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여포 유혹 작전.
분주한 목소리, 시종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본 나는 몰래 숨겨두었던 것을 꺼냈다.
“챙겨둔 보람이 있었어.”
시종의 옷. 부드러운 비단으로 만든 최고급 옷을 벗고 시종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거칠거칠한 느낌이 마치 고아였던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옷을 다 갈아입고 마지막으로 얼굴을 가려줄 두건을 얼굴에 덮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어…… 완전 난데?”
다른 곳은 괜찮지만 역시나 얼굴이 문제였다. 두건으로 얼굴 주위를 가려도 이 미색은 어디 가지 않았고 눈을 제외한 모든 곳을 가려서야 미색이 사라졌다.
근데 이러면 더욱 수상하잖아. 얼굴을 전부 가린 시종이라니, 암살자로 오인당해도 할 말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포기는 없다.”
나는 그 상태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고 다행히도 항상 분주했던 복도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안심하며 복도를 걷고 있던 도중 시종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여포 있잖아, 비장이라고 불리는 거에 비해 좀 맹해 보이던데?”
“그러게, 듣기로는 전장의 짐승이라고 불릴 정도로 무섭다는데 딱히…….”
젠장, 어떡하지?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 마침 화장실이 보였고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시종들이 지나갈 때까지 숨을 참고 더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쯤 숨을 내뱉었다.
예전에 소매치기할 때 솜씨가 어디 가지 않았어, 나는 떨리지만 기분 좋은 느낌을 받으며 다시 여포가 있는 곳으로 가려던 찰나.
“도둑이 들었군.”
뒤에서들리는 차가운 목소리,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침을 삼켰다. 젠장 사람이 있었구나, 어떡하지? 두건을 벗고 내가 초선이라는 것을 밝힐까? 하지만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
아름다운 미녀들과 밤놀이를 위해!
나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화장실 밖으로 달렸다. 복도를 지나 술상이 펴진 큰방 바로 전에 있는 정원이 보이는 복도 쪽으로달렸다. 정원엔 나무와 풀이 많아 숨기 적합한 곳이었으니, 하지만 나는 정원 쪽으로 가지 않고 정원 쪽으로 향하는 발자국만 남기며 모퉁이 쪽으로 향했다.
기본적인 눈속임, 하지만 이런 트릭을 시종이 알아챌 리가 만무했다. 나는 그렇게안심하며 다음 복도로 가려던 순간.
“으엑?”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 아무리 허우적대도 발은 공중만 휘저었으며 목 뒤에서 느껴지는 중압감에 나는 그제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미녀다. 그것도 굉장히 이쁜 미녀. 하지만 붉은 머리카락과 무심한 듯 보이는 눈, 그 안에 보이는 맹수의 눈이 나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잘 못 걸린 듯해서 빠져나가려 더욱 힘차게 몸을 흔들어보았지만 내 옷깃을 잡은 손에는 일말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은 자꾸 움직이는 내가 귀찮았는지 무심하게 한 마디 했다.
“움직이지 마라.”
사자 앞에 서 있는 토끼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나는 그 말에 사방팔방 움직이던 몸을 바로 잡았다. 나는 계획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것을 느끼며 침울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내려주세요.”
“……남자?”
“남자입니다. 그리고 도둑도 아니니 내려주세요…….”
내가 남자인 것이 당황스러웠는지 천천히 땅으로 내려주는 그녀. 나는 옷매무새를 점검하는 척 슬쩍 눈치를 보다가 그대로 복도를 달려갔다.
이게 소매치기하던 시절에 자주 써먹던 방법. 남자인 것을 어필해 방심을 유도한 다음 그대로 도망치기! 이게 남녀역전 세계의 순기능, 그야말로 남자인 것이 이득인…….
“으힛!?”
뭐가 옷을 당기고 있어? 놀라서 뒤를 바라봤지만 붉은 머리 여성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대체 뭐지? 설마, 마력 간섭인가?
마력을 조종해 현실에 간섭시키는 기술. 만약 마력 간섭일 경우 등을 잡아당기는 느낌도 설명이 된다. 하지만 내가 알기론, 마력 간섭은 정말로 뛰어난 마법사나 가능한 짓이었다. 하지만 마법사가 어째서 이 저택에 있지? 분명 여기 온 손님은 여포와 부하 한 명이라고…….
아.
그러고 보니 마력 간섭이 아닌, 또 한 가지 현실에 간섭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
허공섭물(虛空攝物)
정말 고명한 무인만이 할 수 있다는 기술. 한때 내가 동경했던 기술이었다. 근데 그런 기술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이 저택에 있다고?
“앗.”
