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화 〉수줍은 부부. (8/96)



〈 8화 〉수줍은 부부.

혼란스러운 상황에 주례와 사회를 보던 사람이 입을 열었다.


“자자! 모두 진정하시고요! 이렇게 즐거운 날에 이게 무슨 추태입니까!  장군! 상국! 화부터 내지 말고 일단 하객들부터 돌려보내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걸 알면 빨리 내보내라 이유. 나는 지금 상황이 불쾌하면서 흥미가 도니 멈출 생각은 없다.”
“지금 이 분위기에 어떻게 빠집니까! 당장 칼부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데! 그러니 나중에, 진정이 되면이야기를 하시는 것이…….”


아, 사회자가 그 동탁군의 모사인 이유였구나. 내가 알기론 초선의 입궁을 반대한 유일한 사람이란 건데, 지금 상황을 보니 그럴 만했다. 어떤 모사가 군주와 최강의 무장과의 갈등을 좋아할까.

“난 초선의 의중을 물었다.”
“지금  장군이 뿔난 거 보이지 않습니까? 방천화극좀 보세요! 저거 못 막습니다! 지금 난동이라도 피우면 완전 끝장이라구요!”
“초선, 너는 어떻게 하고 싶으냐.”
“저는…….”


누구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더 강한 인상을 남겨준 것은 동탁이었다. 그녀의 끝을 모르는 탐욕과 그에 대한 갈망, 원하는 것에 대해 진심을 보여준 그녀는 정말로 멋있고 내가 되고 싶었던 인물의  그 자체였다.


하지만 순수하고, 귀여운 여포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큰 키와 동탁보다는 못하지만 커다란 가슴. 그리고 무엇보다 천하제일의 강함. 여태까지 포기하고 있었지만 동탁의 진심을  뒤 부러진 꿈이 다시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녀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면…… 나도 대성할  있지 않을까?


꼭 선택해야 할까? 나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저 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동탁이라면 지금 어떤 선택을 했을까. 당연하게도 나는 정답을 알고 있었다.

“대단한 영웅들께서 저를 원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여기 결혼식장은 저와 상국의 결혼식이죠.”


내 말에 동탁은 기쁜 웃음을 지었고 여포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벌써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아직  말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여포 공이 저에게 먼저 고백을 하셨죠. 시기상 여포 공이 먼저 저를 원하신 것도 사실입니다.”

내 말에 동탁과 여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결정타를 날렸다.


“그러니, 시간에 따라서 아침에는 여포 공에게, 밤에는 상국에게 가겠습니다.”


혼란스러운 결혼식장.
그곳에 내가 불을 끼얹었다.


*
*
*


말도  되는 소리!
어찌 남자가  여자랑 결혼한단 말인가!
어쩌면, 나쁘지 않을 수도?
아침에는 순정 밤에는 음탕. 아, 아아아앗! 이것이 무릉도원?
잠깐, 그렇다면 너무나도 친절한 남편이 밤에는 시어머니의……?


“좋구나, 이거 또 다른 쾌락이 되겠어.”

역시 동탁! 그의 대범함은 자연스레 존경하게 돼버린다. 동탁이 수락하자 여포는 벙찐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좋습니다. 아침만이라도 소자를 가질  있다면…….”


아,  순수한 소녀를 어찌해야 할까, 보면 볼 수록 귀여운 여포. 하지만이젠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사회자인 이유는 이 상황이 뭐가 뭔지 이해를 못 하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절망하고 있었고 장료는 예상외로 반색하고 있었다.

“이 정도 혼란이면 나는 그냥 덮이지 않을까?”

그래서였구나. 장료가 기쁨의 상상을 하던 그때 동탁이 혼란스러워하는 이유에게 말했다.


“결론이 났구나, 딸아.  초선의 옆에 서거라.”
“어? 으, 응.”
“이유, 이제 결혼식을 끝마쳐라.”
“예? 이 상황을 지금 끝마치라구요?”
“해.”
“넵, 자, 이제 신부 동탁……과 여포, 신부 초선의 결혼이 성사되었음을…… 이게 뭐야! 나 안 해! 나는 소소한 일탈이 좋았지 이딴 결말을 좋아하진 않았다고! 자, 결혼식 끝났습니다! 지금 빨리 돌아가서 일들 보세요! 저는 술 마시러 갑니다!”

이윽고 누구보다 빠르게 사라진 이유. 그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동탁. 그러곤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일단나가지, 아니면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말할 텐가?”


그 말에 모두가 동의하여 이 혼란의 장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그때 장료가 빠져나갔고 어머니도 한 마디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반대였다면 좋았을 것을.

