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허락좀 해주십쇼.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크면 나라를 망칠 미색을 가질 아이로구나.
그것이 빈민가에서 하루하루 빌어먹고 살던 내게 내려진 하나의 동아줄이었다.
나의 양어머니인 왕윤은 더러운 먼지와 때로 감추어져 있던미색을 어떠한 능력으로 알아채고 나를 입양했다고 했다. 그것이 정략결혼이든 첩으로 팔아버리든 이 정도 미색이라면 어떻게든 쓸모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고 그 결정은 옳았다.
이곳이 판타지 세계라는 것을 깨닫고 처음 한 일은 검술을 배우는 것이었다. 한 용병단의 허드렛일을 하며 검술을 알려달라고 빈 적이 있었다. 그때는 용병들의 성격이 더럽고 야만적이라는 것을 모르고 한 일이었지만 다행히 그 용병은 마음씨가 그나마 착했다.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검술을 가르쳐줬고 돌아온 답은 충격적이었다.
-아예 재능이 없어. 그래도 허드렛일은 완벽하던데 그거라도 하지 않으련? 보수는 넉넉히 줄게.
그 말에 충격을 받은 나는 그대로 용병에게 작별 인사를 고한 뒤 용병단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몇 년 뒤 한 마법사가 이 도시에 들렀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뛰어가 제자로 받아달라고 빌었다. 그렇게 몇 주 동안 마법 보조로 지내며 신뢰를 얻고 제자가 되려고 하던 순간 그녀는 말했다.
-어……. 미안한데 마법 재능이 1도 없어, 이 정도면 거의 저주가 아닐까……? 너 지금 우니? 그, 마법 재능은 없지만 보조는 엄청 잘하던데? 마법은 가르쳐 줄 수가 없지만 보조로는 계속 써줄 수 있어! 보수도 넉넉히 줄 테니까…….
로망은 없었다.
그렇게 무예 재능도 마법 재능도 없이 길가에 널브러져 있던 나에게 다가온 것이 지금의 양어머니 왕윤이었다. 그녀는 나의 재능을 한눈에 꿰뚫어봤고 나도 나의 재능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검도 마법도 재능이 없지만, 내조의 재능이 있던 것이었다.
전생에 기억 덕분에 나는 여러 방면으로 지식이 많았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이 가능했고 기본적인 산수는 물론, 요리도 잘했고 목소리도 좋아 노래도 잘 불렀으며 검은 못 휘둘러도 관절은 잘 비틀었기에 춤도 잘 췄다. 가끔가다 교과서에서 본 시를 한 번 불러주면 모두가 눈물을 훔쳤다.
거기다가 제일 중요한 요소. 외모가 엄청나게 뛰어났다.
마치 비단을 만지는 것 같은 검은 머릿결, 잡티 하나 없는 흰 피부, 고양이처럼 날카로우면서 섹시한 눈매. 오뚝한 코와 갈라진 적이없는 입술. 어릴 땐 몰랐지만 커가면서 점점 외모가 위험하게 변해갔다.
키야! 이게 외모지!
내가 봐도 반할 거 같은 외모는 검과 마법으로 데인 트라우마를 많이 달래줬다. 그래서인지 목표도 변질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검이나 마법 같은 거로 전생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세계로 와서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런 외모를 가지고 남녀역전 세계로 떨어졌고 여자를 유혹할 수 있는 재능이 나에겐 수도 없이 많았다. 완벽한 외모, 완벽한 기술, 그리고 거대한 분신.
나는 전생에서는 꿈도 꾸지 못했던 수많은 여성과의 관계, 아니 섹스! 섹스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
*
*
하지만 그것은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와, 완벽하군요! 가히 서시(西施)가 무덤에서 다시 살아 돌아 오지 않았을까, 의심할 정도로 엄청난 재능이십니다!”
