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깡.
부-우우우웅-!
굉음을 내며 달리는 오토바이, 순식간에 끝에서 끝으로 이동한 그 속도는 가히 신속에 가까웠다.
“조용히 끝내는 건 무리겠군. 이리 소리가 커서야… 속도가 느렸다면 쓰지 못할 정도야. 연비는 어떻지?”
“중급 마석 하나로 서량에서 장안까지 이동 가능합니다. 다만, 밑에 있는 고무로 만든 tire라는 것을 적당히 교체해줘야 하고 엔진이라는 것을 수시로 검사해줘야 합니다.”
“적당해, 너무 많이 높은 비용도 아니고 너무 낮은 비용도 아니야. 그렇기에 더욱 신뢰가 가는군.”
너무 비용이 낮으면 하자가 있다거나 대가가 있다거나 하는 의심이 있다. 반대로 너무 높다면 그냥 높아서 별로고. 동탁이 좋아하는 것은 비용이 낮고 효율이 좋은 것이 아니라, 비용이 없고 효율이 높은 것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나?”
“그건…… 힘듭니다. 설계도가 있는 이상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재료가부족합니다. 게다가 필수 재료인 기계장치의 수가 제한되어 있어…….”
“천 대.”
“예?”
“모든 예산과 재료를 지원해 줄 터이니 이 오토바이 천 대를 보내줄 수 있겠나?”
동탁의 말에 마등은 눈을 감고 고민했다. 천 대, 확실히 많은 숫자이지만 모든 예산과 재료의 지원이라면 고민해 볼 만한 거래였다.하지만 그렇다고 덥썩 물기엔 뭔가 아쉬웠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자는 황제를 업고 있는 자, 손해도 아닌 거래를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가능합니다. 헌데 철이 많이 필요한데 가능하시겠습니까?”
“물론이지, 그런데 철로만 저 오토바이를 만들 수 있는가?”
“하하, 물론 다른 것으로도 가능합니다. 마초!”
마등이 첫째 딸 마초를 불렀다. 마초는 별말 하지 않고 품 안에서 키를 꺼내 허공에 찔러 넣고 돌렸다. 그러자 마등의 오토바이와는 전혀 모양의 오토바이가 나타났다.
훨씬 더 커다랗고, 광채가 나는 오토바이, 하지만 그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그 오토바이에는 바퀴가 존재하지 않았다.
“마초의 오토바이는 모든 면에서 기본 제품인 오토바이보다 훨씬 성능이 뛰어나지요. 더 빠르고, 더 단단하며, 더 오래 달릴 수 있습니다.”
“어째서지?”
“제가 말한 기계장치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하급, 중급, 상급, 최상급. 하급은 스쿠터(Scooter)라는 오토바이보단 느린 탈것을 만드는데 사용하고 중급은 지금 보시는 오토바이로 만듭니다. 상급은 이것과 비슷하지만 성능이 뛰어나죠. 하지만 최상급부턴 더욱 특별해집니다.”
“공중에 뜨는것 같이 말인가?”
“호버바이크(Hoverbike)라고 불립니다. 마초, 한번 운행해보아라.”
마초는 아름다운 금과 은이 섞인 듯한 머릿결을 흩날리며 호버바이크에 올라탔다. 엔진을 가동했음에도 작은 바람 소리를 제외하면 어떠한 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오토바이와는 다른 소음에 동탁은 흥미롭게 호버바이크를 바라보았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물이 없어서 보여드릴 순 없지만, 이 호버바이크는 물 위도 달릴 수 있지요.”
“허어, 그건 놀랍군, 만약 이것을 말이라고 치면 물 위를 달리는 말이지 않은가? 이것 참 신기하군.”
“게다가 이런 것도 가능하죠.”
마등이 시선을 보내자 마초는 기어를 올려 호버바이크를 움직였다. 아무런 소음 없이 움직이는 호버바이크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을 내며 순식간에 훈련장 벽까지 도착했다. 하지만 호버바이크의 속도는 줄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호버바이크가 벽에 부딪힌다. 동탁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마등은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었다. 이내 호버바이크는 벽에 다다랐고 그와 순식간에 방향을 위로 전환해 벽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진기한 광경에 동탁은 탐욕을 느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소유욕, 저 호버바이크를 당장이라고 가지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원래라면 억지로라도 뺏는 것이 그녀의 성격이었지만 초선이라는 커다란 보물이 있어서 그럴까, 인내심을 발휘하며 마등에게 물었다.
“옆으로도 아니고 직선으로 벽으로 달리는데 약간에 머뭇거림도 없이 그대로 올라가다니, 산 같은 지형에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겠어.”
“오히려 협곡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리라 예상됩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말해 뭐하겠나, 특히 저 호버바이크는 굉장히 가지고 싶군.”
“하하, 저도 그러고 싶지만 최상급 기계장치는 숫자가 제한적입니다. 저도 장녀 한 명에게만 줄 수 있었으니까요.”
거짓말, 동탁은 그 말이 거짓임을 간파했다. 적어도 한 개는 더 있을 거라 확신했지만, 물증도 없이 몰아붙이기엔 무리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동탁은 깔끔하게 거래를 끝냈다.
