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미인계
어머니가 많이 화나셨다.
평소에 지으시던 평온한 미소는 사라진 지 오래고 오직 냉정한 눈만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에게 정을 붙이기 전, 막 입양했을 때의 표정.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순간 가슴이 철렁함을 느꼈다.
미움받을 수 있을 거라 각오했을 터인데, 역시나 어머니에게 미움받는 것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너무 억지로 진행했나……. 하지만 나의 꿈을 이루기위해선 어쩔 수 없는 리스크라고 자신을 위로했다.
“초선아.”
“예, 어머니.”
“기어코 네가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구나.”
그렇겠지. 남녀역전 세계가 아니었다면 딸이 웬 놈팽이같은 남성 두 명에게 몸을 바치는 행동을 내가 하고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나에겐 명분이 있었다. 삼국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들 중 하나, 명분.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어머니는 씻기지 못할 상처가 남게 될 것입니다.”
“나의 충성이며 나 혼자 짊어온 것이다. 그것을 어찌 아들에게 짊어진단 말이냐?”
“그것이 효(孝)입니다.”
“불효(不孝)라고 하는 것이다!”
“부모의 속이 타들어 가는 것을 어찌 바라보고만 있으란 말입니까! 그 불길이 점점 번지면 결국 제 속도 같이 불탈 것이 분명한데.”
“자식이 몸을 바치는 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저는 몸을 바치는 것이 지금 평생의 소원입니다. 어째서 이것을 이해하지 못 해주시는 걸까. 아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나는 순간 답답함에 하면 안 되는 말을 하고 말았다.
“친부모가 아니지 않습니까!”
순간 말을 잘못 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주워 담으려 했지만 당황해서 그럴까. 변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저는…… 더럽고 추악한 뒷골목에서 저를 꺼내주신 은혜를 갚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직, 저에게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셨지 않습니까.”
“…….”
“그러니까……. 어차피 거둬주지 않았다면 이미 더럽혔을 이 몸을,어머니와 이 나라를 위해 써야 옳지 않을까 해서…….”
아무리 변명을 내뱉어도 어머니는 아무런 말도하지 않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너무 무거워진 분위기에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을 때, 자책 어린 목소리가 어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내 잘못이구나…….”
“네? 그게 무슨…….”
“내가 너에게 그런 생각을 들게 했어. 춤과 노래를 배우게 하고 방중술을 배우게 하고……. 어떻게 봐도 너를 장기말로 쓰게 생각되게 했구나…….”
어, 그런가?
나는 그냥 여자를 유혹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해 정말 즐겁게 배웠는데……. 근데 반대로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를 즐겁게만 해줄 것들만 가르쳤으니.
잠깐. 이거 잘만 이용하면…….
모두가 행복해질 계획이 떠올랐다. 나는 침울한 어머니에게 강하게 외쳤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어머니! 저는 단 한 번도 장기말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초, 선아?”
“자신을 구해준 은인을 위해 종에 머리를 박은 새가 저는 그저 슬픈 마음을 가지고 행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응당 해야 할 일이라고, 의무를 지고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끝이 죽음이라는 비극은 너무나도 슬프지만, 저는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갑작스러운 나의 열변에 당황한 어머니, 나는 그 모습에 더욱 열심히 말을 이어갔다.
“제가 동탁을 몰아내고 여포의 처로 팔려나간다고 해도, 그것은 뜻깊은 일이며 그 행동이 나중에 기록으로 남아 저를 칭송할 것입니다. 한낮 남자의 몸으로 거악을 물리친 영웅으로요! 그러니 결코 이것은 장기말이 아닙니다. 저는 결국 나중에 낮은 신분으로 천하제일의 장수를 이용해 거악을 몰아내어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이 되려는 겁니다.”
나는 장기말이 아니다. 어머니를 위하는 겸, 나라를 구해 미래에 나의 위명이 떨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니결코 이것은 팔려나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끊임없이 이 말을 주장했다. 열변이 끝난 뒤 어머니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하더니, 작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렇구나, 내가 잘 못 생각했어. 너는 그저 내 아들이 아닌 한 명의 초선이었구나.”
“아니요. 저는 영원히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그저 아들이면서 초선일 뿐이지요.”