방중술(房中術)
음양의 합일, 불로장수의 술법이라고도 말하지만 대놓고 말하자면 섹스 테크닉이다. 아니, 진짜 건강을 회복시켜주는 기능도 있으니까. 나는 눈앞에 있는 늙은 남성, 방중술 선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과분한 칭찬에 몸들 바를 모르겠군요. 너무 띄어주지 말아 주시길.”
“아닙니다! 이 재능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재능! 이 정도의 숙련도라면 아무리 목석같은 여자라도 물을 뿜어내지 않을 수 없겠군요!”
“부끄럽습니다.”
나는 여성의 성기를 본 따 만든 고무로 된 기구, 즉 오나홀 비슷한 거에 손을 빼며 말했다. 솔직히 부끄럽다. 이곳이 남녀역전 세계인 건 알지만 눈앞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아버지 뻘 되는 사람과 오나홀을 쑤시며 이런 얘기라니, 아무리 성욕이 가득한 나라도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
“춤도, 노래도, 시도, 바둑도 모두 상상 그 이상입니다! 더는 제가 가르칠 것이 없겠군요. 아직 이르지만, 수업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잠깐만요!”
황급히 나가려고 하는 선생을 붙잡았다.
이걸 말해 말아? 멀뚱히 나를 쳐다보는 선생에게 나는 볼을 긁적이며 슬며시 말했다.
“그, 혹시 실전 연습은 하지 않습니까? 기구로만 연습해서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을지 잘 몰라서…….”
“어허! 열정이 너무 과하십니다. 아무리 연습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상스러운 일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 저도 원한 건 아닙니다. 그저 제 솜씨에 불안감이 생겨서…….”
“저 ‘금지수음(金指手淫)’의 이름을 걸고 말합니다. 이 기구와 여자의 신체는 당연히 차이가 있겠지만 그 정도 차이는 무시할 정도의 기술이 공자께선 있으십니다.”
그는 검지와 중지를 붙여 앞, 뒤로 움직이며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윽고 그가 방을 나간 뒤 나는 허탈하게 누우며 이 세계를 원망했다.
금방이라도 섹스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락세지만 무려 사도의 아들이었고 소설이나 만화에 자주 나왔던 시녀와의 엔조이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곳이 남녀역전 세계인 것을 잊고 있었다.
허드렛일을 하는 것은 시녀가 아닌 시종, 즉 남자였고 여자는 어머니 같은 사람을 보조하는 사람들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수는 매우 적었고 무엇보다 아군이라고 생각했던 남져역전 세계인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지금 내 위치를 정확하게 따지면 나는 망나니처럼 여자를 후리고 다니는 망나니 공자가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애지중지하는 딸의 위치였다. 그런 존재에게 음심을 대놓고 드러내며 다가오는 사람은 적어도 이 저택에는 없었다.
“아, 섹스하고 싶다.”
나도 모르게 바지 속에 손을 넣어 내 분신을 만졌다. 전생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의 크기였지만, 현실은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한 애물단지. 그것을 본 나는 마음을 정할 수가 있었다.
“분명 초선은 양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해 동탁과 여포 사이를 붕괴시켰지.”
방을 나와 어머니의 방으로 향했다. 삼국지 속 초선은 왕윤을 설득해 자신의 몸을 여포와 동탁에게 바쳤다. 폭정으로 고통받는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그 마음은 실로 고귀하며 영웅적이었을 테지.
똑같은 초선인데 나라고 못 할 거 없지 않은가? 물론 자기희생이 아닌 음욕을 찾아 떠나는 탕아의 마음이지만.
“어머니, 잠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들어오거라.]
방문을 열고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가자 보인 것은 쉴새 없이 붓을 움직이며 서류를 작성하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무슨 일로 왔느냐?”
보호 차원인지 언제나 내가 만났던 여자들은 전부 늙어있거나 아니면 남자로만 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언제나 여자에 고팠지만 이 저택엔 여자로 보일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면.