“오늘 수고 많이 했네, 마침 좋은 술을 얻어서 그런데 한잔하러 갈 텐가?”
“저야 좋지요, 오늘 호강하고 가겠습니다.”
흥겹게 수락하는 마등, 동탁은 그녀들을 데리고 연회장으로 향했다. 초선이 잘 준비했기를 기대하며 도착한 연회장.
“누나들!”
……이게 뭐지?
동탁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난생처음 보는 웬 어려 보이는 시종들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 분명 던전에서 발견한 의복, 턱시도(tuxedos)라고 했던가, 연미복을 입고 살갑게 다가오고 있었다.
“물 좋네요! 누나들은 입장비랑 자리비 받지 않을 테니 즐기다 가지 않을래?”
“……초선이 시킨 것이냐?”
“에이! 누나들! 그리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자꾸 그러면 나 속상해?”
“대답.”
“……초선 님이 시키셨어요, 부디 자비를 보여주세요.”
하아-.
한숨이 흘러나왔다. 연회의 준비를 하라더니 웬 이상한……. 하지만 여기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줄 순 없었다. 동탁은 자연스럽게 마등 일행을 쳐다보았다.
“이, 이게 무엇입니까? 상국.”
역시나 당황한 채로 마등이 말했다. 자신도 처음 보는 상황인데 그들이 과연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초선을 믿어야 한다, 동탁은 자연스럽게 말했다.
“유행이다.”
“유행… 이것이 말입니까?”
“젊은 층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더군, 저길 보아라.”
동탁에 손짓에 마등이 그쪽을 바라보자, 어린 남자들에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마휴와 마철이 보였다.
“누나들, 서량에서 온 거야?”
“크흠, 그런데?”
“와! 서량 여자들은 모두 말을 잘 탄다던데, 누나들도 그래?”
“우리가 누군줄 알고! 그 유명한 마(馬)씨 가문의 여자들! 말이라면 이미 지겹게 타보았다고!”
“정말? 나중에 나도 말 태워줄 수 있어? 키가 작아서 말을 타본 적이 없어서 그런데…….”
“물론이지, 그런데 괜찮겠어? 우린 좀거칠게 탄다구?”
이미 흠뻑 빠진 딸들을 바라보는 마등은 머리를 붙잡았다. 자랑스러운 마씨 가문의 위상을 고작 남자를 꼬실 때 사용하다니, 마대도 처음엔 뒤로 빼다가 어느새 실실 웃고 있었다. 그래도 그나마 반응도 하지 않고 철벽을 치고 있는 장녀, 마초.
그 모습에 마등은 대견함을 느꼈다. 역시 내 뒤를 이어 마씨 가문을 이끌 자랑스러운 딸.
“좋아하는 거 같아 다행이군, 들어가지.”
“아! 저희가 모실게요!”
동탁과 마등 일행은 어린 남자들을 따라갔다. 복도에 들어서니 화려한 전등과 길게 깔린 카펫이 일행을 반겼다. 그 모습에 눈을 빛내는 마휴와 마철, 그리고 마대.
서량이라는 변방에서만 지내다가 이렇게 화려하고 빛나는 수도의 유행을 보니 흥분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왠지 모를 두근거림을 느끼며 복도를 걷다 마침내 커다란 문 앞에 도달한 일행.
그리고 뜻밖에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여기서 뭐 하느냐, 장료.”
“저도 모르겠습니다…….”
죽은 눈으로 문 앞에 서 있던 장료, 그녀도 턱시도를 입은 채 품 안에서 작은 철판 같은 것을 꺼냈다.
“가후 님이 만들어주신 금속 탐지기입니다. 가만히 계셔 주세요…….”
“딱히 할 필요는 없다…….”
“저도 알아요, 근데 초선…… 아니 지배인님이하래요.”
괜히 슬퍼 보이는 장료의 모습에 동탁과 마등 일행은 순순히 검문을 받았다. 품 안에 있는 오토바이를 소환하는 열쇠를 감지해 내는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결국 검문을 통과한 그녀들.
“통과되었습니다… 들어가시지요.”
드디어 문 앞에 선 동탁은 손잡이를 잡았다. 어디 뭘 준비했는지나 보자, 천천히 문을 밀었다.
[안녕하십니까! 진행을 맡은 이유입니다! 오늘 우리 클럽을 찾아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는 마음에 저도 놀고 죽어보겠습니다! 음악부! 박자 주세요!]
화려한 조명이 동탁과 마등 일행을 감쌌다. 정신없이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조명들,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는 거대한 스테이지, 그것을 감싸는 술과 얼음이 준비된 화려한 식탁.
[호우!]
스테이지에선 이미 여자 남자 할 거 없이 정신없이 춤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높이 올라온 단상 위에서 확성기를 잡고 정신없이 빵댕이를 흔드는 이유.
“누나! 나도 술 마시고 싶은데…… 이 돔페리뇽이란 술 사주면 안 돼?”
“아… 누님은 뭘 먹어서 그렇게 멋지나?”
나라에서 한자리 꿰차고 있는 권력자들에게 아첨하는 남자들.
[새로운 손님 오셨네요! 천(天) 구역 5번 자리로 안내해주세요!]
화려한 놀음의 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