너무 생각을 깊게 한 탓인지 뒤에서 당기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하지만 옷을 당기는 힘은 멈추지 않았고 어? 하는 순간 옷은 목을 타고 그대로 바깥으로 탈출했고 운 없게도 그대로 속살이 드러나고 말았다. 이, 이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우선 몸을 가려야 하나?
내가 당황하는 만큼 저분도 당황했는지 허공섭물을 멈췄다. 그대로 땅에 떨어지는 시종복. 하지만 이미 멀리 떨어진 옷을 줍기엔 거리가 멀었고. 급한 대로 두건을 풀러 가슴과 배를 감췄다. 그리고 뒤를 돌아 붉은 머리 여성을 바라보니 붉게 물든 얼굴을 가리며 손을 휘젓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귀여웠다.
“그, 미, 미안하다. 고의는 아니었다. 그저 나는…….”
“괘, 괜찮습니다. 오해로 빚어진 사고이므로 대인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눈을 가리고 있을 테니…….”
“이미 다 입었습니다. 일단 눈을 떠서 이 오해를 푸는게 어떻습니까?”
내 말에 붉은 머리 그녀, 아니 삼국지에서 항상 최강의 무력을 담당하던 그녀가 눈을 떴다. 그러자 멍하니 변하는 그녀의 얼굴. 역시나 여자라면 누구에게나 통하는 외모, 성능 확실하구만, 나는 새까만 속을 숨기며 걱정하는 척 그녀에게 다가갔다.
“얼굴이 편치 않으십니다. 혹시 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
“아, 그, 그게 아니라, 아니 아니고요…….”
“왜 그러십니까?”
“그니까, 그러니까, 그게……”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계속 혼잣말로 어버버 대더니 갑자기 속사포로 말을 빠르게 하기 시작했다.
“저, 저는 여포라고 합니다. 그, 엄청 높은 직위를 가진 동탁이라는 사람의 양 딸이구요. 무예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직위를 가지고 있고 제가 그 황제도 본 적 있고…… 그게, 그니까…….”
“어…… 그게 대체 무슨……?”
“제가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아하. 그러니까 나는 이런것들을 가지고 있고 이만큼 대단한 사람이다? 꼭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능력 있는 동정을 바라보는 거 같았다.
“자기소개…… 인가요?”
“그! 맞습니다. 제가 자기를 소개한 적은 별로 없어서…….”
“후훗, 대단하신 분인 줄 알았더니 이런 귀여우신 면도 있으신 분이네요.”
“그, 그렇죠? 제가 그런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처음에 무심한 눈과 차가운 표정은 어디 갔는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나를 바라보는 여포. 그 모습에 나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게 삶이지. 검으로 몬스터도 못 잡고 마법도 못 쓰면 적어도 이쁜 여자들과 이런 생활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지금 너무나도 행복했다.
“제 소개도 해야겠군요. 저는 이 저택의 주인이자 한 나라 황실의 사도이신 왕윤님의 아들, 초선이라고 하옵니다.”
“저, 정말 아름다운 이름이군요. 마치 꽃의 이름을 듣는 듯합니다.”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렇게 시종의 옷을 입고 얼굴을 가리던 이유를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원하시지 않는다면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음, 하지만 여포 공과 관련이 있는 이유니 설명해 드려야겠네요.”
“저, 저 말입니까? 제가 무슨…….”
나는 여포의 손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고양이처럼 놀라며, 하지만 결코 손을 빼내지 않은 채로 있는 여포.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이유는 바로…… 여포 공을 만나기 위해, 라고 말하면 될까요?”
“그!? 그그그…… 그게 무슨 뜻입니까아?”
“천하제일이라고 불리는 사람을 한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마주하니…….”
나는 잡던 손을 놓았다. 그러니 아쉬운 듯 기색을 보이는 여포. 하지만 나는 그렇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 잡던 손을 그대로어깨에 갔다 대어 손까지 쓸어내렸다. 더욱 농밀해진 스킨십에 살짝 신음을 내뱉는 여포에 방중술을 배운 보람을 느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듬직하시군요. 게다가 반전 매력에 귀여운 모습까지…….”
“가, 감사합니다. 초선 소자도 천하제일이라고 하는 소문이 절대 과장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하는군요.”
“네에? 그거 유혹하시는 겁니까?”
“아니 아니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저는 그저…….”
덜-컥.
그때 어디선가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나는 여포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초, 초선 소자?”
“여기서 이야기하기엔 장소가 좋지 않군요. 계속 시종의 옷을 입고 있는 것도 그렇고…….”
“그러면……?”
“제 방으로 가시지요.”
“네?, 바, 바바바, 방 말입니까? 남자의 방이요?”
그럼 누구의 방이겠습니까. 여포를 끌고가는 나와 하는 수 없다는 듯 끌려오는 여포. 아까의 상황과는 완전히 반대로 된상황이었다.