“그렇구나. 그게 옳지. 이거 늙으니 고집과 주관만 세져서 큰일이구나.”
어머니는 한숨을 내뱉더니, 의자를 뒤로 돌리며 말했다.
“동탁의 연회에 데려가도록 하마. 함께 이 나라의 근본을 바로 잡자꾸나.”
됐다. 고집쌘 어머니를 드디어 설득했다. 그래요! 같이 나라도 구해봐요! 사실 나는 섹스만 하면 상관없지만 겸사겸사 나라도 같이 구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연회에 대비해 춤을 연습하며 연회만을 기다리던 나날, 연회 날이 다가왔다.
*
*
*
“대장, 오늘 상국이 연회 열었는데 안가?”
“바쁘다.”
“수련이 바쁜 거라면 바쁜 거지 음……. 그럼 나 혼자 갔다 온다?”
“술은 적당히 마셔라.”
“네에 네에-.”
분명 이렇게 대화하고 연회장을 왔는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장료는 저 멀리서 춤을 추고 있는 초선을 보며 생각했다. 딱히 남자가 고프지도 않았고 술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 연회장 중앙이 아니라 외각 끝에 자리 잡은 장료는 저 멀리 중앙에서 춤을 추고 있는 초선을 보며 의아함을 표했다.
어, 어째서 초선 소자가 여기에 있는 것이지? 분명 사도 어른 혼자 오겠다고 하지 않았나? 근데 왜 저기에……?
그 뒤에 더욱 충격적인 장면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초선이 동탁의 첩으로 들어가는 것을 수락한 것이었다! 장료는 충격적인 장면에 바로 연회장을 나와 여포에게 달려갔다.
“대, 대장! 대자아아앙!”
“생각보다 빨리 왔군. 술이 별로였나?”
“그, 그게 문제가 아니야! 지금 연회장에…… 초선 소자가!”
“……뭐?”
여포는 장료의 말을 듣고 순간 얼이 빠져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여포는 그대로 방천화극을 던져두고 연회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마력을 이용해 순식간에 연회장에 도착한 여포와 그 뒤를 겨우 따라온 장료. 하지만 연회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런, 벌써 끝났네…….”
“어디냐?”
“뭐?”
“마차를 세워두는 곳이 어디냐고!”
“저, 저기 모퉁이 돌고 왼쪽으로!”
여포는 장료가 알려준 대로 달려갔다. 흉포하고 거친 마력이 여포를 감쌌고그 마력에 황궁을 받치고 있는 기둥에 금이 갈 정도로 흉포한 마력. 하지만 그 누구도 여포를 막지 못했다.
그렇게 달려 도착한 장소엔 마차가 단 한 개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밖으로 나갔다는 것. 여포는 순간 눈이 뒤집힐 뻔했지만 장료가 뒤늦게 따라와 여포를 말렸다.
“참아 대장! 방금 출발했다고 들었으니 지금 쫓아가면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
“어디로 가야 하냐!”
“그니까…… 아 씨 그냥 지붕타고 서쪽으로 달린 뒤 도로 보이면 무조건 달려!”
“잘했다 장료!”
여포는 장료의 말대로 지붕을 타고 거침없이 하늘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임에도 낮마냥 거침없이 지붕을 밟고 달리는 모습에 장료는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으휴, 진짜 괴물이라니까.”
장료가 여포의 마력통에 다시 한번 감탄하고 있을 때 여포는 지붕을 넘어 외각 벽을 넘어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게 달리고 있는 마차를 하나 발견했고 다리에 마력을 모아 폭발적인 힘으로 선두에 선 마차보다 더 앞에 착지했다.
“모두 정지! 정체불명의 괴인이 길을 막고 있다!”
마차에 달린 빛을 뿜어내는 과학 도구에 비친 여포를 보고 마차를 세우는 마부. 그리고 옆에 말을 탄 경호원들이 마차의 앞을 막고 외쳤다.
“이 마차는 사도의 마차다! 네놈은 누구기에 마차를 막느냐?”
“비켜라! 사도 어른을 봬야 한다!”
“이놈! 사도 어른이 네놈이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존재인 줄 아느냐?”
“두 번은 말하지 않겠다.”
