엄청나게 빠르게 움직여 환영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편법으로 만든 기술이라 속도만 엄청나게 빨라져 무기나 벽 같은 것에 부딪히면 뼈가 부러지는 둥 엄청나게 큰 타격이 온다는 것인데 그렇기에 허영창이라고 불리는 기술입니다.하지만 저희 첫째 언니는 그것을 보완해 허영창의 경지를 벗어나 신창의 경지를 이뤄…….”


역시.
이건 못 참지-.


*
*
*


마운록의 씹덕질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내가 조금이라도 호감도를 올리려고 맞장구를 쳐주며 무슨 기술이 나올 때마다 계속해서 물어봤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너무 지친다. 나도 창을 주로 연습하므로 처음에는 관심이 갔지만 나중에는 마씨 가문의 기술들로 넘어가 내가 알아듣지 못할 단어들을 사용하며 쓸데없는 TMI를 붙이며 유식해 보이려고 했기 때문에.


창로가 뭐고 인마일체가 뭔데 이 씹덕아.
씹덕 특. 관심을 보여주면 지만 아는 단어 꺼내며 자랑질함.

이럴 거면 차라리 계속 입을 닥치게  걸 그랬나…….
그렇게 생각할 무렵, 다행스럽게도 다음 대진으로 인해 마운록의 입이 조금 닫혔다.

[오늘의 마지막 경기! 마씨 가문의 둘째! 마휴,  상대는…… 두 개의 도끼를 자유 자재로 사용하는…… 쌍극의 방덕입니다!]

“아…… 이건 힘들겠네요.”


마운록이 부정적인 말을 내뱉었다. 여태까지 계속해서 말을 걸고 들어줘서 그런지 ‘아직 모른다’라고 말하며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시합이 시작하기도 전에 단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럴만한 게 상대가 방덕이다. 마초가 나오기 전 마등군 최고의 무장. 여러 삼국지 게임에서도 S급에 능력치를 자랑했던 그였다. 물론 여기선 그녀이지만.

하늘빛 단발을 흩날리며 커다란 기다란 도끼를 양손에 쥔 채 등장하는 그녀는 누가 봐도 진짜 강력해 보였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차원이 다르니까요.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없는 산이란 것이 있습니다.”

마운록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역시 아직은 안 되나.’


계속해서 그녀와 이야기하며 자신감을 올려주고 해봤지만 역시 첫날에 수년간 생각해왔던 인식을 바꾸기엔 무리가 있었다.


[낙마했습니다!순식간에 끝난 시합! 마지막 시합의 승자는 방덕 님이 차지하였습니다!]


둘째 언니가 순식간에 초전박살이 난 것을 봤으니 더욱 그렇겠지.

하지만 희망을 보여주면 어떨까?

“하하, 싱겁게 끝났네요. 방금까지 마씨 가문의 창법이 대단하다 좋다고 했지만, 아무리 좋은 비법이라도 쓰는 사람에 따라 시력은 천차만별로 달라질 것이고 결국 재능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창법이라도…….”
“쉿.”

나는 계속 변명을 내뱉는 마운록에 입가에 손가락을 갔다 대었다.
 모습을 본 마운록은 눈을 크게 뜨며 입가에 느껴지는 온기에 꼼짝도  수 없었다.

[자꾸만 자조하는 주인공에게 상냥한 귀족은 손가락을 주인공의 입술에 갖다 대며 말했다.]
[“노력으로 넘지 못하는 벽이 있다면.”]
“노력으로 넘지 못하는 벽이 있다면.”


책 속의 히어로와 똑같은 대사를 뱉는 초선에 마운록은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 벽은 부술 수도, 옆으로 돌아가는 길도 없습니다.”]
“그벽은 부술 수도, 옆으로 돌아가는 길도 없, 어요.”]

드디어 책 속에 대사를내뱉은 마운록을 향해 초선은 손을 펼쳤다. 하얗고 탁한 마력으로 휩싸이는 손.


“아…….”


밤꽃 향기가 난다.
향기는 코를 타고 흘러가 마운록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초선은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사다리가 되어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엘리베이터가 되어드리겠습니다.”


뭔가, 살짝, 다른데…….
마운록은 몽롱한 정신에 세상이 빙빙 도는 것을 느꼈다. 그때 등에서 느껴지는 누군가가 만지는 감촉.

“누, 느헉!?”


콰릉!
몸속에 번개가 치는 느낌, 마운록은 몸이 터질 거 같은 느낌에 앞으로 꼬꾸라져 흙바닥을 굴렀다.

이게 대체 무슨……, 이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몸안에서 무언가가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은 마운록은 흐려져 가는 정신 속에서 생각했다.

‘설마, 이것이 마력……?’

[상냥한 귀족의 말에 주인공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전혀 보이지가 않던 안개가 조금은 걷혀 길이 살짝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로, 정말로  사람은 세 번째 히어로……?’


처음부터 주인공을 도와주는 히어로. 현실에는 없기에 그를 사랑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현실에도 그런 존재가 있다니, 마운록은 꺼져가는 정신 속에서 방금 봤던 그를 그리며 생각했다.

다시 한번  수 있을까?
……나의 사랑.

마운록은 정신을 잃었다.
초선은 쓰러진 마운록을 잠시 바라보고, 그녀에게 마력을 넣어준 장본인.여포에게 달려가서 말했다.

“잘했어요 내 사랑! 사랑의 뽀뽀!”
“도움이 돼서 기쁩…… 아읍, 츄릅, 이건 뽀뽀가 아니…… 하읍.”


현실은 너무나도 잔혹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