그 말의 뜻은 아마 아침에 동탁, 밤에 여포를 원하셨나 보다. 하지만 그게 옳은 선택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동탁은 아침에 더욱 기상천외한 플레이를  테니까.
그렇게 결혼식장을 벗어난 우리는, 서로를 바라만 보다가 이윽고 동탁이 입을 열었다.

“딱 점심때구나. 데려가라. 지금은 너의 남편이지 않느냐?”
“아. 나도 알고 있어, 그, 초, 초선 소자?”
“남편에게 소자라고 하는 멍청이가 여기 있군.”
“그, 그…… 남, 편?”
“저런 쑥맥이  딸이라니…….”


저 모습이 귀여운 거다. 나는 여포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부르셨나요? 부인.”
“큭!”

부인이라는 말을 듣고 가슴을 붙잡는 여포, 그렇게도 좋은가,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을 모른다는 듯이 여포에게 다가가 귓가에 바람을 불 듯이 속삭였다.

“-괜찮으신가요?”
“히약!? 소…… 아니 남편!?”
“예, 남편이에요.”


남편과 부인이라는 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여포, 그런 여포를 바라보는 동탁은 조용히다가와 말했다.

“저년의 모습은 정말로 재미가 없구나. 나중에 보지, 충분히 즐기다 오거라.”

나는 그 이상의 즐거움을 선사해 줄 테니.
그 말을 남기고 떠나가는 동탁. 작게 말하는 듯했지만 여포의 귀에는 들렸겠지. 예상대로 여포는 표정이 굳은 채 동탁의 뒷모습을 째려보고 있었다. 분위기를 바꿔야  필요가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실망하셨나요? 두 여자의 남자라니, 실망하시는 것도 이해합니다.”
“무슨! 절대 아닙니다! 가족을 위해 불구덩이에 몸을 던진 것이 어찌 죄가 되겠습니까. 게다가 그 짧은 사이에 어머니의 성향을 파악해 저를 선택해주신 것만으로 저는 굉장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내가 죄책감에 물든 표정을 짓자 절던 말투도 사라진 채 나를위로하는 여포,  여자, 할 때는 한다는 것인가? 그 모습도 좋았다.


“그러니 그렇게  죽어 계시지 마십시오. 저는 그대의 미소가 보고 싶습니다.”


이게 연애를 하는 기분일까? 너무나도 다정한 그녀. 나는 환하게 웃어 보이며 힘차게 대답했다.


“감사합니다.그리고, 사랑합니다. 부인.”
“크힛!”

또 한 번 격침된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살면서 제일 행복한 기분을 느꼈다.

*
*
*

“입맛에 맞나요?”
“너, 너무나도 맛있습니다! 황실 주방장도 한 수 접어갈 정도의 맛입니다.”
“그렇게 칭찬해주시니 기쁘네요. 그리고 너무 말이 높지 않나요? 부부 사이에 과한 존중은 오히려 독이 아닐까요?”
“아, 알겠습니…… 아니 그럴까요? 그, 그럼.”
“편하게 하세요. 응? 여보야.”
“아, 알았어요. 이 정도로  게요. 여보…….”

내가 해준 밥을 먹으며 나의 애정공세에 얼굴을 붉히는 여포, 이게 치유라는 것인가? 그녀와 노는 것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그 대가로 나는 그녀의 입에 묻은 소스를 손으로 닦아주고 소스를 살짝 야한 느낌으로 핥아먹었다.


“제, 제가 닦을 수 있습니다만…….”
“또 말씀을 높이시네요?”
“그게 아니라…… 고마워서 그런 거에요.”
“잘했어요. 내 사랑.”
“크힛!”

그렇게 달콤한점심을 끝내고 난 뒤 산책  그녀와 정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정원에 널리 꽃의 내음을 맡으며 그저 손을 잡은 채 말없이 정원을 걸었다. 솔직히 말하면 부부가 아니라 처음 손을 잡는 연인 같은 느낌. 사실 이제  번 본 사이라  정도가 정상이었다.

“그, 남편?”
“말씀하세요, 내 사랑.”
“혹시……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나요?”
“그대의 곁이 제가 가고 싶은 곳인걸요.”
“무, 물론 저와 함께 가는거예요. 옷 가게라던가 아니면 장신구 가게라던가…….”
“음…… 그렇다면 원하는 곳이 있어요.”

어디든지 말하세요! 라고 말하는 듯한 여포에게 나는 그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을 말했다. 그녀는 예상치 못한 장소에고개를 갸웃했지만 나는  모습이 꼭 보고싶어 그녀에게 졸랐다.


그렇게 그녀와 함께 간 곳은 그녀가 예상한  가게도 장신구 가게도 아닌, 그녀가 매일매일 오는 장소.