뿜어져 나오는 여포의 마력에 경호원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모두 무기에 손을 올렸다. 그때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여 장군, 이 야밤에 무슨 소란인가?”
“사도 어른!”
“모두 비키게나. 천하제일의 실력을 맛보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다만.”
“그게 무슨……? 잠깐, 저 붉은 머리와 붉은 마력은…….”
그제서야 여포의 정체를 알아챈 경호원들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왕윤은 그런 여포에게 다가가 평온하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여 장군?”
“사도 어른, 제가 방금 이상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말해 보게.”
“그, 초선 소자가, 제 양 어머니의 첩으로 들어갔다는…….”
아, 그거 말인가.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왕윤에 여포는 오해인가 싶어 표정이 좋아졌지만, 그 뒤에 들리는 말에 억장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일세, 벌써 소문이 그렇게나 퍼졌나?”
“그, 그게 무슨 소립니까? 사실이라니!”
“뭘 그리 놀라나. 상국 어른의 첩으로 들어간 것이 그리 잘 못 된 것인가?”
“저번에! 분명 제가 사도 어른께 말했지 않습니까!”
“그랬지. 그런데 내가 허락을 한 기억은 없지 않나?”
“그게, 그게 할 소립니까?”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에 여포에 몸에서 다시 한번 붉은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만일 심약한 자가 그 마력을 본다면 기절할 정도의 기운. 하지만 왕윤이 보통인물은 아니었고 기운을 노련하게 흘려보내며 말했다.
“여 장군! 지금 누구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건가!”
“제가 먼저! 제가 먼저 그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지금 다시 돌아가서 거부라도 하라는 것인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
“애초에 그런 짓을 하지 말았…….”
“그만 하세요!”
그때, 중앙에 있는 마차의 문이 열리며 한 인영이 여포에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달빛 하나 없이 마차의 불빛만이있는 곳이었지만 여포는 누구보다 선명하게 그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초선! 나오지 말라 하지 않았느냐.”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어머니, 마차에 들어가 계세요.”
“쯧, 피곤하니 빠르게 해결하거라.”
초선의 말에 마차로 돌아가는 왕윤. 초선이 눈앞에 나오자 그 흉포하던 마력이 사라지며 이야기하기 편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느낀 초선이 말했다.
“무슨 일이신가요.”
“제, 제가 아주 못된 소문을 들었습니다. 소자가 제 어머니, 그러니까 동탁의 첩으로 들어갔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을…….”
“거짓이 아닙니다. 사실이에요.”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갑자기 그렇게…….”
“곧 식이 올려질 예정입니다. 그 전에 외간 여성이랑 말을 하는 것이 걸리면 상국에게 좋지 않은 풍문이 퍼질 테니 그만 돌아가시지요.”
차가운 축객령.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들으니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 받은 여포는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떨어졌다. 하지만 여포는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는 듯 더욱 격하게 외쳤다.
“그럴 순 없습니다. 납득하기 전까지 저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예, 그러시지요. 저희가 가면 될 일이니까요.”
“…….”
“이 넓은 도로에 혼자 계실 순 없으시잖습니까. 그러니 이만 돌아가시지요.”
“그럴 순 없습니다.”
“어쩔 수 없군요. 그럼 저희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그러니 도로에서 나오시지요.”
초선에 말에도 꿈쩍하지 않는 여포. 그 일편단심의 태도가 초선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초선은 잠시 눈치를 보더니, 소매에서 접힌 종이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여포를 밀치는 척 그의 가슴골에 종이를 넣고 여포에게만 들릴만한 소리로 말했다.
“소, 소자?”
“-부디, 지금은 나와주세요. 그리고 몰래 이 편지를 읽어 주시길 바래요. 여포 공.”
“그게 무슨…….”
“그리고, 부디 저를 구해주세요.”
그 말을 한 뒤 초선은 뒤를 돌아 마차로 돌아갔다. 여포는 가슴 사이에 느껴지는 종이의 부드러운 질감과 마지막 슬픈 표정과 도움을 청하는 초선을 생각하며, 마차에서 비켜섰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는 마차를 바라보며 여포는 절망하며, 하지만 희망을 가슴에 품은 채 다시 황성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