*
*
*
여포는 초선의 방에 들어오고 난 뒤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옷을 갈아입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길.
스윽 스윽-.
천과 살이 맞닿는 소리, 손가락으로 옷을 잡는 소리. 최강이라고 불리는 여포는 그 미세한 소리까지 전부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소리에 흥분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할 만큼 여포는 무예만큼이나 쑥맥기질을 타고났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닙…….”
이윽고 옷을 갈아입고 나온 초선, 질 좋은 비단옷을 입은 초선의 모습에 여포는 또 다시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저 옷은 뭐지? 왜 아까 시종복보다 질은 좋은데 살을 가리는 면적은 줄어든 거지? 비싸서 그런가?
전투 말고는 아는 잼병인 여포답게 여포는 저 옷이 잘 때나 입는 잠옷, 즉 다른 사람에게 보일만 한 옷이 아닌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보이는 새하얀 살과 그 내음에 취할 뿐이었다.
“차를 내오고 싶지만…… 여포 공은 어머니와 선약이 있으니 그러진 못하겠군요.”
“아…….”
여포는 아쉬움에 한숨을 내뱉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왕윤의 일 따위는 관심도 없었지만 그제서야 상황이 파악되기 시작했다.
장료와 왕윤의 이야기가 끝나면 결국 떠나야 하는 상황, 그 현실이 여포는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확 이대로 납치해가? 하지만그렇게 한다면 저 아름다운 눈망울이 공포에 물들여질 것이다. ……그런 모습은 볼 수 없다. 여포는 충동을 참아내며 말했다.
“초선 소자, 실례를 무릅쓰고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말씀하셔요.”
“혹시…… 장래를 약속한 사람이나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과거에도 현재에도 없습니다.”
저런 미색을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고? 여포는 의아하면서도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 뒤로도 초선은 여포가 하는 대답을 전부 듣기 좋게, 원하는 대로 말해주는 초선의 모습에 여포는 동정이 할 법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거 운명 아닌가?’
“그렇다면…… 혹시 저는 관심 없으십니까?”
“네? 그, 방금 말 하신 평생의 벗, 말씀이신가요?”
평생의 벗이라니, 그 말이 여포의 심금을 울렸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초선의 대답을 기다렸고, 이윽고 초선은 여태까지 했던 대로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저는, 그, 이런 게 처음이라 잘 모르겠지만……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럼!”
“하지만, 제 어머님은 허락하시지 않을 겁니다.”
크윽! 여포는 방금 봤던 초선의 양어머니 왕윤을 생각했다. 딱 봐도 깐깐해 보이는 인상에 고집까지 있을 거 같은 관상. 분명 힘든 길이 될 거 같은 예감이 들지만 그 길 끝에 있는 사람이 초선이라면 어떠한 장애물이라도 넘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여포는 왕윤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빌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쫓겨났잖아. 대장.”
“그게 왜 내 탓을 하지?”
“몰라서 묻는 거여? 갑자기 웬 이상한 붉은 머리 놈팽이가 자신의 아들을 데려가겠다고 소리쳤는데 안 쫓겨날 거라 생각한 거냐!?”
“장료. 상사에겐 예의를 갖추는 것이 상식이다.”
“처음 보자마자 약혼하겠다고 한 것은 상식이고?”
“하늘이 내려준 운명을 거부할 순 없더군.”
장료는 싸울 때 말고는 볼 수 없던 여포의 미소. 아니 난생 처음 보는 미소에 얼굴을 구겼다. 불쾌하다. 매우 심히 불쾌하다-!
“잠깐, 그렇다면 내가 사도 어른이랑 힘겹게 술상을 나누던 동안 대장은 그 운명의 상대하고 짝짝쿵했다는 소리아녀?”
“……그것이 너의 일이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지 않겠느냐?”
“갑자기 혓바닥이 길어지셨네여, 그리고 그게 왜 내 일이야! 분명 상국은 대장에게 시켰다고!”
“그걸 내가 너에게 시켰으니 너의 일이다.”
“허허, 그 초선이라는 소자가 뭘 했길래 녹밖에 없던 혀에 기름칠해놨을까.”
장료는 잠깐 봤던 천하제일의 미색을 떠올렸다. 소문은 과장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이상의 찬사가 없는것이 아쉬울 정도의 미색. 장료는 그 미색을 떠올리며 어리석게 입을 열었다.
“얼굴 미쳤던데…… 마음 같아서는,아?”
장료는 자신이 말하고도 놀라 식은땀을 흘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무심한 눈이 아닌, 냉정하고 비정하며 난폭한 맹수의 눈이 장료를 째려보고 있었다.
“얼굴이 미쳤다고?”
“아니, 대장, 그게 아니라…….”
“미친 건 네년이겠지.”
그다음 날, 장료는 온몸에 멍이 들어 월차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