하나로 묶은 회색 머리에 살짝 올라가 있는 눈. 사람을 뚫어 보는 아주 깊은 눈동자와 노년의 나이지만 한때 뛰어난 무장이었던 어머니는 ‘한계’를 넘어 몇십 년은 젊어 보이는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왜 말이 없느냐. 어디 안 좋은 곳이라도 있느냐?”
몸매는 어떠한가. 군살 하나 없는 몸매에 흉부는 크진 않지만 작지도 않은 알맞은 크기. 기다란 팔과 다리는 나의 정신을 빼놓기엔 충분했다.
“초선?”
“아…… 죄송합니다. 잠시 생각할 것이 있어서.”
“대체 무엇을 생각하기에 이 어미의 말도 못 알아들었느냐?”
어머니의 몸을 생각했습니다. 라고 말하면 미친놈 취급을 받을 테니 표정을 바꿔, 각오한 표정을 지으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요즘 표정이 좋지 않으십니다. 무슨 괴로운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아, 요즘 일이 많아서 그렇다. 이 모든 것이 나라를 위한 것이니 힘들지만 괴롭지는 않다.”
“어머니.”
진지하게 어머니를 부르니 쉴새 없이 움직이던 붓이 멈췄다. 서류에 가 있던 시선이 나에게로 옮겨졌고 정면에서 보니 더 이쁜, 그게 아니라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혹시 어머니의 고통이 역적 동탁에게 나오는 것입니까?”
“말을 삼가거라!”
“그 역적이 폐하를 욕보이고 폭정을 저지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매일 매일 연회를 치르고 국고를 낭비하며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고 있다고.”
“어미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계속 고민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주신 새로운 생활. 어떻게 해야 보답할 수 있는지. 소자 하루도 빠짐없이 고민했습니다.”
점점 일그러지는 어머니의 표정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역적 동탁에겐 비장이라 불리는 수양딸이 있지 않습니까? 암살자를 보내도 독을 보내도 귀신같이 알아채는 괴물 같은 장수가, 요즘에는 그들의 사이가 소원해졌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가서 그들의 사이를 완전히 붕괴시키겠습니다.”
“들을 필요가 없구나. 여봐라! 누구 없느냐!?”
“이 나라의 기강을 다시 살려야지 않겠습니까! 제가 발판이 되겠습니다. 부디 어머니는 소자를 밟고 나라의 종묘사직을 다시…….”
“이놈이 정말! 이 어미의 속을 얼마나 썩여야 마음이 풀리겠느냐!”
“어머니!”
그때 방문이 열리며 칼을 찬 여성이 들어왔다. 어머니가 고용한 저택의 경비 중 한 명이었고 그녀는 이 상황을 보고 당황 한 채로 어머니와 나를 바라보았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초선을 쫓아내고 방 안에 가둬라! 일주일 동안 근신을 명하겠다!”
“어머니!”
“어서 쫓아내라!”
경비는 조심히 내 몸을 잡았다. 살짝 반항도 해봤지만 힘의 차이가 너무 커서 의미가 없어 화난 척을 하며 크게 말했다.
“놓으세요. 제가 걸어가겠습니다!”
“아이고 공자님…….”
“이런다고 제 생각이 바뀌진 않을 겁니다!”
어차피 처음에 수락할 것이라고는 생각도안 했다. 본래 어머니의 충의 정도면 나를 팔아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정도였지만, 내가 적당히 잘했어야지. 수십 년간 충의를 바쳐온 나라와 십 년도 되지 않고 피도 이어지지 않은 나와의 정. 그것의 대칭을 이룰 정도로 내가 좀 효도를 잘했다.
물론 지금은 그짓이 역효과를 내긴 했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어차피 몇 번 더 허락을 구하면 충의와 나를 고민하다가 결국 충의를 선택할 것이다. 지금 충의를 고르지 않는다면충의는 사라지지만 나는 고르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볼 수 있으니.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결국엔 허락하게 돼 있다. 일주일 동안 매일매일 나라에 관련된 편지를 쓰면 안 해주고 배기나?
그리고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났다.
“어라?”
어머니께서 허락을 해주시지 않는다.