여포의 개인 연무장이었다.


“제 훈련을 보고 싶다구요?”
“너무나도 보고 싶어요!”
“재, 재미가 없을 텐데요? 게다가 땀도 나고 먼지도 묻을 테고…….”
“사랑하는 사람의 장기를 보는 것이 어째서 재미가 없겠습니까, 땀도 먼지도 괜찮습니다. 땀은 여자의 향수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냄새나는 여자가 만든 말이라……. 그렇다면 여기서 보고 계셔 주세요.”


드디어 그녀의 실력을 볼 수 있다. 용병의 창술, 경호원의 검술만 보던 나에게 방천화극을 든 천하제일의 모습은 강렬한 두근거림을 선사했다.

“갑니다. 핫!”


이윽고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방천화극을 휘두르다가 점점 더 빨라지더니 이윽고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 엄청난 속도와 더불어 바람을 찢는 파괴적인 위력까지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이지도 않을 속도의 신속함. 바람마저 찢어버리는 파괴력. 정확하게 그 위치를 베는 정묘함. 환상적인 그녀의 무위을 바라보며 짜릿한 쾌감이 몸을 지배함을 느꼈다. 이윽고 방천화극의 휘두름이 절정에 달하고 그녀의 몸에서 붉은 마력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마력은 허공에 흩어지지 않고 방천화극에 모이더니, 여포가 하늘에 방천화극을 내지르자 하늘을 찢는 듯한 굉음이 세상에 울려 퍼졌다.

“와아…….”

붉은 마력은 공기를 뚫고 바람을 뚫고, 이윽고 구름을 뚫으며 신성한 용처럼 하늘로 솟아 올랐다. 나는  모습을 보며 온몸을 타고 흐르는 기분 좋은 소름과 함께 감탄사만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너무나도 환상적인 모습, 너무나도 소름이 끼치는 광경.

절경이었다.나도 모르게 눈에서눈물이 흘러나왔다.

“그, 어떻습니까? 어…… 어!? 왜, 왜 울고 계신 겁니까? 설마…… 너무 무서운, 모습이었나요?”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무섭다니, 그런 미친 소리를 내뱉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눈을 찔러 버릴 거다. 나는 다가온 그녀를 꽉 껴안으며 울면서 외쳤다.

“너무, 너무나도 멋져요. 정말로 멋져요. 평생 잊지 못할 거에요!”
“그, 그런가요?”
“누가 억만금을 주고 이 기억을 가져가겠다고 하면, 저는거절할래요. 정말로 멋졌어요.”
“아…….”

내 진심이 통한 것일까. 그녀는 방천화극을 땅에 박으며 나를 껴안았다. 그리곤 말했다.

“고마워요.  무위에 감격해줘서.”
“정말 기뻐요. 이런 무위를 가진 사람이 제 부인이라니.”
“저도, 누구보다 저를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나 정말로 기쁩니다.”


우린 그렇게 한참 동안 껴안고 서로의 온기를 느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중천에 떠있던 해는 어느새 서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연무장에 서로 앉아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곧 있을 헤어짐에 깍지를 낀 손에 힘을 줬다.

“꼭, 가야 하나요?”
“……가지 않는다면, 그녀는 분노할 거예요. 게다가 약속이니까. 저는 가야만 해요.”
“……그렇죠. 너무나도 큰 선물을 받았으니, 저도 욕심부리지 않을게요.”


그녀는 깍지를 풀고 일어나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요. 배웅해 드릴게요.”
“……고마워요.”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말이  잔인하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탁의 방과 가까워질수록 손에 느껴지는 힘이 점점 더 강해짐을 느꼈다. 놓치기 싫다는 마음을 너무나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떠나야 시간이다. 나는 잡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그녀의 손을 덮으며 슬픈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다음에 만나면, 제게 창을 가르쳐주세요.”
“창…… 말입니까?”
“옛날 어느 용병에게 창을 배운 적이 있어요. 재능이 없다는 말에 포기했지만, 아까 그 모습을 본 뒤 원하게 됐네요.”


다음에 꼭 다시 보자는 말에, 그녀는 손에 힘을 빼며 웃으며 말했다.

“예, 그 용병 따위는 잊힐 정도로, 적어도 장료는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 정도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나는 힘이 빠진 그녀의 손에서 손을 빼내었다. 애처로이 따라오는 손을 무시하며 나는 동탁의 방으로 가는 복도의 문에 서서 말했다.


“정말 즐거웠어요. 행복했고, 감격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리 마지막 인사를 나눈  나는 문을 열고 복도로 들어갔다.


여포는 한참 동안 그  앞을 서 있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